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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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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2)

 

살다가 길을 잃었을 때

김수련/ 29년차 항공사 객실 승무원

 

 

  오늘은 내캉 밭 가는 데 따라가자. 우짜마 오늘이 내캉 밭 갈러 가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같이 안 갈끼가. 니가 서울 가기 전에 할 이야기도 좀 있고.”

아직 창호문 너머로 어스름 새벽빛만 희미하다. 날이 채 밝기도 전부터 아버지는 동네 어귀 당산나무 근처로 밭 갈러 나갈 준비를 다 하신 모양이다. 밭을 가는 건 어쩌면 핑계고, 다음 달 서울로 일하러 떠날 나와 얘기를 나눌 구실을 만드신 건지도 모른다.

어릴 적 온갖 농사일을 거들며 살았지만 어둠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게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게다가 아직 겨울 추위 끝자락이 매서운 2월이었지만, 그날 난 정말 기꺼이 창호문을 열고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19902,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오기 전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초중학교를 고향 동네 면 소재지에서 보낸 뒤 밀양 읍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난 자취를 시작했다. 그러니 철든 뒤 부모님 곁에서 보내는 긴 시간은 그해 2월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도 했으며,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을 알았다.

2월의 시골은 농한기라 외견상 한가하다. 하지만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에게는 1년 농사가 이때 판가름 난다 할 만큼 귀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농부들은 논과 밭을 돌아보면서 한 해 농사를 계획한다. 어떤 농사를 지을지를 결정하고, 심을 작물에 따라 거름을 얼마나 낼지, 비료는 뭘 쓸지, 밭이나 논을 빌려 소작을 내야 할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날이 풀려 언 땅이 녹기 시작하면 동네 아재들은 너도나도 들로 밭으로 쟁기질을 하러 나간다. 당시에도 경운기가 있었지만 경지 정리가 되지 않아 대부분의 논과 밭에는 기계가 들어가기 힘들었다. 기계를 조립하고 부리는 일보다는 소가 끄는 쟁기질이 훨씬 더 손쉽기도 했다. 우리 집 어미 소는 몇 해 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충분히 길이 들지 않아 아버지의 호령 소리를 아직 잘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앞에서 소를 몰면서 길잡이를 해 주어야 했다.

아직 잠이 덜 깬 외양간의 어미 소를 깨워 물과 여물을 먹인 후, 아버지는 쟁기를 짊어지고 나는 소를 몰고 대문을 나섰다.

아침때 늦지 않게 후딱 댕기 오이소~.”

새벽부터 빈속에 오래 일하다 자칫 부녀가 기운이라도 빠질까, 걱정하시는 어머니 목소리를 뒤로 하고 들로 향했다.

암만 힘들어도, 니는 잘할 끼다.”

이려, 이려!”

아버지의 호령 소리에 맞춰 나는 앞에서 소를 끌고, 아버지는 쟁기질을 하셨다. 밭에는 오늘 내가 뿌려야 할 거름이 가득했다. 아버지가 쟁기로 밭을 가는 동안, 거름을 뿌리는 일은 내 몫이었다. 틈틈히 말 안 듣는 어미 소를 몰기도 하며 거름을 온 밭에 뿌리는 일은 무척 고단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쟁기질과 거름 내는 일은 아침때를 한참 넘겨 해가 중천에 가서야 끝이 났다. 동쪽 산 위로 훌쩍 솟은 햇살을 받아 쟁기질로 갈아진 흙에선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서늘한 아침 공기엔 싱싱한 거름 냄새가 가득했다.

힘들제?”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몇 시간째 일을 한 후 밭두렁에 앉으니, 헉헉대는 숨결에서 쇠를 달군 듯한 단내가 피어오른다. 고르게 잘 갈린 밭을 보면서, 아버지께서 말씀을 이어 가신다.

니가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러 간다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취업 결정이 나자 엄마는 정말 기뻐하시며 여기저기 인사하러 나를 데리고 다니셨지만, 아버지에게서 좋다는 말을 들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항공사에서 일한다니, 그기 어떤 긴지 나는 감히 상상도 안 된다. 테레비에 나오데? 비행기 타마 하와이라는 데도 가고 할 낀데, 와이키키라 카더나? 해변가가 좋더라. 언젠가 그런 데 가더라도, 오늘 이 시간을 잊지 말아라. 나는 니가 좋은 곳을 가고 멋진 옷을 걸치고 그래 산다 캐도, 니가 살았던 이 고향 동네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젊었을 땐 큰 데 나가 살고 싶었는데, 느거 할아버지가 절대 허락 안 하셔서 고향을 지키고 살았다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젠 농사지으며 고향서 사는 것이 내 운명이라 생각한 지 오래다. 니가 일손 부족한 시골서 자라면서, 지독히도 농사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온 거 미안하기도 하고 많이 고맙게 생각한다. 고되고 힘들었을 텐데 큰 불평 안 하고 잘 따라 주는 너그들을 보미, 안타까운 마음이 와 없었겠노? 서울 가서 살아 보면 니 같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친구들을 찾아보기는 힘들 끼다. 니한테 분명 값진 경험이 될 끼라 생각한다. 살면서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얼마나 많겠노? 그럴 때면 오늘 내랑 같이 밭 갈면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 봐라. 지금보다 더 힘든 날이 얼마나 더 있겠노? 니는 잘 견뎌 낼 끼라 믿는다. 고향에서 살았던 이 시절이 너의 뿌리며 너의 근본 아니겠나. 니는 서울서도 잘 살 꺼라고 믿는다. 뭘 해도 잘 할 끼다.”

아버지의 그런 당부를 듣고 있자니, 나를 키워 주고 품어 준 고향 들과 산이 새삼 달라 보였다. 소 먹이느라 헤매 다녔던 뒷산과 앞산, 부모님 따라 농사짓던 들과 밭, 동무들하고 물장구치며 놀던 작은 개울, 봄의 산딸기부터 가을의 머루까지 내가 모르는 곳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속속들이 알고 기억하는 고향 마을이었다.

막 일을 끝낸 후라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두 사람 입에선 하얀 입김이 꽃처럼 피어났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어미 소의 등과 입에서도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마치 곧 고향을 떠날 나를 위한 축포의 연기 같구나, 싶었다.

그림_ 최정규

항공사에서 객실 승무원으로 일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서울 생활도 그리 쉽지 않았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자랐던지라 체력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니는 일은 지독히도 고된 노동이었다. 태평양을 걸어서 건너다닌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일 덕분에 퉁퉁 붓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낯선 나라의 차가운 침대에서 잠들 때, 모진 승객에게 무시당하며 눈물을 삼킬 때, 무섭고 호된 선배들의 질책에 속수무책일 때, 산골 소녀로서는 차마 상상조차도 못한 일을 겪으면서, 나는 서서히 지쳐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아버지가 얘기한 하와이 비행을 드디어 가게 되었다. 와이키키 백사장 바로 앞 호텔에 짐을 풀고 당장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휴양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그 아름다운 해변가를 걸었다. 잠시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았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쳤으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을 겪으며 어쩌면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힘들제? 그래도 안 잊어버렸제? 니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해라.”

그 순간, 그날의 고향 풍경과 아버지와 나눴던 이야기들이 마치 영화처럼 가슴속에 되살아났다. 얼어붙은 땅에 박힌 쟁기를 끌던 어미 소의 거친 숨소리, 갈아엎은 흙에서 나던 신선한 땅 내음, 아침 햇살 받으며 피어오르던 아지랭이, 이랴~이랴~ 어띠이~ ~~” 소를 부리던 아버지의 목소리. 그리고 고단한 아침 일을 마친 후 아버지와 나누던 긴 이야기.

그후, 그날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시차를 넘나들며 타국에서 고단한 잠을 청할 때, 무서운 선배에게 혼이 나 혼자 눈물을 삼킬 때, 모진 말을 함부로 퍼붓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해 괴로울 때마다 되살아나, 나를 위로했다. 어미 소의 등어리처럼 판판하고 포근한 고향 뒷산과 굽이굽이 어여뻤던 논과 밭은 지금도 나를 어루만져 준다. 해마다 입사철의 그 봄날 즈음이면 나는 언제나 그 시간을 떠올린다. 그날 아버지와 내가 언 밭을 갈아엎으며 봄 농사를 시작했듯, 나의 긴긴 비행 생활도 그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닐까.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