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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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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9월호

독립영화 이야기_ 이일하 감독의 <카운터스>

 

오늘만 사는 남자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이번 호에 준비한 영화는 광복절에 개봉한 <카운터스>입니다. 1년 전 DMZ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반가운 개봉 소식에 이렇게 얼른 글을 씁니다. 영화제 영화는 소수만 즐길 수 있는데 개봉영화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볼 수 있으니까요.

▲ 영화 <카운터스> 특별 포스터.


<카운터스>의 주인공 다카하시는 전직 야쿠자입니다. 단골 식당의 주인이 혐오시위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혐오주의자들을 혼내 주기 위해 비밀결사대를 조직하는데요, 혐오시위대와 폭력도 불사하며 맞장을 뜨는 다카하시와 그 일행들의 행동은 시민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지만 거리엔 예상치 못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카운터스>에 등장하는 혐오세력은 일본의 대표적인 혐한 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하 재특회)’입니다. <카운터스>의 개봉일을 광복절로 잡은 이유에는 재특회도 한몫 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일화 감독은 전작 <울보 권투부>에서도 도쿄 조선학교 권투부원들을 주인공으로 재일 한국인의 처지를 생생하게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재특회 시위대가 죽여라 조센징을 외치며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부터 일단 화가 나더군요. 관광객으로 보이는 중국 여성들을 밀어내고 노인을 길바닥에 쓰러뜨리는 모습에서도 화가 났지만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혐오행동에는 마음 더 깊은 곳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 같더라구요. 민족주의가 유전자 안에 각인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오사카 코리아타운 앞에 서서 춍코(한국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너무 밉다며, 남경대학살이 아니라 코리아타운 대학살을 실행할 거다라고 외치는 여중생의 모습이 너무 밉습니다. 미운 마음이 너무 강해져서 만약 현장에 같이 있었다면 저도 욕해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영화 <카운터스> 스틸 이미지.


그래서 다카하시의 활동은 저 같은 관객에게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줍니다. 영화 제목 카운터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일본 시민들의 모임을 의미하는데 카운터스회원들은 혐한 시위 반대 서명운동부터 재특회와의 물리적 충돌까지 각자 자기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반혐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명 부대’, ‘낙서 지우기 부대’, ‘플래카드 부대카운터스의 여러 부대 중에서 다카하시가 속해 있는 부대는 혐한시위를 육체적으로 봉쇄하는 무력 제압 부대오토코구미입니다. 오토코구미 대원들은 재특회의 혐오발언들을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 진지한 자세로 욕설을 연마하고, 재특회 시위대 앞에 무작정 드러누워 도로를 점거합니다. 시위 허가증을 가지고 있는 재특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엉터리 할리우드 액션을 구사해서 경찰서로 끌고 가거나 혐한시위가 예정된 장소에 잠복했다가 시위 참가자를 발견하면 용 문신을 보여 주며 설득하기도 합니다.

카운터스의 창단 멤버인 노마 선생은 첫 만남에서 다카하시를 경계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다카하시 또한 자신은 나쁜 사람이었다고, 나쁜 일을 많이 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영화 속에서 재일 한국인 3세 신순옥 님은 좌익 혹은 리버럴운동은 맑고, 정의롭고, 아름다운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게 일본만의 상황은 아니니 노마 선생의 경계심이 당연히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이 좋은 사람들만 하는 운동에 전직 야쿠자였던 다카하시가 동참한 것입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항의한다는 것을 행동 원칙 삼아 더러운 일, 힘든 일은 우리들이 하겠다면서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는 다카하시는 확실히 특별한 존재입니다. 야쿠자 대원에서 오토코구미 대원으로의 전환은 인생 대역전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이지만 다카하시가 내세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남자로서 혐오는 할 짓이 아니라는 거죠. 재특회에 반대하며, 그러니까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혐오반대운동을 시작했지만 치열한 활동 속에서 다카하시가 지키려는 인권의 영역은 점점 넓어집니다. 아이누(홋카이도 원주민), 일본계 브라질인들과 같은 소수자들,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쉼터를 함께 만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LGBT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기도 합니다. 혐오시위의 리더 사쿠라이는 다카하시는 쓰레기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지만 이쯤 되면 누가 쓰레기인지는 명확해지지요.

▲ 영화 <카운터스> 스틸 이미지.


주먹만 한 자막이 쾅쾅 박히고, 펑키한 음악이 흥을 돋우며, 무엇보다 상남자 스타일을 고수하는 오토코구미 대원들의 대활약상이 펼쳐지는 <카운터스>는 오락영화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특히 혐오발언 시위, 미투운동, 난민 문제 등 혐오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촉발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줄 것입니다.

▲ 영화 <카운터스> 언론 시사회 현장.


영화는 사쿠라이의 입장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혐오시위의 리더 사쿠라이는 차별이 인류를 발전시켰다, 타인에게 혐오라고 말한다면 당신도 혐오하고 있는 것이다와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던집니다. 그 어이없고 알쏭달송한 말들 사이에서도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각인되는데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해를 끼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혐오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를 오늘만 사는 남자로 존재한 다카하시를 만나 보세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문의: 필앤플랜 070-4447-6368)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