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

Recent Post

Recent Comment

Recent Trackback

'어린이집교사'에 해당되는 글 1

  1. 2019.02.19 내가 보육 교사를 할 줄 꿈에도 몰랐다2

<작은책> 2019년 2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내가 보육 교사를 할 줄 꿈에도 몰랐다

이현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보육1.2지부 대표지부장


 

나는 보육 교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보육 교사를 시작할 무렵의 나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리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어려움을 느껴 피하거나, 조용한 구석을 찾아 들어가는 집순이 기질이 매우 강하기도 했다.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보육 교사를? 물음표를 그리는 사람 여럿 봤다.

내가 보육 교사를 하게 된 건 교회 전도사님이 한 달만 지인의 어린이집에서 그저 아이들만 돌봐주면 된다며 간곡히 부탁한 때문이었다.

당시 나 역시 미디어의 폐해로 아이 돌봄 그까짓 거 아이들하고 행복한 미소를 띄며 아름답게 놀아 주면 되는거 아니야?’라고 감히 생각해 버렸고, 그게 화근이 되어 어린이집에 발을 들였다. 첫날, 30분 만에 9명이(4살 초과 보육 인원) 번갈아 가며 10초마다 비명을 지르며 울기 바빴고, 그 와중에 불편함을 못 견디는 아이들은 주변의 아이들을 돌아가며 물고 뜯고 맛보는(?) 실력 행사를 했다.

어흥이로 돌변한 아이 두 명을 품 안에 넣어 훈계(?)를 하고 있자니 그 옆에서 한 아이가 응가를 하고 손가락으로 만지작(벽에 안 바른 게 신의 한수였다), 또 다른 아이는 쉬야 마렵다 화장실이 급하다 소리치고, 내 품 안에 넣은 어흥이 둘은 계속 실력 행사를 노리고, 실력 행사 당한 아이들은 여전히 울고, 나도 울고.

전쟁이 나도 이 정도는 아닐만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아이들은 그렇게 예쁘지도 어른의 말을 잘 듣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고 당일 도망이 절실했으나, 나를 그 전쟁터에 소개해준 전도사님의 을 생각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이를 정말 악물고, 정확히 3개월만 일하고 도망가려고 했다. 다시는 어린이집 일 따위는 안 하고 싶었고, 30분간 이루어진 상황에 나를 밀어 넣은 전도사님이 너무 미웠다.

나도 내가 보육 교사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아이 은서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죽어도 몰랐다. 내가 애증의 보육 교사를 하게 만든 그아이 은서, 그아이는 예쁜 얼굴의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여섯 살 아이였다. 누구와도 소통이 안 됐고, 언제나 같은 머리 모양에 손가락마다 붙인 밴드가 하나라도 헐거워지면 있는 힘껏 소리를 치며 불편감을 호소하던 아이였다.

청소하던 볼풀장에서 3개월만 버티자 속으로 날짜를 세고 있던 어느 날, 그아이와 나 단둘. 10초 남짓한 짧은 그 순간 그아이 은서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씽긋 웃어 주던 그 찰나. 그 찰나가 나를 교사로 만들어 버렸다.

마음속에 불이 확 일어났다고 표현해야 하나. ‘, 내가 잘 몰랐나 보다. 내가 정말 아이들을 몰랐나 보다. 만약 제대로 알았다면 어쩌면 더 많은 표현들로 소통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그냥 들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12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여전히 나는 어린이집 일이 어렵다.

12년 전과 다름없이 어린이집은 교사 한 사람이 정말 많은 수의 아이들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환경에서 보통 기본 3가지부터 28가지의 다른 사건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게 보통이고 이 상태가 매일 10시간씩 유지되는 현장이다. 몸이 100개였으면 좋겠다는 말이 매일 매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전쟁 같은 점심시간, 먹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 여럿과 사투를 벌여야 하고, 그럼에도 먹여 달라는 양육자와 먹기 싫으면 놔두라는 양육자의 의견도 들어서 적용시켜야 하고, 이런 과정에서 양육자의 요구와 아이들의 거절할 권리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양육자 혹은 아이들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까지 모두 동시간에 일어난다.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는 유일한 시간인 낮잠 시간. 이 시간에는 아이들이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할수 없는 일들을 처리한다. 매일같이 하지 않으면 밀려 버리는 일들을 중심으로, 각각 감사하는 기관이 요구하는 내용의 서류를 쓰고 교구들을 만들고, 청소와 정리를 한다.

보육교사가 보육노동과 별개로 매일 작성해야하는 업무들.  사진_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보육 교사는 매일같이 입주 청소 버금가는 청소로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하루의 마무리는 실력 행사한 아이와 실력 행사 당한 아이들의 부모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일. 원장과 일부 양육자들의 감정을 받아 내는 욕받이가 되기도 한다.

그날 그 은서라는 아이의 미소가 아니었으면 나는 3개월을 채우고 도망갔을 것이다. 어린이집 일이라는 건 정말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요구되고 100개의 몸이 할 일을 고작 몸뚱이 하나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 직업이다.

이런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게 현재 23만의 보육 교사들이며, 그들 또한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원장의 갑질, 부모의 갑질, 행정기관의 갑질, 잠재적 아동 학대라는 편견의 갑질 속 위태로운 교사의 삶에 그나마 버팀목이 되는 것이 보육노조이다.

▲ 아동 학대 오해로 자살한 보육교사를 기리는 분향소.  사진_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은서와 같은 아이들의 미소에 홀려 보육 교사라는 직업을 유지하기엔 너무 많은 어려움들이 있고, 시스템에 의해 편견에 의해 타의적으로 그 삶을 끊어 버리는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교사들은 말한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살려 주세요. 저는 아이들이 좋았을 뿐입니다.”

전 그저 아이들만 돌보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가, 원장이 싫어서 전 떠나렵니다.”

어흥이가 돼 버린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부모님에게 이야기했지만 듣지 않으려고 해요.”

우리 원장님이 부모에게서 민원이 들어왔다고 당장 나가래요.”

넘어지는 아이를 잡다가 팔이 부러졌는데 당장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요.”

아이들 장난감 만들다 손가락이 잘렸는데 다쳤다고 화를 냈어요.”

아이는 재미있게 놀았는데 상처가 생긴 줄 교사가 몰랐다면서 부모님이 무척 화를 내셨어요. 저 아동 학대로 신고당할까요?”

원장님이 임신도 순서대로 하래요.”

정말 몸이 힘들어 쉬고 싶은데, 원래 어린이집에는 방학 빼곤 쉬는 날이 없대요.”

아이가 또래보다 많이 달라서 부모님께 이야기하려고 했더니 원장님이 원아 떨어진다고 말하지 말래요

이 아우성 속에 보육 교사는 혼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 고민을 이제는 보육노조가 같이하기 위해 조금 더 단단하게 뭉쳤다. 그리고 힘 있는 걸음걸이로 은서와 같은 아이를 만나 도망갈 궁리를 접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려고하는 교사들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다.

어린이집 교사가 쉬워 보이는가? 그렇다면 어린이집으로 오시라! , 100명분은 할 각오를 하시고! 그 뒤엔 보육노조가 있다.

posted by 작은책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