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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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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4월호

독립영화 이야기_ 갈재민 감독의 <인투 더 나잇>


수많은 밤을 지나 닿은 곳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

 

  <인투 더 나잇> 포스터 갈재민, 2016


저희 동네 대보름 행사에 작은책 식구들이 놀러 오셨어요. 달집태우기가 끝나고 저희 집으로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안건모 대표님이 독립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할 만한가?” 물어오셨어요. ‘혹시나 필자를 교체할 생각인가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개봉 영화 구하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라고 말씀드렸어요. 매번 꼴찌 아니면 끝에서 두 번째로 글을 보내는 것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고 사실이기도 했어요. 유이분 편집장님이 그럼 콘셉트를 바꿀까요?”라는 의견을 냈지만 저는 힘들더라도 열심히 해 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17년의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글을 보니 상업영화 제작과 유통에 필요한 자본 조달 상황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유통은 여전히 어렵다는 문구가 있더라고요. 독립영화들은 극장 잡기도 힘들고 잡았다 하더라도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에 한 번 상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개봉 첫 주 주말 관객 수에 따라서 상영 목록에서 금세 사라지기도 합니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독립영화 감독들은 꾸준히 극장 개봉을 추진하고 어렵게 극장을 잡았다가 스르르 사라집니다. 어떻게든 관객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의 동료들이 있는데 어떻게든 이 소중한 지면에 그 소중한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지면의 자취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고군분투의 역사이자 제 동료들에 대한 저의 우정의 연대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달 영화는 갈재민 감독의 <인투 더 나잇>입니다. 저는 음악에 문외한이라 다른 영화가 있었으면 그 영화를 선택했을 겁니다. 하지만 4월호에 실을 수 있는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시네마달 김일권 피디의 선택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일권 피디가 그동안 푸른영상 작품을 포함해서 수많은 독립영화들을 배급해 왔고 덕분에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는데, 이번 한 번쯤은 나도 김일권 피디의 취향을 이해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도시에 밤이 내리고 로큰롤 밴드의 음악이 흐릅니다. 그렇게 영화 제목이 뜨고 나면 연습하고 술 마시고 연습하고 술 마시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솔직히 초반엔 걱정이 앞섰습니다. 나는 로큰롤 음악을 모르는데 이 영화가 로큰롤 마니아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면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아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2013KBS 연기대상 남자 신인상을 받았던 배우 한주완이었습니다. 당시 한주완의 수상 소감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었지요.


공공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요즘따라 애쓰고 있는 아버지들이 많이 계십니다. 노동자 최상남을 연기한 배우로서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힘내십시오.”


그가 아버지라고 칭한 사람들은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에 앞장섰던 철도 노동자들이었고 그 전날 저는 그분들을 지지하며 광화문 광장에 다녀왔었거든요. 그 한주완이 배우로 이름을 알리기 전에 음악을 했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가 참 오래전부터 촬영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주완은 등장하자마자 리더 차승우를 매료시키더니 5분 만에 퇴장하고 맙니다. 성공한 배우가 되어 바빠져 버렸거든요.


영화에는 수많은 보컬들이 등장합니다. 한주완 이전에 조영빈이 있었고 그 후에는 김세영, 그리고 마지막엔 훈조가 나옵니다. 김세영과 훈조 사이에는 오디션을 보러 오는 또 다른 많은 보컬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등장과 퇴장을 보다 보면 영화의 주인공이자 팀의 리더인 차승우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창작자의 입장에서 차승우에게 깊이 몰입되더군요.


영화 <인투 더 나잇> 스틸이미지


아무리 친하고 좋은 사람이라도 밴드 같이하면 스트레스를 주고받고, 싫더라구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니 취향, 니 세계관을 반영하라며 김세영을 다그치는 장면에서는 살짝 숨이 막혔습니다. 처음 차승우는 나랑 비슷한 온도의 사람이라며 김세영에게 환호했었거든요. 형의 페르소나를 하면 되는 거죠?”라는 말을 던지며 생기발랄하게 무대를 휘젓던 김세영은 내가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남기고 갑작스럽게 퇴장해 버립니다. 형의 플로어를 침해하고 싶지 않다는 김세영에게는 침범이 아니라 부딪쳐야 하고 너만의 플로어를 내세워야 한다는 차승우의 요구가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보컬 김세영의 결합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더 모노톤즈는 그렇게 5번의 공연을 끝으로 긴 공백기에 접어듭니다. 보컬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후 어렵게 보컬을 구했지만 오랜 맏형이었던 베이시스트 박현준이 그만두는 등 더 많은 어려움들이 지나가고 결국 영화는 인투 더 나잇을 연주하는 더 모노톤즈의 모습과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더 모노톤즈는 그해 최우수 록 음반 부문 상을 받게 되었거든요. 영화 덕분에 로큰롤에 익숙해져서인지 음악이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차승우의 수상 소감에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구요.


수많은 밤들이 지나갔어요. 적절한 가사나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뜯던 밤, 갑자기 멤버가 탈퇴 선언을 해서 속이 썩었던 밤, 녹음실에서 지루했던 수많은 밤들. 그런 밤들이 의미가 있었던 시간들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서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투 더 나잇>을 보며 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닿고 싶은 음악의 세계로 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걷고 있는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인투 더 나잇>을 보며 성장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차승우는 초반에 보컬들에게 어떻게 발음하고 어떤 몸짓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조언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플로어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자라 온 것처럼요.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 기타리스트 차승우와 베이시스트 박현준은 노브레인과 삐삐밴드에서 일찍부터 자신의 기량을 뽐내왔던 유명 아티스트들이고 팬 층도 두껍더라구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검색해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인투 더 나잇>은 음악에 문외한인 저에게도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을 던져 준 아주 뜻깊은 영화였습니다. <인투 더 나잇>은 개봉해서 현재 극장 상영중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문의:시네마달 02-337-2135 http://cinemadal.tistory.com/)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8년 4월호

서울 여자 독일 아줌마로 살기


네가 그 일곱 개째 동양인이구나

조숙현/ 29년째 독일에 살고 있는 아줌마

 

 

창문을 열면 강 건너편 초등학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들립니다.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우리 집 바로 정면에 학교가 있어요. 제 아이들이 나온 초등학교입니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4년 과정이고 2년 지나 반이 갈려요. 1, 2학년이 같은 아이들이고 3학년 때 다른 아이들과 다시 섞어 반을 조성합니다. 담임 선생님도 2번 바뀌는 거죠.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반에서 유일한 동양인 아이였거든요.


유치원을 같이 다닌 친구들과 같은 학교로 입학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는 학교 가는 것을 싫어했어요. 씩씩하다 못해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인데 많이 울고 짜증도 내고 숫기도 없어지고. 어느 날 아이 노트를 보니 낙서를 했더라고요.

죽고 싶다. 엄마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다 같다고 했는데, 왜 아이들이 아이처럼 다 같이 놀지 못하나.”

ⒸPixabay

여덟 살짜리 아이 낙서가 이랬어요. 그 낙서를 본 저는 가슴이 백만 근짜리 무게로 짓눌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면담 약속을 잡고 낙서를 보여 줬습니다. 선생님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몰랐다니. 참 쉬운 대답입니다. 한 학급이 20명에서 22명입니다. 그리고 2년 동안 같은 반 아이들이죠. 그런데 모를까요? 외면한 거겠지요. 그동안 아이들은 큰애의 가방을 빼앗고 안경을 빼앗아 냇물에 던지고 침을 뱉고 칭챙총(동양인 비하 용어)이라는 놀림말을 등 뒤에서 불렀는데 담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놀린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 그러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는데, 그 부모들 반응도 그랬습니다. 아이가 그런 건데 뭘 그렇게 난리냐고.


하지만 낙서를 본 순간 저도 더 이상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시정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장은 제게 어머님은 너무 감정적이라며 진정하라고 하데요. 당한 사람은 감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당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행동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러고나서 마을에 전단지를 돌리고 서명을 받고 학부모 회의를 요구했습니다. 마을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으면 무조건 찾아갔습니다. 유치원 학부모 회의도 갔습니다. 제발 집에서 다양성에 대해서 교육해 달라고. 독일인도 해외여행을 가면 외국인이 되는 거고 동네에 독일인만 사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유치원만 해도 여러 나라 아이들이 있는데 언제까지 아이가 그런 건데라는 대답을 할 거냐고.

ⒸPixabay


한 아버지가 그러더군요. 아이들은 안경 낀 아이도 브릴레 슐랑에(안경뱀)라고 놀리고 주근깨도 놀리고 뚱뚱한 아이도 놀리지 않냐고. 그건 결코 답이 아닙니다. 안경은 렌즈로 교정이 되고 주근깨도 없앨 수 있고 살도 뺄 수 있지만 동양인 엄마한테서 자신의 선택 없이 태어난 아이를 어떤 방법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세상의 다양함을 배우고 느껴야 차별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요. 제발 집에서 더러운 외국인이라든지 나쁜 외국인이라는 발언부터 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단어를 아이들이 그대로 습득해 차별을 배운 거라고요.


시장님과도 면담을 했습니다. 시장은 자신이 그 학교의 교사로 근무를 했었는데 몰랐다고, 그런 문제는 없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동양인인 제 아이가 그 학교에 다니지 않았으니까요. 동양인이 학교에 입학했고 그제서야 생기기 시작한 문제인데 시장인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항의했습니다. 저는 그때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을 때였어요. 하지만 울고 다니는 제 아들이,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제 아들이, 저를 보고 있기에 세상에 무서운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니 느낄 수도 없었어요. 어찌 됐든 내 아이를 다시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저희 집 가족 구성원은 다 외국인입니다. 보스니아 사람인 남편, 한국인인 저, 그리고 혼혈인 두 아이들. 독일 국적을 갖고 있어도 어차피 외모상 이방인인 우리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나부터 대항하고 문제 해결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처음 동네로 이사 왔을 때 저보고 네가 그 일곱 개째 동양인이구나!”라고 말한 할머니께 ! 그래? 독일인은 몇 개가 사는데?”라고 대답했죠. 그리고 니 남편이 널 얼마 주고 샀냐?”고 묻는 어떤 남자에게 내가 내 남편을 샀다고, “체류 허가가 필요해서 내가 샀어. 넌 니 부인 얼마 주고 샀니?”라고 물었더니 자기 부인은 독일 여자라고 대답하더군요. 전 시치미를 뚝 떼고 ! 난 독일 남자는 다 부인을 돈 주고 사는 줄 알았네. 우리는 그냥 서로 좋으면 결혼 하는데!”라는 대답을 줬습니다.


그때는 독일에 매매혼이 한창 성행하던 시기였습니다. 자국인과 결혼이 힘든 남자들이 매매혼을 참 많이 하던 시절이었어요. 카탈로그를 보고 여성을 고른 뒤에 돈을 지불하고 결혼하는 남자들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지던 때였습니다. 덕분에 동양인 여성이나 피부색이 검은 여성들은 왠지 팔려 온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었지요. 지금도 그리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예전처럼 대놓고 그러지는 않네요. 저부터 그런 모멸감을 느끼고 살았는데 아이들까지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싸웠고, 드디어 학교에서 아이들이 제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유치원에서 각 나라의 국기와 위치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에 있는 아이들의 나라말로 인사말을 써서 벽에 붙이고 다문화 교육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저는 인사하기를 가르쳤어요. 적어도 예의 없는 놈이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서요. 길에서 사람을 보면 구텐 탁!”을 하게 하고 쓰레기가 있으면 줍게 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솔선수범을 보여 주며 길렀습니다. 제가 집에서 제 부모님께 배운 것처럼요. 빈 병에 동전을 모아서 병이 꽉 차면 기부를 하는 습관도 들여 줬습니다. 그 습관은 아이들이 성년이 된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시켰어요. 절대로 타인을 먼저 때리면 안 되지만 공격받았을 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속에 담은 화도 스스로 풀어 갈 수 있고 힘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것도 배우기 때문에 아주 잘한 결정 같습니다. 그렇게 2년을 마을에서 외국인 차별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둘째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군요. 이만하면 정말 큰일을 해 놨다! 싶었어요.


몇 년 후에 한국의 방송사에서 독일의 다문화 정책에 관한 방송 문의가 왔습니다. “옳다구나!” 싶어 우리 동네와 주변 학교를 텔레비전 방송 카메라와 함께 인터뷰하러 다녔습니다. 시장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우리 동네는 그런 차별 문제 없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제 눈치를 엄청 보셨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맞은편 학교 운동장에서는 아이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습니다. 항상 저렇게, 아이들이 아이라는 가장 큰 공통점 하나로 즐겁게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모든 곳에 말간 얼굴의 반짝이는 눈동자로 살았던 아이들이 자라서 평화와 조화를 이루기를 바랍니다. 우리라는 단어가 공통분모를 가진 나뉨의 단어가 아닌 모두를 어우르는 교집합이길 바랍니다. 옛 생각을 하면서 두드리는 자판이 많이 떨렸습니다. 오래된 일이고 지금은 엄청난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아이들인데도 어렸을 때 그 기억은 참 많이 아프네요. 글을 쓰는 엄마 손가락은 아직도 부르르 떨리는데 아이들 가슴은 그때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래도 모나지 않고 예의 바르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커 준 아이들에게 참 감사하며 글을 마칩니다.

posted by 작은책
2018. 3. 27. 14:16 알림 / 엮은이의 글


차례


4 책이 이끄는 여행

제주 4·3항쟁과 순이 삼촌’    박준성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인생    김복순

14 촌 말 서울말    박소영

18 베트남의 기억과 손잡는 일    권현우

23 제주 4·3 기행에서 평화를 새기다    권미강

27 서울 여자 독일 아줌마로 살기

네가 그 일곱 개째 동양인이구나    조숙현

32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여보, 난 명품빽 안 살게    윤혜신

37 한일수의 유감천만

나 홀로 한의원을 꿈꾸며    한일수

42 청년으로 살아가기

미투 운동과 B급 며느리    진솔아

46 이야기가 있는 사진    신창범, 안석희

48 살아온 이야기(10)

혼자 중국에서 전환점을 돌다    이하나

54 안재성의 살아가는 이야기

평창을 떠나는 내 친구    안재성

59 교실 이야기

밥은 먹었냐?    최관의

63 이야기가 있는 들녘

땅끝에서 받은 위로    김진회

68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70 일터 탐방_ 태경산업

세 명이 조합원인 노조, 큰일합니다    정인열

76 일터에서 온 소식

36524시간 비상대기    백현철

81 작은책 법률 상담소

진실을 말해도 처벌을 받는다?    김묘희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정병규

85 동화나라에서 사는 정병규    안건모

10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108 생각해 봅시다    시간이 약이 아닌 사람들    한채민

112 여성으로 살아가기    R과 나의 최선    홍승은

117 ‘그때 그 사건다시 보기

통일은 바라지도 않는다    김형민

122 생태 이야기

폭행당한 가리왕산은 방치되는가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7 책 읽고 딴 생각    혁명의 성자 호찌민    안건모

130 독립영화 이야기    수많은 밤을 지나 닿은 곳    류미례

135 우리 지역 깊은 역사    한국의 흙이 된 일본인    정종배

140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엮은이의 글

 

봄소식이 들려옵니다. 지난해 이맘때는 박근혜의 탄핵 인용 소식이 들리더니 올해는 이명박의 구속 영장 청구 소식이 전해집니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이렇게 심판을 받게 되다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이 더디지만 조금씩 바뀌긴 하나 봅니다.

얼마 전엔 독자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책을 그만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정권이 바뀌었으면 <작은책>도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책 내용이 희망적이지 않다고요. 그 전화를 받고 나서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독자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부분이 뭘까 생각했어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앞으로 우리 서민들의 삶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와 희망을 품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우리 삶터, 일터와는 무관한 그들만의 리그’, 각축장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요. 우리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힘들기만 한데 말이죠. 하지만 아직은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라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믿어 보려고요. 그런 세상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려고 해요. <작은책>의 역할이 그런 거라고.

새해 들어 독자님들께, “<작은책>은 작고 낮은 곳에서, 소외된 사람, 일하는 사람, 서민들의 웃고 우는 삶을 오롯이 담아내겠다고 한 약속 지키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독자님들! <작은책>2018년도 우수콘텐츠잡지로 선정되었어요. 좋은 글 주신 필자님들과 <작은책>을 아껴 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2018320

유이분 올림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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