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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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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30. 14:31 태복빌딩 꼭대기

<작은책> 20199월호

 

지난 호를 읽고

 

 

교장 일기를 읽는 재미로 <작은책>을 기다리는 까닭이 하나 더 늘었다. “준비물을 아이가 들고 가야 아이에게서 배움과 깨달음이 더 많이 일어난다라고 한 대목을 읽으면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이 이 글을 읽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진해졌다. “훌륭한 교사는 학부모나 교육 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아이들이 적절한 난이도의 모험을 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대한민국에 훌륭한 교사가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았다.

- 이영균

 

항상 잊지 않고 보내 주신 <작은책>을 보면서 많은 소식을 접하고 있고, 항상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몇 달 남지 않은 수형생활 마지막까지 꼭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에 고생하시는 작은책 직원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봅니다.

- 곽동이

 

허지희 님 글로 세종호텔 상황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일하는 나이는 지났지만, 아이들 키우는 지금 세대들 힘들게 한 세대 같아 미안한 마음 들어요. 명박이 등장부터는 국민 잘못이 더 큽니다. 어리석고, 탐욕스런 그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뽑았으니까요. 기득권들이 촘촘하게 지들만 잘살려고 끼리끼리 힘을 가지고 공정한 대가를 주지 않고 탐욕으로 운영했잖아요. 곳곳에 아픔을 주는 짓으로. 분명히 그네들은 대대로 다른 아픔으로 힘들 거예요. 공평한 건 돈뿐이 아닐 겁니다. 그런 경영자들 아래서 현재 견디느라 힘드시겠네요. 기운 내시고요.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인천 할머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자녀에게 죽으라는 말을 들음 너무나 절망스러울 거 같아요. 그러나 그 말은 돌려 들으면 나 힘드니깐 내 말에 관심 좀 가져 줘, 내 말도 좀 들어 줘이지 않을까요? 사실은 제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답니다. 순간 너무나 화가 나고 나를 존중해 주지 않은 딸아이를 향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리고 말았어요. 엄청 후회하고 딸아이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 상처는 어쩌면 우리 딸이 사는동안 평생 갈지도 모르죠.

사춘기를 겪는 아이는 감정을 조절하거나 표현하는 데 있어 어려움이 있을 테니, 생각과 다른 말이 나올 수도 있을 거예요. 세상 전부인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딸의 마음도 편치 않을 거라 생각해요. 다만 시기가 그런 시기인 듯.

기회가 된다면 제가 술 한 잔 사 드릴테니 딸아이로 맘 상하심 연락 주세요. 그래도 글을 읽다 보면 송추향 님은 크게 절망하거나 좌절하신 게 없어 보여서 정말 다행이에요. 응원하겠습니다~!

- 정순자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9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여름휴가 때 겪은 오싹한 경험

이남림/ 완주 글쓰기 모임 회원

 

 

드라이브하러 나가게 준비하고 있어요.”

친구 소개로 몇 번 만나던 남자한테서 온 전화였다. 나는 그가 매번 알아서 데이트 코스를 척척 짜내는 게 정말 맘에 들었다. 길을 잘 몰랐던 나는 그가 운전해 가는 대로 어디든 좋았다. 시간이 많이 걸려도 드라이브하면서 얘기 나누는 데이트는 꽤 짜릿하고 매력적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이 나오기 시작했고 경사는 점점 심해지는 듯했다.

~! 그만 올라가고 어서 다시 돌아가요. 지금 당장!”

그는 갑작스런 내 말에 당황해하며 말했다.

차선이 하나라 차를 돌릴 수도 없는데.”

심장이 뛰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30여 분을 눈을 꼭 감고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부여잡은 채로 버텼다. 그리고 드디어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한 길이 끝이 났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라고 당황했을 그에게 나는 3년 전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사서 그 복잡한 도로를 기어 다니다시피 했다. 2년쯤 지나 운전에 점점 익숙해진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여름휴가 때 나는 부모님과 언니, 조카 둘과 함께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계곡으로 향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오가는 차들이 너무 많아 계속 브레이크를 밟으며 조금씩 움직여 갔다. 겨우 도착한 계곡에서 우리는 배부르고 시원한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도 차들이 밀려 거의 줄지어 서서 브레이크만 밟고 있기도 했다. 경사가 심한 길이라 차가 조금씩 움직일 때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햇살에 익어 버린 아스팔트인 데다가 경사가 심한 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해서 그런지 타이어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내려오는 중간에 쉼터에서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고 다시 출발했다. 차를 타고 몇 초쯤 지났을까?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조금 전까지 잘 듣던 브레이크가 작동되질 않았다. 반대편 차선으로는 차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내 앞에도 차들이 줄지어 가고 있었다. 또 도로 양옆은 경사가 심한 낭떠러지였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무섭고 막막하고 겁이 났다. 가족들 모두 이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어떡해! 어떡해! 큰일났어! 브레이크가 안 들어! 모두 벨트 잘 매고 손잡이 꽉 붙잡아요!”

몇 미터 앞 반대편 차선을 보니 작은 건물이 보였다. 그 순간 , 저 건물 쪽으로 핸들을 돌려 건물에 부딪치면 낭떠러지로는 떨어지지 않겠구나라는 판단이 섰다. 그쪽으로 급히 핸들을 틀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많이 오가던 차들이 그 순간엔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다행히 다른 차량과는 아무런 충돌 없이 건물에 바로 부딪칠 수 있었다.

사고 후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고만 있었다. 차 안에 가족들은 울고불고 더 난리였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였다. 직원들은 다들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으니 안심하라며 119를 불러 주었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119에 실려 병원에 갔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천만다행으로 언니만 이마에 몇 바늘 꿰맸을 뿐, 다른 가족들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나는 브레이크가 갑자기 밟히지 않은 순간부터 우리 가족 모두 낭떠러지로 떨어지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처럼 모두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나는 그 후로 한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나 다시 핸들을 잡기는 했으나 구불구불한 오르막, 내리막은 아무리 경치가 좋더라도 스스로 운전해서는 절대 가지 않는다.

여름휴가에 관한 오싹한 이야기를 듣고 난 남자 친구는 그 후로는 데이트 코스에 드라이브를 절대 넣지 않았다. 그 당시 난 이 사람이 참 배려가 많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15년 동안 같이 살아 보니 원래 드라이브 같은 거 전혀 좋아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posted by 작은책
2019. 8. 21. 16:05 알림 / 엮은이의 글


발행인의 글

 

한국의 극단적인 보수 우익들이 정체성의 혼란이 왔나 봅니다. 본래 극우들은 나치, 파시스트같이 인종주의, 국수주의, 맹목적 애국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극우들이 갑자기 매국노로 변했습니다. 엄마부대·태극기부대 같은 극우들이 어느 날부터 일장기를 흔들면서, 한국에 경제 침략을 가해 제2의 식민지를 꿈꾸는 일본의 아베 수상을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진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무조건 반대하려다 보니까 극우들이 헷갈린 거지요.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할 지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이번 호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가 쓴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아직 멉니다. 노동 공약 이행 수준은? 기대 이하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반대하려면 이런 내용으로 비판하면 되는데, , 그러면 극우가 아니겠지요?

<작은책> 이번호 책이 이끄는 여행, 이동수 화백이 김민섭 씨의 책 훈의 시대를 들고 강화도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급훈, 교훈, 사훈 등 우리를 지배해 온 ’. 저자는 이런 훈들이 이 사회를 천박하게 만들었다고 개탄합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이제 그런 천박한 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강화여고 학생들은 교가에 나오는 여성다워라라는 성차별적인 구절을 지혜로워라로 바꾸고, 교정에 있던 돌에 여자다웁게라고 새겨져 있던 문구도 다른 내용으로 바꿨습니다. 이동수 화백은 강화에 살고 있는 류미례 감독을 만나 함께 강화여고를 둘러보고 통일전망대도 다녀왔습니다. 이동수 화백의 너스레를 들으며 강화도를 함께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2019817

안건모 올림



2019. 9. 월간 제291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박제가 된 훈이 지배하는 사회 이동수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저는 오빠만 있음 됩니다. 그건 뻥이다! 최성희

17 여름휴가 때 겪은 오싹한 경험 이남림

20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밥 한번 먹자고! 윤혜신

26 이야기가 있는 사진 김재형

28 살아온 이야기(15)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엄마 송추향

34 교장 일기

모험이 아이들을 키운다 최관의

38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과대광고와 희망 고문 권해진

41 교실 이야기

똥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곽노근

46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모두가 설레는 한가위를 맞았으면! 조혜원

50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3 일터 탐방_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노동자

노조 가입해. 안 그럼 이혼할 거야 정인열

59 전국학교비정규직 수기공모 당선작

입간판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나현경

64 전국학교비정규직 수기공모 우수작

학교에서 나쁜 일이 왜 그렇게 많아요? 이재문

69 작은책 법률 상담소

반대할 자유 전다운

 

작은책이 만난 사람_ 박진

73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박진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금지되어야 할 표현 통상적김영선

103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 고태경

108 어린이 해방과 평화

입을 꼭 다물고 몸을 바르게 합시다 이주영

113 여성으로 살아가기

내 사랑은 당신을 위협할 수 없다 홍승은

118 생태 이야기 질병은 창조 대상이 아니다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3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언제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박찬희

128 책 읽고 딴 생각 우리는 스스로 선량하다고 믿는가 변정수

131 독립영화 이야기 대동강맥주가 맛있었다 류미례

137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청배와 띨배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8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한국지엠 비정규직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와?

정인열/ <작은책> 기자 

 

▲ 한국지엠 부평공장. 작은책(정인열)


한국지엠은 생산 물량 감소를 이유로 2014~2015년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약 1000명을 해고했다. 정규직은 노동조합이 있어 해고를 피했다. 인력 감축이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전환배치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이를 인소싱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이 일하던 공정에는 정규직원이 들어왔다. 정규직원들은 비정규직의 편성률(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회사는 해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시 불러 2~3개월간 정규직원에게 현장 업무를 가르치게 했다.

이완규 씨(40)도 인소싱으로 인해 20158월 해고됐다. 그는 2006년 군산공장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도어 라인(자동차 문)에서 일했다. 그러다 2015430, 3개월 유급 휴직 통보를 받았다. 복직 날짜는 없었다. 곧 해고된다고 생각하자 억울해서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에 가입했다.

모범사원 상도 세 번이나 받았어요. 성실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너는 비정규직이니까 나가라, 그러니까 억울한 거예요.”

2018213일 군산 및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법원은 이완규 씨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45명이 한국지엠의 노동자라고 1심 선고를 내렸다. 해고 투쟁 3년 만에 들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공장에 돌아가겠다는 생각만으로 싸웠는데 갈 곳이 없어진다니까. 괜히 (투쟁)했나? 그때 많이 힘들었죠.”

인소싱은 2009년 부평공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당시 금융위기로 미국의 지엠 본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비정규직 약 1000명이 해고됐다. 사실 비규정직이 해고된 자리에 정규직 인력을 1.5~2배 더 투입해야 공정이 돌아간다. 게다가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 대비 50~70퍼센트 수준의 임금만 지급하고, 자녀의 학자금 같은 복리후생 하나 제공하지 않고, 골치 아픈 노사협상을 하지 않고도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손쉽게 해고했다. 비정규직에게는 노동삼권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부평공장 안에는 2, 3차 하청업체를 포함해 약 2500명의 비정규직이 있었다. 이영수 씨(46)와 박현상 씨(45)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경험하면서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두 사람은 2006년 부평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차별을 묻자 이영수 씨가 말했다.

주말에 지게차 타는 라인 그리는 거를 한 적이 있어요. 정규직하고 똑같이 라인을 그리는데 거기는 이십몇만 원 받아가고 우리는 십만 원도 안 되는 거야. 그당시만 해도 3배 차이가 나는 거야. 야 이거는 심각하다 느꼈죠.”

▲ 출고 직전 차량에 스프레이 건으로 왁스를 도포하는 방청(녹 방지작업사진 제공_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2007년 한국지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일하던 라인을 분리하고 모듈화를 도입하면서 일부 공정을 납품업체로 돌리려 했다. 이영수 씨와 박현상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에 반대하며 200792일 비정규직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발기 조합원은 30여 명이었다. 설립 일주일 만에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부터 차례대로 해고되더니 조합원이 가장 많았던 하청업체 스피드월드파워도 폐업됐다. 해고자만 25. 선전전, 천막농성, 집회를 해도 복직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71227, 박현상 씨는 해고자 복직 및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가지고 부평구청역 CCTV 탑에 올라갔다.

그날 비가 오고 날씨가 안 좋았어. 비닐 쳐 놓고 자고 일어났는데 못 내려가게 밑에 천막이 쳐져 있는 거야.(웃음)

하루 이틀 예상하고 올라갔던 그는 65일 만에 내려왔다. 이대우 당시 지회장이 이어받아 70일을 고공농성했다. 2008117일에는 황호인 씨가 부평역 CCTV에 올라갔다. 며칠 후 또 다른 조합원 4명이 한강대교 아치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다. 227일에는 이준삼 씨가 마포대교 외줄 농성을 했다. 정화조를 잘라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밧줄을 달고 다리 아래에 매달렸다. 이영수 씨와 박현상 씨가 말한다.

정화조가 플라스틱이잖아요. 그라인더로 그 위를 잘랐어. 밧줄도 혹시 끊어질까 봐 최고급 밧줄로 했는데 (진압하려고 하니까) 뛰어내려 버렸어.”

다행히 이준삼 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수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방구조정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 황호인, 이준삼 조합원은 지엠대우 정문 아치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두 달간 고공농성을 했다(2010년 12월 1일 ~ 2011년 2월 1일). 사진 제공_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부평구청역에서는 고공농성이 계속됐다. 135일째 되던 20085, 지회는 해고자 22명 중 7명만 선별 복직하기로 합의하고 이대우 지회장은 내려왔다. 하지만 지회장을 비롯해 박현상, 이영수 등 핵심 간부를 포함한 15명은 복직하지 못했다. 이들은 부평공장 서문 천막 농성장에서 2년 반이 넘게 투쟁을 이어 갔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2010121일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로 황호인, 이준삼 해고자가 올라가 또다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당시 지회장이었던 신현창 씨가 단식을 했다. 201121, 노사는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2년 후인 2013년에 복직한다는 조건이었다. 신 지회장 단식 45, 고공농성 두 달이 되던 날이었다. 만족할 만한 합의는 아니었지만 일단락을 짓기로 했다. 이날 합의대로 20137월 해고자는 모두 복직됐다. 6년이 걸렸다이영수 씨가 당시 복직한 느낌을 회상했다.

돈을 버니까 좋더라.(웃음)

하지만 6년을 무임금으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박현상 씨가 또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영수 동지는 아직 혼자여서 버티는 거…. (웃음)

박현상 씨와 이영수 씨는 부양가족이 없는 싱글이라 버텼다며 웃는다. 겉으로는 가볍게 말하지만 아주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군산공장 이완규 씨는 어린 자녀 둘이 있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아내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지만 4인 가족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규직 해고자들은 2년치 임금을 받고 나오기라도 했지만 비정규직은 빈손이다. 해고 후 4년 동안 쌓인 빚이 3천만 원. 그럼에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 때문이다.

현재 비정규직이 1200만 명 정도 된다잖아요. 가면 갈수록 비정규직은 늘어날 거거든요. 앞으로 야네들이 살아갈 세상이 보이는 거예요. 제가 지회장이니까 기자회견도 많이 하고 티비에도 나와요. 우리 와이프가 다른 건 다 좋은데 티비만 나오지마라, 전라도 말로 '거시기'하다는 거여요. 제가 와이프한테 그랬어요. 자기는 자기 '거시기'한 게 좋아 아니면 우리 자식들이 커서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아가는 게 좋아? 그럼 당연히 아니래요. 그럼 자기도 좀 참아. 아빠의 투쟁으로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어요. 잠깐은 불편하겠지만 계속 싸우다 보면 우리 애기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 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완규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현상 씨와 이영수 씨가 박수를 치며 말한다.

이런 조합원이 있어야 되는데.(웃음)

한국지엠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영수 씨는 지난 11일부로 또 해고자가 됐다. 한국지엠이 정규직에게는 임금의 70퍼센트를 지급하며 유급휴직을 제안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무급 순환휴직을 요구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거부했고 이영수 씨는 해고됐다. 비정규직 노조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생산 물량이 없는데 무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 요구냐며 차가운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회의 요구는 수긍이 갈 만하다. 작년 1교대로 전환되었던 부평2공장이 조만간 다시 2교대제가 될 예정인데, 이때 정규직 600여 명, 비정규직 100여 명이 필요할 것으로 지회는 예상한다. 지회 해고자는 46(부평 38, 군산 8). 그리고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로 법원 판결도 이미 받은 상태다. 복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뿐만 아니라 한국지엠은 정부로부터 81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이영수, 이완규, 박현상 씨(왼쪽부터). 지회는 해고자 복직 및 정규직 전환 요구를 하며 507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2019년 6월 27일). 작은책(정인열)


생계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이완규 씨와 박현상 씨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싱글인 이영수 씨는 난 담배나 피워야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박현상 씨는 네 살 된 딸이 있다. 집은 충북 진천. 딸이 두 살 때 육아휴직을 쓰고 1년 전 공장에 복귀하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완규 씨는 6월부터 상경 투쟁을 하고 있다. 이완규 씨가 아이들과 통화한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왜 회사 가면 (집에) 안 와?’ 이런다니까.” 이 말에 박현상 씨가 받아쳤다. 우리 애는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 와?’ 한다니까. ‘언제 와도 아니고. 하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 네 사정이 더 낫네 하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돌려서 표현했다. 싱글인 이영수 씨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었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8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14)

 

자식을 두고 갈 때 알려 줄 것들

송추향/ 한사람연구소 소장

 

 

사랑하는 나의 딸이 엄마가 있어서 너무 불행하다고,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런 엄마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합니다. 엄마는 왜 사냐고 묻습니다.

이런 순간에 맞닥뜨리면 모멸감과 낭패감, 화살이 누구를 겨냥하는지 분명한 분노의 마음에 휩싸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진짜로 죽고 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미친 호기심이 일기도 합니다.

나는 평소에 딸아이한테 내가 죽으면 외딴 무덤이나 발걸음하기 어려운 곳에 두지 말고, 화장해서 곱게 빻아서 예쁜 병에 담아 부엌 찬장에 두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나의 부모님의 다음을 어떻게 챙길지 자신이 없는데, 우리 다음 세대들은 장례나 제사를 치러 낼 수 있을까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죽음이 너무 슬프고 너무 절망스러워서 삶에서 저만치 비껴 나게 두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조금씩 죽음을 향해 다가가게 되어 있는데, 마치 죽음이 생과 전혀 다른 낯선 것인 양 외면하는 모양새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지나간 사람들 사진을 보고, 손때 묻은 물건들이 그대로 언제든 닿을 곳에 있어서 죽음도 삶도 관계의 영속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 죽음도 사라져 없음이 아니라 그저 삶의 일부로 있는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나의 백수 생활이 자꾸 길어지고 있을 때, 딸아이가, 엄마가 돈을 못 벌고 우리가 몹시 가난해져도 밥은 굶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친구들이 자기가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더라고요. 죽고 나면, 잠시 나의 딸을 굶어 죽게 하지 않을 나의 벗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봅니다. (한참을 계속 떠올리는 중) , 좋아요. 내가 지금 당장 물려줄 재산은 하나 없어도, 내 딸아이 밥 한 끼씩 챙겨 줄 사람들은 좀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내가 죽어도 딸아이의 생존에는 하등 어려움이 없을 것 같네요. 조만간 약정서를 돌리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물론 자식을 두고 먼저 가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죽어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최소한 도시 아파트에서 얼른 벗어나 적당히 한적한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할 거 같습니다. 마당이 있고, 별다른 조리가 필요 없는 오이나 당근 같은 것들을 그 자리에서 따 먹으며 살 수 있으면 걱정이 좀 덜 되겠네요. 그리고, 고기 말고 그나마 즐겨 먹는 두부로 할 수 있는 음식들 몇 가지 요리법을 좀 정리해 놔야겠습니다.

그리고 시행착오투성이여서 실패하느라 정신없던 나의 삶보다는 조금 더 편히 살아가는 노하우를 알려 줘야겠습니다. 이를테면, 최악의 남자를 피하는 법 같은 게 있겠네요. 다음 체크리스트에서 항목을 체크해서 점수를 내 보게 하는 겁니다.

 

1. 남자 친구와 같이 밤길을 걷다가 휘파람을 부는데, ‘밤에 휘파람 불면 귀신 나온다하며 못하게 한다.

2. 머리를 자르고 만났더니, ‘긴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하며 아쉬워한다.

3. 나에 대해서 별로 궁금해하는 게 없다. 질문을 잘 안 한다.

4. 또 한편으로 나에 대해서 너무 다 알려고 한다.

5. ‘사전에 의논하지 않는다. 내 의사를 묻지 않는다.

6. 또 한편으로 하나하나 일일이 다 내 눈치를 살핀다.

7. 심부름을 하고 왔는데 또 나갔다 오게 할 때, ‘아까 말하지!’ 하며 눈을 부라린다.

8. 어떤 물건이 좋다는 이야기를 물건값으로 말한다.

9. 장난치다 다쳤을 때 갑자기 정색하며 화를 낸다. 특히 나 때문에 다쳤을 때 나를 쩔쩔매게 만든다.

10. 왠지 내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를 선뜻 만들지 않게 된다.

11. 전 여친을 몹시 안 좋게 말한다.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도 한다.

12. 엄마, 아빠에게 원한이 깊다.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 이야기를 할 때 아직도 가시지 않은 적개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13. 화가 났을 때 주먹으로 문짝을 치는 일이 한 번이라도있다.

14. ‘도저히 답톡을 할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이 체크리스트는 체크할 때마다 1점씩 붙게 되는데, 그러면 점수 구간이 생기겠지요? 딸아이한테 단단히 일러두어야겠습니다. 정확하게 이 상황에서 이 말을 하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유전자에 박혀 있는 것 같(다고 저만 믿고 있)다고요. 이 체크리스트는 무척 견고하고 엄마의 온 생을 통해 검증되고 검증된 항목이라서 단 1점이라도 나는 날에는 그 남자는 무조건 아웃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에 좋은 남자는 존재하기가 쉽지 않으니, 연애는 개떡 같은 남자 찰떡 같은 남자 다 만나 보다가 이 체크리트스에서 1점이라도 나는 순간에 뻥 차 버리면 된다고. 나중에 누구랑 같이 살고 싶어지면 그게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온순하고 착하고 눈이 반짝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도 해 주어야겠네요.

(그나저나, 원래 체크리스트에 14개는 어쩐지 좀 어정쩡하니, 나머지 한 개는 여러분이 좀 채워 주시지요.)

그 밖에 일기를 쓸 때는 같은 크기의 일기장에 써 두는 게 좋다거나, 설거지하기 가장 좋은 때는 밥 먹고 난 직후라는 놀라운 사실, 나의 엄마한테서 전수받은 소울푸드, 톳두부무침의 비법 같은 것, 장을 보러 갈 때는 꼭 밥을 먹고 가야 한다는 것, 양치질을 할 때는 위턱의 왼쪽 어금니, 윗니, 위턱의 오른쪽 어금니, 아래턱의 오른쪽 어금니, 아랫니, 아래턱의 왼쪽 어금니로 여섯 개 구역을 나눠서 한 구역씩 클리어하는 방식으로 칫솔질을 하면 놓치는 치아 없이 말끔하게 닦을 수 있다든가 하는, 온 생애를 통해 연마해 온 비기 가운데 비기들을 한 번에 하나씩 써서 집 안 구석구석에 숨겨 두어야겠습니다. 찾으면 찾는 대로 참고가 될 테고, 못 찾으면 못 찾는 대로 자기 노하우가 생길 테니까 어떻게 되든 괜찮을 거 같네요.

그림_ 최정규


하도 엄마 때문에 불행하고,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도대체 그 마음이 얼만큼인지 물었습니다. 지금은 한 60퍼센트라고 하네요. 다른 엄마들이 그렇듯, 나도 딸아이가 원하면 그게 뭐든 다 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말했지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는 마음이 100퍼센트가 되면 꼭 말해 달라, 그러면 반드시 죽어 주겠다고요.

가장 최근에 죽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딸아이가 기말고사를 망치고 걸어 온 전화 통화에서인데요. “괜찮아, 점수가 뭐가 중요해. 열심히 한 과정이 있으니까 됐지했더니, “과정이 뭐가 중요해, 시험은 다 점수로 말하는데! 내가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는데 왜 자꾸 과정이 중요하대? 내 기분을 그렇게 못 맞춰 줘?” 하는 것이 그 사유였습니다.

빵점이면 어떠냐, 공부 같은 거 못해도 된다고 말했는데 되레 욕을 먹으니, 100점 안 맞았다고 다그치다 욕먹은 엄마들보다 내가 더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이 이야기를 할 때는 딸아이가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는 마음이 80퍼센트라고 했습니다.

이 비율이 오르내릴 때마다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맑았다 개었다 날씨도 덩달아 바뀌는 것 같습니다. 100퍼센트가 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서둘러 이 글을 남겨 봅니다. 자꾸 죽으라고 하니, 죽고 나서 어떻게 될까 자꾸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모은 책은 제목을 죽으란다고 진짜 죽은 중2 엄마 이야기라고 지어 보고 싶습니다.

지난달에, 이제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무척 진중한 목소리로 엄마는, 내가 중2 때 중2병이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 그랬는데 개뿔. “넌 아직도 중2병 투병 중이거든!” 하는 말을, (차마 그녀석 면전에다가는 입도 뻥긋 못 하고) <작은책> 대나무 숲에다가 목 놓아 외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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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8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변기 26개 닦고 엉엉 울었다

허지희/ 세종호텔에서 일하고 농성하고 애도 키우는 아줌마

 

 

명동역 10번 출구 세종호텔. 이 출근길을 25년째 다닙니다. 대표전화를 받는 전화교환원으로 20, 호텔방을 청소하는 룸어텐던트로 5년 동안 근무하고 있습니다.

▲ 객실을 정돈하는 세종호텔 룸어텐던트 노동자. ⓒ작은책(정인열)


세종대학교 재단에서 113억 회계 비리로 퇴출되었던 주명건 전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에 복귀하면서 복수노조, 전환배치, 구조조정, 해고 등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우리 회사에서 벌어졌습니다. 전화 통화량을 조사하는 회사의 행동으로 이미 교환실이 아웃소싱되거나 해체될 수 있다는 예감에 2012년 세종호텔 노동조합의 파업과 로비 점거에 참가했습니다만, 내 일자리를 지키기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20년 근속상을 받은 201412195, 타월을 개고 침대 시트를 갈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룸어텐던트로 발령이 났습니다. 호텔에서 장기 근속한 여직원을 청소 노동자로 발령 내는 것은 흔히 쓰는 퇴출 방법입니다. 둘째 아이의 육아휴직이 남아 있어 고민도 했지만 사표는 내일 써도 되고 다음달에 써도 되니 함께 싸우자는, 지금은 해고된 세종호텔노조 김상진 전 위원장의 말씀에 용기를 내 보기로 했습니다.

발령이 나고 처음 한 일은 교환실 유니폼을 입은 내 마지막 모습을 셀카로 찍는 일이었습니다. ‘20년을 입어 왔지만 다시는 입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었으나 막상 룸어텐던트의 유니폼과 앞치마를 입었을 때는 서러워 눈물도 나고 타인이 사용한 변기를 닦으려니 장갑을 껴도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2주간의 청소 교육은 타월 개는 법부터 시작했고 단 한 번 욕실 청소하는 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 날에 13, 둘째 날까지 26개의 변기와 욕조, 세면대를 닦았습니다. 청소 교육 이틀 만에 어깨와 허리에 파스가 덕지덕지 붙었습니다. 퇴근길에 만난 남편과 순댓국집에서 소주만 퍼붓고 가게가 떠나가도록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 객실 내 화장실을 청소하는 세종호텔 룸어텐던트 노동자. ⓒ작은책(정인열)


이걸 왜 해야 되는데. 흑흑. 울엄마는 이럴 줄 모르고 대학 보내고. 엉엉.”

그러나 다음 날 새벽 은행 계좌에 월급이 입금된 걸 보는 순간, 돈이다. 난 돈 벌러 회사 다니는 사람이다.”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돈이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혼자라면 오래 버틸 수 없었겠지만, 우리 팀에는 노동조합 조합원이 있어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청소 노하우도 공유하며 중고 신입 막내를 살뜰히 챙겨 주셔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도 힘드신 거 뻔히 아는데, 내게 배정된 층에 오셔서 나 몰래 베드도 갈아 놓고 가시고, 그분들이 내게는 엄마였고 천사였습니다.

초보 룸어텐던트는 객실 타입도 잘 모르고 린넨을 봐도 싱글인지 더블인지 구분을 못해 정리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복도에서 우왕좌왕하는 시간이 청소 시간보다 더 많았습니다. 사드 배치 이전의 명동은 중국인 물결이었는데, 화장품을 사서 알맹이만 슈트 케이스에 담고 제품 케이스로 방마다 두세 곳의 쓰레기 언덕을 만들었고 쓰레기통을 제외한 모든 곳에 쓰레기를 버려 댔습니다. 바닥에 던져진 콘돔을 모르고 집었다가 장갑이 엉망이 되기도 하고 얇은 와인 글라스와 8온스 컵을 씻다가 금이 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전환배치된 날 어용노조 전화교환 직원도 함께 발령이 났는데 팀장은 세종호텔 노동조합원인 내게만 이런저런 이유로 수시로 경위서를 요구했습니다. 20년 동안 교환실에서 써 본 적 없는 경위서를 룸어텐던트가 된 후에는 매달 썼을 정도였습니다. 전 직원 성과연봉제가 어용노조 위원장과 대의원 3명의 직권 조인으로 통과된 후 룸어텐던트 파트는 전에 없던 인스펙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인스펙터는 룸어텐던트가 청소한 객실을 점검하는 사람인데 원래 인스펙터 업무는 룸어텐던트가 실수로 빠뜨린 것을 채워 주고 보완하는 일이지만 세종호텔 인스펙터의 업무는 사진과 채점입니다. 청소한 객실에서 흠을 찾아 증거로 사진을 찍어 팀장에게 매일 전송하고 객실 청소 상태를 등급으로 매겼고 팀장은 사진과 등급으로 성과연봉제 임금 삭감의 사유를 준비했습니다. 마음은 그러지 말자 생각했지만 인스펙터에게 지적당하거나 사진을 찍히고 나면 더 치밀하고 꼼꼼히 일하게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병들어 갔습니다. 테니스엘보와 손목터널증후군은 룸어텐던트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병명이고, 내 경우엔 디스크가 약해 2017년에는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고 나중에는 허리디스크도 함께 왔으며 어깨회전근 미세 파열을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채점된 성과연봉제 첫해 저의 임금은 9퍼센트 삭감. 오랫동안 임금이 동결되었기에 9퍼센트 삭감된 후 월급은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삭감 사유는 딥클리닝 개수 부족. 딥클리닝이란 욕실 천장 곰팡이부터 타일 줄눈까지 락스 작업을 하고, 사다리로 올라가 천장 먼지를 제거하고, 침대를 들거나 밀어 침대 아래 먼지도 제거하고, TV장과 걸레받이를 청소하는 일 등입니다. 타 호텔에서는 딥클리닝 전문 직원을 둔다는데 세종호텔에서는 룸어텐던트에게 시켰습니다.

그 딥클리닝을 하루에 한 방씩 점검받아야 하는데 내 경우는 대학 입학시험문제 출제 교수가 체크인 한 적이 4번이나 있었습니다. 대입 출제 교수가 묵는 방은 가벽을 만들어 직원조차 못 들어가는 출입금지 구역이 됩니다. 딥클리닝 자체가 불가능했음에도 회사는 그걸 임금 삭감 사유라고 내밀었습니다.

반면 어용노조 조합원 중에는 단 한 명이 3퍼센트 삭감되고 나머지는 전원 동결되어 세종호텔 노동조합과 형평성도 없고 차이가 심하게 났습니다. 타 회사의 성과연봉제는 인상되는 연봉제지만 세종호텔의 성과연봉제는, 사원은 최대 10퍼센트까지 계장 이상은 30퍼센트까지 삭감할 수 있는 악법 중의 악법입니다. 그 기준으로 세종노조 계장님 몇 분은 2년 연속 삭감당해 월급이 반토막 난 분도 있습니다.

호텔 직원들은 구조조정으로 퇴사해 나가고 팀장들의 회유와 협박에 회사가 만든 어용노조로 빠져 세종호텔 노동조합은 이제 15명의 소수 노조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오전, 오후 선전전과 매주 목요일의 집회로 9년째 투쟁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수적으로는 열세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내며 회사의 부당함을 당당히 말하는 힘이 세종노조의 저력입니다. 그 힘으로 특별감독관이 나오기도 하고 작년에는 잠시나마 교섭이 이뤄지기도 해 일부 조합원이 전환배치에서 복직하는 성과도 이뤄 낼 수 있었습니다.

사법 적폐 임종헌과 사돈이며 친이명박 적폐 판사 박성준이 사위고, 전 외교부 장관 유명환을 재단 이사장에 세워 놓은 주명건 회장의 힘은 영원할 듯했습니다. 그러나 임종헌이 구속된 이후 교육부의 세종대 감사가 실시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기라 판단하고 세종호텔 노동조합은 호텔 정문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김상진 전 위원장의 해고자 복직과 나의 전환배치에 대한 원직 복직과 성과연봉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도 힘들고 농성도 힘들지만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뷔페 설거지와 고기 굽기도 했고, 전화교환이든 룸어텐던트든 내 일, 나 자신의 일이기에 나를 위해 싸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세종호텔에서 또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으나 노조와 함께 회사에 할 말 하며 당당하게 내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 세종호텔과 서비스연맹 노동자들이 지난 5월 세종호텔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_세종호텔노조

posted by 작은책
2019. 7. 24. 13:56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국회 청문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의 되받아치는 답변이 화제입니다. 자한당 박대출 의원이 언론에서 불공정 보도하는 거 보신 적 있냐고 물었을 때 이낙연 국무총리는 자신은 꽤 오래 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고 말문을 막아버립니다.

공정하지 않은 채널을 보면 제목이 이렇습니다. <“강제징용 보상은 청구권 협정에 포함”- ‘정부 민관서 결론당시 이해찬은 위원장 문대통령은 위원이었다’>, <고노 징용문제로 신뢰 깨져 한국, 내일까지 중재 응하라”>. 제목만 보면 대체 이게 한국 언론에서 나온 소식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첫 번째 제목을 보면 마치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문대통령이 강제징용 보상을 청구권 협정에 포함시켰거나, 혹은 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두 번째 제목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한 말을 따옴표로 옮겨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징용문제로 신뢰가 깨졌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15일 정미경 자한당 최고위원은 세월호 한 척 가지고 이긴 문재인 대통령이 어찌 보면 이순신 장군보다 더 낫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리고 네티즌의 댓글을 인용했다고 우기면서 그게 왜 막말이냐고 반론보도를 신청한다고 하네요. 요즘 말로 ~!”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많은 소식들을 듣고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어떤 소식이 공정한 채널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작은책>은 그런 공정한 채널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작은책>을 보지 않는 분들에게 한번 권해 보시면 어떨까요.

 

2019717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백철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비정한 먹이사슬 이순이

15 부부 30년 맞짱일기

모든 옷 맘대로 처분권 최해옥과 이동수

21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여름 손님 윤혜신

26 청년으로 살아가기

취업 마지노선 유지향

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장영식

32 살아온 이야기(14)

자식을 두고 갈 때 알려 줄 것들 송추향

38 교장 일기

모험이 가득한 곳, 학교 최관의

4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까칠한 환자가 의사를 바꾼다 권해진

46 교실 이야기

숙떡, 숲떡, 쑥떡! 김미숲

50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잡초는 없다? 조혜원

54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_ 한국지엠 비정규직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와?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변기 26개 닦고 엉엉 울었다 허지희

69 작은책 법률 상담소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박시진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장혜옥

73 전교조와 함께한 30, 교육운동가 장혜옥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기술만큼 아름답지 않은 플랫폼 노동 김영선

103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근로기준법 이후에 무엇이 오나 고태경

108 어린이 해방과 평화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자 이주영

113 여성으로 살아가기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딸이다 홍승은

118 생태 이야기 기후변화 시대의 물 이용법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3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여러분 눈에는 뭐가 보이나요? 박찬희

128 책 읽고 딴 생각

유대인을 차별하고 탄압하지 않았다면 변정수

131 독립영화 이야기 위안부를 둘러싼 말의 전쟁터 류미례

137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활과 관련된 낱말들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7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교장 일기

 

아이 짐을 교실까지 들어다 줘, 말아?

최관의/ 서울율현초등학교 교장

 

 

첫날이라 짐이 많아서요.” “교실을 못 찾을까 봐 그러는데요.”

짐도 무겁고 아이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몰라서 오늘만 들어가면 안 될까요?” “아이만 먼저 들여보내고 제가 뒤따라가서 잘하나 보면 안 될까요?”

이런 말을, 입학식 다음 날 교문에서 아침맞이하며 1학년 학부모들과 쉴 새 없이 주고받았어. ‘아이가 힘들다는데 잠깐 들어갔다 오는 게 문제요?’ 하는 당당한 민원인 표정부터 안 들어가는 게 원칙인 건 아는데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 아이만하는 애틋한 호소까지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게 장난이 아니네.

다른 날보다 몇 배 힘든 아침맞이였어. 운동장과 학교 건물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걷는데 1학년 학부모와 아이들이 자꾸 떠올라. 학부모와 입학 초 학교 생활 적응 방법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했는데 놓쳤다는 생각이 드네. 예비 소집 이후 몇 차례 신입생 학부모를 위한 소통의 자리가 마련되었다면 오늘 아침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아이 상황에 따라 부모가 교실까지 들어갈 수도 있어. 사전에 담임과 학부모가 아이의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나눈 뒤 나온 결론이라면 무엇은 못 하겠어?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학교가 정한 원칙을 무너뜨리는 건 교육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오늘 아침에 겪은 일을 가볍게 넘어가면 내년에도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거야. 그러지 않도록 내년 교육 과정 수립과 운영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봤어.

유치원을 떠나 학교라고 하는 곳에 처음 등교하는 아침이야. 그런데 갖고 가야 할 준비물이 많아. 이걸 어떻게 들고 간다? 태어나 학교에 첫발을 내딛는 역사적인 날, 준비물을 들고 가는 방법에 따라 아이에게 심리적으로 어떤 움직임과 변화가 있고 그 교육적 의미는 뭘까? 아침맞이하며 만난 1학년 아이들과 부모를, 준비물을 들고 오는 방법에 따라 세 묶음으로 나눠 봤어. 그랬더니 부모와 아이들 표정, 몸짓, 눈빛, 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다르더라고.

첫 번째는 부모가 짐을 교실까지 가져다주는 거야. 부모 표정을 보면 밝고 뿌듯해. 그런데 온몸에 긴장감이 흐르고 양 볼이 불그레하게 상기되어 있어. 기운이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지. 아이와 말을 하면서도 눈동자가 움직이는 걸로 봐서 빠르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 교실 위치가 어디인지, 준비물을 어디에 넣어야 하고 담임을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할지 등 생각이 많아.

반면 아이는 발걸음이 가볍고 두 손바닥은 펼쳐져 있고 눈은 이리저리 편하고 자유롭게 움직여. 편안하고 느긋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지만 어느 하나를 깊이 바라보지는 않아. 여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해. 눈길과 마음 모두 친구가 아니라 부모에게 쏠려 있어.

두 번째는 부모가 짐을 교문까지만 들어다 주고 거기서부터 아이가 들고 들어가는 거야. 부모 먼저 살펴보면 들여보내 주면 안 되나, 다른 사람도 들어가는데. 애 보는 앞에서 규칙을 어길 순 없고.’ 하며 교문 앞에서 아침맞이를 하고 있는 교장 눈치를 슬쩍 살피는데 갈등이라고 할까. 망설임, 머뭇거림이 느껴져. 애당초 집에서 떠날 때부터 교문까지만 들어다 주기로 아이와 약속하고 온 분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아이에게 짐을 넘겨주는데, 교실까지 들어다 주기로 해 놓고 교장이 버티고 서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들려 보내는 경우에는 떼쓰고 울고 난리야.

이렇든 저렇든 대부분의 부모에게서 불안감, 걱정, 두려움, 노심초사 같은 감정이 느껴져.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혼자 갈 수 있지?”, “넌 잘할 수 있어.”, “이제 네 힘으로 하는 거야.”, “화이팅!”, “너 파일 박스 어디에 둬야 해? 크레파스는? 실내화는? 잘 보고 해라.”, “교실 찾을 수 있어? 모르면 내게 전화해.”

반면 대부분의 아이들 입이 댓 발은 나와 있어. 골이 난 거야. 왜 교실까지 들어다 주지 않냐는 거지. 울거나 드물게는 같이 들어가자고 우기기도 해. 기운은 가라앉아 있고 눈꼬리와 어깨도 처져 있어. 발은 끌리고 다리는 풀려 있다. 친구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쳐다보지도 않거나 더 말 붙이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게 하는 표정으로 영혼 없이 건성으로 대답하고. 가끔은 웃으며 걱정 마라는 표정을 짓거나 엄마를 힘차게 부르는 아이도 있지만 아주 드물지.


마지막 세 번째 경우는 집에서부터 혼자 짐을 들고 오는 아이들이야. 이런 아이들은 교문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신호등을 건너오는 순간부터 아우라가 느껴져. 얼굴은 상기되어 벌겋게 달아올라 있고 두 손은 마치 절벽에 오르며 밧줄 붙잡듯 봉지와 손가방을 꽉 움켜쥐고 있는데 발은 번쩍번쩍 들어 힘차게 앞으로 내딛어. 친구들이 부르면 대답은 하면서도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듯 길게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아. 얼굴에는 긴장감이 넘치는데 짜증은 없고 눈동자는 앞만 보고 머릿 속에서는 뭔가 많은 생각이 솟구치고 있는 게 보여. 낯선 세상에 혼자 들어가는 두려움이 느껴지고 콧구멍은 벌렁거리고 콧등엔 땀이 솟아 있어. 주먹 하이파이브 하자고 말을 걸어도 귓등으로 흘리고 몇 녀석은 눈으로 자기 두 손을 가리켜. ‘보면 모르냐. 지금 내 손이 하이파이브 하게 생겼냐?’ 이런 뜻이지. 목에 힘 주고 당당하게 나를 쳐다보는데 가슴이 뭉클해.

이 세 종류의 아이들 가운데 삶에서 만나는 문제 상황을 풀어내고 해결해 삶의 주인으로 설 힘을 얻은 아이는 누구일까? 손발이 편안하며 정서적 안정감을 얻기로 따지면 첫 번째 아이가 가장 큰 이익을 본 거고 세상살이라는 큰 바다와 산을 넘어갈 힘을 얻은 걸로 치면 세 번째 아이를 당할 수 없어. 사람들은 학교란 아늑하고 편안하고 행복한 곳이어야 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난 아니라고 믿어. 학교라는 곳, 배움이 일어나는 곳은 낯설고 두렵고 불안한 자극이 가득한 곳이야. 모험이 가득한 곳이라는 거지. 학교가 왜 모험이 가득한 곳이어야 하는지는 다음 호에서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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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7월호

작은책 법률 상담소

 

반지하에서 생기는 법률 분쟁

김묘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더욱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는 주인공 가족이 살고 있는 반지하 집이 등장합니다. 반지하 집은 빛이 잘 들지 않고, 통풍이 잘되지 않지만, 외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고, 지하이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화장실 하수구가 역류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속 반지하 집은 그런 단점을 현실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영화를 본 관객 중에는 자신이 살았던 반지하 집의 추억을 떠올렸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하영 씨는 영화가 끝나면 현실의 반지하 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영화 속 리얼한 반지하 집을 보고 나자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죠. 하영 씨가 반지하에서 겪었던 일은 무엇일까요.

 

하영 씨는 독립 후 첫 자취방을 알아보러 다니다가 본인 예산 안에서 가장 넓고 깨끗한 집을 발견하고 바로 계약을 했습니다. 반지하라는 게 신경이 쓰였지만 도배·장판이 깨끗하고 월세도 싸니까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장판 밑에 물이 고이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옷장 속까지 곰팡이가 펴서 몇몇 옷은 버려야 할 정도였습니다. 집주인은 하영 씨가 환기를 안 해서 생긴 문제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림_ 이동수

 

우리 법에는 집주인이 집을 빌려줄 때에는 세입자가 집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빌려주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민법 제623)”.

반지하 건물의 특성상 세입자의 생활 습관보다는 채광과 통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곰팡이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곰팡이 때문에 집을 집처럼 이용할 수 없다면 임대인은 당연히 수선 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다만, 세입자는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집주인에게 알려야 합니다. 만약 세입자가 집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집주인에게 신속히 알리지 않아 피해가 발생한다면 피해 비용 일부를 세입자가 부담하게 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영 씨의 경우, 새로 도배·장판을 하고 입주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곰팡이가 생겼기 때문에, 곰팡이가 생긴 곳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잘 기록해두었다면 집주인에게 곰팡이 제거 시공 등을 요청할 수 있었고, 수선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반복되는 경우였다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림_ 이동수

 

사실 하영 씨는 지난여름에는 더 큰 일을 겪었습니다. 큰비가 내려 하영 씨가 살고 있는 반지하 방으로 물이 넘쳐 들어왔습니다. 집주인이 장판과 창문 쪽 벽지를 교체해 주기는 했지만, 물에 잠겨 결국 버릴 수밖에 없게 된 가재도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법적으로 따져 보면 침수 피해로 인하여 집에 생긴 피해는 집주인이 복구해야 합니다. 민법에서는 집주인에게 수리 의무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의 의무는 임대 목적물인 집을 수리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고, 집 안에 있는 가재도구에 대한 피해 보상 책임까지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집 구조적인 하자로 인하여 가재도구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였다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집주인에게 그러한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재난지원금

국가에서 침수 피해로 인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난지원금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침수 피해를 본 당사자에게 지급됩니다. 이 때문에 집주인이 세입자가 받은 재난지원금을 돌려달라고 하여 종종 분쟁이 발생하는데, 침수 피해를 본 세입자가 이를 돌려줄 의무는 없지만 해당 지원금은 침수 피해 복구에 사용해야 합니다.

주택 침수 피해를 입고 재난지원금을 받은 세입자가 호우 피해로 인한 장판과 벽지 상태가 심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대로 지내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해당 세입자가 재난지원금을 받고도 이를 침수 피해 복구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면, 계약 기간이 끝나 이사를 나가려고 할 때 집주인이 침수 피해로 인하여 하자가 발생한 장판과 벽지를 교체하라고 한다면, 재난지원금을 받은 세입자는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림_ 이동수

 

주택법에서는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공고하도록 정하고 있고(5조의2), 2011년 마지막으로 공고된 최저주거기준에 의하면 주택은 적절한 방음, 환기, 채광 및 난방설비를 갖추어야 하고,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이 현저한 지역에 위치해서는 안 됩니다. 하영 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최저주거기준이 지켜졌더라면 겪지 않았을 일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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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26. 13:31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작은책 7월호 표지는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입니다. 기후변화가 정말 심각합니다. 지난 5월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리지 않나, 폭우가 쏟아지지 않나, 낙동강 여기저기에 녹조가 스멀거린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나, 벌써부터 심각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태이야기를 연재하는 박병상 소장은, 지금처럼 기후변화를 방관한다면 호주 국립기후복원센터가 30년 이내에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의 생존이 불투명해질 것으로 전망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번 호 책이 이끄는 여행 , 조선소 노동자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를 읽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와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형평운동기념탑이 있는 진주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형평운동기념탑에는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고 애정은 인류의 본량이다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 여전히 온갖 불법을 저지르며 부를 쌓는 재벌들과 가난한 노동자·농민으로 나뉜 불평등한 사회입니다. 그때 역사 속 백정과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 처지가 너무 닮아 있지 않나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달에 작은책이 만난 사람은 문화운동가 연영석 씨입니다. ‘간절히’,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할 줄 아나 등 집회나 홍대클럽에서 많이 불렸던 노래를 만든 연영석 씨가 13년 만에 4집 앨범을 냅니다. 연영석 씨 노래는 집회에서 팔뚝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는 아닙니다. 서러운 노동자의 삶, 어느 순간 꿈 같은 삶, 그러다가 , 웃기네 하는 삶을 노래합니다. 그의 아내인 노동가수 지민주 씨와 함께 사는 삶도 살짝 들여다봅니다.

 

2019 6 18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노동자가 묻고 백정이 답한다     김용심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내가 정신과 환우들과 함께 하는 이유      박연화

16 부부 30년 맞짱일기

소심한 복수     최해옥과 이동수

21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비가 내리면 장떡이 최고지!      윤혜신

26 청년으로 살아가기

자격증 백만 개가 필요해      유지향

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32 살아온 이야기(13)

진짜 그 사람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송추향

38 교장 일기

아이 짐을 교실까지 들어다 줘, 말아?      최관의

42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약은 정성으로      권해진

46 교실 이야기

한글살이로 한 해를 살아요!      김미숲

50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고마운 제철 김치와 택배기사님      조혜원

53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6 일터 탐방_ 여성가족부 아이돌보미

여성가족부의 기막힌 꼼수      정인열

63 일터에서 온 소식

학교급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정명옥

67 작은책 법률 상담소

반지하에서 생기는 법률 분쟁      김묘희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연영석

71 문화노동자 연영석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과로, 통치의 효과로 읽어야!      김영선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소셜테이너 김제동의 고액 강연료      고태경

109 어린이 해방과 평화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      이주영

114 여성으로 살아가기 남겨진 것 이후      홍승은

119 생태 이야기 죽은 뒤 일어날 일이더라도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4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5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너는 어디에 있었니      박찬희

129 책 읽고 딴 생각

간신의 평범성      변정수

132 독립영화 이야기 짧은 여행 긴 여운      류미례

137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꽃차와 꽃향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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