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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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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대우자동차판매지회 조합원


  2011년 1월 31일.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는 노동조합원 전원을 포함한 정리 해고 명단을 발표했다. 예상했던 미래였지만 현실이 되지 않길 바라던 일이었다.     

  내가 입사한 1999년도는 IMF 구제 금융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시기였다. 입사하기는 어려웠고 정규직으로 들어가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그때 국가가 급여의 일부를 지원하는 인턴 제도가 있어 3개월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 대우자동차판매(주)의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었다.  
  
자동차를 판매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업을 다니는 곳마다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고, 대우 차는 죽어도 안 산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차를 사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일터에서는 다달이 그려지는 판매 실적 그래프가 곧 인격이요, 그 사람의 모든 것이었다. 잘 파는 사람은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못 파는 사람은 인격체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사기를 당해 차량 대금을 대신 변제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적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치도 않는 자기 차를 뽑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는 마른 수건 짜내는 격으로 친구, 친척, 지인들에게 차량 판매를 강요하고 못 견디겠으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동기들은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입사하던 해 12월에 결혼을 했다. 당시 28살이던 나는 가장이 된다는 책임감으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구두 굽이 닳도록 열심히 일했다. 사람을 만나고 명함을 건네고 차량을 설명하고 견적을 내고 계약을 하고 출고하고 차량을 인도하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힘들기도 했지만 세상을 배워 가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살림이 조금씩 늘어나는 재미에 즐거웠다. 2001년 9월 첫째 딸이 태어났다. 기쁘고 행복한 시기였지만 회사는 안팎으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회사는 고정급을 줄이고 변동급을 높이는 쪽으로 영업직 급여 체계를 바꾸겠다며 서명을 받기 시작했고, 이 급여 체계에 반대하면 정리 해고 하겠다고 협박했다.  2001년 12월, 노동조합은 파업에 들어갔다. 전국 각지의 조합원들이 올라와 서울의 여러 대학의 강당을 빌려 잠을 자며 6개월 동안 파업을 진행했다. 그사이 관리직들은 친분이 있는 조합원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하여 정리 해고 되기 전에 위로금을 받고 나가거나 퇴직금을 담보로 대리점을 차리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겠다는 감언이설로 회유했다. 점점 변동급 체계에 동의하고 조합을 탈퇴하는 조합원들이 늘어났다. 대리점을 차려 소장으로 나가거나 아예 위로금을 받고 희망퇴직을 하는 조합원들도 늘어났다. 정리 해고 사태는 막았지만 조합은 반의 반 토막이 났다.  

  이때부터 사측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노동조합을 말살하려는 음모를 숨기지 않고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영업소 간판을 새벽에 용역을 동원하여 몰래 뜯어 내고 집기를 옮기는가 하면 정상적으로 출퇴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원거리 영업소에 발령을 냈고 그 영업소마저도 전시장도 간판도 없이 골목길 쌀가게 2층, 치킨집 3층, 슈퍼마켓 5층 등에서 근무하도록 하면서 조합원들이 판매 실적이 좋지 않다는 구실을 만들어 냈다.  

  2006년 결국 사측은 이 구실을 핑계로 회사가 적자가 난다고 하면서 직영승용판매 부문을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떼어 내려 하였다. 자본금 1조 5천 억짜리 회사에서 10억짜리 회사로 옮기라는데 동의하는 직원이 있을 리 없었다. 비조합원들이 조합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5년 전 변동급 급여 체계에 동의하고 조합을 탈퇴했던 직원들도 많았다. 사측은 자회사 발령을 거부하는 조합원들을 무기한 대기 발령 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대구에 있는 최동규 조합원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심근경색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조합은 사측의 무리한 자회사 발령과 대기 발령 압박이 스트레스에 의한 사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사측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지만 사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며 성의 있는 대화 요구조차 묵살했다. 조합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시신을 본사 앞 냉동탑차에 보관하며 투쟁했다. 한여름에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세워져 있는 냉동탑차의 온도가 올라가지 않도록 차량을 관리하고 천막을 지키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측은 1년이 다 되도록 조합의 해결 요구에 응하지 않더니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유족을 앞세워 고인의 시신을 운구차에 실어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허탈했지만, 그동안 유족들이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그이들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측의 태도에는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2008년 10월 조합은 대기 발령 철회와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부평 본사 B동을 점거했다. 사측은 단전을 하고 용역을 동원해 끌어내려 했지만 1층 복도에서 촛불을 켜고 지내면서 45일을 버텼다. 조건부 합의로 나왔지만, 사 측의 합의 이행은 미뤄지고 이번엔 보직 대기가 시작됐다. 보직 대기에 이어 자택 대기까지 또다시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사측은 건설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고도 회사의 알짜배기 부동산들을 헐값에 매각하고 이름도 모르는 유령 기업에 거액의 대출 보증을 서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으며 회사의 부실을 초래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외부에서 배구연맹총재라는 직함으로 저명한 기업인 행세를 하고 다녔다. 회사는 결국 법정 관리를 받게 되었고, 회사 자구 노력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인적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2011년 1월 31일, 정리 해고 명단을 발표했다.  

  조합은 또다시 본사를 점거했다. 이번에는 본동인 A동을 통째로 점거했다. 1층에 주방을 차리고, 외부에 있던 조합 사무실도 아예 5층으로 이전했다. 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조합원들은 고향에서 택배로 부친 김치 맛을 보며 끝내준다고 즐거워하며 싸움의 힘겨움을 털어 내고 있다. 고향의 맛이 그립듯 가족도 그리울 것이다.  

  참여하는 조합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손에 잡힐 듯 보였던 희망이 희미해져 보일 때도 있다. 사측에서는 자신들이 망쳐 버린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밀린 임금과 퇴직금 지급도 하지 않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이슈가 될 만한 비정규직 투쟁도 아니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만한 사건도 별로 없어 보인다. 

  조합원들 얼굴을 보면 좋아할 일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데 얼굴들이 밝다. 그런데 항상 웃는 얼굴의 선배님이 보여 준 핸드폰 문자에는 돈이 하나도 없어 애들 교복 살 돈도 없으니까 당장 다 때려치우고 내려오라는 내용의 문자로 가득했다.  

  이 싸움이 언제쯤 끝이 날까? 10년 전 파업에 처음 참가했을 때 3~4일 정도면 되겠지 하고 짐을 꾸린 적이 있었다. 그랬던 게 지금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는 3~4년 안에만 끝나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투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이다.
posted by 작은책
2011. 11. 24. 11:06 알림 / 엮은이의 글

 



■ 엮은이의 글

  나라 주권이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심각한 때 이 글을 쓰게 됩니다. 한미 FTA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맺은 한미 FTA 협상안을 국회에서 비준해 주면, 3개월 내 미국에 ISD 조항의 ‘재협상을 제안하겠다’고 꼼수를 부렸습니다. ISD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뜻의 약자입니다.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수돗물 장사를 합니다. 한 달 수돗물 값이 갑자기 올라 우리 월급의 반이 됩니다. 서민들은 수돗물 사 먹을 돈을 아끼느라 빗물을 받아 놓았다가 먹기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미국 기업이 장사가 안 되겠죠? 당장 우리나라 정부에 항의를 합니다. 정부는 빗물을 못 받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우리나라에게 소송을 겁니다. 판단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하지요. 그 센터가 누구 편을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빗물조차 못 받아 쓰게 됩니다.

  소설 쓰지 말라고요? 지난 2000년에 볼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미국 기업은 벡텔이라는 기업이고요. 아, 그러면 그 ISD조항을 재협상하면 된다고요? 오바마가 총 맞았나요? 그걸 해 주게? 그런데도 이명박 ‘가카’가 국회에서 한미 FTA를 일단 비준해 달라는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그걸 비꼬는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일단 김태희를 나와 혼인시켜 달라. 3개월 안에 김태희 씨에게 결혼 허락을 받겠다”는 말에 뒤집어졌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싫더라도 일단 당선시켜 주십시오. 대통령 취임하면 3개월 내에 재선거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비꼬았네요.

  독자님들, 가카가 하는 말은 꼼수가 아닙니다. 제가 바둑을 둬 봐서 좀 아는데, 바둑에서 나오는 꼼수는 정말 그럴듯하거든요. 가카가 하는 짓은 바둑 18급짜리가 9단한테 던지는 막수입니다. ‘씨바, 넘 유치해!’

                                                                                                                 2011년 11월 16일
                                                                                                                        안건모 올림


■ 차례


4 사진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4 재수 없는 날 _ 상희
18 본색을 드러낸 선생님 _ 김경희
22 회갑보다 중요한 날 _ 김현주
25 공무원이 봉이냐? _ 서애련
28 축구를 그만둔 한국의 메시 _ 고경은
32 쫄다구 형님! 제 말 좀 들으세요! _ 김영도
36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 주먹이 운다│바담풍 _ 이성수
38 여성의 일과 삶 : 한 발을 디디고 거침없이 고고씽! _ 박미경
44 살아온 이야기(3) :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긴다! _ 신혜진
50 와글와글 초딩 글
52 이야기가 있는 들녘 : 올해도 쌀 다 팔았습니다 _ 김성만
56 글쓰기 모임 뒷이야기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 :
고기 280킬로그램 볶아 보셨어요? _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 3~4일 정도면 되겠지? _ 김정훈
68 일터에서 온 소식 : 용기 있는 대리운전기사 콜 ! _ 송재성
72 일터에서 온 소식 : KT를 바꿔라! _ 조태욱
76 실업 극복 희망 일기 : 난 유리 같은 여자예요 _ 최문정
80 현장 노동법 이야기 : ‘판례’를 무시하는 판사들 _ 변영철

기획 특집
혁명은 글쓰기와 함께 온다

83 강좌 _ 윤구병

103 뒷이야기 _ 이명옥

105 만화로 보는 세상 _ 이성열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 김진숙과 송경동 _ 박노자
110 교육 이야기 : 1정 연수 괴담기 _ 설은주
114 쉬운 경제 이야기 : 끝장토론 마지막 호소 _ 정태인
122 생태 이야기 : 우주여행은 그저 꿈일 때 아름답다 _ 박병상
126 인물 바로 보기 : 《실학파와 정다산》을 쓴 최익한 _ 송찬섭

쉬엄쉬엄 가요

131 일상 예찬 : 나는 이만하면 충분해 _ 김현진
134 영화 이야기 : 신비한 주술과 생생한 현실의 만남 _ 강성률
138 추억 따라 역사 따라 : 백두대간 완주보다 더 흐뭇한 것 _ 박준성
142 아, 이 시! : 밤새 잘 기셨소 _ 오도엽
144 새로 볼 책 : 싱싱한 유기농 만화 _ 윤지은
146 돌아볼 책 : 오타쿠와 레닌 사이 _ 곽일용
148 새로 나온 책 _ 편집부
151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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