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9년 9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
노조 가입해. 안 그럼 이혼할 거야
정인열/ <작은책> 기자
▲ 서울톨게이트 지붕 위에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6월 30일부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지붕 위에서는 고공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약 1500명이 지난 6월 대량 해고됐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50대 여성과 장애인이다. 6월 30일, 이중 43명이 지붕 위로 올라갔고, 전국에서 모인 해고자들은 바로 옆 교통센터에 모여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7월 26일 시사만화가 이동수 씨와 함께 농성장을 찾았다.(이동수 화백은 <작은책>에 생활 만화와 삽화를 그리고 있다.)
교통센터 주변은 크고 작은 텐트들로 가득 차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간밤에 비바람까지 몰아쳐 젖은 옷가지들과 비품들이 널려 있었다. 현재 해고자들은 민주노총 조합원 약 600명, 한국노총 조합원 약 900명이다. 이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도로공사를 상대로 공동투쟁과 공동교섭을 하고 있다. 천막에서 민주노총 소속 박혜숙(순천영업소), 김원표(양평영업소), 이진희(청북영업소) 씨와 한국노총 소속 김병종(고창영업소), 이원종(대소영업소) 씨와 인터뷰를 했다.
▲ 경기도 성남시 서울톨게이트 옆 교통센터에 전국 톨게이트해고자들이 모여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들은 부스 요금수납 말고도 화물차 과적 단속 및 통행료 미납 관리, 하이패스와 전자카드 관리 등의 민원 처리를 한다. 본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 정규직이었다(기간제로 입사한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기계약 전환). 한국도로공사는 전국의 톨게이트 영업소를 직접 운영하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비핵심 업무 외주화’ 명목으로 외주화를 시작했고, 2009년 이명박 정권 때 ‘공공기관 선진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모든 영업소가 외주화됐다. 김병종 씨와 이진희 씨가 말한다.
“그때 남자 수납원들은 정규직 되고 여성 수납원만 외주화됐어요.”
외주업체 사장들은 도로공사 본부·지사 임직원 출신으로, 희망퇴직 시 남은 정년 기간만큼(보통 5~6년) 수의계약을 맺어 수익을 보장받았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커지자 점차 공개입찰을 통해 법인 위탁업체와 계약을 맺기 시작했지만, 지난 5월만 해도 대부분 영업소는 전직 도로공사 임직원들이 운영했다.
외주업체는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 2013~2014년 국정감사에서 신기남 의원실이 발표한 ‘한국도로공사 희망퇴직자 수의계약 외주운영 실태’와 ‘한국도로공사 정책자료집’에 따르면 임직원 출신 사장들이 서류까지 조작하며 임금을 착취하고 사업비를 부당 편취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써야 할 피복비, 식대, 교통비는 물론 상여금과 퇴직금 및 각종 수당(시간외, 야간, 휴일근로, 연차수당 등)을 떼어먹거나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근무하지도 않는 친인척 등을 직원으로 신고하고 근태기록 및 업무 일지를 조작해 인건비를 청구하기도 했다.
요금수납원들은 사장(업체)이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떨어야 했는데, 장애인과 새터민을 채용하기 위해 기존 수납원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새터민을 채용하면 정부로부터 고용지원금이 나오는데, 업체 사장들은 고용지원 기간이 끝나면 해고하거나 괴롭혀서 스스로 나가도록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인 김병종 씨가 말한다.
“중증은 60만 원까지 받는데 저는 경증이라 (고용지원금이) 30만 원 될 거예요. 저희(고창영업소)는 14명 중 12명이 장애인이었어요. 지방으로 갈수록 장애인 비율이 높아요.”
도로공사는 이런 불법행위들을 눈감아 주거나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다. 신기남 의원실은 불법행위로 가져가는 이익을 업체당 한 해 4억 원으로 추산했다. 반면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허덕였다. 심야노동을 하며 4조 3교대로 일했지만, 임금인상 체계가 없어 10년, 20년을 일해도 신입 직원과 급여가 같았다. 많게는 하루 1천 대 차량의 수납 업무를 했고, 영업소 사무실에서 민원 등을 처리하는 주임들은 교대자가 없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다. 특히 하이패스 차량 정보 인식 오류로 인한 미납요금을 처리하느라 초과근무를 하고도 일한 만큼 임금을 못 받았다. 고객들을 대면하거나 전화로 미납요금을 독촉하면 고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난 뒤에는 근무 부실을 인정하는 경위서를 써내고 부족분은 자비로 충당했다.
이렇게 외주화 때문에 생긴 폐해는 고스란히 전국 354개 영업소 7천여 명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 2010년 한국노총 산하 전국톨게이트노동조합이 생기고 2015년에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생겼다. 2013년 톨게이트 노동자들 800여 명이 먼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고 1, 2심 법원은 각각 2015년과 2017년 노동자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도로공사는 직접고용 방식이 아닌 자회사 채용을 추진했다. 박혜숙 씨와 김병종 씨가 말한다.
“평소에도 티타임 때마다 자회사가 좋다고 세뇌시켰어요. 자회사로 안 가면 해고한다고 협박도 했고요.”
직접고용을 희망한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을 강행하고 30퍼센트 임금 인상과 기타공공기관 지정 등을 제안했다. 톨게이트 노동자 약 6500명은 자회사 전환에 동의해 지난 7월 1일부로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주)에 고용됐고 이를 거부한 약 1500명은 해고자로 남았다. 이들은 왜 자회사를 거부하는 걸까? 이원종 씨가 말한다.
“용역업체나 자회사나 같은 거예요. 자회사도 낙찰률이 있어요. 그럼 정규직이 아니잖아요. 낙찰률이 88퍼센트면 나머지는 누구를 주는 건가요? 결국 명예퇴직자들한테 가는 구조 아닌가요?”
임금 인상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로공사는 자회사로 전환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20퍼센트 인상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건 사실 기존 법인 위탁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받던 금액이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직접고용 정규직화 요구에 대해 ‘입사 시험도 안 친 주제에 떼를 써서 정규직원과 똑같이 대우해 달라고 한다’며 비난한다.
“정규직에는 일반직과 실무직이 있어요. 실무직에 도로관리, 청소, 조리원, 사무원 등이 있고요. 실무직은 일반직처럼 공채 시험을 치르지 않아요. 저희 요구는 우리를 실무직에 넣어 달라는 거예요.”
▲ 한국도로공사 교통센터 풍경 스케치. 입구에 적힌 표어와 해고노동자들의 모습이 대비된다. ⓒ이동수
현재 투쟁하는 조합원들 대부분은 최근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이다. 노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모두 집을 떠나 청와대와 서울톨게이트를 오가며 노숙을 하고 있다. 몸과 마음은 지칠 때도 있지만 가족들의 지지와 격려가 큰 힘이 된다. 홀로 아이 셋을 키우는 이진희 씨는 특히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녀는 스물두 살 첫째에게 동생들을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자녀들에게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투쟁하는 게) 엄마로서 너희들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힘이 닿는 데까지 하고 싶다고 애들에게 말했죠. 애들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래요.”
박혜숙 씨는 오히려 남편이 적극 지지한단다. 박 씨의 남편도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예전에 그이는 남편이 노조에 참여하는 게 싫어 집회 현장까지 가서 끌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자회사 전환 사태가 벌어지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노조 가입해서 직접고용 하고 와. 안 그럼 이혼할 거야.”
한국노총 소속 톨게이트노조는 민주노총과 달리 상급단체로부터 아무런 지원 없이 투쟁하고 있다. 자회사에도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생겼다. 한국노총은 수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선택했으므로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톨게이트노조는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톨게이트 비정규직 노동자 김병종, 박혜숙, 김원표, 이진희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인터뷰 도중 소나기가 내렸다. 빗속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이원종 씨가 “남자들만 있었으면 벌써 집에 갔을 거예요. 여성분들이 정말 대단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에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대답했다. “상급단체 연대도 없이 홀로 투쟁하는 톨게이트노조도 대단해요. 함께 투쟁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