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책방을 드나드는 수상한 사람들
   은종복 / 풀무질 일꾼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내가 일하는 책방으로 사복 경찰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그자들은 내게 말을 걸지도 않고 30분 가까이 책방을 구석구석 살핀다. 그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사회실천연구소에서 내는 ‘실천’,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노동자’, 다함께 기관지 ‘맞불’, ‘노동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내는 책들을 찾았다.
  난 1993년 봄부터 책방을 꾸려오고 있다. 그때는 김영삼이 대통령이었다. 그땐 이런 경찰들이 일주일에 서너 번은 왔다. 스스로 어디서 일하는지 밝히기도 했다. 책방에서 가까운 경찰서를 비롯해서 국가정보원, 군기무사 사람들도 왔다. 그자들이 사 가는 책들은 사회주의 생각이 들어 있는 책들이 많았다. 나는 책방에서 책을 파는 것이 무슨 큰 잘못이 있나 싶었다.
  그러다 난 1997년 4월 15일에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남영동에 있는 경찰청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을 살았다. 그때 문제가 됐던 책들은 ‘전태일 평전’, ‘ 월간 말’, ‘철학에세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같은 책들이다. 그 책들은 지금도 큰 책방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다. 하지만 큰 책방 대표들이 잡혀 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날 서울에 있는 인문사회과학책방 대표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끌려갔다. 그 뒤로 조직 사건이 예닐곱 건 터졌다. 그렇게 공안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해 대통령에는 김대중이 뽑혔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면서 공안 경찰의 발걸음이 좀 뜸해졌다. 그러나 올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 활개를 친다.

△ 은종복 씨가 운영하는 책방 어귀에 붙여 놓은 광우병 쇠고기 반대 포스터 ⓒ 작은책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에 만든 치안유지법이 그 어머니다. 그 법은 일제에 맞서 싸웠던 사람들을 죽이려고 만들어졌다. 그 법을 1948년 12월 1일에 이승만이 다시 고쳐 만들었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60년이 된다. 그동안 그 법으로 죽거나 옥에 갇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러운 정권을 지키려고 만든 법이, 세상을 맑고 밝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수없이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에 쓰였다.
  난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에 따라서 벌을 받았다. 내가 국가 존립, 안전, 자유 민주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책을 팔았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이 마르크스가 쓴 ‘공산당 선언’을 읽으면 모두 공산당원이 되어 총을 들고 이 나라를 뒤집어엎을까. 그렇게 쉽게 세상이 바뀐다면 진짜 살맛 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럼 돈에 눈먼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가 좋다고 떠든다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 더러운 세상에서 끽소리도 안 하고 살까.
  아무튼 책방 일꾼이 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가. 아니 오히려 대운하를 만들어 자연과 사람들을 다 죽이려 하고, 백성들이 먹고 죽을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미국 소를 자기들 마음대로 들여오려는 이명박 정권이 이 나라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방에 사복 경찰들이 들락거리며 공안 바람을 일으킨다는 기사가 지난 4월 3일치 경향 신문에 실렸다. 그 뒤로 사복 경찰 발걸음이 뜸해졌다. 그러다 이 글을 쓰는 오늘 6월 13일 낮 12시쯤 사복 경찰 세 사람이 또 왔다. 근데 그자들이 사복 경찰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자들은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고 따로따로 들어온다. 나가고 들어올 때 인사를 하지 않는다. 책방 구석구석을 뒤지다 사회주의 색깔이 들어 있는 책들을 열심히 본다. 사회주의 냄새가 나지 않는 책은 사지 않는다.아무튼 그날도 그자들은 5분을 사이에 두고 들어오더니 나갈 때도 그렇게 했다. 40대 중, 후반 나이다. 그자들 뒤를 몰래 따라갔더니 책방 옆 골목에서 모여서 수군덕거렸다. 그곳에는 두세 명 더 있었다. 그자들은 책방을 나가며 계단 벽에 붙여 놓은 종이 쪽지들을 한참 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촛불 모임에 나가서 가져 온 종이들이 붙어 있다. ‘너를 심판한다 나를 연행하라’, ‘촛불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이명박 OUT’, ‘독재 이명박 국민 불복종’, ‘아이들아 미안하다 우리들이 지켜내마’, ‘이명박! 넌 뭐~든지 절대 하지 마’, ‘국민 심판 촛불 항쟁’ 이런 글들이 쓰여 있다.

△ 책방 어귀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 ⓒ 작은책


  난 요즘 날마다 시청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5월 24일 토요일 처음으로 시위대가 찻길로 나간 날부터 어제 6월 12일까지 20일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잠이 모자라서 입술과 눈 밑에 뾰두라지가 나고 딱딱한 아스팔트 찻길을 걸어서 무릎이 시큰거리지만 마음은 맑고 밝다. 가난하지만 올곧게 사는 사람들과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함께 나서서 참 기뻤다. 지난 6월 10일에는 한반도 남녘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이명박은 물러나라!’, ‘고시 철회! 협상 무효!’, ‘평화 시위 보장 하라!’, ‘폭력 경찰 물러가라!’, ‘민주 시민 함께 해요!’ 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바람이 세게 불어 촛불이 꺼지면 가까이 있는 낯모르는 사람에게 불을 빌려서 촛불을 다시 밝혔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옷을 입고 우산을 받쳐 들고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애썼다. 이렇게 도시 한 가운데서 사람들은 밤을 새우며 돈에 눈먼 이명박 정권을 끌어내리는 일에 힘을 모았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곳은 해방구였다.
  내가 날마다 시청에 나가 촛불을 드는 일은 내가 다시 국가보안법으로 철창에 갇히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아니 내가 다시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 죄로 감옥에 갇힌다 해도 나와 함께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세상을 올곧게 바꾸려는 사람들을 가두는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일에도 그이들은 촛불을 들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키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뿌리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한다. 내가 또다시 국가보안법으로 끌려가고, 그 일로 양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운동에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좋겠다.
  헌법에도 보장되었듯이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사상과 양심에 따라 살 수 있어야 한다. 먹을거리를 일구는 농사꾼과 이 땅 목숨붙이들이 사는 데 꼭 있어야 할 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사회주의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런 세상이 와야 어른들 욕심으로 아파하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없어지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핀다. 그런 날을 앞당기는 데 내가 꾸리는 작은 책방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