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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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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4. 11:06 알림 / 엮은이의 글

 



■ 엮은이의 글

  나라 주권이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심각한 때 이 글을 쓰게 됩니다. 한미 FTA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맺은 한미 FTA 협상안을 국회에서 비준해 주면, 3개월 내 미국에 ISD 조항의 ‘재협상을 제안하겠다’고 꼼수를 부렸습니다. ISD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뜻의 약자입니다.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수돗물 장사를 합니다. 한 달 수돗물 값이 갑자기 올라 우리 월급의 반이 됩니다. 서민들은 수돗물 사 먹을 돈을 아끼느라 빗물을 받아 놓았다가 먹기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미국 기업이 장사가 안 되겠죠? 당장 우리나라 정부에 항의를 합니다. 정부는 빗물을 못 받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우리나라에게 소송을 겁니다. 판단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하지요. 그 센터가 누구 편을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빗물조차 못 받아 쓰게 됩니다.

  소설 쓰지 말라고요? 지난 2000년에 볼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미국 기업은 벡텔이라는 기업이고요. 아, 그러면 그 ISD조항을 재협상하면 된다고요? 오바마가 총 맞았나요? 그걸 해 주게? 그런데도 이명박 ‘가카’가 국회에서 한미 FTA를 일단 비준해 달라는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그걸 비꼬는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일단 김태희를 나와 혼인시켜 달라. 3개월 안에 김태희 씨에게 결혼 허락을 받겠다”는 말에 뒤집어졌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싫더라도 일단 당선시켜 주십시오. 대통령 취임하면 3개월 내에 재선거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비꼬았네요.

  독자님들, 가카가 하는 말은 꼼수가 아닙니다. 제가 바둑을 둬 봐서 좀 아는데, 바둑에서 나오는 꼼수는 정말 그럴듯하거든요. 가카가 하는 짓은 바둑 18급짜리가 9단한테 던지는 막수입니다. ‘씨바, 넘 유치해!’

                                                                                                                 2011년 11월 16일
                                                                                                                        안건모 올림


■ 차례


4 사진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4 재수 없는 날 _ 상희
18 본색을 드러낸 선생님 _ 김경희
22 회갑보다 중요한 날 _ 김현주
25 공무원이 봉이냐? _ 서애련
28 축구를 그만둔 한국의 메시 _ 고경은
32 쫄다구 형님! 제 말 좀 들으세요! _ 김영도
36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 주먹이 운다│바담풍 _ 이성수
38 여성의 일과 삶 : 한 발을 디디고 거침없이 고고씽! _ 박미경
44 살아온 이야기(3) :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긴다! _ 신혜진
50 와글와글 초딩 글
52 이야기가 있는 들녘 : 올해도 쌀 다 팔았습니다 _ 김성만
56 글쓰기 모임 뒷이야기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 :
고기 280킬로그램 볶아 보셨어요? _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 3~4일 정도면 되겠지? _ 김정훈
68 일터에서 온 소식 : 용기 있는 대리운전기사 콜 ! _ 송재성
72 일터에서 온 소식 : KT를 바꿔라! _ 조태욱
76 실업 극복 희망 일기 : 난 유리 같은 여자예요 _ 최문정
80 현장 노동법 이야기 : ‘판례’를 무시하는 판사들 _ 변영철

기획 특집
혁명은 글쓰기와 함께 온다

83 강좌 _ 윤구병

103 뒷이야기 _ 이명옥

105 만화로 보는 세상 _ 이성열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 김진숙과 송경동 _ 박노자
110 교육 이야기 : 1정 연수 괴담기 _ 설은주
114 쉬운 경제 이야기 : 끝장토론 마지막 호소 _ 정태인
122 생태 이야기 : 우주여행은 그저 꿈일 때 아름답다 _ 박병상
126 인물 바로 보기 : 《실학파와 정다산》을 쓴 최익한 _ 송찬섭

쉬엄쉬엄 가요

131 일상 예찬 : 나는 이만하면 충분해 _ 김현진
134 영화 이야기 : 신비한 주술과 생생한 현실의 만남 _ 강성률
138 추억 따라 역사 따라 : 백두대간 완주보다 더 흐뭇한 것 _ 박준성
142 아, 이 시! : 밤새 잘 기셨소 _ 오도엽
144 새로 볼 책 : 싱싱한 유기농 만화 _ 윤지은
146 돌아볼 책 : 오타쿠와 레닌 사이 _ 곽일용
148 새로 나온 책 _ 편집부
151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김현진 / 에세이스트

 
 
 드디어 녹즙 졸업 허가를 받았다. 녹즙 졸업 증명서를 내주는 업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야쿠르트 여사님에게 받았다. 여사님도 별로 졸업 증명서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가 임의로 수령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동안 쭉 녹즙아가씨는 여사님에게 반강제로 얼음팩을 상납해 왔다. 지난 18개월 동안 그게 녹즙아가씨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올해로 20년째 근속하고 있는 야쿠르트 여사님은 백 년 묵은 구렁이보다 더 무서워서, 얼음 좀 달라고 하면 녹즙아가씨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녹즙아가씨에게서 징수해간 얼음이 한국야쿠르트 지사에서 모두가 나눠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녹즙아가씨는 분노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끝내 녹즙아가씨는 치사한 방식을 택하고 마는데, 그것은 그날그날 쓸 만큼 아이스팩을 받아다가 건물 공용의 냉장고에 절대 넣지 않고 쓰고 남은 만큼은 물류용 아이스박스에 도로 넣는 방식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얼음 좀, 하는 여사님을 도무지 당해 낼 수가 있어야지. 저번에는 얼음 좀, 하는 여사님에게 저도 사장님한테 더 달라고 못해요, 라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더니 여사님이 맑고 상쾌한 목소리로 이런 멍충이같으니, 하시는 바람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멍충이가 되었다. 하긴 내가 멍충이니까 멍충이라는 소리 듣지, 하면서도 기어코 약이 올랐다. 약이 올라 봤자 녹즙 배달이나 열심히 할 수밖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삼일장 치르자마자 월요일부터 녹즙 배달한 녹즙아가씨는 아버지가 남기신 최후의 유산, ‘경매최고서’라는 것을 받아 들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원망해 봤자 입만 아프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 녹즙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1월부터 사표 낸 자리에 여사님들이 오기만 하면 일이 힘들어 다 도망치는 바람에 녹즙아가씨는 뜻하지 않게 계속 끈기를 과시하고 마는데, 그러던 중 며칠 전 야쿠르트 여사님이 또 얼음을 달라고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기 싫어서 살색만 보면 전속력으로 도망쳤는데 기어코 또 얼음, 싶어 녹즙아가씨는 멍충이 소리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저도 없어요 얼음,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바보라고 할까 멍충이라고 할까 기대하고 있는데 여사님이 별말 없이 이 일이 해 보면 되게 힘든 일인데 오래 해서 참 장해, 하더니 가 버렸다. 드디어 녹즙 졸업 허가를 받았다는 감격이 몰려왔다.

  나도 이제 고참이구나.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아침 배달하러 나가다가 입고 나가던 옷이 어쩐지 심상찮아 잘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때 입고 배달하다가 청소 여사님에게 트집 잡혀 꼬집히고 쥐어박힌 옷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말 안 거는 걸 보니 나도 고참이구나. 이제 제대해야겠다. 강 건너로 이사 가게 되어서 일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어서 지사장님에게 진작 관둬야 해요, 관둬야 해요, 라고 늘 말했는데 오늘은 바로 이사 전날, 지사장님이 전화를 걸어 일단 물류 발주는 해 놨거든, 현진아 삼 일만 더 도와 주면 안 되겠니, 라고 너무 간곡하셔서 일단 삼 일은 강을 건너와 녹즙을 날라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녹즙아가씨는 이번 호 발매 후 ‘녹즙’ 자를 떼고 그냥 일반 ‘아가씨’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작은책 독자 여러분, 다음 호를 기대하시라.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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