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9년 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도대체 매력이 뭘까?
엄익복/ 직장인
내 나이 올해 마흔 아홉. 낼모레면 오십이다. 결혼을 한 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아직도 아내와 티격태격 싸우는 날이 많다. 나는 가능하면 부닥치지 않고 피하려 하는데, 아내가 공격하듯 나올 때가 있다. 평소에도 무슨 불만이 있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 눈치를 보기는 하는데, 유독 화가 난 얼굴로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냥 살살 피해야 하는데, 괜히 웃어넘기려고 농담을 했다가 된통 당하곤 한다. 나는 기억도 안 나지만, 아마도 내가 ‘마누라 등쌀에 못 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보다. 그 말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런 말이 나와? 나한테 고마운 줄은 모르고, 사람이 참 매력이 없어.”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라고 한마디 하고는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말 할 말이 없네’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거실 한쪽에 앉아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매력이 없다고? 그럼 오십 다 된 남편한테 무슨 매력을 기대한 거지?’ 화가 났다. ‘그러는 지는 무슨 매력이 있나?’ 분풀이하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하며 우울해졌다. 어쩌면 내가 생각해도 내 매력이 뭔지 알 수 없어서 그깟 말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사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체력도 약해지고, 배도 나오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진다. 거울 보기도 싫다. 가끔 머리 속이 허옇게 나온 사진이라도 있으면, 슬쩍 감추고 없애 버리기도 한다. 또 일을 할 때도 무슨 일이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던 젊은 날의 패기는 사라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며 의기소침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라도 배울 때는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같이 해 보려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가 많다. 늘 하던 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준 후로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잊어버려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이젠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젊은 직원들끼리 즐겁게 얘기하는 중에도 내가 끼어들면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교육이나 연수를 받을 때도 내가 같은 모둠이 되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빈말로라도 ‘익복님이 함께해서 너무 좋다’고 말해 주던 사람들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나와 같이 일하는 것을 왠지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초 직장에서 부서를 옮기게 되었는데, 같은 팀원들도 새로 옮겨 온 동료가 십팔 년차 부장이라니, 은근히 꺼리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말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직장 생활이 가면 갈수록 재미가 없다. 정말 지금보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뭐든 다른 할 일이 있으면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직장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자, 내가 참 무능력한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버티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참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 물론 이건 직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다 커서 내 시간이 많아졌고, 밖에서는 그래도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취미 생활로 통기타 동호회도 나가고, 그림 그리는 모임도 나가는데, 이건 정말 재밌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고, 서로 그린 그림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좋다. SNS나 인터넷 카페에 사진과 그림을 올리고, 서로 칭찬의 댓글을 달아 주며 공유하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사는 게 나름 보람도 있고, 이게 다 나만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매력이 없다니…. 화가 난다. 나만 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동육아에 대안학교 보내면서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고, 청소며 빨래며 온갖 집안일도 다 도맡아 하는데, 이 정도면 남편으로도 괜찮은 거 아냐? 그런데 매력이 없다니….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회사에서 느끼던 소외감이 가정에서도 똑같이 느껴지는 것에 치가 떨린다.
도대체 매력이 뭘까? 어떻게 하면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만의 매력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지겹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당장 밥벌이 때려치우고 나와 굶어 죽을 각오라도 해야 하는 걸까? 외모가 멋진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다시 태어나야 하고, 돈 많은 사람, 돈 잘 쓰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태어날 때 부모까지 잘 만나야 하는데, 그건 하나 마나 한 소리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매력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나를 매력 있는 사람으로 봐 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쳐 부러움을 사기도 하던데, 나는 왠지 더 이상 볼 것 없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아내에게까지 매력 없다는 소리나 듣겠지. 매력은 없지만,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은 있어서 괜히 마음만 무겁다. 그냥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