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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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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094월호

쉬엄쉬엄 가요

추억따라 역사따라

 

짱돌의 역사

박준성/ 작은책 편집위원, 역사학자

 

 

 

나뭇가지에 잎눈 꽃눈이 터질 듯 커졌다. 빨리 자란 냉이는 벌써 하얀 꽃이 피었다. 둘째 아이 학교 가는 길가 밭 군데군데 퇴비 푸대가 늘어져 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농사를 좀 거들어 보았다고 봄이 되면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학부모들이 학교 학습장 귀퉁이를 얻어 텃밭 농사를 짓는 데 끼었다. 산자락을 일군 땅이라 잔돌이 많다. 어렸을 때 생각이 나서 산 쪽으로 집어 던져 보려고 서너 개를 집어 들었다. ‘도룡농이나 겨울잠에서 깨어 나오는 개구리 맞을라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새싹이 맞을까 미안해서 밭둑으로 옮겼다.

지금도 부모님이 농사를 짓고 있는 시골 우리 집은 나지막한 산 중턱에 있다. 뒷문을 열면 바로 산으로 올라갈 수 있다. 집 둘레 밭은 오랫 동안 농사를 지어온 땅이라고는 하지만 때마다 잔돌을 주어 내도 계속 나왔다. 아버지는 그 돌을 가지고 밭 건너편 산으로 멀리 던지기 시합을 시켰다. 돌팔매질 놀이와 돌 치우는 일을 그렇게 가르쳐 주셨다. 잔돌 던지며 배웠던 실력이 체력장 멀리 던지기를 할 때 제대로 드러났다.

체력장을 끝으로 돌팔매질을 써 먹을 일이 별로 없을 줄 알았다. 시대가 짱돌을 들게 만들었다. 재야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님은 19876월항쟁 이후 어떤 모임에서든 나를 소개할 때마다 퇴계로 거리에서 짱돌 들고 앞뒤로 오가던 내 모습을 이야기하셨다. 열심히 싸웠던 선수들 보기가 민망스러워 낯이 뜨거웠다.

1986년인가 1985년이었던가. 규장각에서 조교를 하고 있을 때다. 퇴근을 하는데 교문 쪽에 최루탄 가스가 자욱하다. 앞에서 조그만 여학생 둘이 작은 손으로 보도블록을 열심히 깨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 만큼 안쓰러웠다. 마침 농구선수처럼 키가 장대 같은 남학생들이 옆으로 지나가다 손가락질을 하며 낄낄거렸다. 눈앞에 불이 확 붙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은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노태우보다 그 남학생들이 더 미웠다. 땅바닥에다 패대기를 치고 싶었다. 국립대학 조교는 공무원 신분이라 화는 나도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정신없이 보도블록을 깨었다. 손이 얼얼해서 며칠 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뒤에서 보도블록을 깨서 앞으로 나르면 용감한 선수들이 앞에서 던졌다. 창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최루탄을 쏘아 대도 30미터 앞에까지 다가가 물러서지 않고 던지는 선수들이 있었지요 했다. 마침 <작은책>법보다 사람을 연재하던 박훈 변호사가 앉아 있었다. “30미터가 아니고 5미터요!”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짱돌을 던지다 보면 우리 편 뒤통수 맞히기 십상이었다. 그래도 앞에서 싸우던 선수들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정쩡하게라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여야 힘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6월항쟁 때 한편에서 지식인으로서 역사학자로서 이 상황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전망을 모색하여 알리는 것이 우리 몫이니 어쩌고 할 때 거리에 나가 짱돌을 들어야 한다고 맞섰다. 목소리는 컸어도 뜻은 공부하는 사람들이 될수록 현장 가까이 가서 구경해야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촛불항쟁 때 밤을 새고 명박산성에 깃발을 올리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명박산성 가까이 있던 시위대 속에서 뒤를 보면서 놀러 왔나. 놀려면 놀이터에 가서 놀든지, 씨발 하는 욕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앞쪽으로 다가오지 않고 뒤에서 노래를 부르고, 영상물을 보고, 모여 앉아 토론하는 무리가 못마땅했나 보다. 앞쪽에 있다고 해도 깃발 들고 나서는 사람 있고, 전경차에 밧줄 걸고 당기는 사람 있고, 나처럼 사진 찍는다고 밧줄 한 번 당기지 않은 사람도 있고, 밧줄 당기는 사람 등 밀어 주는 사람도 있고, 목소리로 응원하는 사람도 있듯이, 뒤쪽에서 갖가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참가하지 않는다면 앞에 있다고 힘이 날까? 강의도 버릇이 된다고 한마디 해주고 싶은 걸 참았다.

시간이 지나 6월항쟁 때 이이화 선생님 비슷한 나이가 되고 보니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을 짐작할 수 있겠다. 22년 전 일이니까 내가 30대 초반, 선생님이 50대 초반이었다. 이이화 선생님은 짱돌은 들지는 않았어도 빠짐없이 6월항쟁 거리에 나섰고, 깨진 보도블록 조각을 시위대 쪽으로 밀어 넣어 주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런 말을 하면 남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 같으니까 나를 만났다는 말로 대신했던 것 아닐까. 제 말이 맞지 않으냐고 여쭤 보고 싶다가도 그냥 지나간다. 그런 것까지 확인하다 보면 세상사 재미가 떨어지지 않겠나.

6월항쟁 때는 보도블록을 깨서 짱돌을 만들어 썼고, 촛불항쟁 때는 짱돌 대신 촛불을 들었다면, 1960‘4월혁명시위대가 들었던 짱돌은 진짜 돌이었다. 4월혁명 때 경무대로 향하는 보도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짱돌에 총으로 대응하였다. 경무대 쪽에서만 21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승만 정권과 자유당은 4월혁명의 직접 계기가 된 315부정 선거 반대 시위를 공산당의 배후 조종에 의한 좌익 폭동으로 몰아갔고, 심지어는 시위대가 던진 돌을 북괴에서 가져온 돌이라는 기발한보고서를 작성했다.

짱돌은 오랫동안 민중의 무기였고 놀잇감이었다. 마을 어귀나 고개 마루에 있는 성황당가에는 돌무더기가 있다. 그런 곳은 초기 부족국가 시대나 통일신라 하대 호족이 곳곳에서 세력을 떨칠 때 방어하기 요긴한 길목이었다. 그냥 걷고 넘기도 힘든데 돌 가져다 쌓아 두라고 하면 모두들 입이 댓 발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돌을 던지며 치성을 드리면 부귀다남하고 무병장수한다니까 오갈 때마다 하나씩 가져다 던진 돌들이 쌓여 돌무더기가 되었다. 그렇게 쌓은 돌멩이들은 싸움이 일어나면 무기가 되었다. 사람 손때를 타야 던지기도 좋다.

홍명희가 쓴 소설 임꺽정에 돌팔매질하는 재주가 귀신 같은 석전군(石戰軍) 배돌석이가 나온다. 돌멩이로 호랑이를 때려잡기 전 배돌석이가 며칠이나 돌멩이를 던져 가며 길을 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배돌석이는 소설 쓰느라 꾸며 낸 인물만은 아니었다. 돌팔매질 잘하는 고수들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석전놀이를 할 때 영웅이었다. ‘임진왜란때는 그런 평민들로 구성된 짱돌부대가 있었고, 1894년 농민전쟁 때도 돌팔매질 잘하는 농민들을 따로 모아 만든 부대가 있었다.

짱돌에 담긴 역사와 전통은 오래되었고 책으로 써도 될 만큼 푸짐하다. 지배층이 칼과 총으로 가로막아 온 역사보다는 민중이 짱돌로 만들어 온 길이 제대로 된 역사의 길이었다. 그 길을 일이관지하며 걷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역사의 장면마다 이름 석 자 뚜렷하게 남기지 못했으나 제 길을 버리지 않고 걸어온 분들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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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쉬엄쉬엄 가요

책 읽고 딴 생각_ 바벨탑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9)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변정수/ 출판 편집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가 되곤 하는 갑질을 그저 예외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오히려 워낙 일상화되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뿐이지, 크고 작은 갑질을 예사로 당하고 사는 게 대다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벨탑 공화국에서 강준만은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결과에 의해 생겨나며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도 실은 그런 의도하지 않은결과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질을 낳는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모습이다. “모두가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며 “‘개천에서 용 나는모델을 깨지 않는 한, 지금의 과도한 지역간 격차, 학력·학벌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와 그에 따른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 책 제목의 바벨탑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그리고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 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이는 바벨탑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거니와 국민 다수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해도 그건 내 손톱 밑의 가시보다 하찮은 일이라는 사고방식에 중독되어 있는것이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환기하면서 바벨탑의 붕괴로 가는 길이라 진단한다.

욕망의 바벨탑의 이면은 모욕의 바벨탑이기도 하다. “낮은 서열의 사람을 모욕하는 걸 자기 존재 증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많은 건 물론이려니와 모욕의 강도를 높여 나가는 걸 자신의 위계가 올라가는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사코 모든 사람을 일렬종대로 세워 서열을 매기고 그 격차를 크게 벌려야만 직성이 풀리는이유를 삶의 만족과 보람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사회경제적 비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저자가 바벨탑 공화국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으로 지목하는 건 서울 초집중화이다. 거칠게 간추리면 지방을 희생한 대가로 서울이 모든 자원을 독식하는 갑질이야말로 이 나라를 온통 서열 사회로 몰고 가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난 용의 첫 번째 조건을 우선 서울에 진입하는 것이라 여기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무리한 주장도 아니다. 그 결과 지방은 점점 더 황폐화되는데. 그 피해가 지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령 도시 인구가 20만에서 10만으로 줄었다고 해도 그 도시의 도로나 수도, 전선, 통신망을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는 일이고 어느 도시나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프라 비용때문에 똑같은 면적에 절반의 인구가 살게 되면 재정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질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올까.

더 의미심장한 건 지방이 식민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본조차 약화된다는 지적이다. 워낙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바닥이기는 하다. “겨우 한 자릿수 신뢰도를 갖고 있는 권력기관, 10퍼센트대의 신뢰도를 갖고 있는 언론과 종교, 20퍼센트대의 상호 신뢰도를 갖고 있는 국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라니까. 그런데 저신뢰 사회의 부정적 효과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지방에서 사회적 자본의 약화는 지방 소멸에 대해 저항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주체가 파편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통찰은 비단 지방민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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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0월호

쉬엄쉬엄 가요

독립영화 이야기_ 김설해, 정종민, 조영은 감독의 <사수>

 

우리가 없던 시간의 기록들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솔직한 고백을 드립니다. 유성기업에 대해서는 자주 들었습니다. ‘장기투쟁 사업장으로서 늘 이름이 나왔고 그래서 2014밀양·청도 72시간 송년회의 방문지이기도 했었죠. 하지만 저는 그동안 이름만 알고 있었어요. 2014년 그때에 밀양, 청도 주민들의 일정에 부분적으로 동행하기도 했으면서도 유성기업의 사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습니다. 구미 스타케미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코오롱 해고 노동자, 씨앤앰 케이블 노동자, 기륭 노동자. 다 열거하기에도 숨이 찹니다. 너무 많은 곳에서 너무 긴 시간동안 절절한 사연을 안고 싸우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서 각자의 차이는 뭉뚱그려진 채 이름으로만 구분될 뿐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러다가 이번에 DMZ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만난 <사수>라는 영화 덕분에 이제야 그곳이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사수>라는 영화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수>를 만든 생활공동체 공룡(이하 공룡)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공룡 사람들은 미디어교육 워크숍 같은 데 가면 만나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은 청소년들과 교육 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함께 살아내고 성장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라 평소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거든요. 공룡이 만든 영화라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 영화로 <사수>를 추천합니다.

2016년 여름,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회사의 노조 파괴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려 싸워 온 지 5년이 되어 갈 무렵이었습니다. 무장한 경비용역들로부터 무차별 폭력을 당하며 감시와 차별의 일상을 살아오던 일터 동료들에게 한광호 님의 죽음은 곧 자기 자신의 일이기도 했습니다. 또다시 동료를 잃을 수 없다는 각오로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은 노조 파괴를 끝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웁니다. <사수>는 그 시간의 기록입니다.

영화 <사수스틸 이미지.


공룡 사람들이 유성기업을 만난 건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때문이었습니다. 폭력의 기록이 담긴 피켓을 든 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웃지 않았고 가만히 비를 맞고 서 있었다고 김설해 감독은 말합니다. 김설해 감독이 들려주는 유성기업의 사연은 이렇습니다. 2011518일 그들의 회사는 야간노동을 없애기로 한 노조와의 약속을 어기고 교섭 도중 기습적으로 직장을 폐쇄합니다. 용역들이 공장 문을 막은 채 폭력을 행사하고 2000명의 경찰들이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렇게 기나긴 싸움은 이어집니다. 처음 보는, 하지만 낯설지 않은 화면들이 이어집니다. 투쟁의 일상 중 하루였을 어느 날, 노동자들이 천막을 철거합니다. 그중 한 노동자에게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라는 말을 하면서 인터뷰에 응해 줄 것을 청하지만 그 노동자는 나는 고생 안 했다고, 다른 사람 섭외해 주겠다고 쑥스럽게 웃으며 카메라를 피해 도망갑니다. ‘1994년 유성기업 입사라는 설명 자막과 이름이 떠도 저는 몰랐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한 동료에 대해 마음이 아프고 안쓰럽다는 심정을 토로했던 그분의 얼굴이 장면이 바뀌면서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고 한광호 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생전의 한광호 님을 알고 있었던 거죠. 인형극을 준비하고 연습하며, 천막을 치고 걷으며, 용역의 폭력에 함께 맞서 싸우며,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 온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두 번째로 볼 때에는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화면들을 보게 됩니다. 쑥스러워하던 한광호 님의 인터뷰가 끝난 후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하며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멀리서 찍은 화면이 보입니다. 보통은 씬의 마무리 화면으로 쓰이는 롱샷 안 그 어딘가에 한광호 님의 모습이 있는 겁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했을 그 순간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화면을 고르며 떠올렸을 지나간 시간의 추억들. 그리고국석호, 김성민, 김수종, 김풍년. 지금은 함께 있지만 다가올 미래는 가늠이 안 되어서 불안한 이 관계들.

영화가 진행될수록 각자의 사연들이 하나 둘씩 펼쳐집니다. 그 사연들은 고 한광호 님의 시간과 겹쳐집니다.

떠나고 싶은 생각어떻게 하면 끝낼까 이런 생각. 심지어 극단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죠. 차로 밀어버릴까. 어디 숨어 있다가 오며는 급브레이크 잡아가지고 뭐 이런 생각. 확 들이받고 싶은(김수종)

▲ 영화 <사수스틸 이미지.


거기에 떠나간 동료에 대한 미안함까지 겹칩니다.

나 때문에 죽은 것 같고 내가 더 나서지 못해서 죽은 것 같고. 내가 좀 더 그 자리에 서서 그 형(고 한광호 님)보다 좀더 한발 더 앞서서 아니면 옆에서 왜 못해 줬을까.”(김풍년)

김풍년 님이 들려주는 그다음 얘기에 또 충격을 받습니다. 세 살, 네 살, 많아야 여섯 살 되는 자신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목을 조르고, 아이가 피가 나는데 피 난다고 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는 김풍년 님.

영화를 보고 유성기업에 대해서 찾아보면서 참 많이 놀랬습니다. 현대와 기아자동차에 피스톤링, 실린더사이더와 같은 핵심 엔진 부품을 납품하던 이 기업의 2012년 말 기록을 보면 매출액, 당기순이익, 직원 평균 연봉 등이 대기업에 밀리지 않습니다. 영화를 보고 창조컨설팅이라는 낯설지만 끔찍한 기업의 이름도 알게 되었습니다. 노조파괴 전문기업이래요. 이 기업이 망가뜨린 건 유성기업 만이 아니더군요. 상신브레이크, 발레오만도, 보쉬전장, 에스제이엠(SJM). 악명높은 이 기업의 배후에 현대차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면 한숨 밖에 안 나옵니다. ‘창조컨설팅의 그 비인간적인 창조성이 노동자들의 삶을, 그 가족들의 평화를 어떻게 깨뜨리는지 영화는 속속들이 보여 줍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무릎 꿇지 않습니다. 길거리에 비닐 천막을 치고 고공농성을 하며 유시영 대표이사의 법정구속까지 이끌어냅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고 한광호 님의 장례는 치러집니다. 싸움은 진행 중이고 이분들의 앞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거기 늘 공룡의 카메라가 함께 있을 거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습니다.

▲ 영화 <사수스틸 이미지.


동료로서 <사수>가 지켜낸 자리에 경의를 표합니다. 사용자 측 직원에게 멱살을 잡힐 뻔하는 조영은 감독의 모습이 화면에 언뜻 비칩니다. 청소년기에 보았었는데 이제 성인이 되어 공룡의 정회원으로서 여전히 삶의 자리를 지키고 있더군요. 대화하던 회사측 직원이 갑자기 카메라에 달려들 때 노동자들은 얼른 몸으로 막아서며 말합니다. 우리 카메라한테 왜 그러느냐고. 노동자들의 카메라로 지내온 세월. <사수>에는 2011년부터의 그 모든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시간을 꼭 한 번 만나 보세요. (문의: 생활공동체 공룡 043-266-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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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1월호

쉬엄쉬엄 가요

독립영화 이야기_ 이선희 감독의 <얼굴, 그 맞은편>

 


난 너의 야동이 아니야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제 아들은 아주 특별합니다. 엄마니까 당연히 그렇게 느끼는 거겠지만 제 아들을 떠올릴 때마다 제 마음속에는 따뜻한 물 같은 것이 차오릅니다. 글을 모르던 시절,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이 받아 적은 아들의 자기소개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나는 아빠의 귀를 닮았습니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눈물 많고 걱정 많은 자기의 마음이 엄마로부터 온 것이라고 여기는 아들의 생각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아들은 아빠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합니다. 제가 앉아서 소변보기를 주장했을 때 순순히 따르는 아빠와는 달리 아들은 반발했습니다. 가끔은 엄마를 닮은 자기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더 강력한 남성성을 갖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들은 중2가 되었고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세계가 궁금해서 가끔 아들의 방에 들어가면 아들은 무심한 눈을 들어 ?” 하고 짧게 묻습니다. 선배 엄마들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런 반응에 상처받습니다. 여리고 고왔던 내 아들이 어느 순간 무서운 남자로 변해 있을까 봐 겁이 납니다.

이제는 같이 다니는 것도 반기지 않는 아들과 함께 제10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갔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일정이라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얼굴, 그 맞은편>을 보았습니다. 저희 가족에게, 그리고 이 시기에 너무나도 적절하고 필요한 영화라 11월의 영화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 시기라고 표현하고 있는 지금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가 화제가 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추석이면 멋진 달리기 솜씨로 구사인볼트라는 애정 어린 별명까지 얻었던 씩씩한 여성 연예인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비는 영상은 모든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회적 성취가 충분한 그 여성을 무릎 꿇게 한 것은 최종범이라는 이름의 미용사가 연인이었던 시절에 함께 찍은 영상 때문이었지요. ‘폭행 사건으로 신고되었다가 성관계 동영상 협박논란으로 번지면서,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네티즌이 2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동시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또한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여성주의자들은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를 거부합니다. ‘리벤지를 한국어로 번역한 복수라는 단어는 억울한 피해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게 보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흔히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를 달고 불법 사이트들을 떠도는 영상들은 남성이 헤어진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유포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그 영상에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을 붙이게 되면 영상 속 주인공 여성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알몸이 동의 없이 유포될 정도의 잘못을 하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은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르자고 합니다.

▲ 영화 <얼굴, 그 맞은편> 포스터.


영화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찍혔는지 모른 채 사이버공간에 유출되어 사회로부터 라는 낙인과 함께 격리되는 여성들의 공포를 고스란히 체감하게 해 줍니다. 여성의 이미지를 착취해 수익을 얻는 시스템이 산업화되고 있지만 국가는 거의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가 비어 있는 이 자리에 서서 피해 여성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젊은 여성들. <얼굴, 그 맞은편>의 주인공들입니다.

여성혐오페미니즘이 뜨거운 이슈가 된 지는 꽤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갈리아워마드가 등장했습니다. ‘미러링이니 폭력의 반사와 같은 단어들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제게는 버겁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복잡한 지형을 페미니즘=폭력이라는 공식으로 단순화하고 페미니즘을 사회악으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이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간간히 대화를 하던 시절, “네가 페미니스트가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제 바람을 들은 아들이 페미니스트가 뭔지 알아보겠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고 같은 부모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삼 남매는 서로 다릅니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는 거?”라고 물었던 선생에 대해 분노를 털어놓는 큰딸, 탈코르셋 운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막내딸,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아들. 이런 상황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본 <얼굴, 그 맞은편>은 저희 가족에게 대화의 물꼬를 터 주었습니다.

주인공들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의 젊은 여성 활동가들입니다. 그들의 시작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누군가의 사적인 동영상. 불법 유출된 것이 분명한데도 그 영상은 다양한 이름을 걸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떠돕니다. 불법으로 다운로드를 한 사람이 제목을 바꿔서 다시 올립니다. 고작 몇백 원, 몇천 원에 누군가의 신체는 야동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활동가들은 영상 속 약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고통을 지켜보며 흥분하고 희열하는 남성들에게 같은 인간으로서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거리부스를 운영하기 위해 안내 배너를 세우는데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서 실수를 연발하며 깔깔거리는 이들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악마화된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 페미니스트. 하지만 영화가 그려 내는 눈물 많고 공감 능력 풍부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성장기를 따라가다 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며 수십 개의 이름으로 떠돌고 있는 불법 유출 동영상을 찾아서 신고하고 또 신고합니다. 같은 동영상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올라와 있기에 일일이 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지만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피해자들은 동영상 유포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유포된 동영상을 다 막지 못해서 사비를 털어 디지털 장의사라는 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돈이 떨어질 때까지 지우고 또 지워도 막지 못한 피해자들 중의 일부는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더 절망스러운 것은 피해자의 불행이 알려지면 그 동영상은 더 인기를 끈다는 사실입니다. 영화는 그만큼 충격적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디지털 장의사라는 업체들의 협력관계가 의심된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들의 슬픔을 전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던 이선희 감독은 활동가들이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활동가가 되어 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를 보는 일 자체가 투쟁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범죄 관련 기관이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재판 기금 마련과 개봉을 위한 소셜펀딩이 진행 중입니다. 꼭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cybersv.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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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11월호


지난 호를 읽고

 

작은책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마는 굳이 이유를 들자면 쉽게 읽힌다는 것입니다. 수준(?)이 낮아서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글이 마음에서 절절하게 우러나와서 그런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또 나의 일처럼 공감하게 됩니다. 마치 옛 동지를 만난 것처럼.

10월호에 실린 김수련 님의 글을 읽으면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배경으로 드러나는데 나는 늘 내 중심적인 사고로 바라보니 오해를 하게 되고 마침내 불신이라는 늪에 빠져 사고 자체가 딱딱하고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작은책은 나를 일깨워 주는 죽비가 되기도 합니다. 함께 읽고 공감하고 때론 뉘우칠 수 있게 하는 작은책은 저에겐 오래된 경전입니다. 작은책과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도상록

 

작은책 10월호를 받았습니다. 젊은 우체부가 밝게 웃으며 당신 책이 왔어요! 하면서 건네주었습니다. 달마다 오는 작은 포장이 책이라고 어찌 알았는지. ^^

받자마자 앉아서 일사천리로 다 읽었습니다. 반 년 넘게 아프다는 이유로,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스스로 도태되고 있다는 자괴감까지 들던 저에게 읽어야만 한다고 죽비처럼 다가온 이야기들. 세상에 나만 아픈 것도 아닌데 저는 왜 이러고 있었는지. 냉장고를 열어 냄새를 맡고 행복한 아이처럼 다시 힘을 내겠습니다! 자신이 귀여워서 먹을 것을 얻는다는 것을 아는 아이처럼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다시 알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은책~

독일에서 조숙현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꼭 종이책이 아니어도 요즘은 인터넷매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좋은 글을 많이 접할 수 있게 됐어요. 저도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서 어느새 종이책은 소홀히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잠시만 봐야지하고 펴 본 작은책에는 SNS에서 볼 수 없는 따뜻하고 귀중한 글들이 가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을 꼽아 보자면 어린이해방운동입니다. 그 글을 보고 어린이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가르치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만 대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웠어요. 항공사 승무원 두 분의 글도 다 좋았습니다. 팍팍한 현장에서도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똑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에 제 마음도 벅차오름을 느꼈어요.

백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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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8월호

독립영화 이야기_ 이마리오 감독의 <더블랙>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영화 <더블랙> 스틸컷. 


<더블랙>이 드디어 개봉합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3월 말이었습니다. 영화에 반한 저는 <작은책>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내내 개봉일을 기다려 왔습니다. 영화 보던 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연출자 이마리오 감독이 영화가 곧 개봉할 거라고 했거든요. 그동안 저는 매달 마감 무렵이면 감독에게 개봉일을 묻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마냥 흐르고 기약없이 미뤄지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긴 걱정을 하던 중에 8월말 개봉 소식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소개글을 쓰게 되어서 기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즐겁게 볼 만한 영화는 아닙니다.

영화 <더블랙> 스틸컷. 


영화는 흑백 재연 화면으로 시작합니다. 선한 눈매의 한 남자가 서울역 고가도로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손에서 켜지는 라이터. 라이터에 불이 켜지는 순간 빨간 불꽃이 켜지며 화면은 컬러로 바뀝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뉴스는 그 남자가 특검 수사를 요구하며 분신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고 이남종 열사의 이야기입니다. 서울 활동을 접고 강릉으로 이주하여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마리오 감독의 마음에 이 사건은 깊은 상흔을 남깁니다. 언론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고 거의 모든 이의 기억에서 그의 죽음은 지워져 갔지만 이마리오 감독은 끝내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를 알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고 우리는 이제 4년 만에 그의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마리오 감독에게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나이도 같고 데뷔년도도 같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고 있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저야 생활고에 치여 아르바이트와 교육에 전념하느라 영화를 못 만들고 있지만 이마리오감독은 강릉에서 미디어 활동가로, 후배 감독들의 프로듀서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제가 그의 행보에서 감동했던 순간이 있습니다. 상업적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독립영화는 공적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해의 독립영화 제작 지원 면접 심사장에서 이마리오 감독을 만났습니다. 당시 이 영화는 메멘토 모리라는 가제를 달고 제작 중이었는데 뜻밖에도 그날 이마리오 감독은 자기 영화가 아닌 후배들 영화의 프로듀서로 면접을 보러 왔더군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가는, 갓 영화를 시작하는, 어쩌면 제자였다가 이제는 동료가 된 후배 감독들을 위해 이마리오 감독은 성심성의껏 면접을 보고 강릉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흔에서 쉰이 되어 가는 나이. 원치 않아도 중견이라 분류되고 그래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시기에 후배들의 출발을 위해 자신에게 있는 가능성을 과감히 버리는 그 모습에서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 동갑이자 데뷔 동기인 이마리오 감독의 이 신작을 저는 감격해 가며 만났습니다. 빼어난 영상미와 꽉 짜인 구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다섯 개의 챕터, 그러니까 오피스텔 607’, ‘디지털포렌식’, ‘검찰특별수사팀’, ‘더블랙’, ‘이남종이라는 소제목 아래 국정원 댓글사건부터 촛불항쟁까지를 일목요연하게 펼쳐내는 유려한 이야기 솜씨에 또 반하게 됩니다. 챕터가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화면, 자막 하나하나마다 공들인 흔적들을 보다 보면 그 꼼꼼함에 한숨이 나올 정도입니다. 또한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김 아무개 오피스텔 앞의 생생했던 현장 상황과 디지털포렌식이 진행되던 경찰서 내 CCTV 화면, 김 아무개의 휴대전화에 전송되던 국정원 심리전단 동료들의 문자 같은 것들은 이마리오 감독의 지난 4년간의 치열함을 짐작하게 합니다.

영화 <더블랙> 스틸컷.


개인적으로는 진실을 대면한 경찰들이 어떻게 할지를 두고 토론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선이 사흘밖에 안 남았기에 댓글사건의 수사 결과가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은 경찰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방금 찾아낸 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결국 그렇게 사건은 무마되고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되지요. 출구조사가 발표되던 순간, 광화문에 모여 있던 관중들은 퀭한 표정으로 침묵합니다. 그 장면은 우리가 지나왔던 시간을 몸서리치며 떠올리게 해줍니다.

제목 더블랙은 블랙요원을 의미합니다. 블랙요원이란 정보기관 소속 요원 중 신분을 밝히거나 내세우지 않고 은밀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흔히 스파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스파이들은 세계평화나 적국의 정보 수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더블랙>의 스파이들은 댓글 다는 것이 일입니다. 오피스텔 607호에 거주하던 블랙요원 김 아무개의 행보에서부터 경찰과 검찰 수뇌부의 은폐 노력까지를 치밀하게 담아 내던 영화는 갑자기 재연배우의 입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촛불이 그 이남종이라는 분하고 무슨 상관이죠?”

그리고 이마리오 감독이 고 이남종 님의 유서를 읽습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다큐멘터리 감독은 영매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의 주인공이 아프면 나도 아픕니다. 나의 주인공이 기쁘면 나도 기쁩니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이 죽어서라도 하고 싶었던 말을 나는 나의 입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들려줍니다. 고 이남종 님의 마음이 되어 그분의 말을 대신 전해 주는 감독의 목소리는 그래서 특별하고 깊습니다. 최근 기무사 쿠데타에 대한 문건이 등장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시간을 거쳐 왔는지를 새삼 압니다.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리기는 하지만 사실 134일의 촛불항쟁동안 우리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고 이남종 님의 마지막 유언은 약간의 시차를 두긴 했지만 뒤늦게 실현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두려움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촛불로 부패한 정권을 몰아냈기에 공포정치를 끝낼 수 있었고 비로소 우리들은 이 영화를 마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더블랙>8월말에 개봉합니다. 기억하는 마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세요. (문의: 이상욱PD 010-5364-9885) 

※ 이 글이 쓰여진 시점에는 8월말 개봉예정이었으나 이마리오 감독은 8월 2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개봉 시기를 9월 중순으로 밝혔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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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9월호

독립영화 이야기_ 이일하 감독의 <카운터스>

 

오늘만 사는 남자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이번 호에 준비한 영화는 광복절에 개봉한 <카운터스>입니다. 1년 전 DMZ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반가운 개봉 소식에 이렇게 얼른 글을 씁니다. 영화제 영화는 소수만 즐길 수 있는데 개봉영화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볼 수 있으니까요.

▲ 영화 <카운터스> 특별 포스터.


<카운터스>의 주인공 다카하시는 전직 야쿠자입니다. 단골 식당의 주인이 혐오시위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혐오주의자들을 혼내 주기 위해 비밀결사대를 조직하는데요, 혐오시위대와 폭력도 불사하며 맞장을 뜨는 다카하시와 그 일행들의 행동은 시민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지만 거리엔 예상치 못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카운터스>에 등장하는 혐오세력은 일본의 대표적인 혐한 단체인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모임(이하 재특회)’입니다. <카운터스>의 개봉일을 광복절로 잡은 이유에는 재특회도 한몫 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만든 이일화 감독은 전작 <울보 권투부>에서도 도쿄 조선학교 권투부원들을 주인공으로 재일 한국인의 처지를 생생하게 다룬 적이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재특회 시위대가 죽여라 조센징을 외치며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부터 일단 화가 나더군요. 관광객으로 보이는 중국 여성들을 밀어내고 노인을 길바닥에 쓰러뜨리는 모습에서도 화가 났지만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혐오행동에는 마음 더 깊은 곳에서 불이 올라오는 것 같더라구요. 민족주의가 유전자 안에 각인되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오사카 코리아타운 앞에 서서 춍코(한국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들이 너무 밉다며, 남경대학살이 아니라 코리아타운 대학살을 실행할 거다라고 외치는 여중생의 모습이 너무 밉습니다. 미운 마음이 너무 강해져서 만약 현장에 같이 있었다면 저도 욕해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 영화 <카운터스> 스틸 이미지.


그래서 다카하시의 활동은 저 같은 관객에게는 일종의 대리만족을 줍니다. 영화 제목 카운터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일본 시민들의 모임을 의미하는데 카운터스회원들은 혐한 시위 반대 서명운동부터 재특회와의 물리적 충돌까지 각자 자기만의 다양한 방식으로 반혐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서명 부대’, ‘낙서 지우기 부대’, ‘플래카드 부대카운터스의 여러 부대 중에서 다카하시가 속해 있는 부대는 혐한시위를 육체적으로 봉쇄하는 무력 제압 부대오토코구미입니다. 오토코구미 대원들은 재특회의 혐오발언들을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 진지한 자세로 욕설을 연마하고, 재특회 시위대 앞에 무작정 드러누워 도로를 점거합니다. 시위 허가증을 가지고 있는 재특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엉터리 할리우드 액션을 구사해서 경찰서로 끌고 가거나 혐한시위가 예정된 장소에 잠복했다가 시위 참가자를 발견하면 용 문신을 보여 주며 설득하기도 합니다.

카운터스의 창단 멤버인 노마 선생은 첫 만남에서 다카하시를 경계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다카하시 또한 자신은 나쁜 사람이었다고, 나쁜 일을 많이 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영화 속에서 재일 한국인 3세 신순옥 님은 좌익 혹은 리버럴운동은 맑고, 정의롭고, 아름다운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라는 말을 하는데 그게 일본만의 상황은 아니니 노마 선생의 경계심이 당연히 이해가 되지요. 그런데 이 좋은 사람들만 하는 운동에 전직 야쿠자였던 다카하시가 동참한 것입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현장에서 항의한다는 것을 행동 원칙 삼아 더러운 일, 힘든 일은 우리들이 하겠다면서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는 다카하시는 확실히 특별한 존재입니다. 야쿠자 대원에서 오토코구미 대원으로의 전환은 인생 대역전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이지만 다카하시가 내세우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남자로서 혐오는 할 짓이 아니라는 거죠. 재특회에 반대하며, 그러니까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혐오반대운동을 시작했지만 치열한 활동 속에서 다카하시가 지키려는 인권의 영역은 점점 넓어집니다. 아이누(홋카이도 원주민), 일본계 브라질인들과 같은 소수자들,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쉼터를 함께 만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LGBT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기도 합니다. 혐오시위의 리더 사쿠라이는 다카하시는 쓰레기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지만 이쯤 되면 누가 쓰레기인지는 명확해지지요.

▲ 영화 <카운터스> 스틸 이미지.


주먹만 한 자막이 쾅쾅 박히고, 펑키한 음악이 흥을 돋우며, 무엇보다 상남자 스타일을 고수하는 오토코구미 대원들의 대활약상이 펼쳐지는 <카운터스>는 오락영화로서도 손색이 없습니다. 특히 혐오발언 시위, 미투운동, 난민 문제 등 혐오로 인한 다양한 사회문제가 촉발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 줄 것입니다.

▲ 영화 <카운터스> 언론 시사회 현장.


영화는 사쿠라이의 입장도 비중 있게 다룹니다. 혐오시위의 리더 사쿠라이는 차별이 인류를 발전시켰다, 타인에게 혐오라고 말한다면 당신도 혐오하고 있는 것이다와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던집니다. 그 어이없고 알쏭달송한 말들 사이에서도 단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각인되는데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해를 끼치면서까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혐오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를 오늘만 사는 남자로 존재한 다카하시를 만나 보세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문의: 필앤플랜 070-4447-6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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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4월호

독립영화 이야기_ 갈재민 감독의 <인투 더 나잇>


수많은 밤을 지나 닿은 곳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인투 더 나잇> 포스터 갈재민, 2016


저희 동네 대보름 행사에 작은책 식구들이 놀러 오셨어요. 달집태우기가 끝나고 저희 집으로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안건모 대표님이 독립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할 만한가?” 물어오셨어요. ‘혹시나 필자를 교체할 생각인가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개봉 영화 구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매번 꼴찌 아니면 끝에서 두 번째로 글을 보내는 것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고 사실이기도 했어요. 유이분 편집장님이 그럼 콘셉트를 바꿀까요?”라는 의견을 냈지만 저는 힘들더라도 열심히 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17년의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글을 보니 상업영화 제작과 유통에 필요한 자본 조달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유통은 여전히 어렵다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독립영화들은 극장 잡기도 힘들고 잡았다 하더라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한 번 상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수에 따라서 상영 목록에서 금세 사라지기도 합니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독립영화 감독들은 꾸준히 극장 개봉을 추진하고 어렵게 극장을 잡았다가 스르르 사라집니다. 어떻게든 관객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의 동료들이 있는데 어떻게든 이 소중한 지면에 그 소중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지면의 자취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고군분투의 역사이자 제 동료들에 대한 저의 우정의 연대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달 영화는 갈재민 감독의 <인투 더 나잇>입니다. 저는 음악에 문외한이라 다른 영화가 있었으면 그 영화를 선택했을 겁니다. 하지만 4월호에 실을 수 있는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시네마달 김일권 피디의 선택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일권 피디가 그동안 푸른영상 작품을 포함해서 수많은 독립영화들을 배급해 왔고 덕분에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는데, 이번 한 번쯤은 나도 김일권 피디의 취향을 이해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도시에 밤이 내리고 로큰롤 밴드의 음악이 흐릅니다. 그렇게 영화 제목이 뜨고 나면 연습하고 술 마시고 연습하고 술 마시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솔직히 초반엔 걱정이 앞섰습니다. 나는 로큰롤 음악을 모르는데 이 영화가 로큰롤 마니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아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2013KBS 연기대상 남자 신인상을 받았던 배우 한주완이었습니다. 당시 한주완의 수상 소감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었지요.


공공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요즘따라 애쓰고 있는 아버지들이 많이 계십니다. 노동자 최상남을 연기한 배우로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그가 아버지라고 칭한 사람들은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에 앞장섰던 철도 노동자들이었고 그 전날 저는 그분들을 지지하며 광화문 광장에 다녀왔었거든요. 그 한주완이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음악을 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가 참 오래전부터 촬영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주완은 등장하자마자 리더 차승우를 매료시키더니 5분 만에 퇴장하고 맙니다. 성공한 배우가 되어 바빠져 버렸거든요.


영화에는 수많은 보컬들이 등장합니다. 한주완 이전에 조영빈이 있었고 그 후에는 김세영, 그리고 마지막엔 훈조가 나옵니다. 김세영과 훈조 사이에는 오디션을 보러 오는 또 다른 많은 보컬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등장과 퇴장을 보다 보면 영화의 주인공이자 팀의 리더인 차승우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차승우에게 깊이 몰입되더군요.


영화 <인투 더 나잇> 스틸이미지


아무리 친하고 좋은 사람이라도 밴드 같이하면 스트레스를 주고받고, 싫더라구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니 취향, 니 세계관을 반영하라며 김세영을 다그치는 장면에서는 살짝 숨이 막혔습니다. 처음 차승우는 나랑 비슷한 온도의 사람이라며 김세영에게 환호했었거든요. 형의 페르소나를 하면 되는 거죠?”라는 말을 던지며 생기발랄하게 무대를 휘젓던 김세영은 내가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퇴장해 버립니다. 형의 플로어를 침해하고 싶지 않다는 김세영에게는 침범이 아니라 부딪쳐야 하고 너만의 플로어를 내세워야 한다는 차승우의 요구가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보컬 김세영의 결합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더 모노톤즈는 그렇게 5번의 공연을 끝으로 긴 공백기에 접어듭니다. 보컬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후 어렵게 보컬을 구했지만 오랜 맏형이었던 베이시스트 박현준이 그만두는 등 더 많은 어려움들이 지나가고 결국 영화는 인투 더 나잇을 연주하는 더 모노톤즈의 모습과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더 모노톤즈는 그해 최우수 록 음반 부문 상을 받게 되었거든요. 영화 덕분에 로큰롤에 익숙해져서인지 음악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차승우의 수상 소감에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구요.


수많은 밤들이 지나갔어요. 적절한 가사나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뜯던 밤, 갑자기 멤버가 탈퇴 선언을 해서 속이 썩었던 밤, 녹음실에서 지루했던 수많은 밤들. 그런 밤들이 의미가 있었던 시간들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투 더 나잇>을 보며 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닿고 싶은 음악의 세계로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고 있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인투 더 나잇>을 보며 성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차승우는 초반에 보컬들에게 어떻게 발음하고 어떤 몸짓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조언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플로어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자라 온 것처럼요.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 기타리스트 차승우와 베이시스트 박현준은 노브레인과 삐삐밴드에서 일찍부터 자신의 기량을 뽐내왔던 유명 아티스트들이고 팬 층도 두껍더라구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검색해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인투 더 나잇>은 음악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던져 준 아주 뜻깊은 영화였습니다. <인투 더 나잇>은 개봉해서 현재 극장 상영중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문의:시네마달 02-337-2135 http://cinemada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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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12월호>

작은 소설 

11월의 연극

하명희/ 소설가  나무에게서 온 편지(사회평론), 불편한 온도(2017 올해의 문제소설)

 

 

 ‘우리의 우정이 시작될 무렵, 기억나니?’

편지의 시작은 이랬다. 1년에 한 번 뜸금없이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편지는 매번 기억을 더듬는 문장으로 시작되곤 했다. 이번에는 어떤 소식을 담았을까. 나는 핸드폰도 없는 그녀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편지를 통해 짐작해야 했다. 치유연극? 편지와 함께 들어 있는 초청장에는 아주 특별한 생의 첫 번째 연극에 당신을 초대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생의 첫연극과 우리의 우정이 시작될 무렵이 묘하게 겹치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잊겠는가. 열여섯의 겨울이었는데,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 내리는 겨울밤, 내 눈 앞에는 불타는 가구공장이 있었다.

눈이 자살하는 거야.”

불구경을 하는 사람들 속에 서 있던 그녀가 내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불쑥 말을 걸어왔다. 눈은 불을 향해 집요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송이 날리던 것이 불길이 거세질수록 더 세차게 사방에서 쏟아졌다.

눈이 자살한다고?”

내가 다음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말했다.

아름다워.”

그녀의 입술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입김이 새나왔다. 아름다워가 동그랗다는 것을 그녀의 입술을 보며 알게 된 날이었다. 눈발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 떼처럼 빛나고 있었다. 곧 이어 소방차가 오고 불길은 가구공장의 물건들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며 뒤로 물러나고 입을 막고 켁켁거리면서도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불 속에 무언가 소중한 것을 감춰놓은 것처럼 웅성거렸다.

아름다워?”

뭐가 아름답다는 걸까.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그녀의 발등으로도 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태우면서, 녹으면서 사라지는 거. 불을 끄기 위해 내리는 것 같지 않니? 온몸으로 불을 끄려고 사방에서 떨어지면서, 떨어지면서 사라지잖아.”

다음날부터 학교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우리는 우리만 아는 비밀이 생긴 것처럼 눈을 찡긋, 혹은 손을 슬쩍 들어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우정이 시작될 무렵이라. 11월의 밤은 우리가 친구가 된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책을 하나 빌려주었다. 그러면서 한 대목을 펼쳤다.

여기!”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눈이 자살하는 거야라는 문장이 있었다.

책에 있었던 문장이구나.”

그녀는 서울 곳곳에는 자기만 알 수 있는 증표가 심어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을지로 3가 지하상가에는 1986년에 개업한 음반가게가 있다고도 했다.

아는 곳이니?”

그녀는 대답대신 책을 내밀었다.

읽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그러면서 덧붙였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면 꼭 알려줘.”

나는 그녀가 준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당연히 세상에서 처음으로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다른 학교로 배정받아 그녀와의 연락은 뜸해졌지만 그녀는 매년 11월마다 편지를 보내왔다. 언제든 만날 수 있지만 왜 그랬는지 그녀와는 만나지지 않았고 시간이 흘렀다. 그녀의 편지는 한동안 끊겼다가 몇 해 전부터는 발신지가 수녀원으로 찍혀 있었다. 편지와 같이 들어 있던 초청장을 펴보니 안양에 있는 고등학교였다. 예전에 소년원이었던 곳을 중고등학교로 인가받은 곳이라고 했다.

‘1년째 이곳에서 치유연극을 진행했어. 그런데 그곳에서 아주 특별한 녀석을 발견했지.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처럼 불타버린, 사라지는 것처럼 거뭇한 그림자를 가슴 속에 품은 아이였어.’

그녀는 나도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1호선 전철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학교는 산자락 아래 자리 잡은 예전 교도소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신분증과 초대장을 보여주자 운동장이 보이는 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운동장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건물 옆으로 수건들이, 백 개는 넘어 보이는 같은 색의 수건들이 건조대마다 걸려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 강당이 있는 입구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손에 피크닉 가방을 들고 있었다. 공개 만남의 자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강당 문이 열리고 입장해도 된다는 소리가 들렸다. 강당에는 백 명은 넘는 소년들이 머리를 박박 밀고 갈색 체육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남자들의 냄새라고 해야 할까. 동물원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훅 끼쳤다. 뒤쪽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있는 소년이 있었다. 커피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뒤에서 보니 소년은 초를 잰 듯 정확하게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신맛과 진한맛 중 어떤 걸 좋아하세요?”

내 차례가 되자 소년이 물었다.

진한맛이요.”

소년은 한 손은 테이블을 밀어내고 거품에 정확히 동심원을 그리며 커피를 내렸다. 저 아이일까? 보이는 소년들마다 그녀가 말한 아이로 보였다. 커피를 들고 관객석 끝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가 정리될 즈음 연극의 연출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그녀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치유연극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지, 얘들아?”

연출가는 초대 받은 손님들이 아니라 줄지어 앉아 있는 소년들을 보며 말을 건넸다. 소년들이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었다. 뒤에서 보니 들어올 때 보았던 백 개의 수건이 일제히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이었다. 관객들은 소년들의 수보다 많지 않았다. 무대 조명이 켜지고 비상 사이렌이 울렸다무대에는 소년들 셋이 누워 있었다. 맨 끝 줄에 앉아 연극을 보던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워 있던 아이들이 일어나 자기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욕이 터져 나왔다. 소년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모른다는 듯 말끝마다 씨발, 좆같다로 대사를 채우고 있었다. 연출가가 이 욕들을 걸러내지 않은 것이 대단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연극이 중반부로 갈 때까지 소년들의 가정 상황이 연출되었다. 한 아이는 매 맞는 아이였고 한 아이는 도둑질을 했다고 했다. 또 한 아이는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고 했다. 같은 방에 있는 소년들의 사연이 하나씩 소개될 때마다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처음에는 듣기 거슬렀던 욕들이 무척 절제된 언어처럼 들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말하자면 소년들은 욕을 뱉으면서 그 상황들을 이기려고, 외면하려고, 극복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시 사이렌이 울리고, 조명이 붉은 빛으로 바뀌었다. 거칠게 욕을 내뱉던 소년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지고 있었다. 소년이 던진 것을 받은 사람들이 소리쳤다.

불이야. 불이야.”

객석에 던져진 불덩이를 따라 조명이 붉게 비쳤다. 나는 저 소년이 아닐까 짐작했다. 소년의 손에는 라이터가 들려 있었다. “불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소년도 그 속에서 똑같이 외치고 있었다.

불이야, 불이야.”

붉은 조명과 사이렌이 꺼지고 무대는 정전된 듯 조용해졌다무대 아래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났다. 소년이 무대로 올라오고 뒤 이어 소년의 두 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연극은 거칠게 그 순간을 전달하고 있었고 소년은 무대에서 끌려 나가면서 관객들을 향해 외쳤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 났어요. 이제는 좀 보라고. 불이 났다고. 저기 우리 집에 불이 났단 말이야. 이제 보이나요? 불이야.”

연극이 끝나고 연출가는 이 연극의 취지를 설명했다.

저희 연극은 치유연극이라고 불립니다. 우리 배우들은 전문 연극을 배운 친구들이 아니지만, 이것은 처음이에요. 생의 첫 연극이라고 불러야겠지요.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이 한 편의 연극을 만들기 위해 이곳의 친구들과 연극에 접근해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장놀이도 해보고 역할극도 해보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면서 한 달 한 달을 채워나갔지요. 보신 것처럼 연결도 서투르고 여기저기 욕이 많이 들어가서 불편하셨죠?”

관객석에 있던 소년들이 뒤를 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내 옆에 있던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이 친구들이 대본을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토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생의 첫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표현해낸 이 아이들이 대견하네요.”

박수가 터졌다.

고맙습니다. , 그럼 이제부터 반전입니다. 지금부터는 관객들이 직접 이 연극에 참여하는 겁니다. 지금 보신 장면 중에 내가 끼여들어서 역할을 해보겠다 하시는 분들은 누구든 손을 들어주세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얘기를 연극을 통해 전달해보는 겁니다. 누구부터 할까요?”

관객들은 교실에서 잠만 자는 아이를 꾸짖는 선생이 되기도 하고, 교도관이 되어 아이들의 순화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때 갈색 체육복을 입은 아이 하나가 어설프게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연출가는 얼른 그 소년을 불러냈다.

그렇지, 연극에 참여한 친구들 말고 여기서도 이렇게 할 말이 있는 친구들이 많을 거야. 너는 어느 장면으로 들어가고 싶니?”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던 소년은 불을 지른 아이가 되어보고 싶다고 했다. 장면은 다시 붉은 조명을 받는 무대로 바뀌었다. 소년은 라이터를 들고 망설이다 라이터를 켜고 자기 얼굴을 비췄다.

나예요. 아빠. 아빠 나는 불을 지르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불을 질렀어요. 아빠가 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어요. 아빠, 나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소년은 한참을 아무 말이 없었다. 객석도 조용해졌다. 연출가가 음악을 낮게 깔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소년은 불탄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버지 역할을 했던 소년이 누워 있는 방에 붉은 조명이 비쳤다. 소년은 망설임없이 그 옆에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 나도 여기 있을래요.”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로 눈송이 같은 조각이 떨어졌다. 나는 뒤를 돌아 조명실을 바라보았다. 수녀복을 입은 그녀가 그곳에 있을 것 같았다. 내 옆에 있던 여자가 무대를 향해 걸어가 꽃다발을 던졌다. 객석에 있던 소년들이 휘파람이 불었다. 씨발, 좆나 멋있다. 휘파람을 부는 입술들도 동그랗게 오므려졌다. 소년은 일어나지 않고 무대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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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 에세이스트

 
 
 드디어 녹즙 졸업 허가를 받았다. 녹즙 졸업 증명서를 내주는 업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야쿠르트 여사님에게 받았다. 여사님도 별로 졸업 증명서를 주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가 임의로 수령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동안 쭉 녹즙아가씨는 여사님에게 반강제로 얼음팩을 상납해 왔다. 지난 18개월 동안 그게 녹즙아가씨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였다. 올해로 20년째 근속하고 있는 야쿠르트 여사님은 백 년 묵은 구렁이보다 더 무서워서, 얼음 좀 달라고 하면 녹즙아가씨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녹즙아가씨에게서 징수해간 얼음이 한국야쿠르트 지사에서 모두가 나눠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녹즙아가씨는 분노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끝내 녹즙아가씨는 치사한 방식을 택하고 마는데, 그것은 그날그날 쓸 만큼 아이스팩을 받아다가 건물 공용의 냉장고에 절대 넣지 않고 쓰고 남은 만큼은 물류용 아이스박스에 도로 넣는 방식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얼음 좀, 하는 여사님을 도무지 당해 낼 수가 있어야지. 저번에는 얼음 좀, 하는 여사님에게 저도 사장님한테 더 달라고 못해요, 라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더니 여사님이 맑고 상쾌한 목소리로 이런 멍충이같으니, 하시는 바람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멍충이가 되었다. 하긴 내가 멍충이니까 멍충이라는 소리 듣지, 하면서도 기어코 약이 올랐다. 약이 올라 봤자 녹즙 배달이나 열심히 할 수밖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삼일장 치르자마자 월요일부터 녹즙 배달한 녹즙아가씨는 아버지가 남기신 최후의 유산, ‘경매최고서’라는 것을 받아 들게 된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원망해 봤자 입만 아프고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 녹즙 일을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1월부터 사표 낸 자리에 여사님들이 오기만 하면 일이 힘들어 다 도망치는 바람에 녹즙아가씨는 뜻하지 않게 계속 끈기를 과시하고 마는데, 그러던 중 며칠 전 야쿠르트 여사님이 또 얼음을 달라고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기 싫어서 살색만 보면 전속력으로 도망쳤는데 기어코 또 얼음, 싶어 녹즙아가씨는 멍충이 소리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저도 없어요 얼음,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바보라고 할까 멍충이라고 할까 기대하고 있는데 여사님이 별말 없이 이 일이 해 보면 되게 힘든 일인데 오래 해서 참 장해, 하더니 가 버렸다. 드디어 녹즙 졸업 허가를 받았다는 감격이 몰려왔다.

  나도 이제 고참이구나. 그러고 보니 어느 날 아침 배달하러 나가다가 입고 나가던 옷이 어쩐지 심상찮아 잘 생각해 보니 작년 이맘때 입고 배달하다가 청소 여사님에게 트집 잡혀 꼬집히고 쥐어박힌 옷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말 안 거는 걸 보니 나도 고참이구나. 이제 제대해야겠다. 강 건너로 이사 가게 되어서 일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어서 지사장님에게 진작 관둬야 해요, 관둬야 해요, 라고 늘 말했는데 오늘은 바로 이사 전날, 지사장님이 전화를 걸어 일단 물류 발주는 해 놨거든, 현진아 삼 일만 더 도와 주면 안 되겠니, 라고 너무 간곡하셔서 일단 삼 일은 강을 건너와 녹즙을 날라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녹즙아가씨는 이번 호 발매 후 ‘녹즙’ 자를 떼고 그냥 일반 ‘아가씨’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작은책 독자 여러분, 다음 호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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