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 2018년 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마지막 근무
박태찬/ 교사
학교가 텅 빈 목요일 저녁 6시, 자율학습 감독 교사 몇 명만 남아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과 함께 급식으로 저녁을 먹고 왔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넓은 1층 교무실에, 형광등도 내 자리 위로 딱 한 칸만 켰다. 히터도 하나, 형광등도 하나, 드넓은 교무실에 나 혼자, 곧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러 4층 자습실에 올라가야 한다. 이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야간 자율학습 감독이다.
“선생님, 오늘 급식 순대 나온대요!”
순대를 좋아하는 한 녀석이 뒤늦게 급식을 먹으러 가면서 같이 가자고 교무실로 들이닥쳤다.
“나 먹었는데?”
“아! 그럼 저 재형이랑 먹을게요.”
“핫바도 나오는데 하나 받을 수 있으면 내 거도 들고 와 주라.”
“들고 오면서 제가 먹을 거 같은데요!”
급식실로 뛰어가는 녀석의 뜀박질 소리가 복도를 넘어 텅 빈 교무실에도 탕탕 울렸다.
월요일 아침에 교장실에 다녀온 이후,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직접 교장선생님에게 통보를 받은 이후 묵직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자꾸만 명치 한가운데를 욱신욱신하게 만들었다. 내가 교장실에 다녀온 이후 동기 교사 두 명이 더 교장실을 찾았고 우리가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은 포장지만 다를 뿐 알맹이는 모두 같은 것이었다. 내년에 우리는 이 학교에서 더 일할 수가 없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학교에서 3년간 근무한 기간제교사이다.
2018학년도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신설, 변화되는 과목이 있는데 나는 교과 개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내가 맡고 있는 기술 교과는 1학년 과목이었는데 내년에는 1학년에 한국사와 통합 과학, 통합 사회가 새로 들어온다. 그럼 자연히 1학년 과목 중 일부 과목이 2학년이나 3학년 과목으로 올라가거나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1, 2학년들은 모두 나에게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내년에 다시 배울 이유가 없다. 같은 경우로 내년에 미술 교과도 없어진다. 1년간, 기술과 미술이 없는 학교가 되었다. 대신 과학과 사회를 더 많이 가르친다.
어떤 교과를 희생시킬 것인가, 관리자들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고민을 몇 달 동안 하면서 내게 업무를 맡길 때 눈치만 가끔 줄 따름이었다. 나는 연구부와 홍보부의 중심 업무와 기타 잡무들을 알차게 해치워 왔다. 학교의 외부 강의가 있으면 전부 내가 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도 있었고, 수당을 청구하지 않은 야간 추가 근무도 잦았다. 수업과 업무에서 결과물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나는 나 스스로 좋은 교사라는 자존감을 획득해 왔다. 교원평가의 전체적인 시스템에는 반대하지만 아이들이 서술해 놓은 평가들은 빠짐없이 읽고 반성하고, 성찰하며 더 좋은 선생이 되려고 노력해 왔다.
ⓒ김보경 그림_시사iN
지금 현재 1학년에 여덟 반, 2학년과 3학년에는 각각 열 개의 반이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내년에는 지금의 1학년이 그대로 올라가면서 신입생도 여덟 반이 들어오기 때문에 학교 전체적으로 두 개 반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나가게 된 교사도 있다. 나와 같은 해에 들어온 영어 교과의 민 선생님이다. 업무 능력과 수업뿐만 아니라 담임으로서 학급 운영 능력을 검증해 온 훌륭한 교사이다. 민 선생님은 이미 2017년 초부터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민 선생님이 맡고 있는 반 교실에 수업하러 들어갈 때마다 학급의 자유롭고 건강하면서도 맑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교사들도 같은 칭찬을 자주 하였다.
교육과정 개편이나 학급 수 감축이 아닌 다른 이유로 학교에서 나가게 되는 교사도 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해에 들어왔던 체육교사 최 선생님이다. 최 선생님은 지난 3년간 언제나 다른 교사들보다 40분 일찍 출근하여 교문 앞에 섰다. 등교지도를 도맡아 해 온 최 선생님은 지난해 예쁜 딸의 아버지가 되었다. 생활상담부에 있는 최 선생님 자리에는 딸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늘 올려져 있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매 순간 이 학교의 학생들을 지도했다. 불같은 생활지도 교사이자 누구보다 이야기를 깊이 들어주는 진짜 교사였다. 그는 학교가 4년 계약을 불편해하여 떠나게 되었다.
내년에도 체육교사는 올해와 동일한 숫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간제교사가 4년 일하게 되면 공고를 새로 내서 뽑아야 하는데 사립학교의 경우 같은 교사를 기간제로 다시 채용하는 것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3년만 일하고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다. 얼마 전에 경기도에서 4년 일한 어느 기간제교사가 정교사가 될 욕심은 없으니 무기계약직으로라도 전환시켜 달라고 소송을 걸었고 이는 다른 학교 모두가 3년 계약 이후 계약해지를 해야 한다는 모범사례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최근 영어회화 전문 강사 부당해고 관련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일 때에 중등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예비 교사들이 대법원에 탄원서를 냈었다. 기간제강사 무기계약직화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그들은 ‘노동이 아닌 교육의 관점에서’ 공정한 교육 사회 구현에 힘을 보태 달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된 최 선생님에게 이 학교는 교육의 장일 뿐 아니라 교실, 운동장, 학교 구석구석이 모두 땀 흘려 일한 일터였다. 예비 교사들의 조바심과 불안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될까 봐 겁을 내고 있다.
자율학습을 마치고 하교하는 길에 1학년의 한 아이가 와락 나를 껴안는다.
“선생님 오늘 왜 감독 안 들어오셨어요?”
“나 2학년 감독이었어.”
“왜 선생님이 2학년 감독해요? 저희 학년 수업하는 선생님 아니에요?”
“맞아. 근데 원래 감독 안 하는 날인데 너희들이랑 더 있고 싶어서 야간 자율학습 바꿨어.”
“우와, 밤 열 시까지 일하면 안 힘드세요?”
“힘들었는데 오늘은 안 힘들 것 같았거든. 돈 벌어야지.”
그래, 몇 천 원이라도 더 벌어서 올해가 가기 전에 너희들 매점 한 번 더 데려가야지. 아이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면서 찬바람에 꽁꽁 언 손을 숨을 불어 녹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