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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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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30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2008년 9월호)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

   최선희/ 부천실업고등학교 교사



  작년, 재작년 1학년 담임을 하면서 다음번에는 꼭 취업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아이를 바라보는 담임과 취업 교사의 차이를 느껴 보고 싶었고 내 스스로 좋은 조건의 회사를 발굴하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도 아이들을 취업시킨 적은 있으나 우리 반에 한정된 주먹구구식의 취업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올해는 1학년 전체를 취업시켜야하는, 말 그대로 취업 담당 교사였기 때문에 신입생이 들어오기 전인 2월 달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며 회사를 확보하려고 동분서주하였다.

마음이 급한 가운데에 생활정보신문, 기존에 재학생이 취업되어 있는 회사, 노동부 워크넷을 주로 이용하여 취업 회사를 발굴하였다. 취업 경험이 많지 않아, 일단 전화를 하여 우리 학교 상황을 설명하고 아이들을 직원으로 써 준다고 하면 ‘아이고, 주여’ 하며 아이들을 취업시켰다. 학기 초라 취업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때여서 아이들을 써 주기만 한다면 너무나 고마운 그런 때였다.

  그러던 중에 생활정보신문을 보고 한 회사에 전화를 하니 흔쾌하게  여덟 명 정도를 고용하겠다고 하였다. “아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 회사를 확장하면서 한 라인을 우리 학교 학생으로만 돌리겠다는 거다. 그런데 아이들이 출근하고 이틀이 지나서 여자 아이 두 명을 해고했다. “한 명은 왼손잡이고 한 명은 손이 너무 느리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남학생 세 명과 여학생 한 명을 해고했다. “각자 제 몫을 하지 못한다.”

  마치 여덟 명을 데려다 놓고 경쟁하듯이 일을 시켜 놓고 그중에서 제일 잘 하는 놈, 돈이 되는 놈, 두 명만 남겨 놓은 듯한 생각이 들었다. 행위가 하도 괘씸해서 따졌다.

  “우리 아이들이 일한 경험이 없으니 처음부터 잘하리라는 기대는 안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일단 지각, 결근만 안 하게 지도해 주면 나머지는 자식 키우듯이 여유 있게 바라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설령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 달은 지켜보고 월급은 주고 자르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그 회사에서는 “회사가 뭐냐, 돈을 바라보고 하는 데가 아니냐? 그날 생산량을 못 맞춰 주면 같이 갈 수가 없다. 이것저것 떠나서 돈이 되지 않는 애를 어떻게 데리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워메, 열 받는 거… …. “아니, 그래서 면접 보기 전에 우리 아이들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지각, 결근하지 않고 성실하게 출퇴근 잘하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하면 미우나 고우나 아이들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 달은 일해 보고 결정하기로 하지 않았느냐” 했지만, 이미 상대는 밑지는 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굳은 표정이었다. 이어서 마지막 남은 에이스 두 명은 근근이 잘 버티더니 한 달 만에 그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 후로 이틀 만에 해고된 친구부터 한 달 만에 그만둔 친구들의 급여는 회사 측의 말도 안 되는 이유와 억지, 그리고 횡포로 그만둔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학기 초에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일 처리를 했나? 취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 주면 주는 대로, 이게 쓴 건지 단 건지도 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지 않았나?’

  그래서 이제는 좀 냉철해지기로 하였다.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가기 전에 먼저 회사를 탐방하는데, 이제는 좀 거리를 두고 생각하려고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라고 하면 좀 거창하겠지만 어쨌든 아이들을 고용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하는 아이들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길고 느긋하게 봐 주기를 말씀드린다. 갈 때마다 “자식 하나 더 키운다고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린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자식이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고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한다’는 걸 알 테니까… ….

  요즘은 영화 제목 중 <얼지 마, 죽지 마, 부활할 거야>가 생각난다. 나는 취업부 일을 한 지 얼마 안 되고 1학년 아이들도 처음 일하는 것이어서 우리는 서로 많이 얼었다. 일자리 찾느라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어떤 일에 관하여 깊고 넓게 보지 못한 면이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일을 해야 생활이 유지되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지각, 결근을 하여 어렵게 구한 회사를 하루 만에 잘린 놈, 월급 받고 바로 튀는 놈, 아예 우리 학교와 회사와의 연을 끊게 만든 놈들이 있고… …. 많은 것이 우리를 얼게 만들었다.

  그래서! 1학기 때 회사에서 두 번 이상 잘린 아그들에게 고함. 이제 우리 서로를 죽이지 말고 생기발랄하게 살아 보자. 한 학기 동안에 선생님 가슴에 못 박을 건 다 하지 않았니? 우리 2학기 때는 멋지게 부활하는 거야. 2학기 때도 1학기 때처럼 하루 만에, 일주일 만에 잘리고 온다면 선생님은 그냥 콱! 아우~. 생각만 해도 혈압 오른다. 그러니 우리 서로 웃으며 재미있게 살길 바래~.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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