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작은책> 20191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독서 모임과 페미니즘

김병수/ 회사원

 

 

아니 왜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항상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해?

아내가 못마땅해하며 소리 질렀다.

나 락스 세제로 청소하라는 말 못 들었어. 언제 그런 말 했어?”

나도 아내에게 화를 냈다.

내가 세 번씩이나 락스 세제를 묻혀 수세미로 닦으라고 했잖아.”

아내는 쏘아붙였다. 생각해 보니 아내가 한 번쯤 이야기 한 것 같았다. 아내는 매사에 내가 허술하고 자기 말에 전혀 집중을 하지 않는다고 누누이 지적해 왔다. 결혼 후 줄곧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도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고등학생 아들과 딸에게 밥 챙겨 주고 부랴부랴 출근한다. 저녁때는 급히 퇴근하자마자 음식 장만을 한다. 자기 시간이 없다. 내가 늦게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내는 지친 몸을 소파에 의지하고 있거나 피곤에 지쳐 자고 있다. 반복이다. 왜 나만 밥을 하고 반찬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냐고 아내는 투덜투덜한다. 반면 나는 설거지, 빨래 개기, 화분에 물 주기 등 집안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책 읽기, 독서 모임, 영화 모임 등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애써 찾아 하는 내가 밉다고 했다. 그럴 때는 내가 너무 하나, 아내를 도와줘야 되는데후회를 하곤 한다. 그때 뿐이다. 계속 이 생활은 반복이 되고 있다. 왜 여자만 일하고 남자는 시간이 남으면 집안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페미니즘 독서 모임에 참석한다. 일상에서 나타나는 남성 중심 생각과 행동에 대해 책 내용과 견주어 토론을 하는 모임이다. 그동안 대여섯 권의 책을 읽었다. 여자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차별을 받고 있고, 사회가 여자를 낮게 보는 현상이 난무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 것들이 여자의 시각으로 보면 차별로 인식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남자의 시각에 사로잡혀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일어나는 아내의 짜증은 남자의 가부장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미니즘 모임에서 지적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다. 공부 따로 생활 따로다.


토론한 책 중에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맞벌이 남편은 청소를 하고 아내는 요리를 하는 것으로 평등하게 가사 분담을 한다. 문제는 남편은 일주일에 한 번 청소를 하지만, 매일 아침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빨래, 화장실 청소, 설거지를 한다. 그런데 아내가 더 많이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책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일정한 폭력의 감각은 내 일상을 채운다. (중략) 가장 빈번한 폭력과 착취는 일상 속에 존재한다.”라고 강조한다. 일상에서 내가 은연 중 내뱉은 말과 행동이 성적 학대인지 모르고 살아왔다. 끔찍하다.

페미니즘 모임은 고정 참석자가 세 명이다. 모임을 주관하는 리더()와 나머지 둘(남과 여)이다. 한 번은 태풍이 온다는 뉴스에 모임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토론할 내용을 많이 준비해서 다음으로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리더와 나는 다음에 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리더의 권한으로 다음에 하자고 카톡에 선언을 했다. 그 이후에 그녀는 모임에 탈퇴했다. 남성의 힘으로 여성의 의견을 묵살한 형태가 되었다. 그 이후 결국 모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이론적인 페미니즘을 외쳐 봤자, 생활에서 내 행동이 변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는 대부분의 남자는 오죽할까? 지금도 탈퇴한 그분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양성 평등에 반대한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성별 이데올로그는 남녀 모두 깊이 내면화되어 있어서 여성주의자조차 반박하기 쉽지 않다.” 이는 너무 내면화되어 있어서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내면화되어 있는 육체와 정신을 깨는 작업은 어렵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의도적으로 일상에서 실천하고자 한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