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8년 1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가 소곡주를 마시지 않은 까닭
유내영/ 충남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지킴이
“휴대폰을 줘 봐라.”
“왜요?”
“그것 좀 떼 버리게.”
“휴우….”
당진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설날, 추석을 나의 친정인 성남에서 보낸다. 추석 전날 저녁상을 마주하고 부모님, 남동생 부부, 조카와 모여 앉았다. 얼마 전 단톡방에서 고종사촌 언니들과 주고받았던 문자를 확인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화기애애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내 옆에 앉아 있는 남편에게 내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문자를 확인하기 위해 들고 있던 내 휴대폰 뒷면이 나와 마주 앉아 있던 아빠의 눈에 자꾸만 거슬린 모양이었다.
휴대폰 뒤쪽엔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 세월호 스티커. 사진_노란리본캠페인(네이버카페)
“아니, 이건 왜 떼려고요? 아빠 휴대폰이 아니라 제 거예요.”
“그거 보는 게 정말 지겹고 싫다. 좀 떼어 버려라.”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붙인 건데, 아빠가 떼라 마라 왜 참견인데요?”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붙이고 있냐?”
“아직 사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시작도 안 됐는데 뭐가 끝나요?”
“세월호 타고 놀러 가다가 난 사고인데 뭘 그렇게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옆에 있던 남동생이 나선다.
“놀러 가다가 난 사고는 그냥 둬도 돼요? 그리고 세월호에 탄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일정에 함께한 거예요. 학생들도 있었지만 제주도로 살러 간 가족도 있었다고요. 화물기사 아저씨도 생업 때문에 타고 있었고요. 바다에서 사고 나면 국가가 나서서 구해야 되는데 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말을 거드니 약간 주춤한다. 아빠는 단호함이 약간 수그러진 소리로 고집스럽게, 그래도 보기 싫으니 떼란다. “보상도 많이 받았구만….”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직접 만난 이야기, 대통령이 탄핵되자 인양하기 어렵다던 세월호가 올라온 것, 세월호에 갇혀 있던 학생들을 뭍으로 데려온 잠수사의 이야기, 해경이 사람들을 구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했던 거짓말, 배의 진행 방향을 거짓으로 발표했던 국가, 없어진 닻, 세월호에서 나온 아이들의 손톱 이야기…. 눈물을 참으면서 엄마와 남동생과 번갈아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빠가 갑자기 광주민주항쟁 이야기를 한다. 당시 광주에서 폭도들이 일으킨 사태와 다를 게 없다며, 세월호를 이용하는 세력이 나라를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하이고… 이 널뛰기는 뭐지? 연결시킬 것이 따로 있지,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지?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어요?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군사독재 철폐를 위해 시위를 한 건데, 전두환이 군대를 보내 무자비하게 총으로 쏴 죽이고 때려죽이고 사진 혹시 봤어요? 직접 광주에 가 보기나 했어요?”
“그들이 폭도들이었지. 폭도들 진압하려고 군대가 투입된 건데 무슨 영웅이라고 돈을 주고….”
광주에 가서 직접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 들었느냐, 왜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확신 하냐, 그런 거짓말만 듣지 말고 다른 사람 말도 들어 봐라, 휴대폰으로 검색이라도 해 봐라….
그래도 자존심 강한 아빠는 지고 싶지 않은 눈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우리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다. 왜 가족의 말보다 남의 말을 더 믿냐고 해도 꿈적하지 않는다.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뭐라 말도 못하고 난감해하면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이 집안 가장의 사위와 며느리, 손주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대 3의 대결이 수습할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빠는 내가 배 타고 놀러 가다 사고 나서 죽으면 그냥 수장시키세요. 놀러 가다 죽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죽었는데, 왜 사고가 났는지 원인을 알 필요가 뭐 있대요. 그리고 국가 돈 축내지 않게 말도 꺼내지 말고요. 아빠는 그렇게 하세요.”
“쓸데없는….” 아빠는 말을 잊지 못한다.
가족 모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이야기가 정치로 흐른다. 정치 성향에 있어서 아빠와 나는 완전 반대편에 서 있다. 그래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싸움으로 번진다.
몇 년 전의 나는 70대 중반의 아빠 생각을 바꾸기 위해 설득하려고 엄청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한고집 하는 내 성질이 꼭 아빠와 내가 닮았다는 것을 남편과 두 딸의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남편과 딸들은 나와 아빠의 갈등 상황을 보고 있기가 힘들다면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아빠와의 끝나지 않는 싸움에 지치기도 했다. 그 뒤로 아빠하고는 되도록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정치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입을 닫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아빠도 나의 태도 변화를 눈치챘는지 언제부터인가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와의 통화로 아빠는 여전히 꼴통보수임을 확인 하고 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광화문으로 집회를 가면 성남에서 하루 자고 내려가곤 했다.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면서 별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꼴통보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가슴 아파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거짓뉴스에 노출된 아빠에게 사실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좀 오래 이야기했다. 특히 정치 이야기를 할 때는 별말 없었던 남동생이 거들어 주어서 고마웠다.
엄마는 판문점 남북회담 때 마셨다는 면천 두견주가 어떤 맛인지 궁금해하셨다. 면천과 가까운 당진에 살고 있는 나는 추석을 맞이해서 두견주를 사 갔다. 그리고 소곡주를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한산에서 직배송된 소곡주도 가져갔다. 진달래꽃으로 만든 면천 두견주와 찹쌀과 누룩으로 만든 한산 소곡주를 맛보고, 평도 하고, 각자의 취향에 맞는 술을 선택해서 마셨다. 아빠는 소곡주가 더 좋다면서 두견주를 한사코 마다했다. 두견주는 맛도 안 봤으면서! 두 번 권하지 않았다.
다음 날 시댁에서 올라온 동생네와 저녁을 먹으면서 두견주와 소곡주를 꺼냈다. 전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이 “한잔 받으세요” 하면서 아빠에게 두견주를 권하니 잔을 받는다. 아무리 문재인 정권을 싫어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아빠는 두견주의 맛이 궁금했을 것이다. 모른 척하긴 했지만 술을 받는 그 모습이 밉살맞으면서 안쓰럽기도 했다. 아빠의 눈과 귀는 도대체 어디로만 향하고 열려 있는지…. 안타까웠다.
엄마는 끝까지 소곡주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