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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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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8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비정한 먹이사슬

이순이/ 벌농사꾼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새벽에 한바탕 벌통 내검을 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집 안이나 그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리고 해지기 전에 또 한바탕 벌통 내검을 한다.

, 벌통은 왜 이리 많고 또 여름 해는 왜 이리 긴 거냐. 온종일 일을 하다가 문득 노예 같다는 생각이 들면 일을 멈추고 집 안으로 들어가 캔 맥주를 마시거나 냉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할지 안 할지는 내가 결정한다며 버텨 보기도 한다. 그러나 농사일이나 벌 일은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기에 다시 작업에 돌입하곤 한다.

며칠 전 새벽일을 하다가 남편이 뭔가를 발로 차서 봉장 밖으로 치우는 것을 보았다. 차는 모습을 보니 꽤나 크고 잘 밀쳐지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뭐냐고 물었더니 두꺼비란다. 두꺼비가 벌을 잡아먹기 때문에 이렇게 나타나면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면 멀리 갖다 버리든지 죽이든지 해야지 거기에 그렇게 두면 또 돌아오지 않겠냐고 툴툴댔다. 양서류나 파충류에는 적응이 안 되어 그 두꺼비를 나는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지나서, 어둑어둑해질 무렵까지 저녁 작업을 하고 뒷정리를 하다가 투실투실한 두꺼비가 벌통 앞에 떡 버티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청개구리를 귀엽게 볼 정도까지는 적응이 되었는데 두꺼비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그놈은 너무 크고 징그러웠다. 무엇보다 인기척을 느끼고도 도망가지를 않고 어정어정 벌통에 더 가까이 다가앉았다. 네가 인기척을 모르는 게냐? 하여간 벌통 앞에 앉아 저 큰 배가 부를 때까지 꿀벌을 한 마리 한 마리 혀로 말아 먹는 생각을 하니 보호본능에 전투력이 상승했다.


그놈을 골프공 날리듯 쳐내겠다는 생각으로 벌통을 눌러놓은 굵은 각목을 집어 들었지만 입은 이미 남편을 부르고 있다. 그놈을 쳐내며 느껴질 물컹함과 무게감에 몸서리를 치며 남편에게 각목을 건넸다. 성질 급한 남편은 내가 건네주는 각목을 본 체도 않고 지나쳐 가며 두꺼비가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 각목으로 두꺼비가 있는 쪽을 가리키자 근시안인 남편은 그곳을 들여다보느라 허리를 굽히고 고개까지 수그린다. 위험하다. 두꺼비 혀에 독이 있다고 들은 기억에서 두꺼비 혀가 1미터도 넘게 뻗어 나와 남편의 얼굴을 핥는 것까지 상상의 날개가 순식간에 펼쳐지니 소름이 돋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발길질로 두꺼비를 걷어찼다. 그리고 어디로 날아갔는지 두리번거리며 찾는다. 덩치 큰 두꺼비는 축구공처럼 멀리 날아가지 않고 바로 옆에 떨어져 별일 없었다는 듯이 벌통 쪽으로 어정어정 기어가고 있었다. 흥분한 남편은 그제야 내 손에 있는 각목을 낚아채서 게이트볼 치듯 투욱 쳐냈다. 그러나 두꺼비가 꿈쩍도 않자 맘을 고쳐먹고 장타를 날리듯 힘껏 쳐냈다. 그 타격이 빗나갔는지 두꺼비는 굴러가지도 날아가지도 않고 5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벌러덩 나자빠져 있었다. 덩치 때문일까. 파리나 모기를 잡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던 것과는 다른 느낌 때문에 우리 부부는 말없이 뒷수습을 했다. , 꿀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꺼비를 죽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미안함과 죄책감을 털어 내기 위해 둘이서 몇 마디 말을 더해야 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남편이 말하고, 맞아 맞아, 저 놈이 날마다 와서 먹을 꿀벌을 생각해 봐. 우리도 먹고살자고 그런 거지 재미로 죽인 건 아니니까.그렇게 종알대며 걸어 나오다가 나는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돌아섰다. 또 다른 두꺼비가 죽은 놈과 같은 자세로 벌통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남편은 골프 치듯 두꺼비를 단번에 봉장 바깥쪽으로 쳐냈다. 살생이란 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이미 숙련이 되는가 보다. 마음이 무거워서 소주를 아니 마시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음 날부터 밤마다 두꺼비 보초를 서러 나갔다. 아랫마을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거든다. 주변의 풀을 더 베어 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놈을 양파망에 넣어 꽉 묶어 두란다. 그놈이야 말라 죽을 테고 다른 두꺼비들이 오지 않을 거라고. ,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3일이 지나도록 두꺼비가 나타나지 않는다. 적당히 서로 먹고살면서 눈에 안 띄니 다행이라 했더니, 남편이 말한다.

어제 아침에 보니 뱀이 두 마리 있더라고.”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