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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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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한국음료의 봄날

서종원/ 화섬식품노조 전북지부 한국음료지회 조합원

 

 

지방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했던 나는 200812월 전라북도 남원시에 OEM(주문자위탁생산방식)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음료 공장의 식품연구소 대리로 입사하게 되었다.

한국음료에서 생산하는 제품들. 사진_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한국음료는 자사 브랜드 없이 OEM사의 신제품 개발 및 처방 개선을 해 가며 자체 생산을 유도하여 매출을 이어 갔으며 롯데칠성, 팔도, 매일유업, 남양유업, 광동제약, SPC 등 국내 많은 기업들의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있었다. 이런 한국음료는 지난 20103월 엘지생활건강 음료사업부인 코카콜라에 인수되었고, 한국음료의 모든 업무와 관련된 결정은 엘지생활건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인수 후 코카콜라 70퍼센트, 해태음료 10퍼센트, OEM사의 매출을 20퍼센트대로 유지하던 중 OEM 제품의 생산을 철수하라는 엘지생활건강 부회장의 지시에 따라 맡고 있던 OEM사의 신제품 개발 업무는 없어지게 되었으며, 현장 일은 전혀 모르던 내가 배합, 충진, 입고검사 중 택일해야만 하는 기로에 섰을 때 고심 끝에 배합 업무를 선택하였다. 주간 8시간 근무에서 주야간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낮과 밤을 바꾸어 생활한다는 게 쉽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과장 직급을 달고 아무것도 모르는 생산현장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온 나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편치만은 않았다. 설비 관련 업무에 대한 기초 지식 부족으로 현장의 디테일한 업무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작은 거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고참들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쉬는 날엔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도 찾아가는 등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비와 공정 흐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생산 중이던 배합액 일부를 폐수장으로 흘려보내 징계 위기까지 갔던 일, 첨가물 용해 시 밸브 조작 미숙으로 용해 중이던 첨가물탱크가 넘쳐 났던 실수 등을 경험하면서 세상사 열정만으로는 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더 이상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적한 시골에서 묵묵히 일만 하던 우리도 엘지의 가족이 되었다는 기쁨과 부푼 마음으로 엘지라는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게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였다. 엘지생활건강에서 인수하여 대기업 손주뻘 되는 자회사가 되었으니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겠으나, 실상 속내를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였다.

 

한국음료 사측은 1) 소통 없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 2) 지켜지지 않은 희망고문 3) 신규 채용은 손에 꼽을 정도며 정규직도 기댈 곳 없고 급기야 노노갈등까지 우발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 각각의 포지션에서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행함에도 회사에서는 개인의 업무 외에도 잡다한 일들로 직원을 혹사시키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에 항의라도 할라치면 지시에 따르라는 일방적인 회사의 태도에 상실감과 자괴감에 위축이 되었다.

2) 코카콜라에서 인수 후 안내를 위해 내려온 인수팀, 공장 업무를 맡았던 엘지생활건강과 코카콜라 책임자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얘기가 있다. 짧게는 3, 길게는 5년 내에 코카콜라 임금의 80~90퍼센트 수준까지 올려 주겠다던 약속, 복리후생 또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맞춰 주겠다던 약속들은 우리에게 희망고문이 되었다.

3) 서서히 아주 서서히 100명이 넘던 정규직 직원이 47명만을 남기고 도급직으로 바뀌었으며 라인을 하나 증설했음에도 신규 채용은 없었다. 경비직, 조리직, 생산직 중 여직원 전원, 물류직군까지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모조리 도급화하였다. 

위 직군이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결국 배합과 충진업무를 제외한 후공정 6명 업무도 도급업체로 모두 넘어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선 한국음료 직원들에겐 이제 충진, 배합 근무지를 제외하고는 선택할 수도, 갈 수 있는 곳도 없었다.

사측은 고정비 중 인건비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는 방법을 선택했고, 결국 선택권 없는 직원들은 벼랑 끝에 서게 되었으며, 인수한 지 9년이 다 되도록 근로조건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기에, 이런 부당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멈추고자 자구책으로 지난해 4월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 전북지부의 문을 두드리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북 남원 한국음료 공장 입구에서 노동자들이 출근 선전전을 하고 있다(2019110). 사진제공_ 한국음료지회


한국음료지회 2018101일을 시작으로 투쟁 기간 184, 단식농성 28일 경과. 드디어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천막을 걷었다.

인간 존중, 정도 경영을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는 LG그룹을 상대로 한국음료지회 조합원만으로는 이토록 장기간의 투쟁도 역부족이었음은 분명하다.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단식농성까지 하는 모습을 본 많은 분들이 사측의 부당함에 함께 맞서 연대해 주시고, 우리의 안타까운 싸움이 언론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고, 시민단체에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자발적인 시민들의 성금으로 메인 일간지 1면에 엘지생활건강 규탄 광고가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6개월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던 LG그룹이 한국음료지회 노동조합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LG 자본 규탄 및 한국음료 투쟁 승리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모이고 있다(20181110). 사진제공한국음료지회


장장 반년이 넘는 정말 힘든 투쟁이었다. 혹자는 궁금해했다. 한국음료 조합원 29명의 이 처절한 6개월간의 싸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사실 구구절절한 스토리는 없다. 그저 그동안의 삶보다 앞으로의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우리 한국음료지회 노동자들이다. 이젠 우리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도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흘려듣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풀어 나가며 모든 노동자들이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퇴근길 선전전(2018115) . '' 피켓을 든 사람이 서종원 씨사진제공_한국음료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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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교사

 

 

2017년부터 해마다 할 말 있어요를 하고 있다. ‘할 말 있어요는 작은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교사인 내게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할 말 있어요는 칭찬할 일, 억울한 일, 부당하다 생각되어 신고할 일 따위를 적어 내는 종이다. 이것을 나는 모두 읽어 보고 해결을 본다.

10년도 더 전이다.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 말을 물리치지 말고 잘 들어 주는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아이들 말은 다 들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다 들어 주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 명 가까운 교실에서 듣는 사람은 나 혼자인 데다 수업 준비와 잡다한 일로 말 걸어오는 아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되겠지 하며 모든 것을 허용하고 다 들어 주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허물없이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나와의 소통을 독점하면 수줍음이 많아 나서기 힘든 아이들은 앓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기도 했다. ‘왜 말 안 했니?’라고 물어도 입을 닫고 있다. 이미 늦었다. 아이 탓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참 어렵다. 그냥 모두 다 듣겠다는 분위기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종이에 써서 내는 것이다. 처음 누구나 써낼 수 있도록 좀 넘치는 말을 했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웃었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그 뒤로 나는 써내는 글은 모두 받아 읽고 당사자를 불러 중재를 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듣고는 중재를 했다. 이러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뭐든 써냈다. ‘지나가다 쳤어요’, ‘화를 냈어요. 아주 사소한 불만, 불합리함 그리고 조금의 칭찬과 장난 글까지 많이도 써냈다. 지난해에 600개가 넘는 할 말 있어요를 받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 쓰게 한 덕이 컸다. 그냥 써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확 줄었다. 보통 아이들은 앞뒤 잘라 내고 말을 하는 터라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몇 번을 물어 가며 들어야 좀 알아듣는데, 글로 내용을 미리 보며 이야기하니 그 시간이 확 줄었다. 또 기록의 힘도 있다. 이렇게 써낸 기록을 모두 모아 놓으니 뒤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재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일에 자칫 편을 들다가는 원망을 사기도 한다. 처음에는 잘못 판단해서 학부모님의 연락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하면 할수록 요령은 늘었다. 천 번이 넘도록 중재를 하며 자리 잡은 방법은 대충 이렇다. 먼저 들어온 할 말 있어요를 읽는다. 그리고 당사자를 부른다. 서로 같이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할 기회를 준다. 부족할 때는 본 아이들도 부른다. 그렇게 따져 보고 고의로 했는지를 밝힌다. 따져 보면 대부분 오해 때문이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진지하게 사과하도록 한다. 그러면 끝난다. 이제는 과정이 3분 이내로 끝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나름 속 시원한 것이 있나 보다. 지난해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두면 바로 사라졌다. 아무리 많이 복사해 둬도 그렇다. 이는 몇몇 단골손님(?)들이 이 종이를 뭉텅이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단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니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또 헤어지며 할 말 있어요종이를 일부러 가지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 서먹한 아이가 없다. 예전에는 헤어지고 다시 보면 한두 아이는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다 웃으며 본다. 나는 이것이 정말 좋다. 헤어진 누구와도 서로 웃으며 인사한다.

이렇게 아이들 말을 많이 듣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일에 서로 소통이 안 되어 오해를 산다는 것이다. 작은 불만을 표현할 줄 몰라 마음에 담아 뒀다가 다른 충돌이 있을 때는 더 큰 감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혼자 자라고 잘 놀지 못하는 환경이 이런 수줍음을 낳았다고 여겼다. 나는 이런 수줍음이 서로 놀지 않아 그렇다는 데에 생각이 닿아 교실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했다. 쉬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도구를 두고 놀도록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다툼은 더 늘었다. ‘할 말 있어요는 더 들어왔다. 놀이의 시비를 가리는 일까지 내게 들고 왔다. 왜 이리 많냐며 불평했지만 그래도 다 받았다. 그런데 이게 딱 한 달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어서 잘 논다. 자기들끼리 규칙이라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서로 심판을 보며 큰 다툼 없이 논다.

올해도 나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지난해 선배들이 한 두툼한 할 말 있어요뭉텅이도 보여 준다. 이를 보더니 몇몇 아이는 지난해 선배들보다 더 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올해는 할 말 있어요받는 부서를 두고 아이들 도움으로 같이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무들끼리 서로 나누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내가 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쉬는 시간 내 책상 위에는 할 말 있어요종이가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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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봄나물 잔치

윤혜신/ 밥 짓고 꽃밭 가꾸는 시골밥집 미당주방장, 착한 밥상 이야기저자

 

 

요즘 들어 우리 옆 동네에 자주 가게 된다. 작은 미술관이 문을 열고 목요일 저녁마다 수묵화반이 생겨서 작년 늦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수묵화를 그리러 다닌다. 미술관 앞에 책방도 생겼다. 오래된 시골 이층집을 살짝 고쳐서 아담한 책방을 열었는데 시골이라 어디 갈 곳이 마땅찮다가 아담한 시골 책방이 생기니 신이 났다. 그런데 또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내가 쓴 그림책 꽃할배를 알고는 작가라며 반겨 준다. 식당 주방장으로만 알고 있다가 그림책 저자라는 걸 알고 많이 놀랐다며, 갑자기 지역 작가로 우대를 한다.

어느 날, 늦은 오후에 세 명의 여성들이 밝게 웃으며 식당에 들어왔다. 서울에서 그림책방 주인장 소개로 왔다며 자기들도 모두 동화작가라 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대접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내가 아는 그 시골 책방에서 강연도 하신단다. 어쨌든 세상이 다 하나로 연결된 느낌이다.

강원도에 사시는 선생님에게 봄날이 되었으니 한번 산에서 내려오시라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놀러 오신다 해서 이번에는 책방 주인장과 동화작가들을 같이 초대했다. 선생님 내외분도 그림책 작가시니 이름만 대면 서로 아는 사이리라. 그리하여 어느 봄날 밤에 모두 모였다. 봄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 비를 뚫고 다들 모여 앉았다.

나는 조금 특별한 봄 요리를 준비했다. 냉이를 다져 넣은 만두, 취나물을 갈아 쑨 죽, 방풍과 새우를 잘게 다져 넣은 전, 상수리묵과 묵은지, 취나물현미밥과 방풍조개된장국. 봄나물을 이용해서 색다른 맛을 냈다. 모두들 즐겁게 얘기를 나누며 맛있게 봄 요리를 먹었다. 예산 박 선생님이 작년 여름에 담근 술을 가져와서 입이 호강을 했다. 모두들, 냉이만두는 처음이라며 맛있게 먹고 신기해했다. 중동의 친구가 가르쳐 준 요리인 혼음, 내가 보기엔 만두는 만두인데 한꺼번에 크게 말아 쪄서 잘라 먹는 만두라 손쉽게 만두를 만들겠다 싶어서 내 방식으로 응용을 해 봤다. 먼저 밀가루 반죽은 거의 비슷하게 한다. 그런데 반죽을 밀 때, 우리나라 칼국수 반죽을 홍두깨로 밀듯이 커다랗게 밀고 그 위에 만두소를 골고루 얹어 돌돌 말아서 우리네 곱창같이 (순대같이) 둥그렇게 말아 놓고 찐다. 한 김 나가면 잘라서 접시에 담으면 된다. 나는 고기 위주인 그네들의 소 대신 양파, 부추, 냉이나물을 듬뿍 넣고 고기를 약간만 넣어 만든 소로 냉이만두를 만들었는데 냉이향이 향긋하니 맛난 만두가 되었다.

밥을 먹고 다시 집으로 내려와서 차와 다과를 먹으며 동화책 이야기랑 그림 이야기를 신나게 했다. 마침 송악에 살면서 그림책방과 그림책스테이를 준비하시는 감자꽃 선생님이 다음 날 놀러 오라고 초대를 했다. 몇 년째 그림책방을 준비 중이시라고. 우리는 꼭 가겠노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송악의 책방으로 놀러 갔다. 같은 당진이라지만 오지라고 할까. 가도 가도 시골길을 달려서 논밭 가운데 우뚝하게 서 있는 예쁜 책방. 높은 벽면 가득히 그림책이 꽂혀 있고 아직도 나무 냄새와 장작불이 타고 있는 동화 같은 집에 들어갔다. 한 사나흘 정도 이런 집에서 그림책만 실컷 보며 쉬었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램이다. 맛난 커피를 내려 주셔서 집안 구경도 하고 감자꽃 작가님의 책도 보고 즐겁게 놀다가 다시 면천의 책방 오래된 미래로 향했다.

책방에 들어서자 박수가 터지고 이담 선생님의 팬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기다렸다. 글쓰기 모임의 선생님과 제자라고. 역시 좋은 책을 쓰고 그리니 어딜 가도 팬들이 있다. 작은 책방을 천천히 둘러보고 나서 사인도 하고 담소도 나눴다. 책방 주인인 지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모두 책 선물을 했다. 예전부터 사려던 책을 딱 알아서 주시니 고마웠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있던 작은 구멍가게들을 그린 그림책. 그 책장을 하나씩 넘겨 보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예산 슬로우시티 대흥마을로 가서 박 선생님이 하시는 수공예공방 짚과 헝겊에 갔다. 누님은 헝겊으로 가방, 모자, 손지갑, 생활용품을 만드시고 동생은 지푸라기로 짚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곳이다. 특별히 이 공방은 예산에 사는 마을분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만을 판매한다고. 인형이며 브로치, 액자며 옷가지들이 정겹게 진열되어 있다. 선생님이 타 주신 꽃차를 마시며 예쁜 손물건을 구경하고 밀린 수다를 떨었다. 오후가 돼서 우리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저녁 장사를 했다.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가끔씩 얼굴 맞대고 사는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살다가 실수한 거며 때론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든 이야기며 부모자식 이야기를 나누니 핏줄이 아니어도 피붙이 같은 사람이 있다. 나도 남편도 집안의 첫째라 언니나 형이 없어서 의논할 사람이 없는데 어쩌다 만난(살림살이라는 책을 쓰다가 만남) 이분들은 내 친언니 친오빠같이 서로를 챙겨 준다. 가끔씩 만나면 너무 반갑고 안 보면 보고 싶다. 어제 하룻밤인데도 한참 전인 것처럼 느껴지고 빈자리가 허전하다.

어떻게 보면 우린 모두 이방인이고, 외지인이다. 강원도, 서울, 대구, 전주, 대전. 각기 자기 고향을 두고 여기서 살게 되었고 여기서 만났다. 외지인이라는 외로움이 우리를 더욱 친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살뜰하게 살펴 주고 다독여 주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괜히 이곳이 고향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들을 어색해하지 않고 맛있다고 색다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나는 또 용기백배하여 이것저것 요상한 조합으로 음식을 만들어 보며 신난다.

다음엔 꽃이 활짝 핀 따스한 날에 만나서 텃밭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맛난 요리를 만들어 봐야지. 가지로 국을 끓이고 애호박으로 김치를 담가 볼까나?

 


냉이곱창만두

만두피 재료 : 밀가루 3, 따뜻한 물 1컵 반, 소금 약간

만두소 재료 : 다진 소고기(돼지고기도 가능) 300그램, 양파 1, 대파 2, 부추 100그램, 냉이 300그램

양념 : 소금, 후추, 참기름 2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그림_ 이동수


만들기

1. 만두피 반죽을 해서 비닐봉지 안에 넣어 숙성시킨다.

2. 양파, 대파, 부추는 다져서 소금에 살짝 절인다.

3. 냉이는 다듬어 씻어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기를 꼭 짜고 다진다.

4. 절인 채소를 꼭 짜고 소고기와 냉이를 넣어 양념한다.

5. 반죽을 다시 치대고 반으로 나눠서 최대한 얇고 큰 타원형으로 민다.

6. 길이로 펴고 소를 반으로 나눠 골고루 얹고 김밥 말듯이 아래부터 만다. 끝 쪽은 떨어지지 않게 잘 붙인다. 이렇게 2개를 만다.

7. 찜통에 젖은 보자기를 깔고 김이 오르면 순대처럼 둥글게 말아서 30분간 찐다. 5분 식혀서 한 토막씩 잘라 접시에 놓는다. 달래초간장을 곁들인다.

* 냉이뿐 아니라 취나물, 방풍, 원추리, 유채 등 어떤 봄나물을 데쳐 넣어도 된다.

posted by 작은책
2019. 4. 26. 13:57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5, 하면 저절로 이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렇다고 도시 빈민가에서 자란 제가 어린 시절 5월이 되면 존중을 받거나 무슨 선물을 받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연날리기, 구슬치기, 팽이돌리기, 썰매타기, 술래잡기, 자치기등등 신나게 놀고 요즘 아이들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5월이라 그런지 교사 이야기가 눈에 띕니다.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주한경 선생님은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 주는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지요. 하지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 말을 다 들어 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할 말 있어요!’라는종이를 만들어서 나눠 줬답니다. 그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 줄은.

이번 달 특집은 KT새노조 부위원장인 김미영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1970년생 김미영 씨는 1992, 한국통신(KT)에 무선국 기능직으로 입사합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뒤 국제교환원 사내 공채 시험을 치러 당당히합격해 지금껏 일해 왔습니다. “2년이 지나야 공채 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거든요.”

우리 딸은 ‘2년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밤낮없이 노력해 당당히 합격했다는 자한당 김성태 국회의원의 거짓말이 떠올라 참 공정하지 않은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미영 씨와 KT새노조 조합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던집니다.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19418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혁명을 이룬 용의 이야기     이동수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환갑 때 고백했다      박영희

17 포장마차의 추억      차재혁

21 복직 후 내 소망은 점심시간 두 시간      조향순

25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봄나물 잔치      윤혜신

30 청년으로 살아가기

집 떠나 머물 곳이 생겼다     유지향

34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36 살아온 이야기(11)

내 모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송추향

4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부럽네. 다른 데 아픈 데가 더 있지?      권해진

46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50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봄나물은 사랑입니다      조혜원

54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_ 양주시립예술단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한국음료의 봄날      서종원

69 작은책 법률 상담소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형사보상제도      박시진

 

작은책이 만난 사람_ 김미영

73 노동가요에 가슴이 뛰는 김미영      안건모

98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100 존버 씨의 시간들

동아시아의 존버 씨들      김영선

106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우파의 수신호      고태경

111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라      이주영

115 여성으로 살아가기 라는 주어에 힘 빼기      홍승은

120 생태 이야기 마냥 흔쾌할 수 없는 도쿄올림픽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5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6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전쟁기념관에서 전쟁을 묻기     박찬희

130 책 읽고 딴 생각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변정수

133 독립영화 이야기 혁명이 끝난 후      류미례

138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펼침막과 손팻말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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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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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공정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고태경/ 정치철학연구자

 

 

지난 2월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에 서울대 총학생회가 성명을 내며 논란이 인 바 있다. 노조의 파업은 지지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서관 난방은 중단하지 말아 달라는 게 성명의 골자였다.

성명 발표 후 대학 내외부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총학생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3일 만에 노조와의 연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논란은 사그라졌지만, 대학사회의 이러한 혼란이 이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의 20대 청년학생들은 대체로 87민주화투쟁을 경험한 386세대의 2세들이며, 최근 공공부문 정규직화 이슈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한 세대집단이다. 노동의 기본권과 학생들의 피해를 저울질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공정함이란 어떤 것일까.

 

두 노동자의 죽음

잠시 두 개의 죽음에 대해, 혹은 그 죽음에 반응하는 방식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전태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진 그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든 채로 산화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은 80년대 평전의 출간과 함께 청년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다.

전태일 이후 한국사회는 열사투쟁이라는 것을 시대의 유산처럼 경험한다. 80년대에는 전태일의 친구가 되고자 한 수많은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열사정국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이들의 죽음은 대체로 비슷했다. 군중이 모인 곳에서 불타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 몸에 시너를 뿌렸고, 많은 이들이 유언처럼 구호를 외치며 산화해 갔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은 당대 시민사회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적 정언명령이 되었다.

48년이 지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발생했다. 아무도 없는 작업장에서 홀로 기계 속에 끌려 들어간 그의 몸은 (사진 한 장 외에) 우리에게 어떤 목소리도 남기지 못한다. 이미 2000년대를 전후로 노동자들의 죽음은 철저히 고립되는 형태를 띠었다. 크레인 위에서 조용히 목숨을 끊은 김주익이 그랬고, 열사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유서를 남긴 기아차 윤주형의 죽음이 그랬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 죽음들의 비참과 고통에 주목했다. 그런데 정작 묻지 않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전태일은 왜 자신의 죽음에 사회가 응답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가 원한 대학생 친구는 정말 그의 편이었을까.

 

공정성이라는 낯선 물음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어떤 추상의 집합체가 존재한다. 가족공동체나 근대화 이전의 지역공동체와는 달리, 익명의 사람들이 시장과 미디어를 통해 엮인 거대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예컨대, 올림픽 경기에 함께 열광하는 사람들, 혹은 사회적 재난에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은 익명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하나의 집합체에 결속된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이 네트워크는 때로는 이해관계에 의해 연결되고, 일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는 상상의 네트워크다. 우리가 공적 가치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 예컨대 기본권, 인권, 정의, 법 등과 같은 것들은 이 네트워크가 만들어 낸 공론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분노, 정의의 감정들 역시 이것의 파생물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을 시민사회혹은 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의 지반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부르는 오늘날의 용어가 바로 공정성이다. 이 용어와 함께 거론되는 또 다른 표현이 기회의 균등이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있어 공정성은 기성세대의 정의 관념과는 판이한 내용을 갖는다. 예컨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노동3은 헌법에 속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는 하나의 기본권이다. 그것은 이미 전제되었거나, 협상의 대상으로 축소될 수 없는 판단의 절대적 준거로 간주된다.

반면, 공정성 담론은 모든 것을 협상의 테이블로 올린다. 기회가 균등해야 하기에 어떠한 절대적 준거도 불필요하며, 모든 것은 이해관계의 문제처럼 협상 가능한 대상으로 쪼개져야 한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은 학생들의 피해와 거래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해관계로 간주되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회 균등을 무너뜨리는 무임승차행위로 간주된다.

요컨대, 청년들의 도덕 감정은 완전히 새로운 틀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사회 정의의 관념이나 도덕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것에는 사회적 재난을 만난 것처럼 격분하고(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 등), 또 어떤 것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치시키며 냉담한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합의체제가 필요한 시점인데, 문제는 그 합의의 지점에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들어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새로운 합의체제와 위태로운 기본권

새로운 합의의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것이 정부 주도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합의 모델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은 공론화위원회라는 것이었다. 어떠한 절대적 가치 준거도 없이 시민들의 숙의에 모든 것을 위탁한다는 공론화위의 유토피아 정신은 사회문제의 책임을 정부와 지배권력에 묻던 이전 시대의 감성을 완전히 이탈하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기에, 정부는 사회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동원하는 통치술을 사용하곤 한다. 80년대까지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내치모델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개발독재국가들, 복지 중심의 유럽 국가들 일체가 그러했다. 영어로는 거번먼트(goverment), 우리말로는 통치라고도 번역되는 이 내치의 기법은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이 일정 수준 확보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새마을운동을 생각하자). 반대로, 2000년대 이후 시장 중심의 작은 정부모델이 부흥하며 새롭게 등장한 내치모델이 우리말로 민관협치로 번역되곤 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모델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보자. ‘협치의 협력 대상은 시장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다. 공적 영역으로 기업이 호출되고, 기업의 이해관계와 협상의 줄다리기를 할 시민단체들이 또 하나의 파트너로 호출된다. 이 내치의 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파트너십이며, 정부는 이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다.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한 것으로 환원되자(광주형 일자리에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할 수 있느냐가 주쟁점이었다), 이제 쟁점은 이 거래에서 얼마의 파이를 나누어 갖느냐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노동자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주체가 명확했다는 점이다. 1840년대 이후 노동문제를 통칭한 용어가 사회문제(social question)였다. 빈곤과 죽음이라는 유령은 사회 그 자체가 낳은 난제(question)라는 것, 궁극적으로 자본과 지배권력이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제 뒤바뀌게 되었다. 국가가 갈등의 중재자로 빠지고, 노동기본권이 협상 테이블로 올려지며 혼돈이 시작되었다. 전태일은 1969년의 한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과제이다.” 어떠한 것으로도 외면할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타협 불가능한 무엇이 존재한다고 가정된 시대가 있었다. 서울대총학생회의 혼란은 2019년 우리 모두의 혼란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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