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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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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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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세상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원장

 

길을 걷다 보면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이 하나 있다. 골목길에서 자동차가 오는 기색이 보이면 사람들은 얼른 구석으로 피해서 자동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서조차 보행자는 자동차를 먼저 보내 주고 나서야 길을 건넌다. 이렇게 자동차가 우선시되는 문화는 우리 삶 속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자동차를 먼저 보내 줘야 하지?”라는 질문도 떠올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가령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지!”라고 주장하며 먼저 길을 건너려 했다가는 당장 운전자로부터 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는 욕설을 듣게 될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이나 유럽은 어떨까? 한번은 필자가 미국 여행을 가서 교통신호등이 없는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저만치에서 자동차가 다가오기에 한국에서 늘 하던 대로 자동차가 얼른 통과하기만을 기다리며 딴전 피우듯 길 건너편을 주시하고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자동차를 쳐다봤더니, 그 자동차 역시 횡단보도 앞에 정지한 채 내가 길을 건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혀 멍하게 있다가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운전자는 헤이! 당신 왜 빨리 길을 안 건너고 있는 거야? 당신 때문에 나도 못 가고 있잖아라는 의미로 팔을 뻗어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는 미국인 특유의 몸짓을 하며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사태 파악이 돼서 손을 들고 무안하게 길을 건넜다. 그 후로도 횡단보도에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 의식적으로 자동차보다 내가 우선권이 있어!”라며 몇 번이고 스스로 다짐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당초 길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원래부터 자동차가 도로의 주인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와 다른 선진국은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에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

사람이 우선인지 자동차가 우선인지에 대한 관념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 단적인 예가 보행 중 사망사고율이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열 명 중 네 명 정도가 걷다가 죽은 사람이다. 반면 네덜란드와 미국은 약 한 명이다. , 우리나라가 네 배나 더 많이 보행 중에 죽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선진국이지만 일본도 3.5명이나 된다. 일본이 다른 교통사고 통계는 선진국 중 으뜸 수준이지만 보행자 사고에서만큼은 후진국 수준인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운전자들이 보행자들을 그다지 배려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절반 정도의 운전자들만 보행자를 위해 차를 세워주었다.

그럼 서구 선진국에서도 원래부터 사람이 자동차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듯 약자(보행자)들이 가만히 있으면 강자(자동차)들이 알아서 보호해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약자들이 단결해서 자신들의 걸을 수 있는 권리 즉, 보행권을 쟁취해 낸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도로교통법에는 본엘프라는 제도가 있다. 본엘프는 네덜란드말로 도로의 정원이라는 뜻인데, 이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동차는 보행속도보다 빨리 달리면 안 된다. 심지어 아이들이 이 거리에서 마음대로 뛰놀아도 괜찮다. 이렇게 사람과 자동차가 함께 살아가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고 이걸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한다. 이 본엘프의 유래를 알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힌다. 1970년대 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이라는 도시의 한 동네에 공사장 트럭이 통과하기 시작해서 아이들 등하교 길이 매우 위태롭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참다못한 어느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는 트럭이 속도를 못 내도록 화분을 내놓았고, 이걸 본 다른 주민들도 하나둘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트럭들은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화분들 때문에 삭막하던 동네 길이 꽃으로 예쁘게 치장된 정원처럼 바뀌어 사람들이 도로의 정원’, 본엘프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본엘프는 다름 아닌 주민(약자)들이 자동차(강자)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도한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먼저 네덜란드 정부가 본엘프를 법제화했고, 이후 독일의 템포30, 영국의 홈존, 일본의 커뮤니티존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스쿨존, 실버존, 생활도로구역 등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으로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으나 사람들의 의식은 완전히 전환되지 않은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다.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길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시설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본엘프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첫째는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보도가 없다. 골목길에서만큼은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차량 통행의 편의를 위해 중앙에 차선을 그려 놓지 않았고 길을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자동차의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셋째는 횡단보도가 없다. , 본엘프 안에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아무 때나 길을 건널 권리가 있다는 것을 시설로 운전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적당한 채찍이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동차 운전자에게 너무 관대한 처벌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음주운전이다. 여러분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운전자가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은 음주운전을 형사사건 살인죄로 엄하게 다스린다.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시속 30킬로미터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는 본엘프에서 이를 어기고 사고를 내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미국 운전자들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기다려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엄한 벌칙 때문이기도 하다. 엄격한 규칙은 처음에는 부담스럽지만 습관이 되면 곧 익숙해진다. 골목길에서 천천히 다녀 버릇하면 그 속도에 익숙해진다. 세 번째는 자동차에 대한 우리 마음이 바뀌어야 된다. 요즘 내 마음에 꼭 드는 교통안전 광고가 있다. “운전자! 당신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입니다.”라는 광고다. 맞는 말이다. 평생 운전자로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지구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일반적으로 직업운전자들 외에는 하루 24시간 중 아무리 길어도 서너 시간만 운전자이고 나머지는 보행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영원한 강자라도 된 양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꼴불견 운전자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와서 길 건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횡단보도 신호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도 빨리 건너라는 식으로 차머리를 밀고 들어오며 위협하는 운전자, 또는 사람들이 지나가야 할 인도나 횡단보도 위에 떡하니 무단주차해 놓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아직도 지도자들의 책임감(노블리스 오블리주)이 부족한 천민자본주의 사회라고 한탄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강자의 책임의식과 관용이다. 강자인 운전자가 약자인 보행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 충만해진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문화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강자와 약자가 더불어 사는 진짜 사람 사는 맛 나는 세상이 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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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0월호

일터 탐방_ 대경환경()

 

그가 팬티만 입고 운전한 사연

정인열/ <작은책> 기자

 

생활쓰레기(생활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38). 그의 업무는 남들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인 밤 930분에 시작된다. 서울 마포구의 각 가정과 상가 등에서 내놓는 생활폐기물(일반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폐기물)5톤 수거차량에 싣고 인근 소각장에 나른다. 운전기사 한 명과 쓰레기를 포집하는 미화원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손발을 맞춘다. 미화원은 운전기사보다 2~3시간 더 이른 저녁 7시경 각자 맡은 현장으로 출근해 골목의 쓰레기를 포집하고 수거차량이 다닐 수 있는 큰 도로가에 내놓는다. 그러면 운전기사는 포집된 쓰레기를 트럭에 상차하고 쓰레기는 회전판에 밀려 트럭 안쪽으로 들어간다.

▲ 서울 마포지역에서 폐기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배성훈 씨. 작은책(정인열)


마포구에서만 하루 발생되는 생활폐기물의 양은 456.6(2016년 서울시 통계자료). 하루만 수거를 하지 않아도 악취가 나고 거리가 더러워지기 때문에 이들은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6일을 일하고 토요일만 쉰다. 법정공휴일은 물론 설, 추석에도 쓰레기를 치워야 하기 때문에 명절 중 하루는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인간관계가 다 작살났죠. 쉬는 날이 하루라 아무것도 못해요.”

그는 야간노동으로 파괴된 일상을 설명했다. 아침에 퇴근 후 잠을 자려고 해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기 때문에 항상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린다. 생활 패턴이 남들과 달라 지인들을 만날 수도 없어 사회적 인간관계는 단절된다. 배 씨는 작업을 하기에는 주간이 오히려 낫다고 주장한다.

수거차량 20대가 마포구 지역 교통체증을 유발할까요? 오히려 낮에는 도로에 불법주차 차량이 없어 작업도 원활하고 사고 위험도 낮죠.”

야간노동은 특히 가정에 어린아이가 있는 동료들을 힘들게 한다. 쉬는 토요일 낮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밤잠을 자게 되고, 일요일 낮에 다시 아이들과 놀아 주다 잠을 자지 못하고 바로 출근하는 일이 많다.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에 출근하는 상황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쉬는 게 아닌 쉬는 날을 보내고 현장으로 가면 치워야 할 쓰레기는 평소보다 2.

하루 쉬고 나온 날은 12~13시간을 작업해야 돼요. 평소보다 4시간씩은 오바가 된단 말이에요.”

▲ 대경환경(마포구 위탁 환경업체) 서복석 씨가 성산동 골목을 다니며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공공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마포구청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위탁업체 대경환경()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위탁업체로는 고려환경, 평화환경, 효성환경까지 4개 업체가 있다. 이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410원 많은 7940. 기본급과 야간수당, 연장수당을 더하면 월 330만 원이다. 업체는 연장수당을 월 52시간으로 고정해 지급하고 있으나 배 씨가 6월 한 달간 노동조합 조합원 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장근로시간은 80시간이 넘었다. 배 씨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의 한 달 노동시간은 240시간이 넘는다. 이는 2016OECD가 발표한 회원국 평균 147시간보다 많은 최고 수치다.

간접고용의 문제점이 사회적으로 대두되자 20153개 관계부처(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하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마련하고 이들의 임금은 시중노임단가를 책정해 지급하도록 했다. 지침에 따르면 이들의 시급은 14766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중노임단가의 53퍼센트밖에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이다.

환경미화원이 이렇게 궁지에 내몰리는 것은 영리를 추구하는 위탁업체가 공공업무를 대행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용역근로자보호지침을 내놔도 법적 강제성이 없어 지키지 않는 업체가 대다수다. 게다가 관리·감독을 해야 할 마포구청 청소행정과가 오히려 지침을 어기고 시중노임단가의 70퍼센트로 입찰 공고를 냈다. 그리고 관련법을 어기고 입찰 공고문을 변경해 노임단가를 더 내려서 업체가 연간 8억 원의 임금을 착복하게끔 도와준 정황도 있다.

위탁업체는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인건비와 식비마저 중간 착복하고 인력 충원도 최소화한다. 늘 인력이 부족하여 노동자들은 시간에 쫓기며 일을 하니 안전 규정도 어기게 된다. 골절부터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재해 건수는 연평균 613(2015~2017년 고용노동부 자료). 특히 사망자의 88퍼센트가 위탁업체 노동자였다. 배 씨 역시 지난 1월 쓰레기를 상차하다가 회전판 사이에 손이 끼어 오른쪽 손가락 3개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야간에 청소하는 사람들 다 발판에 매달려서 다니잖아요. 음주 차량이 뒤에서 받아 버리거나 발 잘못 디뎌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나도 매달려 다녀요. 발판 자체가 불법 부착물인데도요. ? 이걸 떼 버리고 걸어 다니면 작업시간이 당연히 늘어나겠죠. 그러니까 암묵적으로 놔두고 있는 거예요.”

배 씨는 미화원 작업복과 장갑을 지금보다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등 오물을 처리하다 보면 작업복과 장갑은 온갖 세균과 미생물에 오염되기 때문이다.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들면 구더기가 우두두둑 떨어져요. 그리고 술 취한 사람들이 꼭 쓰레기 더미 위에 토하고 오줌 싸고요. 그걸 수거차량에 넣으면 회전판이 돌면서 압축하거든요. 그런데 쓰레기가 가득 차면 터지면서 그 안에 있던 오폐수, 구더기 다 뒤집어쓰는 거예요. 저도 한번은 다 튀어서 입고 있던 옷 다 벗어서 버리고 팬티만 입고 운전했어요. 하하.”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2009년 실태조사에서도, 환경미화원의 몸에서 검출된 미생물 수가 버스터미널 화장실 변기의 25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이 가까이서 이용할 수 있는 샤워실은커녕 탈의실도 없어 주차장이나 상가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작업 후에도 근처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을 씻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폐물이 묻은 옷은 그대로 가정 세탁기로 들어가 그 가족의 위생마저 위협한다.

▲ 한 위탁 환경미화원이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집다가 유리 같은 날카로운 물건에 손이 베이는 일도 부지기수다. 얇은 코팅 장갑 한 켤레로 3일을 써야 하니 금방 헤진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안전수칙 가이드에서 베임방지 장갑을 착용할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현장에는 지급되지 않고 있다.

대경환경 야간 반장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미화원에게는 좋은 구역을, 그렇지 않은 미화원에게는 계속 험한 구역을 배치하며 인사권을 휘둘렀다. 때마침 4명 인력 충원으로 한 조가 더 생겨나 조금은 작업이 수월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편한 사람만 더 편해질 뿐이었다. 201711월 배 씨를 비롯한 대경환경 소속 노동자 대부분은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노조를 만들었다. 배 씨는 지회장을 맡았다.

노조가 생기자 회사는 곧바로 같은 조의 노조원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고 노조를 탈퇴하라고 회유했다. 노조에 가입한 수습 직원 4명은 3개월 수습 기간 후 모두 계약해지 하고 새 직원을 채용했다. 27명이던 노조원은 순식간에 22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8명이 버티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기업노조가 만들어져 22명이 그 노조에 가입했다.

배성훈 씨는 노조 활동을 하고부터 하루 세 시간도 못 자고 있다. 아침에 퇴근한 후 마포구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상급단체와 노무사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담당부서인 청소행정과에는 민원을 넣는다. 지난 828일에는 유동균 마포구청장과 면담해 위탁 환경미화원 직접고용 TFT 구성을 제안했다.

▲ 배성훈 씨가 폐기물 수거 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작은책(안건모)


현재 서울시 직영미화원 1인당 책정된 인건비는 연 6300여만 원. 노조가 마포구청장에게 제안한 자료에 따르면 위탁 환경미화원 전원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임금 수준을 높여도 기존 위탁운영보다 연간 약 18억 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 절감된 예산으로 각 업체에 41조 인력을 충원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되면 배 씨를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보다 안전하게 일하면서 주 5일 근무도 꿈꿀 수 있게 된다.

위탁업체가 그동안 우리 뜯어먹은 거 그만하라는 거죠. 발판에 매달리지 않고 작업을 해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저희 목표예요.” 그는 오늘도 잠 못 자고 뛰어다닌다. 보통 사람들처럼 밤에 잠자고, 가족과 일상을 함께하는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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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0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죽비 같은 인연

김수련/ 항공사 객실승무원

 

항공사 객실승무원으로 일하는 하루하루는 늘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과정의 연속이다. 하늘을 건너 온 세상 도시들을 오가며 다양한 국적의 승객들을 대하는 일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지구라는 열린 도서관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객실승무원으로 일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전혀 알지도 못했을 나라와 사람들, 그들에 대해 새로운 걸 깨닫고 이해하게 해 주는 내 일이 나는 너무나 고맙다. 피부색, 언어, 종교에 상관없이 이 시대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그런 교감과 공감 덕분에 길고 고된 하늘길에서의 노동을 견디며 오랜 시간 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라는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밀폐와 제한이다. 이 꽉 막힌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다 보면, 그 부대낌의 피로 탓일까. 이미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던 상황들을 그만 새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극성수기가 지나고 나면 항공요금이 조금 싸진다. 휴가를 가는 여행객들은 줄어들고, 사업이나 고향 방문 목적의 승객들이 많아진다. 성수기가 끝났음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승무원들 앞에 또 다른 종류의 일이 들이닥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다. 그래서 미국을 오가는 승객들 중에는 고국을 방문하기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특히 우리 항공사를 많이 이용하는 승객은 인도인이다.

인도처럼 식민지를 오래 겪은 나라들은 이민이 많다. 인도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로 계급간의 갈등이 꽤나 심각하며, 우리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지만 이름과 성만 보아도 그들끼리는 상대가 어떤 계급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신분이 낮은 이들은 자국기인 인디안항공 이용을 꺼리고 신분 계급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는 외국 항공사들을 애용한다는 것.

그 얘기를 처음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인도인 승객들을 만나면 무작정 연민의 마음부터 일곤 했다. 하지만 신분이 철저하게 구분된 사회에 오래 살았던 이들이라 그럴까.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할 행동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했다. 나의 연민과 공감 능력으로는 그들을 다 이해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들 인도인 승객의 특징 중 하나는 타국적의 승객들에 비해 휠체어 신청이 유독 많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에서 인도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모인 인도인들이 한 비행기에서 주문한 휠체어가 무려 50개가 넘을 때도 있다. 휠체어 승객이 몇십 명이 넘어가면 승무원이 할 일은 몇 곱절로 늘어난다. 달리 보상이 없으면서 챙기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부쩍 많아지니, 일하는 승무원 입장에서는 불평이 쌓이기 십상이다.

휠체어로 탑승하는 인도인들은 물론 대부분 노약자들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충분히 걸어 다닐 나이 같은데도 제대로 못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느 날 인도 뭄바이에서 현지 직원에게 물었다. 유독 많은 뭄바이행 휠체어 승객들에 대한 불평은 그 질문 하나로 자취를 감췄다.

직원은 답은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너무 가난하여 자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 미국으로 간 그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부실한 영양 공급 탓에 다리근육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고단한 노동에 시달리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자신을 챙길 여유가 없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휠체어를 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 그들. 휠체어에 의지해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들. 어쩌면 미국 이민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 고향 방문일 수도 있는 그들의 여정.

그들을 그렇게 휠체어 안에 주저앉게 만든 사정을 헤아리려 들지도 않은 채, 그저 고단한 업무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으려 했던 내가 얼마나 낯 뜨거웠는지 모른다. 그저 내가 할 일이 늘어나는구나, 더 고단해지겠구나, 아 힘들어, 그런 푸념만 연발하며 그 상황을 불편해하고 불평하다니.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늙고 병들어 혼자서는 잘 움직일 수도 없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인도로 가는 모자 승객이 우리 비행기에 탔다. 어머니의 좌석은 비즈니스였고 아들은 이코노미였다. 아들은 탑승하며 내게 부탁했다. 자주 와서 어머니를 돌보고 싶으니 사정을 봐 달라고. 비행기는 클래스별로 좌석이 나눠져, 다른 칸의 승객이 상위 좌석으로 맘껏 다니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탑승 과정 중 보았던 아들의 표정과 태도에 감동받아 그날 담당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해 잠시 오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그날도 승객이 많았던 날이라, 내 일이 한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 모자 승객이 자꾸 눈에 밟혀, 아들이 어머니의 식사 시중을 들고 화장실 방문을 돕는 모습을 틈틈이 지켜보았다. 할머니는 생각보다 자주 화장실을 가고 싶어 했고, 그에 따라 나도 부지런히 다른 칸으로 오가며 아들 승객을 불러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긴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잠도 못자는 그 승객이 안쓰러워,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서울 도착할 때까지 내가 돌봐 드릴 테니, 아드님은 조금 쉬시라고. 할머니는 평소 잘 못 움직이신 탓에 몸이 불어 있었고 인도 전통의상인 사리를 입고 있어서 부축하고 화장실로 모셔 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도와드릴 때마다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깊이 감사하는 맘으로 다정하게 건네는 눈길. 비록 능숙한 영어는 아니지만 넌 참 좋은 사람이야를 연발하던 할머니의 목소리. 그런데 식사 때면 식욕이 없으신지 거의 안 드셔서 마음이 아팠다. 더 드시라며, 다른 거라도 챙겨 드릴까 여쭈었더니, 맙소사! 자꾸 먹고서 화장실을 자주 가면 아들과 당신을 힘들게 해서 안 된다는 게 아닌가. 마음이 풀썩 주저앉은 나는 더 권할 수도 없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모자 승객은 다른 일반 승객들이 다 내리길 기다린 후에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렸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를 꼭 안아 드리며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또 만나자고 인사했다. 할머니가 허리춤의 쌈지를 뒤져 꼬깃꼬깃 접은 5달러 지폐를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승무원의 업무 특성상 팁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난 괜찮다며 사양했으나 할머니는 절대 돌려받지 않을 기세셨다. 옆에 있던 아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맙다 인사를 드리고 손을 꼭 잡았다.

동료들은 그날, “왜 굳이 나서서 할머니를 돌보느라 더 힘들게 일했냐며 나를 책망하듯 칭찬했다. 아들과 늙은 어머니가 서로를 살뜰히 돌보고 위하는 마음을 어찌 외면한단 말인가. 서로를 위하는 애틋한 마음은 고단함도 잊게 만든다.

나는 잘 몰랐다. 아니 안 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엄격한 신분사회, 오랜 영국 식민 지배를 겪은 나라, 미국 이민자로 살면서 자신의 권리주장에만 몰입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한 사람들. 그들에 대한 편견만 쌓으며 내 업무의 어려움만 증폭시켜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만났던 모자 승객은 자꾸 편협해지려는 나를 번쩍 일깨워 준 죽비 같은 인연이었다. 한 국가와 사회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책도 뒤적이고 영화도 찾아보곤 하면서, 정작 그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을 보는 일엔 게을렀던 게 아닐까.

지난달 광화문에서 열린 갑질격파 시민행동집회에서 나는 조합원의 편지로 발언대에 섰다. 항공기가 날아올라 움직이는 원리를 항공역학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난 항공기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항공기 안팎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협력과 조화에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뭄바이로 가는 모자 승객 같은 수많은 죽비 같은 인연들이 내게 그렇게 가르쳐 주었으니까. 그리고 난 그들과의 사연을 나의 세상 도서관 책장에서 항상 다시 꺼내 읽고 감동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니까

▲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 사진제공_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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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14:07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김종도


엮은이의 글

 

이번 호를 꾸리는 중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9년 동안 30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던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가 마무리되었다고 해요. 해고자 119명을 내년 상반기까지 모두 복직시키기로 노사가 합의했답니다. 타결 소식에 반갑고 마음 기쁜 한편 동시에 분하고 착잡한 마음도 드네요.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다는 이들의 소박한 요구가 그렇게 오랜 시간 싸워야만 얻어질 것이었나 싶어서요.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 이어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까지 복직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수많은 노동자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높이의 굴뚝에서는 파인텍 노동자들이 310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고요, 광화문 세종로 공원 농성장에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12년째 복직을 위한 노숙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님들, 곳곳에서 싸우고 있는 이분들이 지치지 않게, 질기게 싸워서 이길 수 있게, 지지와 연대 부탁드립니다.

이달에 일터에서 온 소식꼭지에는 항공사에서 일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용기 내어 가면을 벗어 던지고 당당히 싸우는 그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갑질 항공사가 아니라 국민의 항공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싸우겠다는 항공사 노동자들에게 관심과 응원 보내 주세요.

독자님들, 늘 고맙습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2018918

유이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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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9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여보, 한번 해 봐. 후회하지 말고

태윤호/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조 쌍용양회지부 사무국장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분이라면 쌍용양회 시멘트회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단일 공장 중 세계 최대 규모 쌍용양회공업()은 시멘트업계 1위로 연간 300~400만 톤의 시멘트를 미국, 칠레,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8곳에 수출하는 회사다.

2007년 스물일곱 살이던 나는 그해 결혼하고 겨울에 쌍용동해중기()에 입사했다.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주변 지인분들은 모두 부러워했다. 나 역시 그랬다. 청년실업률이 점점 높아지는 시기에 젊은 나이에 지방에서 좋은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강원도 동해는 평생직장으로 삼을 만한 일터가 별로 없다. 지방에서 빽 없고 가진 것 없는 젊은 친구들은 서울이나 경기권, 대도시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쌍용양회에 들어간 나는 내가 자란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제2의 인생, 나의 새 둥지를 꾸려 갔다. 어느덧 내 나이 서른여덟. 결혼하고 입사한 지 12년 차. 토끼 같은 두 딸의 아빠가 되었다. 정말 앞만 보며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다.

IMF 이후 쌍용양회는 쌍용중기 부서를 포함한 기계, 정비, 유통 등 여러 개의 부서를 도급으로 전환시켰다. 이 내용을 입사 면접에서 알게 되었는데, 회사가 다시 안정화되면 합병될 거라고 기대하였고 다른 타 회사의 대우를 봤을 때 비교적 안정적이라 생각했다. 처음 원청 직원과 월급 차이는 78퍼센트 수준이었고 성과급 및 복리후생도 쌍용양회의 지침 그대로 적용되었다. 분사되었을 때 양회 직원으로 일하다가 넘어온 인원이 많아서 그런지 원청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 주는 것 같았다.

입사 후 한 4년쯤 지났을 때 바지사장이 갑자기 원청에서 퇴직 통보가 왔다고 했다. 왜 바지사장인가 하면 연 35~40억 원의 경상 도급을 받아 오는 회사의 사장 자리에 주주총회도 거치지 않고 원청이 보내는 사람을 앉혀 처우, 복지나 직원들의 급여 및 발령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쌍용양회 북평공장 공장장(부장이사)이 중기 바지사장으로 온다고 했다. 좀 얼떨떨했다. 그전에도 이상한 점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때부터 회사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얼마 후 중기 반장이 도급계약에도 없는 A광산에서 비 오는 날 원청 관리자의 요청으로 작업자 두 명과 중장비를 가지고 배수로 작업을 하다가 낙석 사고로 억울하게 운명하셨다. 우린 원청의 작업 지시를 당연시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몇 달이 흐르고 쌍용양회에 계시다 넘어오신 퇴직자들이 많이 생겼다. 그분들은 쌍용양회의 입사 동기들과 퇴직금 차이가 크다는 걸 알고 소송을 했다. 한평생을 다 바치고 억울하게 회사의 고통을 공동 분담 하였는데도 그들과 평등한 대우는커녕 물질적으로 보상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송은 1심에서 지게 된다. 원청에서 도급으로 넘어올 때 아무런 서명계약서 없이 구두로만 이어져 넘어온 것이 실수였다.

그 후폭풍이 결국 남아 있는 우리들에게 닥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또 바지사장은 원청에 의해 잘려 나가고 그보다 더한 바지사장(북평공장 공장장)이 발령을 받아서 왔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한번은 원청 관리자가 자신들의 작업 지시를 묵살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다 하여 바지사장이 동료에게 징계를 내렸다. 그분은 한 달 무급과 출입 정지 공문을 받고 생계를 위해 낮에는 공사장, 밤에는 대리운전을 해야만 했다.

또 외부 운송업체 기사가, 우리가 하역을 제때 안 해 준다고 쌍용양회에 본사에 투서를 보내 본사에서 감사조사원이 내려와서 그 시간대 근무였던 장비 운전원을 불러 감사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 원청 노조가 임금 협상을 하여 임금이 인상되면 우리도 똑같이 올려 줬는데, 도급이라고 끊기고 소급분도 안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다.

겨울에는 동해시의 도로 일대, 공장 주변, 시내, 공장 안, 원청 사원아파트 앞까지 요청 오는 제설 작업은 다 했고 여름에는 원청 직원의 피서를 위한 천막과 의자 운반까지 했다. 동해시의 초··고등학교 운동장과 바닷가 모래사장 평탄 작업 등 쌍용양회의 중장비 관련 대외 업무는 우리가 도맡아 했다. 억울한 건, 우리가 알면서도 모든 일을 다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에서 발급한 건설기계 조종면허를 8개씩 가지고 있으며, 실제 그 면허에 해당하는 운전을 할 수 있는 기능직 사원들이다.

정말 역겹고 구역질이 난다. 이 악질 같은 놈들은 조금 더 벌어먹으려고 직원들 임금 줄여 지네 배 불리고, 원청에 잘 보여 어떡하면 안 잘릴까 온통 그 생각뿐인가 보다. 누군가 그랬다. 아인슈타인은 머리를 열어 연구해야 하는데 저것들은 머리를 깨 봐야 알 것 같다고.

우리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 자본에 맞서기 위해 SNS를 뒤져 우리랑 유사한 회사를 찾아보았다. 바로 옆 동네 동양시멘트(현 삼표시멘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결국에는 노동자들이 승리한 사례를 보았다. 동해삼척지역에는 노동운동에 앞장서 그 중심에 서서 활동하는 동지들이 많았다.

그분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지난 110일 민주노총 강원영동지역노동조합 쌍용양회지부를 결성하고 자본의 반대편에 섰다. 노조가 결성되기 전 가족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다들 걱정했다. 어느 날 집사람이 내가 몇 날 며칠 고민하느라 잠 못 들고 밤잠을 설치는 모습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여보, 당신이 그렇게 억울하고 직원들의 한마음 한뜻이면 한 번 해 봐. 후회하지 말고.”

이 말에 나는 눈물이 핑 돌며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다들 이런 마음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이런 일들이 생기면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나 위로가 그렇게 따뜻하고 위대할 순 없을 것 같다.

▲ 쌍용양회 비정규직 노동자 태윤호 씨. 사진제공_쌍용양회지부

지금 우리는 쌍용양회의 불법파견 및 위장도급,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투쟁 중이다. 노동운동의 선전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고 투쟁은 싸움이 아니라 노동자의 몸부림이며 파업은 노동자가 노동의 일손을 놓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이 글을 보는 전국의 동지들에게 우리의 진실이 전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다 한마음 한뜻으로 후회 없이 투쟁하길 바란다.

▲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거리 행진을 하는 쌍용양회지부와 강원지역 노동자들. 사진제공_쌍용양회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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