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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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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26. 13:31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작은책 7월호 표지는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입니다. 기후변화가 정말 심각합니다. 지난 5월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리지 않나, 폭우가 쏟아지지 않나, 낙동강 여기저기에 녹조가 스멀거린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나, 벌써부터 심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태이야기를 연재하는 박병상 소장은, 지금처럼 기후변화를 방관한다면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가 30년 이내에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의 생존이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번 호 책이 이끄는 여행 , 조선소 노동자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를 읽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형평운동기념탑이 있는 진주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형평운동기념탑에는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여전히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부를 쌓는 재벌들과 가난한 노동자·농민으로 나뉜 불평등한 사회입니다. 그때 역사 속 백정과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 처지가 너무 닮아 있지 않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달에 작은책이 만난 사람은 문화운동가 연영석 씨입니다. ‘간절히’,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줄 아나 등 집회나 홍대클럽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를 만든 연영석 씨가 13년 만에 4집 앨범을 냅니다. 연영석 씨 노래는 집회에서 팔뚝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아닙니다. 서러운 노동자의 삶, 어느 순간 꿈 같은 삶, 그러다가 , 웃기네 하는 삶을 노래합니다. 그의 아내인 노동가수 지민주 씨와 함께 사는 삶도 살짝 들여다봅니다.

 

2019 6 18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노동자가 묻고 백정이 답한다     김용심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내가 정신과 환우들과 함께 하는 이유      박연화

16 부부 30년 맞짱일기

소심한 복수     최해옥과 이동수

21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비가 내리면 장떡이 최고지!      윤혜신

26 청년으로 살아가기

자격증 백만 개가 필요해      유지향

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32 살아온 이야기(13)

진짜 그 사람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송추향

38 교장 일기

아이 짐을 교실까지 들어다 줘, 말아?      최관의

4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약은 정성으로      권해진

46 교실 이야기

한글살이로 한 해를 살아요!      김미숲

50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고마운 제철 김치와 택배기사님      조혜원

53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6 일터 탐방_ 여성가족부 아이돌보미

여성가족부의 기막힌 꼼수      정인열

63 일터에서 온 소식

학교급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정명옥

67 작은책 법률 상담소

반지하에서 생기는 법률 분쟁      김묘희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연영석

71 문화노동자 연영석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과로, 통치의 효과로 읽어야!      김영선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소셜테이너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      고태경

109 어린이 해방과 평화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      이주영

114 여성으로 살아가기 남겨진 것 이후      홍승은

119 생태 이야기 죽은 뒤 일어날 일이더라도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4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5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너는 어디에 있었니      박찬희

129 책 읽고 딴 생각

간신의 평범성      변정수

132 독립영화 이야기 짧은 여행 긴 여운      류미례

137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꽃차와 꽃향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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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6월호

세상 보기

생태 이야기

 

벌써 모기가 나타났다는데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입하(立夏). 고마운 계절이 어느새 여름 문턱에 다다랐다. 어린이날 미세먼지가 심했는데, 하루 지나자 쾌적해졌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매우 좋다. 초미세먼지가 나빠도 마스크 착용하고 걸었으니 이런 날 집 안에 머물면 예의에 벗어난 일이다. 급한 원고가 더 급해지더라도 밖에 나갔는데, 조금 쌀쌀해졌다. 벚꽃이 떨어지면서 한낮에 그늘을 찾았는데, 양지로 걸었다. 북풍이 멈추면 따뜻해질 거라 예보하는데, 이내 무더워지겠지.

요즘 날씨는 느닷없다. 어제오늘은 아닌데, 산들바람으로 가로수를 초록으로 물들이던 날씨가 어느새 여름이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우리의 언어와 달리 자연의 변화는 더디다. 여태 기상이변에 적응하지 못한다. 순서를 놓친 봄꽃이 뒤죽박죽이자 새들은 짝을 찾기 어려워한다. 개구리가 물가 찾는 순서를 놓치면 잡종이 생긴다. 잡종은 예외적이어야 한다. 일상화되면 생태계는 안정을 잃는다. 생식 능력이 없는 잡종이 늘어나면 먹이사슬이 무너지지 않는가.

요 며칠, 거리에서 폭염 냄새가 났다. 작년 여름은 참 유난했는데, 올여름은 견딜 만할까? 롱패딩이 씻은 듯 사라진 거리에 반팔 티셔츠가 갑자기 늘었는데, 가지치기로 앙상해진 플라타너스들은 새잎을 몇 가닥 펼치지 못했다. 넓은 가로수 그늘이 햇살을 막지 못할 올여름이 벌써 두렵다. 여름은 초미세먼지를 줄이니 다행인데, 경각심까지 무뎌질지 모른다. 아닐까? 폭염은 에어컨 가동을 부추기고 중국 동해안의 화력발전은 석탄 사용량을 늘릴 테니 미세먼지가 오히려 늘어나는 건 아닐까?

괭이갈매기 집단 번식지로 잘 알려진 홍도의 평균 기온이 40년 동안 섭씨 1도 상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뿐 아니라, 2010년 제주도에서 발견돼 학자들 놀라게 한 아열대성 식물 고깔닭의장풀이 작년에는 홍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올해는 무성하려나? 거제도의 평균 수온이 1970년대보다 0.6도 정도 올랐다고 하니 홍도 해역도 비슷할 텐데, 우리에게 생소한 범돔과 아홉동가리 같은 아열대성 어종이 홍도 해역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언론은 덧붙였다. 아열대 어류가 고유 어류를 밀어낸 형국인데, 괭이갈매기는 번식에 이상이 없을까?

0.6도의 변화는 피부로 느끼기에 미미하다. 자판기에서 뽑아 든 믹스커피가 미지근해지는 온도보다 훨씬 작지만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드넓은 바다의 생태계는 변화에 예민하고 우리는 그 변화 폭을 감내하며 물고기를 잡아 왔다. 잡는 종류와 양이 들쭉날쭉했어도 익숙한 범위 이내였으므로 견뎌 냈다. 하지만 이젠 모른다. 누적된 기상이변은 새로운 적응을 요구할지 모른다. 쥐치가 사라진 홍도 해역에서 잡아 올린 범돔과 아홉동가리의 요리법을 연구해야 한다.

수온 변화는 플랑크톤 변화로 이어지고 필히 어류 변화로 연결된다. 국립공원공단에서 홍도 괭이갈매기가 2003년보다 열흘 빨리 번식했다는 보도 자료를 돌린 모양이다. 괭이갈매기는 새끼들에게 범돔과 아홉동가리를 먹여야 할지 모르는데, 처음에 흔쾌하지 않았을 거 같다. 지금도 그리 흔쾌하지 않을 텐데, 쥐치는 어떨까? 남획으로 사라진 쥐치가 홍도 주변에 회복되더라도 아열대 어류를 능가하기 어려울 거 같다. 우리 눈에 띄지 않는 플랑크톤이 이미 아열대성으로 바뀐 상황이므로.

온난화는 태풍과 해일의 수와 힘을 키운다. 아시아, 그중 우리나라를 둘러싼 바다의 수온이 크게 상승했다. 태풍 피해가 전 같지 않다. 바다에서 비롯되는 자연재해 기록이 자주 바뀌다 보니 이제 눈에 띄는 뉴스거리가 아닌데,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온난화에 대한 대비는 충분한가? 태풍이 일으키는 홍수와 산사태, 해일과 폭풍만이 아니다. 평균 기온과 수온의 변화가 일으키는 생태계 변화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나?

곧 제주도 남쪽 해역부터 아열대성 해파리가 올라올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지만 종류와 양이 늘어나기만 한다. 쥐치가 흔전만전할 때, 해파리는 그물 올리는 어부와 해수욕장의 청춘 남녀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해파리들은 서해안에 밀집한 발전소에 적지 않은 비용을 청구한다. 터빈 돌린 수증기를 식히기 위해 끌어 올리는 바닷물에 감당하기 어렵게 섞이는 해파리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터빈을 식히고 나오는 온배수가 다시 해파리를 끌어들인다. 바다의 온도를 높이는 탓이다.

발전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석탄화력발전소는 발전설비 1기마다 초당 50톤의 온배수를 내놓는다. 우리나라 화력발전 사업소마다 그런 설비가 적으면 서넛, 많으면 예닐곱 이상이고, 그로 인해 영흥도, 평택, 당진 주변 10킬로미터의 바다가 1도 정도 따뜻하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영광군에 막대한 온배수를 쏟아 내는 핵발전소가 6기 가동 중이다. 같은 용량인 화력발전소보다 2배의 온배수를 황해에 내놓은 핵발전소는 우리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더 늘어날 태세인데, 중국의 화력발전소는 우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부분 황해에 온배수를 쏟아 내는 실정이니, 괭이갈매기의 식성 변화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백령도에서 북한 장산곶 사이의 인당수는 물살이 거세, 예전부터 고깃배의 접근이 어려웠나 보다. 중국 어선에 오른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걸 보면. 물고기가 많아도 남북 접경 수역이라 보전되었지만 그건 어부에게 안타까운 이야기이고, 점박이물범은 덕분에 식솔을 늘리고 몸집도 불렸다. 고마웠을까? 얼마 전 해양수산부는 백령도 물개바위 인근에 인공 쉼터를 만들었다. 경계심이 많아 처음엔 접근하기 꺼려했지만 차차 익숙해진다고 언론이 보도하던데, 물개바위가 비좁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보도했듯 단순히 개체가 늘어났기 때문일까? 그 명확한 이유를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황해 점박이물범은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붙는 발해만으로 이동해 안전한 해빙에 새끼를 낳는다. 황하의 강물이 닿았던 발해만은 오랜 황금 어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업용수로 전환된 뒤 폐수가 되어 발해만으로 빠져나가면서 바다 같았던 황하가 9개월 동안 건천으로 바뀌었다. 이후 점박이물범은 발해만을 포기해야 했다. 먹이가 마술처럼 사라졌을 뿐 아니라 바닷물도 얼지 않으니 새끼를 낳을 해빙도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점점 따뜻해지는 황해에서 멸종되는 걸까? 모른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도, 8000마리였지만 200여 마리로 줄었다고 걱정했다. 한데 늘었다니? 물고기가 남은 물개바위 주변에 모이는 개체가 늘었을 따름이 아닐까?

현재 황해의 점박이물범은 생태계 변화가 치명적이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쥐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은데 모기가? 입하가 막 지났는데 남녘에 모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입동 지나도 자취 감추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입하에 모습 드러내는 게 이상하지 않은데, 가려워서 그런지 인간은 호들갑이다. 요즘 모기는 예전과 같은 종류일까? 여름철 모기장으로 피신시키던 모기는 아니겠지. 독성을 강화한 분무기로 퇴치되지 않는 요즘 모기는 초여름부터 존재를 과시한다. 이러다 사시사철 긁적여야 하나?

며칠 맑아지니 미세먼지 걱정이 무뎌진다. 정부 대책도 흐지부지되는 건 아니겠지? 홍도 괭이갈매기는 누적된 지구온난화의 결과다. 더우면 에어컨 켜고 추우면 보일러 온도 높이는 인간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모기를 이기지 못하는 인간은 생태계의 변화에 예민하게 대처해야 생존이 가능한데, 몹시 굼뜨다. 온실가스를 줄이려 들지 못한다. 그럴 생각이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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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청년으로 살아가기

 

죽을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구나

유OO/ 촌스럽게 살고 싶은 스물일곱 살

 

 

아이를 만들었던 날, 아랫배가 아프고 피도 살짝 나왔다. 으레 달거리(월경)인 줄 알았다. 달거리할 때는 아이를 배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이때다싶었던 그와 콘돔을 끼지 않고 몸을 섞었다. 그 뒤로 두 달이 지났는데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 12주째였다. 의사 선생님이 그때 나왔던 피는 배란혈이라고 했다.

초음파로 배 속에 있는 덩어리를 어렴풋하게 봤다. 심장 뛰는 소리도 들었다. 놀랍고 신기했다. 혼자 좋아하지 말자고 되뇌면서도 나도 모르게 배를 감싸 쥐었다. 그새 모성애라는 게 생긴 것 같았다.

아이를 함께 만들었던 그에게 아이를 뱄다고 했다. 그는 아이를 기르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목숨 하나를 책임지기에는 갖춰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아이를 지우기로 했다.

수술을 앞두고 그는 내 걱정을 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한 척했다. 하지만 혼자 들어갔던 수술실은 너무도 차가웠다. 세균을 없애려고 소독했을 수도 있고, 어린 목숨이 죽었던 곳이라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을 수도 있다. 차가운 수술실에서 몸 안으로 들어오는 쇠꼬챙이는 차갑다 못해 시렸다.

수술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침대에 누워 영양제 링거를 꽂은 채 병실로 왔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같이 저지른 일인데 너 혼자만 아파야 하는 게 속상해.” 슬퍼하는 그를 다독이려고 괜찮아라며 웃었다. 수술비는 꽤 비쌌다. 영양제, 약값까지 더해지니 백만 원 가까이 되었다. 그는 돈 걱정은 하지 말라면서 모두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쉬었다. 그 앞에서는 괜찮은 척했지만 혼자 있으니 많이 힘들었다. 쿵쿵 아이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가 미안해라고 생각했다가 스스로 엄마라고 여길 자격이 있나 싶어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울었다. 수술하기 전에 병원에서 아이를 지우는 게 불법이라고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아이를 지우고 나서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힘도 없고 자주 피곤했다. 건널목을 걷다가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이게 우울증이구나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친구를 만나면 웃었다. 내 걱정을 하는 그에게도 잘 지낸다고 했다. 아무도 모르게 벌어진 일이었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살면서 겪은 가장 힘든 일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야 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그와 헤어졌다. 도시에서 살고 싶은 그와 달리 나는 시골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내려와서 새 남자 친구도 사귀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지내면서 지나간 사람은 잊혀 갔지만, 아이를 지운 일은 잊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애를 가졌다고 초음파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릴 때, 영화에서 아기를 낳거나 임산부가 나오기만 해도 가슴이 무너져 내리듯 아팠다. 그때마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꺼이꺼이 울었다.

수술하고 푹 쉬었어야 했는데 곧바로 괜찮은 척했던 게 잘못이었을까. 날이 갈수록 몸은 안 좋아졌고 삼 년이 지나니 기력이 바닥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아토피도 생겼다. 기운을 북돋워 주는 한약을 먹고 침을 맞았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그는 잘 지낼 것만 같았다. 같이 저지른 일인데 나만 죗값을 치르는 것 같아 억울했다. 수술비는 그가 냈지만, 한약값이 부담될 때는 조금 보태 달라고 해 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책임을 묻는 나에게 그가 뭐라 할 것 같았다. 그 말에 맞받아칠 자신이 없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었다. 좋게 넘어갈 일도 삐딱하게 보고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공동체 식구들이나 친구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늪에 빠져 있던 내게 힘을 준 건 페미니즘 에세이 책이었다. 특히 다른 여자들이 아이를 지웠던 이야기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었구나.’ 그 솔직한 이야기들이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더는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아프지 않길 바랐다. 기력을 되찾으려고 국선도를 하고 명상하면서 마음을 비웠다. 그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지운 게 아니라 잘 키울 자신이 없어서, 얼른 다음 생으로 가서 더 좋은 부모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를 지우고 나서 네 번째 봄을 맞았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여성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자는 목소리를 많이 냈는데 드디어 받아들여진 거다. 여태 길거리에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했는데 목소리를 내 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웠다.

한 국회의원이 14주까지 임신중절을 할 수 있게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했다. 석 달 가까이 아이를 밴 적이 있는, 그 아이를 지우고 죄인으로 살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잠깐이나마 내게 와 준 그 아이에게 사랑을 보내려 한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내 이야기를 밖으로 꺼내 놓았다. 떳떳해지면 좀 괜찮아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같이 살던 이모, 친한 친구, 지금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다들 그동안 고생 많았다라며 나를 다독여 주었다. 엄마에게도 말했다. 힘없는 나를 보면서 그 누구보다 걱정했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많이 놀라면서도 언제, 누구랑 그랬는지’, ‘왜 이제껏 말 안 했는지다그치지 않았다. 고마운 이들을 위해서 얼른 튼튼해지고 싶었다.

올봄에 몸이 많이 좋아졌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나물 뜯으러 다닐 만큼 힘도 나고 피부도 좋아졌다. 기운이 생기니 하고 싶은 것도 생겼다. 첫 번째가 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었다. 혹시 나처럼 아파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힘을 얻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힘든 일을 겪었음에도 우리는 살아있고, 삶은 소중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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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도대체 매력이 뭘까?

엄익복/ 직장인

  

내 나이 올해 마흔 아홉. 낼모레면 오십이다. 결혼을 한 지도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런데 아직도 아내와 티격태격 싸우는 날이 많다. 나는 가능하면 부닥치지 않고 피하려 하는데, 아내가 공격하듯 나올 때가 있다. 평소에도 무슨 불만이 있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 눈치를 보기는 하는데, 유독 화가 난 얼굴로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냥 살살 피해야 하는데, 괜히 웃어넘기려고 농담을 했다가 된통 당하곤 한다. 나는 기억도 안 나지만, 아마도 내가 마누라 등쌀에 못 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나 보다. 그 말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그 얘기를 꺼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런 말이 나와? 나한테 고마운 줄은 모르고, 사람이 참 매력이 없어.”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라고 한마디 하고는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말 할 말이 없네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거실 한쪽에 앉아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매력이 없다고? 그럼 오십 다 된 남편한테 무슨 매력을 기대한 거지?’ 화가 났다. ‘그러는 지는 무슨 매력이 있나?’ 분풀이하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하며 우울해졌다. 어쩌면 내가 생각해도 내 매력이 뭔지 알 수 없어서 그깟 말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 대해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사십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체력도 약해지고, 배도 나오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진다. 거울 보기도 싫다. 가끔 머리 속이 허옇게 나온 사진이라도 있으면, 슬쩍 감추고 없애 버리기도 한다. 또 일을 할 때도 무슨 일이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던 젊은 날의 패기는 사라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며 의기소침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라도 배울 때는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서 같이 해 보려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눈치만 보고 있을 때가 많다. 늘 하던 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내준 후로는 어떻게 하는 건지 잊어버려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이젠 사람들이 나를 피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젊은 직원들끼리 즐겁게 얘기하는 중에도 내가 끼어들면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고, 교육이나 연수를 받을 때도 내가 같은 모둠이 되면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진다. 빈말로라도 익복님이 함께해서 너무 좋다고 말해 주던 사람들도 이젠 찾아볼 수 없다. 나와 같이 일하는 것을 왠지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올해 초 직장에서 부서를 옮기게 되었는데, 같은 팀원들도 새로 옮겨 온 동료가 십팔 년차 부장이라니, 은근히 꺼리는 표정이 역력했다. 정말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다 보니 직장 생활이 가면 갈수록 재미가 없다. 정말 지금보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뭐든 다른 할 일이 있으면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할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직장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자, 내가 참 무능력한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버티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참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는지 한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 물론 이건 직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요즘은 아이들이 다 커서 내 시간이 많아졌고, 밖에서는 그래도 반갑게 맞아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취미 생활로 통기타 동호회도 나가고, 그림 그리는 모임도 나가는데, 이건 정말 재밌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 부르고, 서로 그린 그림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게 너무 좋다. SNS나 인터넷 카페에 사진과 그림을 올리고, 서로 칭찬의 댓글을 달아 주며 공유하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사는 게 나름 보람도 있고, 이게 다 나만의 매력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매력이 없다니. 화가 난다. 나만 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공동육아에 대안학교 보내면서 아이들에게도 좋은 아빠고, 청소며 빨래며 온갖 집안일도 다 도맡아 하는데, 이 정도면 남편으로도 괜찮은 거 아냐? 그런데 매력이 없다니. 생각할수록 열받는다. 회사에서 느끼던 소외감이 가정에서도 똑같이 느껴지는 것에 치가 떨린다.

도대체 매력이 뭘까? 어떻게 하면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만의 매력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지겹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당장 밥벌이 때려치우고 나와 굶어 죽을 각오라도 해야 하는 걸까? 외모가 멋진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다시 태어나야 하고, 돈 많은 사람, 돈 잘 쓰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태어날 때 부모까지 잘 만나야 하는데, 그건 하나 마나 한 소리일 뿐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매력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나를 매력 있는 사람으로 봐 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쳐 부러움을 사기도 하던데, 나는 왠지 더 이상 볼 것 없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아내에게까지 매력 없다는 소리나 듣겠지. 매력은 없지만,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은 있어서 괜히 마음만 무겁다. 그냥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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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6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쌍용양회공업

 


어릴 적 부르던 교가, 기가 막힌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아시아의 으뜸가는 양회공장의 우렁찬 기계 소리 메아리치는~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화초등학교 옛 교가. 양회공장은 시멘트 생산 기업인 쌍용양회공업()(이하 쌍용양회) 동해공장을 말한다. 340만 평 부지의 단일 공장으로 그 규모는 세계 최대. 쌍용양회는 국내 시멘트 업계 1위 기업으로 동해공장에서만 연간 1150만 톤을 생산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박준철 씨(43)는 아직도 교가를 잊지 않고 부를 수 있다.

교가에도 나오고 교과서에도 실리고 그랬어요. 잊어 먹지도 않아요. 그 노래를 그리 부르고 당겼으니. 기가 막힌다.”

그가 기막혀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박준철 씨와 그의 동료 문홍석(42), 태윤호(39) 씨를 삼화동 사무실에서 만나 공장을 둘러본 후 가까운 무릉계곡 한 음식점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준철 씨와 문홍석 씨의 아버지 역시 쌍용양회 동해공장 노동자였다. 해마다 망상 해수욕장에 쌍용양회가 직원 가족들을 위한 천막을 치면 아버지를 따라 놀러 가곤 했다. 성인이 되고 2002년 동해공장에 취직했지만 이들은 쌍용동해중기전문()(이하 동해중기) 소속 사내 하청 노동자다. 본래 쌍용양회의 중기 업무 부서였지만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하청업체로 분사됐기 때문이다. 동해중기를 포함한 하청업체는 모두 24. 중기 업무 노동자들은 불도저, 크레인, 로더 등 8가지 장비를 조종해 시멘트 제조공정에 맞는 원료 및 연료를 운반하고 투입하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 보유한 건설 기계 조종사 면허만도 8가지. 정규직원과 업무상 다른 점을 물었다.

▲ 쌍용동해중기전문 사무실 입구. 부지와 사무실 모두 쌍용양회가 무상 제공해 오다 노조가 생긴 후 임대료를 받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아까 정문에 정직원들 보셨죠? 우리하고 옷도 마크도 똑같아요. 정직원들은 현장 점검만 하고 나와서 우리한테 작업 지시를 하는 거죠. 여기 이래이래 해 주세요. 그게 다예요. 위험한 건 하청이 다 해요.”

이들은 소속 회사가 위장도급 업체라고 주장한다. 원청인 쌍용양회의 지휘·감독을 받아왔고 독자적으로 사업체를 경영할 만한 자금 조달 능력도, 전문기술도 없다는 것이다. 중장비와 사무실 및 부동산도 모두 쌍용양회 소유고, 대표이사도 쌍용양회 퇴직자다. , 동해중기의 최근 4년간 평균 매출액은 약 38억 원인데, 노동자들은 도급비가 매출액이라고 주장한다. 동해중기의 최근 4년간 평균 영업이익도 약 2900만 원뿐이다. 노동자 36명이 검찰에 고소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 위반자료에 따르면 (동해중기) 설립 당시 기본급과 상여 등 임금성 급여는 쌍용양회의 78퍼센트 수준으로 정하기로 하였으며, 기타 복지와 성과금은 쌍용양회와 동일하게 지급하는 것으로 정하였다고 되어 있다.

처음 한동안은 쌍용양회에서 성과금 받으면 우리도 똑같이 나왔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안 나오더라고.”

성과금이 중단된 시기는 2011. 동해중기로 이직한 쌍용양회 전적자들이 쌍용양회를 상대로 퇴직금 소송을 하고부터다.

조금 더 열심히 일하면 잘해 주겠지, 회사에서 줄 건 주겠지 생각했어요.”

365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이들은 주야 3교대로 일했다. 이들의 안내로 둘러본 현장은 위험천만했다. 시멘트 원료를 섭씨 1450도로 가열하는 킬른이라 불리는 거대한 소성로와 회전 분쇄기, 8킬로미터 길이의 클링커(시멘트 반제품) 운송 벨트가 눈에 띄었다. 박준철 씨가 말했다.

제가 입사하고 예닐곱 명 죽었어요. 보통 벨트에 끼거나 떨어지는 사고예요. 고 김용균 씨(태안화력발전소 하청 노동자, 석탄운송설비 업무)랑 똑같아요.”

이들은 중장비로 연료를 호퍼에 밀어 넣다 빠진 적도 많다. 호퍼는 깔때기처럼 생긴 연료 투입구다.

호퍼가 되게 깊고 넓어요. 야간에는 시야 확보가 안 돼서 떨어지는 일이 생기는데 탁 떨어지면 이마 박고 많이 다치죠. 혼자서 일하니까 꼭 무전기 갖고 타요.”

무전기로 다른 장비를 호출해 견인해서 겨우 나오지만 빠질 때마다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여름에는 에어컨 가동도 못 한다. 폭염 속 킬른에서 나오는 열이 더해져 엔진 과열로 장비가 터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든 작업장은 폐기물 저장고. 부연료로 폐기물이 반입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폐타이어 사용부터다. 2000년대부터는 농촌폐비닐, 플라스틱 등 생활 쓰레기와 산업폐기물도 공장에 반입됐다. 둘러본 저장고는 쓰레기 소각장과 똑같은 악취가 진동했다. 미세한 폐비닐 조각들이 둥둥 떠다녀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5분밖에 머물지 않았는데도 목이 쾨쾨했다. 동해중기 노동자들은 저장고 작업 중 토한 적도 많다. 또 거의 대부분이 피부질환, 안과 질환, 비염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되게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피부가 너무 가려우니까. 비염도 다들 생겼어요. 어릴 때는 없던 거죠.”

쌍용양회는 이를 순환자원 재활용’,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의 시범 사업장이라며 환경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다르다. 최근 쌍용양회가 유기 슬러지(하수종말처리 최종 잔재물로 유해물질 함량이 높다)까지 반입해 연간 6만 톤 소각을 계획하자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진 것. MBC강원영동 보도에 따르면 쌍용양회가 슬러지 1톤당 받는 보조금은 10만 원. 6만 톤을 모두 소각할 경우 연간 60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현재는 주민들의 반발로 슬러지 반입이 유예됐다.

▲ 삼화동 주민들이 쌍용양회를 규탄하는 펼침막을 걸었따. 삼화동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작은책(정인열)

위험한 작업 환경과 오염물질에 노출되면서도 박준철 씨를 비롯한 중기 업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아 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시급이 대폭 인상되었지만 임금인상 효과는 사실상 없다. 주휴수당 등 각종 수당이 기본급에 산입되고 임금 보전도 없이 특근 시간마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쌍용양회 원청은 매출액 164백억여 원, 영업이익 24백억여 원(2015~2017년 평균)으로 막대한 이익을 쌓았지만 동해중기 하청 노동자들의 성과금을 없애더니 2017년에는 임금마저 동결했다.

원청 노조가 임금인상을 하면 우리는 그다음 해에 인상분을 소급해서 받았어요. 그런데 그걸 끊어 버렸어요. (동해중기) 사장한테 물어보니 하는 얘기가 양회에서 안 준대. ’. 더 이상 묻지도 말라는 거예요.”

최저임금 지급에 임금동결까지 벌어지자 노동자들은 참을 수 없었다. 노동자 36명 전원이 20181월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에 가입하고 쌍용양회지회를 설립했다. (최근에는 상급단체를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으로 변경했다.) 하청업체 중 가장 먼저였다. 지회는 20186월 쌍용양회와 동해중기를 불법파견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강릉고용노동지청은 불법파견으로 판단, 지난 322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동안 지회는 1인시위부터 공장 앞 집회, 시내 집회까지 쉬지 않고 투쟁했다. 강원지역 타 사업장과 연대도 적극적으로 했다. 이들은 동해공장 앞에 모든 하청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펼침막을 걸었다.

우리만 잘 먹고 잘살라고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잘되면 다른 업체들도 노조할 권리는 사실상 보장되는 거고요. 제조업 자체가 사실상 정규직이거든요.”

쌍용양회지회의 영향으로 중장비 정비 업무를 하는 쌍용동해정비() 소속 하청 노동자들도 20187월 노동조합을 설립해 투쟁하고 있다.

▲ 쌍용양회 하청 노동자 태윤호, 문홍석, 박준철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중기 업무 노동자들의 요구는 직접고용 정규직화와 노동조합 인정이다. 원래 정규직이었기 때문에 원청 직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란이 많은 쌍용양회지만 향토기업으로서 지역사회에 이바지한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쌍용양회 동해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겨울철에 쌍용양회 깃발을 꽂고 동해시 제설 작업을 다녔다. 여름철에는 해변가 모래사장 평탄 작업도 나갔고, 학교 운동장 골대도 옮겨 주었다. 이렇게 동해시민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지역 주민인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직원들도 다 저희하고 불알친구들이고 동네 이웃이에요. 뒤에 와서 진짜 잘하고 있다 응원해 주고, 우리 입장 다 이해해 주죠. 동네 주민들도 고생한다고 응원 많이 해 줘요.”

박준철 씨가 부르던 삼화초등학교 교가는 세월이 흘러 양회공장(동해공장)’ 가사가 빠진 채 바뀌었다. 삼화동 주민들과 하청 노동자들은 쌍용양회를 규탄하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박준철 씨가 어릴 적 선망하며 부르던 교가를 이제 와서 기가 막히다고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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