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7년 12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 탐방_ 삼성웰스토리
출퇴근 거리만 200킬로미터, 심장이 뛴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그날은 식품위생 교육이 있던 날이었다. 식음서비스 기업 삼성웰스토리(주)의 직원 김창오 씨(45세)는 용인시청에서 교육을 마치고 현장으로 돌아가던 중 고객사로부터 온 전화를 받으려고 근처 식당 주차장에 차를 댔다. 그런데 통화를 마치려던 즈음, 불법 좌회전 차량이 그의 차를 들이받았다. 그는 왼쪽 어깨를 크게 다쳤고 즉시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그에게 치료를 위한 조치를 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사고 발생 해인 2015년부터 그는 인사고과 최저등급인 ‘NI’ 등급을 받았고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그리고 ‘보험 사기꾼’이라는 소문이 회사에 돌았다.
“퇴사하라는 신호였습니다. 일하다 다쳤는데 구해 주지는 않고 필요 없으니 죽으라고 밟는 꼴이죠. 저는 퇴사를 거부했고요.”
그는 회사에 병가를 요청했으나 연차휴가를 먼저 소진하라는 답변만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진통제로 버티며 출근했다. 성수기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수술 일정도 11월로 미뤘다. 보험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고 발생 두 달여 만에 보험금 지급을 중단했다. 회사에 산재 협조를 요청했지만, 사고 발생 5개월이 다 되어서야 책임자로부터 ‘산재 신청을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11월 4일 그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애초 간단한 수술로 예견되었지만 시기를 놓친 탓에 세균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이 왔고 그는 38일간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갔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에 재해 사실 및 요양급여 신청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의 산재 승인을 거절했다. 다친 부위가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닌 ‘기존 만성 변병’, 즉 퇴행성 질환이라는 것이었다. 2012년 경력직 입사 시 받았던 신체검사 때도 없던 질병이었다. 그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보험사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진행하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위탁급식과 식자재 유통 등 식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급식 부문 업계 1위다. 전국 6개 물류센터를 통해 6천여 개 거래처에 식자재를 공급한다. 2013년 12월 삼성에버랜드 FC사업부에서 분사된 후에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해마다 성장했다. 2016년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 7260억 원, 1082억 원으로 최근 3년 연속 영업이익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이 영업이익은 오로지 인건비 및 경비 절약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한다고 임원위 씨(37세)는 말한다. 그는 2008년 삼성에버랜드 공채로 입사한 조리사다.
“경쟁 업체 중 저희 삼성만 식품공장이 없습니다. 신규 사업을 벌이거나 설비 투자를 하지 않는데 어디서 이익을 내겠습니까?”
경영진은 수익 목표를 무조건 전년도보다 높게 잡았다. 그리고 해마다 오르는 물가와 인건비를 감당하며 이익을 내기 위해 저성과자를 일정 숫자 이상 보유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예를 들어 전체 직원이 3천 명이라고 하면 해마다 그중 10퍼센트는 무조건 NI 등급을 받습니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정말 피땀 흘려 노력해도 NI를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NI는 임금도 동결된다. 퇴사시키기 위한 계획들도 실행된다.
“한 사람을 타깃으로 정하면 꼬투리를 잡아서 그 사람 주변 동료들부터 포섭합니다.”
실제 영양사 A씨의 경우, 인사담당자가 동료들에게서 A 직원이 실수한 정보를 수집해 자료를 만든 후 고위직 상사가 해당 자료를 들고 A씨를 만나 퇴사를 종용했다.
“‘인사팀에서 널 자른다는 걸 내가 말렸어.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3개월 치 급여야. 서명해’라고 말합니다.”
▲ 삼성웰스토리 김창오 씨와 임원위 씨 ⓒ작은책(정인열)
이렇게 해서 인력을 줄이면 남아 있는 노동자들에게 노동강도가 전가된다. 임 씨의 경우 혼자 세 사람 몫의 일을 했고 결국 허리디스크 수술까지 받았다. 그리고 맛이 조금 떨어지거나 서비스가 나빠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업을 하는 김 씨가 말했다.
“고객들은 바로 알죠. 실제로 고객사와 재계약율이 재작년까지만 해도 90퍼센트였지만 지금은 70퍼센트로 떨어졌습니다.”
회사는 반가공 제품이나 완제품 비율도 높였다. 조리 공정을 줄이기 위해서다. 임 씨는 전문 조리사의 입장에서 재료 본연의 맛이 사라지는 급식이 안타깝다.
“옛날에 비하면 음식의 질이 많이 떨어졌죠. 혼이 없어요. 예를 들어 요즘은 바로 구울 수 있는 소포장 냉동 생선을 사용해 냉동-해동-재냉동-해동을 거치죠. 그러다 보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지 못하고 조미료로 맛을 채우게 돼요. 고객들은 조미료의 맛에 익숙해지고 그게 맛있다고 기억을 하죠. 조리사들도 예전에 했던 공정을 잊어버려요. ‘이게 더 편하네, 이 정도 맛에도 고객들이 불만 없는데 뭐.’ 하는 거죠.”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저희 회사는 일반 기업과 비교도 안 되게 인사과 조직이 방대합니다. 사수-부사수-그룹장-지원그룹-신문화그룹, 노사협의회까지. 현장으로 투입돼야 할 경비들이 다 간접비로 빠지는 겁니다.”
그 결과 업계 1위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노동자들의 처우는 열악해졌다. 전체 1만 2천여 명 직원 중 9천여 명의 파견, 무기계약 노동자들이 최저시급을 받고 있다. 정규직 입사 10년 차 임 씨의 임금은 3300만 원, 경력 20년 차 김창오 씨의 임금도 4300만 원으로 경력에 비해 낮은 편이다. 에버랜드에서 삼성웰스토리로 분사하면서 경영진이 ‘임금과 처우는 에버랜드 이상으로 해 주겠다’고 약속한 것과는 너무 다른 결과였다. 에버랜드 우리사주 미배정 사건도 그랬다. 삼성웰스토리로 전적하면서 직원들이 보유했던 에버랜드 우리사주를 포기하게 됐는데, 임 씨 등 일부 직원들이 전적 동의를 거부하자 당시 지사장이 ‘5년 이내에 절대 주식 상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고 약속했다. 직원들 전적이 완료 되자 회사는 약속과 달리 약 1년 후에 주식 상장하였고, 그 차익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일가는 5조 8999억 원의 차익을 보았다. 이와 관련해 임 씨를 비롯한 웰스토리 노동자 611명이 우리사주를 배정받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89억 2천여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노사협의회는 꼭두각시 역할만 하고, 동료들이 억울하게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가 노동조합을 떠올린 것은 2016년 말 촛불항쟁 때였다.
“우리한테는 주식도 안 주고 상여금도 안 주고 임금도 깎으면서 어떻게 정유라한테는 돈을 줄 수가 있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동료 조리사 몇 명을 설득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 2017년 4월 12일 삼성웰스토리지회를 설립했다. 그러자 임 씨에 대한 유언비어가 돌고 따돌림이 벌어졌다.
“제가 소송비를 횡령했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직원들이 익명으로 소통하는 앱이 있는데 거기에 누가 ‘1인당 30만 원 걷어 인지대, 송달비 하고 5만 원이 남았는데 그걸 횡령했다’고 쓴 거죠.”
소송 대표단으로 연차와 시간을 쪼개 법원을 드나든 건 임 씨였다. 패소 후에 회사가 막대한 소송비용을 물겠다고 하자 항소 포기를 조건으로 협상한 것도 임 씨였다. 임 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아 치료 중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김 씨도 용인 골프장에서 대구로, 다시 경기도 성남 본사로 강제 발령을 받았다. 출퇴근 거리만 왕복 200킬로미터. 운전을 할 때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지만 자신을 응원해 주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는 그의 말을 믿어 주는 동지가 생겨서 더욱 힘이 났다. 조합원 수는 이제 64명으로 늘었다. 한국노총 산하 노조보다 조합원 수가 많아 교섭 주도권에서 유리한 상황이다.
▲지난 4월 17일 삼성웰스토리 노동자들이 노조설립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_ 삼성웰스토리지회
임 씨와 김 씨는 매일 요리를 찾아 주는 고객들이 가장 고맙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파업 문화를 만들고 싶다.
“그럼에도 만약 파업을 해야 한다면, 하루 8시간 파업 중 4시간은 장애인 시설이나 보육원 같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거죠.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잘하는 음식을 제공하고 싶어요. 누군가는 쇼하는 거라고 우리를 손가락질하겠지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한다면, ‘삼성이 하니까 파업도 다르네’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을 겁니다.”
삼성은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들을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퇴사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답했다.
“회사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우리가 퇴사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