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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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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5. 13. 14:00 기획 특집

<작은책> 25주년 특집_ <작은책> 독자 25명에게 물었다. 

요즘 뭐해 먹고삽니까?”


일자리는 너무 많은데

제희덕/ 정년퇴직 문화재 관리자

 

 

나는 2012년 초 정년퇴직 후 과거 일하던 일들은 생각하지 않고 일하기로 했다. 상가건물 관리인, 수제품 생산업체, 김치 배달 및 방문 소독업체, 사설 미술관 주택 경비, 왕릉 안전관리원, 방문요양보호사, 장례지도사, 전통결혼예식장, 문화재 관리인 등 여러 곳에서 일을 했다.

30개 점포의 상가건물 관리인을 3년여 할 때는 4대 보험도 없고 연월차도 없고 월급 인상도 없었다. 퇴직금도 없기에 매 1년 경과 시 1개월 봉급이 없는 경우가 발생했다. 상가관리인을 하며 신문 광고를 보고 야간에 장례지도사교육원에서 3개월 이론 교육과 장례예식장 현장 실습을 하고 장례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5인 이상이면 장례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다는 학원 측의 권유로, 학원의 무상임대 계약서를 지원받고 관련 기관에서 수차례 협동조합 설립 교육을 받았다. 조합원 가입신청서, 이사들의 인감증명서, 총회 회의록, 서류 등을 준비하여 변호사 사무소에서 공증을 받았다. 공증 비용, 등기 비용, 구청 등록 비용, 등기상 변동 사항 발생마다 상당한 등록 비용들을 부담하고 세무서에서 법인 사업자등록증을 받았다.

조합의 복식 회계 사용에 따라 전산 회계 프로그램 사용료, 법인 세무 신고에 따른 세무사 위탁 비용 등이 발생했다. 과정마다 부담스러운 비용 발생에 대해서는 협동조합 교육 시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다. 강사들도 직접 조합을 설립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협동조합도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회사와 같다. 조합원과 임원들은 명칭만 있을 뿐 소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련 지방자치단체에서 사회적기업으로 지원금을 받더라도 회계 절차와 사용 규정을 지키지 못하면 지원 기관 감사 후 지원 비용을 반납하여야 한다. 조합이 부실해지는 경우 폐업을 위한 청산과 해산 절차가 법인 설립 때만큼 까다롭다. 장례 행사 수입이 입금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장례 행사 수요 부족, 운영비와 전담 인력 인건비 부족 등으로 총회에서 후임자를 선출한 뒤 인계했다.

김치공장에서도 일했다. 하나로마트나 동네 큰 마트에 가서 배추, , 당근, 고춧가루, 젓갈 등의 원료들을 원산지와 구입 가격이 김치 매출 가격에 적절하게 맞도록 구입했다. 김치는 주문에 따라 서울 시내 어린이집, 요양 시설, 복지관 등에 차로 배달했다. 소독 업무도 했다. 장애인 친구들과 어린이집, 초등학교, 사회복지 시설들을 방문하여 소독 장비를 메고 작업을 했다.

요양보호사 자격으로 방문요양보호사 일도 했다. 뇌졸중 환자, 루게릭 환자 등 1~3등급 중환자들을 보호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환자를 휠체어 의자에 태우고 인근 개천으로 1시간씩 산책도 했다. 환자와 동네 병원을 가거나 외출할 때 난간이 없는 통행로에 오가는 자전거와 충돌 우려 등 안전상의 어려움이 많았다. 방문요양보호사 일은 환자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체력이 중요하다. 노인 세대가 증가하기 때문에 수시로 방문요양센터에서 소개하는 일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왕릉 안전관리원으로 야간에 손전등을 켜고 혼자 숲길을 순찰할 때는 멧돼지도 만나고 고라니도 만났다. 멧돼지를 만나 방어 자세로 한참 바라보다 헤어지기도 했다. 야간에 폭우가 쏟아질 때는 왕릉 봉분 잔디가 무너질까 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대형 비닐 커버를 덮어 보호했다.

문화재 관리 야간 순환 근무도 했다. 주간과 휴무일에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부근에 있는 서울노인복지센터 부설 서울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았다. 장년 취업 기본교육, 스마트폰 교육, 지하철 택배 교육, 환경관리자 교육, 가사관리원 교육, 일반경비원 신임 교육, 반려동물 돌보미 교육, 무인주유소관리원 교육, 도슨트 교육, 치매 예방 운동 및 관리 교육 등을 수강했다. 이러한 교육들은 기간제 계약을 마치고 일자리 취업 때 도움이 됐다.

현재는 2019년 초 소방관리자 자격으로 문화재 관리인으로 1년간 기간제 근무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근무 기간이 1개월씩 연장되고 있다. 월수입은 정부에서 정해 주는 시간급으로 결정되는 최하위 임금 수준이다.

과거 부모님들이 가족들 부양과 교육을 걱정하던 때를 생각하면 건강을 유지하고 현재와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일할 의지가 있으면 일자리 소개 기관에 인터넷이나 직접 방문 시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최대한 소개해 준다.

군 복무 후 직장을 다니는 두 아들은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직장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이 된 자식들은 자립과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자식 세대들도 어려움이 많다. 코로나19 감염 사태를 극복하고 우리 세대보다 좋은 세상에서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치아와 신체 여러 곳에 신호가 온다. 동네 병원과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할 곳이 많아지고 있다. 진료비도 증가하고 있다. 건강 조심하고 몸에 무리가지 않도록 일을 조절하라는 신호로 생각한다.

인생 후반 일터에서 일하기는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나는 일하면서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어려운 일들을 이겨 나갈 것이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10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절대 자식을 위해 살지 마세요

 

정설경/ 작은도서관 운영자

 

 

인연을 이어 오던 동네 작은도서관에서 올해부터 책임을 맡게 되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도서관을 세웠고, 월세를 근근이 만드느라 자원봉사 인력에 의지하여 도서관을 가동한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기관 중에 대한노인회가 있는데, 여기에 소속된 시니어 봉사자 세 분이 하루 또는 이틀씩 오셔서 도서관 정리 정돈을 해 주신다. 그중엔 연세도 제일 많고, 가장 정갈하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자랑하시는 이 선생님이 계신다.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소액이라도 돈을 주는 게 얼마나 큰 복지인지, 늘 나라에 감사하다는 시니어 선생님. 팔순이 넘었는데 그 시절에 여고를 졸업하고 여대를 다녔다며, 말씀하시는 구절엔 꼭 영어 단어 하나씩을 넣어서 자신이 배운 사람이라고 티를 내신다. 그럴 때마다 귀여워서 속으로 큭큭 웃었다. 비록 취직하느라고 대학 졸업은 못했지만 명문 여대를 나온 것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못 배운(?) 주변 할머니들을 늘 흉보신다.

“5분만 말해 보면 저 할머니가 얼마나 배운 사람인지 나는 금방 알 수 있어요. 못 배운 사람은 표가 나거든요.”

어려운 시절에 남들보다 많이 배웠다는 시니어 선생님은 누가 더 많이 배운 사람인지 감별하고 품평하느라 이야기가 길다. 그런데 선생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찼다. 미국에 사는 딸과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통화하며 언성도 높이신다. 집엔 며느리가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한다며 도서관에 오면 와이파이도 터지겠다, 속내를 얘기하시느라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다.

내가 5천만 원 갖고 있는 줄 다 아는데 어떻게 안 주니? 전셋돈을 빼 줘야 한다는데 어떻게 안 주니?”

선생님의 딸은 엄마의 마지막 남은 재산 5천만 원을 아들과 며느리한테 절대 뺏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 같고, 선생님은 아들한테 얹혀 사는 주제에 돈이 급하다는데 어떻게 안 주고 버티냐며 언성을 높인다.

몇 주 동안 딸과 전화를 주고받으며 근심 걱정이 가득하시더니 어느날 차분하게 말씀을 들려주신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이렇게 살지 않을 거예요. 자식 위하는 것도 다 소용없어요.”

마지막 남은 5천만 원을 아들한테 건네고서 상황이 종결됐나 보다. 많이 배운 할머니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푸념과 신세한탄을 듣느라 두 시간이 속절없이 간다. 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역이지만 나이 들어 자식에게 종속된 경제적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집에 가만 있으면 누가 돈 한푼 줘요? 이렇게 나와서 뭐라도 하니까 얼마라도 받죠.”

근데 저 이런 데 와서 일하는 거 아무도 몰라요. 누가 알면 돈독 올랐다고 욕할 거예요.”

일찍 남편과 사별했지만 많이 배운 덕에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재력도 적지 않았는데 손녀가 유학 간다고 해서 몇 번 도와주다 보니 이젠 수중에 돈 한푼 안 남았다고 자책하신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시니어 일자리를 얻어서 연중 10개월은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어 좋지만, 혹시 누가 알까 봐 창피하다며 조마조마해 하신다. 나도 적잖은 나이가 되니 경제생활에 대한 고민이 많아져 이분의 푸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평생 돈을 벌었는데 자식들을 도와줘야 할 상황에 부딪혔고, 자꾸 도와주다 보니 이젠 수중에 돈이 없다고. 시니어 일자리마저 없었으면 할머니는 구겨진 자존감을 살릴 방안도 없었을 것이다. 고령에 일할 수 있는 것도 자랑이라면 자랑일 텐데 할머니는 누가 알까 봐, 들킬까 싶어 조심조심 작은 발걸음을 옮기신다. 혹여 나이 많다고 내년엔 기회를 안 줄까 봐 도서관에 오실 때마다 인생의 회한을 자꾸 토해 내신다. 할머니의 근심에 공감하면서 나의 우울지수가 높아져 간다. ‘저 모습이 나의 미래, 우리의 나중 모습이 아닐까.’ 할머니를 보며 50대 나이의 도서관 봉사자들은 깊은 한숨을 나눴다. 우리가 노인으로 보내야 하는 시간은 최소 3, 40년인데 그 긴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까.


50대인 우리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딱히 없다. 노인들은 복지제도라도 있지, 우리는 새로운 일을 할 수도 없고 자격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단순노무직이거나 취업 구제책으로 나오는 단발성 일이다.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놀기도 어쭙잖은 나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만큼 앞으로 더 살아야 한다는데 뭣을 하며 노년을 보내야 할까. 소일은 노인들에게나 해당되는 용어였는데 그 소일해야 할 시기가 우리에게 닥치고 있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최소한의 생계는 걱정하지 않을지 몰라도 내가 주도할 소일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작아질 것이다. 노인으로 보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할일이 없으면 많이 배운 노인이라도 뒷모습은 허전하다. ‘까지 떨어지면 비참함으로 얼룩진다. .

다시 태어나면 절대 자식만 위해서 살지 않을 거예요.”

많이 배웠다고 자랑하시는 할머니의 등 뒤엔 외로움도 겹쳐 있었다. 허무하게도 후회만 남은 어느 할머니에게서 노인의 시간을 걱정하게 된 나, 괜한 걱정이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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