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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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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2.05 수영 강사들의 요구 (2012년 4월호)1

<작은책> 2012년 4월호

일터 이야기


* 편집자 주 :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 57일간의 파업 끝에 이 글을 쓴 송근영 님을 비롯한 비정규직은 완전한 정규직 전환(직접고용 및 직군 설립)을 이끌어 냈고 모두 현장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_^


수영 강사들의 요구

송근영/ 인천 남동구도시관리공단 국민체육센터 수영 강사


여성 수영 강사로서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처음 수영 강습을 시작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증상들이 몸에 느껴진다. 몸이 자꾸 차가워져 생리통이 점점 심해지고 생리하는 날은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지만 템포를 끼고 입수를 한다. 그러고도 혹시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짬짬이 화장실에 가서 확인을 한다. 한여름에도 추워서 강습을 끝내고 나가도 에어컨은 틀지 않아도 되고, 피부는 점점 건조해진다. 여름에는 수영장 내 유해 가스가 심해져 집에 가선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처럼 눈알이 튀어나오게 기침을 해 댄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장이 바뀌면서 강습 중에 입는 슈트(몸을 덮는 두터운 수영복)에 대한 지원이 끊겼다. 강습할 때 수영복만 입으면 됐지 무슨 슈트까지 입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슈트는 수영 강사의 필수품이다. 우리는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설명을 하며 회원들의 자세를 잡아 주기 때문에 활동량이 적다. 수영장의 수온은 운동하는 사람들의 기준에 맞춰 27~28도 사이로 유지된다. 따라서 활동량이 적은 강사들은 저체온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온을 위해 슈트를 입는다. 슈트는 또한 회원들과의 신체 접촉을 어느 정도 막아 준다. 수영의 특성상 몸에 걸치는 것이 별로 없고, 팔을 휘저으며 하고, 물속에서 이뤄지는 일은 타인들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가끔 불쾌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슈트 예산을 삭감해 버린 것이다.

오후 근무인 나는 어린이 수업을 두 시간 연속으로 하고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두 시간 동안 수업에 들어간다. 수업 중간에 한 시간의 저녁 식사 시간이 있지만 실질적인 휴식 시간을 한 시간으로 보긴 어렵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대충 털고 보면 어느덧 20분이 흘러 있다. 급하게 밥을 먹고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50분이 되면 다시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준비한다.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안전 근무를 한 시간 서고, 회원 상담에, 인포메이션 센터 지원에 각자 정해진 부수적인 업무와 수영장 청소 등을 한다. 그 시간을 쉬는 시간이라 생각하는 이사장은 수업 4시간에 안전 근무 2시간을 강요한다. 안전 근무 한 시간 늘어나는 것이 별일이냐 하지만 체감되는 타격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강사들에게는 1인당 일 년에 15일의 연차가 있어 매달 돌아가며 연차를 쓰고 있다. 남자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예비군 훈련 등에 참가해야 한다. 빠진 사람의 안전 근무에 대체해서 근무에 들어가야 하고 강습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미안해 연차를 못 쓰고 있다. 연말이 되면 3일만 연가 보상비가 나오고 나머지 남은 날에 대해서는 보상비가 안 나오니 빨리 연차를 쓰라고 압박이 들어온다.

대우가 좋지 않으니 강사들이 줄질이 퇴사했을 경우엔 어떠했는가. 공단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채용 공고를 내고 면접을 보고 하는 기간 동안은 퇴직자가 담당했던 수업과 안전 근무를 들어가느라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다 지나간다. 대타를 많이 뛰는 선생님은 하루에 6시간까지도 물속에 들어가야 하고, 안전 근무까지 서다 보면 꼬박 하루를 수영장에서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회원 관리와 상담을 위해 불가피하게 퇴근 시간을 넘기는 것이 다반사다.

안전 근무 때는 단순히 수영장에서 한 시간을 있다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응급 상황을 대처하고 수영장 내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민원들을 처리해야 한다. 우리 센터에는 유난히 어르신들이 많이 계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번은 어르신이 가슴 정도의 높이의 물에서 빠져서 구하러 들어가기도 했다.

2012년부터 규정이 바뀌어 자유 수영 때 안전 근무자가 2명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인원 충원을 요구했으나 이사장은 기존 강사들이 한 시간씩 더 들어가면 되는 걸 쓸데없이 요구한다며 수업 4시간에 안전 근무 2시간을 강요한다. 노동의 강도를 높일 수 없는 정당한 이유들을 대고 대직 근무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이사장은 우리에게 노동 강도가 높아짐에 따른 건강원의 문제는 말도 안 된다며 입도 못 떼게 한다.

강사들이 이를 거부하자 이런 식이라면 최후통첩을 할 수밖에 없다며 센터로 직접 찾아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어떤 식으로 해결해 줄 것인지 우리가 물어도 단칼에 무시하며 해고 통보를 한다. 실질적인 업무 파악과 실태도 모른 채 수익에 눈이 멀어 거짓말만 일삼고 약속도 지키지 않고 노동 강도를 높일 것을 강요하는 이사장의 경영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파업을 했다.

우리의 요구는, 수익성과 맞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폐지한 회원 셔틀버스를 다시 운영하는 것, 센터 내 환경미화 직원을 직접고용하는 것,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무리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동구 구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만들어진 센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수익성과는 무슨 관련이 있으며 왜 그것을 수익성의 논리로 따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새해 첫날 출근하여 센터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환경미화원들도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다. 이분들을 직접고용해 용역회사가 중간에서 떼어먹는 돈 없이 월급을 고스란히 주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정규직화하라는 것은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대우받으며 일을 하고자 위함이다. 우리는 임금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이사장은 교섭 때마다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파업 전 오고 갔던 말들은 들어 본 적도 없다고 하며, 직원들에게 강요하거나 몰래 카메라를 찍은 것도 발뺌한다. 이러한 상황에 분개하여 이사장을 찾아간 회원에게는 여편네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막말을 했다.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제출한 성명은 진짜 본인 의지로 한 것이냐며 확인 전화를 했고, 노조원들의 집에는 우리가 불법 파업을 하고 있다며 등기 우편물을 보내 가정 내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다른 두 가지 합의 사항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혀 가는데 강사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절대 물러서지 않고 있다. 우리 센터 소장님이 노조를 만들었고, 선생님들이 적극적으로 노조 활동을 한 것이 괘씸하기 때문인지 이유도 없이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구청장이 직접 불러 합의를 보라고 했고, 우리의 요구가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뿐인데도 우리가 결코 넘봐서는 안 될 불가침의 영역을 침범이라도 한 것처럼 행동하는 이사장의 행동을 참을 수가 없다.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 강사들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이사장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점점 수위를 높여 우리의 의지와 요구를 알릴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 승리는 우리의 편이 될 것이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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