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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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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25. 15:49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현저히 줄었습니다. 지난 314, ‘신규 확진자가 107, 완치된 사람들이 204이라는 뉴스가 나옵니다. 완치자가 확진자 수를 넘어서 조금 안정이 되는 것 아니냐는 희망이 보이기도 합니다. 현재 한국 정부의 감염병 대처 방식은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잘 하는 편입니다. 신천지 신도 일부를 제외한 성숙한 시민들도 외출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구 언론은 코로나19 때문에 대구나 인천 송도가 유령도시가 돼 가고 있다는 등 과장된 뉴스를 쏟아내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은책> 4월호 책이 이끄는 여행에는 김용심 작가가 조선 시대에 돌던 갖가지 전염병, 역병에 관련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흉년과 역병이 한참이던 때 연산군은 구휼미를 내줘도 모자랄 쌀을 왕실에 바치라고 하는 등 고통받는 백성들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연산군은 교동도에 유배된 지 3년 만에 역질에 걸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 역사를 보면서 수구보수당 황교안 대표나 심재철 원내대표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코로나19 대책 긴급 추경 예산을 가지고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는 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딴죽을 걸고 있기 때문일까요?

415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입니다. 코로나19 소식에 묻혀 후보가 누군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어떻게 되는지, 깜깜이 선거가 되지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못된 정치가들은 코로나19 못지않게 위험합니다. 누가 정말 나라를 위하고, 서민을 위하는 국회의원인지 잘 뽑아야 합니다.

 

2020317

발행인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조선왕조실록의 전염병과 코로나19 김용심

12 발행인의 글

13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4 코로나19! 에잇! 코로나18! 신혜진

18 예약 말고 즉시콜? 최숙하

22 누가 쪼잔한 건지 모르겠다 이근제

26 인도 델리 버스의 커튼 신혜정

31 부억때기 송필경

34 뱃살의 원흉 이동수와 최해옥

40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코로나19 집밥 윤혜신

46 살아온 이야기

4, 누구나 상처는 있다 김수련

52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53 시 읽고 감상하기 박영수

56 교장 일기

늦고 싶어 늦는 아이는 없다 최관의

61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코로나19 덕분입니다 권해진

 

일터 이야기

65 일터 탐방_ 서울대병원

병원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법 명숙

71 일터에서 온 소식

번드르르한 방송사, 속은 썩었다 김기영

77 작은책 법률 상담소

실업급여, 나도 받을 수 있다 양성우

 

작은책이 만난 사람_ 문지영

81 분리수거하면 세상이 바뀌나? 지금은유지향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이토록 장엄한 아름다움 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거리두기, 최선입니까?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올려 보아 주시오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올해 4월은 잔인할까?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성과 장치는 죽음조차 개인화한다 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조선의 타임캡슐, 백자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가정사에 스며 있는 베트남전쟁 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물신 전체주의 사회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20. 3. 2. 14:42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3월호를 만드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영남대의료원 본관 옥상 70미터 높이에서 227일 동안 고공농성을 했던 대구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 박문진 씨가 사측과 합의해서 내려왔습니다. 건강이 악화돼 107일 만에 내려왔던 송영숙 씨와 함께 해고 13년만에 원직 복직하고, 노조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게 됐습니다. 정년을 1년 남겨둔 박문진 씨는 실제 업무는 하지 않고 위로금을 받고 곧바로 퇴직하기로 했습니다.

노조 활동을 보장받는데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이 사회는 언제나 바뀔까요. 그보다 더 오래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언제 내려올 수 있을까요? 강남역 사거리 CCTV철탑에서 253일째 (217일 현재)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도 지상으로 내려와서 복직하는 날이 올까요? 현재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정당한 죗값을 받아야 내려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달에 ‘<작은책>이 만난 사람은 삼표레미콘 운전사 최만선 씨입니다. 노동자이면서 차주라는 이유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 장애등급 4급인 최만선 씨는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왔을까요. ‘부자 되기 포기를 좌우명으로 삼으니 간땡이가 부어 겁이 없어지더라’, 그래서 꼴값은 하고 살았다고 말합니다. 반어법으로 한, 그이의 말은 뜬구름 잡는 어떤 철학보다도 사유가 깊은 심오한 철학처럼 들립니다.

 

2020217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조선의 영원한 역적 천재 허균 이동수

12 발행인의 글

13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4 맨땅으로 내몰지 말고 헬멧이나 주라고 이지우

19 몸은 달라도 사랑은최숙하

23 돈 얘기가 먼저부끄러웠다 최성희

27 그림일기를 시작했다 최해옥과 이동수

33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오곡밥과 나물 윤혜신

39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40 살아온 이야기

파리 근교에서 동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수련

47 시 읽고 감상하기 신경현

50 교장 일기

이놈의 마스크를 어째 최관의

55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효도하는 법 권해진

59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62 일터 탐방_ 코레일 고객상담센터

동일 유사 업무가 대체 뭐래? 명숙

68 일터에서 온 소식

현장 노동자는 감염 예방 방법을 알고 있다 이향춘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창작자를 보호하라 김묘희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최만선

77 꼴값은 하고 산다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이별의 순간, 한 남자와 두 여자 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상상하는 자와 팔로우하는 자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른에게 드리는 글과 어린이날 약속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살인 기업의 노동 시간은? 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분청사기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영화로 소망을 이루는 방법 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키는가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아이들이 졸업했고 나는 또 조금 컸다

구자숙/ 인천부개초등학교 교사

 

 

아이들이 엄마 키만큼 크는 6년 동안 곁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챙겼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나는 학교 공간에서 애달아하며 고생한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면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급식실을 찾아갔다. 점심 급식 준비로 정신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영양사 선생님과 급식실 조리원님들에게 딱 1분만 시간을 달라고 해서 모두 모시고 인사를 드렸다.

“6년 동안 여러분이 이만큼 키와 몸과 마음을 크게 하는데 가장 많이 기여해 주신 분들입니다. 그동안 맛있는 밥 하루도 빠짐없이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할게요. 자세 바로. 인사.”

19명의 아이들과 함께 고개 숙이며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고 얼굴을 드는데 눈앞에 있던 모든 이들이 눈물을 뚝뚝 떨구고 계셨다. 잠시 당황스러웠으나 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시간 맞춰 몇백 명의 밥을 짓는다는 게 얼마나 힘들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얼마나 많이 담길지. 작은 실수 하나도 큰 사건인 양 떠들어 대는 사람들 덕에 얼마나 노심초사할지. 맛있는 건 얘기 안 하면서 맛없는 건 품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밥을 해 낸다는 게 얼마나 마음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인지. 그 모든 긴장감과 고단함을 졸업하는 아이들의 감사합니다 한마디에 위로받고 계셨다.

밥 맛있게 먹고 쑥쑥 커 줘서 고맙다고, 중학교 가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여기서 20년 일했는데 이렇게 인사하러 와 준 아이들은 너희들이 처음이라고, 너무 고맙다는 급식 조리원님 인사말을 마음에 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다음은 청소 노동자! 건물이 세 채가 연결된 3층짜리 학교를 단 2명이 어떤 기계의 도움 없이 청소를 하신다. 여름에는 땀을 뚝뚝 흘리며, 겨울에는 추운 날도 편하게 움직이려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수많은 화장실과 길고 긴 복도와 사람들이 드나드는 현관을 돌본다. 구역이 달라 함께 계시는 일이 잘 없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2층 화장실 앞에 함께 계셨다. 너무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며 종종 달려가 내일 졸업식인데 인사드리러 왔다고 했다.

여러분이 쾌적한 공간에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를 늘 깨끗하게 관리해 주신 분들입니다. 이분들 덕에 더 행복하게 학교생활 했습니다. 인사드릴게요. 자세 바로. 인사.”

두 분에게 졸업 축하 인사를 부탁드렸는데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졸업을 축하해. 너희들이 학교를 깨끗하게 써 주어서 청소하는 게 한결 수월했어. 그리고 만날 때 반갑게 인사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고맙다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되레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아이들 19명과 나는 이렇게 학교를 샅샅이 돌면서 그간 감사했던 많은 이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물론 아이들은 인사하는 와중에도 앞 친구를 밀거나 뒤 친구를 밀치면서 몸 장난을 치고 그분들이 축하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옆 아이들과 수다를 떨면서 딴짓을 했다. 하지만 고개 숙여 다함께 감사합니다 인사하던 순간 울려 퍼지던 아이들 목소리가 아름다웠고 그 인사를 받던 이들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났다. 앞으로 6학년을 맡으면 이 활동은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들이 졸업했고 나는 또 조금 컸다.

posted by 작은책
2020. 2. 6. 11:13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모두들 명절 잘 쇠셨나요? 고향이 남쪽인 분들은 사는 게 팍팍해도 마음만 먹으면 명절엔 고향에 내려가서 회포를 풀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향이 북쪽인 실향민들은 고향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이번 호 책이 이끄는 여행은 글을 쓴 최규화 편집위원이 북녘땅이 보이는 경기 파주시 임진각을 다녀왔네요. 최규화 씨는 우리가 아는 북한은 없다라는 책을 보고 분단의 상징인 임진각을 둘러봤습니다. 책은 재미 통일운동가 신은미 작가가 모두 아홉 번이나 북조선을 다녀온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신은미 작가는 2014년 한국에서 토크콘서트를 할 때 대동강맥주가 맛있다고 했다가 온갖 고초를 겪었지요. 박근혜 정권에게 강제 출국당하고 5년간 입국 금지까지 당합니다. 기가 막힌 세상이었지요.

이번 호에 장영식 사진작가가 사진과 함께 긴 글을 보내왔습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해고자 복직과 노조 파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182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만나기 위해, 암 투병 중인데도 부산에서 대구까지 130킬로미터를 걸어서 찾아갔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2011년에 부산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적이 있지요. 1931년 강주룡, 2011년 김진숙, 2020년 박문진의 고공농성은 닮아 있습니다. 노동문제는 촛불정부에서도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일까요?

 

2020115

안건모 올림

 

4 책이 이끄는 여행

적대평화가 공존하는 그리움의 공간 최규화

12 발행인의 글

13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4 꿈꿀 자유, 나의 언어 최숙하

19 아이들이 졸업했고 나는 또 조금 컸다 구자숙

22 친구의 집을 향한 여정 장영식

31 고양이 집사 일기 최해옥

34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하무스까지 만들었어? 윤혜신

40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41 살아온 이야기(2)

살다가 길을 잃었을 때 김수련

47 일터에서 쓰는 시 이규동

50 교장 일기

교장선생님! 어디 아파요? 최관의

55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권해진

59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62 일터 탐방_ 아파트 전담 집배원

신분이 바뀌니 차도 준다 명숙

68 일터에서 온 소식

자회사만 고집하는 공사 박인국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시행 김예지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정창수

77 죽음의 시계를 멈춰라 안건모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자살의 반복과 경쟁 장치의 폐해 김영선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무엇이 글의 상상력을 가능케 할까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전기차는 대안이 아니다 박병상

122 옛 그림 속 여성들

그녀는 오지 않았다 이종수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기억해야 할 청자들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영화가 드물게 은총을 보여 주는 순간 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법을 왜 나만 선의로 이해해 줘야 하는 걸까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10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강사법 적용 이후에 생긴 일

김어진/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서울경기인천강원지역 분회장

 

 

2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이맘 때쯤이면 한 학기 강의 줄거리의 서론이 지나고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얼굴도 조금씩 익어 가고 학생들의 표정도 마음에 담기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대학 시간강사를 시작했을 때는 늦은 결혼에, 아이까지 낳고 나서였다. 8년 동안 다섯 개 대학을 돌아다니면서 일명 보따리 장사를 전전했지만 그래도 학생들하고 강의실에서 호흡했던 그 순간은 참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학생들의 밝아지는 표정과 함께 느낌표가 공중에서 떠다니는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그 시간을 위해 강의 준비에 몸과 마음을 다했다.

다음 학기에도 수업을 할 수 있을까’, ‘조교에게 연락이 올까전전긍긍하면서 속앓이를 했던 순간들이기도 했다. 대학 강의의 절반을 담당하면서도 연구와 강의를 안정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그 어떤 권리 주장도 할 수 없었다. 연구실은커녕 휴게실조차 없어서 창고에서 대기해야 했다는 얘기, 대형 강의의 경우 채점하느라 졸도 직전까지 갔다는 얘기, 부당한 것 따지면 곧바로 강의 못 받을 것이 뻔해 숨죽여 왔던 대학 시간강사들의 얘기들은 12권 전집으로도 모자라다.


강사법 적용 이후로 1년마다 계약을 하고 3년 보장이라 하니 이번 학기부터야 이런 불안감은 좀 덜해질지 모른다. ‘교원지위 보장이 대학 시간강사 신분의 안정성을 보장해 줄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그러나 지난 여름 공개채용 과정에서 많은 대학 시간강사들이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어야 했다. 전임 수준의 연구 경력을 요구하는 학교가 적지 않았다. 생계형 시간강사들은 제대로 논문 쓸 시간도 여유도 없다. 대학에서 부교수가 된 친구는 최근 학기당 18학점 이상을 강의해야 했는데 그조차 논문은 방학에야 겨우 한 편 쓸까 말까 할 정도라고 한다. 자기 연구실도 있고 연구비도 쓸 수 있는 전임교원조차도 논문 쓰는 시간과 여유가 팍팍한데 생계형 대학 시간강사들은 오죽할까. 교육부가 해고 강사들을 지원하겠다며 추경예산으로 편성한 연구 지원 사업에 얼마나 많은 해고 강사들이 지원했을지도 걱정이다(교육부 통계로 해고 강사가 7500명이라는데 지원 대상은 2000명에 불과). 그런데 한 대학은 최근 3년간 등재지 논문 3편을 요구했다! 추천서를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학교도 있었다.

4대 보험이 되는 다른 직장을 가지고 있어 대학들이 좋아라 하는 겸임초빙 교수를 미리 왕창 뽑아 놓는 경우도 많았다. 아예 겸임초빙을 빙자하라며 여전히 건강보험 되는지를 묻는 경우도 많았다. 공정성의 모양새를 취했지만 말이 공채지 내정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대학이 물갈이를 하려 했는지 반백 살 넘어간 선생님들은, 특히 인문 사회 쪽에서는 낙방(공채 탈락)되는 경우도 많았다. 정말 힘든 여름이었다.

강의를 잡은 선생님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3년 뒤에는 또 어떻게 될까 걱정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학 시간강사들이 모이면 다들 하는 얘기지만, 10년 가까이 대학 강의를 하면 강의 기술이나 경험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강의실에서 학생들 눈빛을 보면 우리는 대번에 안다. ‘, 내 말이 좀 어려웠구나!’ ‘! 이제는 알아들었다는 얘기구나!’ 그래서 한국 대학생들의 강점과 약점, 그들의 고민, 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들의 마음 문을 열어야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매번 새로운 연구 동향, 국제 비교 사례, 서점에서 20대들이 많이 보는 책 동향, 심지어는 청춘 개그감 등을 익히면서 스스로를 단련시켜 왔다. 박봉에, 그것도 1회용 휴지 취급해 왔던 대학이 이제는 우리에게 높은 진입 장벽을 치는 것을 우리는 지난여름에 똑똑히 목도했다. 예순이 다 된 한 대학 시간강사 대선배님은 면접까지 보라는 말에 깊은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고 토로했다.

낙방한 선생님들은 왜 낙방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수시에 탈락한 수험생들과 그 부모님들의 마음을 정말 뼈저리게 공감하게 됐다는 시간강사들이 수두룩하다.

우리들이 빼곡이 적어 놓은, 우리들의 노하우가 담긴 강의계획서들을 만끽한 대학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우리를 내쳐 놓았어도 제대로 학생들을 성심껏 가르치며 교육기관으로서 본분을 다한다면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개강 후 서울의 한 대학에서 문학 관련 과목을 가르치는 한 대학 시간강사 선생님은 너무 놀랐다며 다음의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 동안 오랫동안 그 대학에서 강의해 온 50대 선생님들은 다 잘리셨다’(나이 많은 강사들에게 적은 강사료 주고 부리는 게 마음에 걸려서), ‘전공선택 과목이었고 정원이 20명인데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교양 과목이 대폭 줄어들어서 생긴 현상), ‘한 교양 과목은 수강 인원이 300명이라고 한다’(그래서 학생들은 학기 초에 방트-방귀 터도 되냐- 인사를 한다).

나는 지난 3월 한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잉여인간이 아니다’. 이런 외침은 2학기에도 유효하다. 맞다. 우리는 쓸모없는 퇴물이 아니다. 우리가 힘써 만들었던 그 느낌표들이 살아 숨쉬는 그런 대학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필요한 대한민국의 대학 시간강사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이고 분노의 강사들이기를 원한다. 지금 돈벌이가 우선인 대학을 초4인 내 딸이, 우리의 아이들이 있어도 괜찮을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절망과 낙담보다 분노와 투쟁에 동그라미를 쳐야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년 1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부부 30년 맞짱일기

 

결혼 30주년, 참자 참자 참자!


최해옥과 이동수/ 결혼 30년차 부부

 

 

남편 동수 이야기

결혼기념일이다. 30주년. 아내와 함께 산 지 30년이다. 1989103. 하늘이 열리는 날을 골랐다. 전국민이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 것이다. 물론 그때는 요즘같이 태극기를 혐오하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식 장소는 인천 답동성당 회관. 아내가 다니던 민중교회의 목사님을 주례로 모셨다. 구교와 신교의 조화로운 화합이랄까? 성당의 풍물패 노랏바치 후배들은 회관 입구에서 결혼식 내내 꽹과리와 장구와 북을 쳐대며 길놀이를 하고 흥을 돋워 줬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고마운 일이다. 그날 소문에 의하면 인천의 거의 모든 운동권이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한다. 더불어 인천의 정보과 형사들이 혹시나 결혼 축하를 하러 온 수배자들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모두 참석을 했다고 한다. 독재정권의 하수인들과 저항하는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한마음으로 모여 결혼식을 축하해 준 모양새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결혼식 입장은 신부와 신랑이 함께 들어갔다. 또한 성혼 선언문도 우리가 작성하여 열심히 사랑하며 살겠다고 읽어 내려갔다. 청첩장에는 내가 직접 그림도 그려 넣어 초대와 감사의 뜻을 표했다. 결혼식 피로연은 근처의 식당에서 했는데 밤을 새며 놀자는 선후배, 친구들의 손을 뿌리치고 청바지로 갈아입고 비행기를 타러 갔다. 돌이켜보면 비행기 예약을 취소하고 밤새 놀았어야 했다. 선후배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설악산 인근의 호텔을 숙소로 잡고 설악산 주변을 걷다가 계곡 아래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놀러 온 듯한 사람들이 고기를 굽다가 와서 같이 먹자고 해서 같이 먹었다. 이런 추억들이 좋다. 조금 걷다 보니 당시 유명했던 설악산 반달곰의 동상이 있다. 그 앞에는 단체로 온 30여 쌍의 신혼부부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만 당시에도 웃겼다. 그러나 남는 것은 사진뿐이니 그녀에게도 그곳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거절당했다. 그녀는 사진 찍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애교를 떨며 간신히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들어간 숙소. 호텔인데 10월이라고 난방을 안 틀어 줬다. 첫날밤을 추위에 떨며 지내야 하다니! 사랑의 불씨로도 추위를 이겨 낼 수 없었다. 이불을 더 가져다 달라고 해서 동사는 면했다.

새로 얻은 집은 장모님의 지인의 지인이 내놓은 단독주택 단칸방이었다. 허니문 베이비. 직장을 좀 더 다니려던 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본가로 들어가 부모님께 신세를 지고 살 수 있었다.(?)

30년 전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참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30주년을 기념하여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돈 걱정을 하는 아내는 해외여행은 무슨 놈의 해외여행이냐며 춘천을 가자고 했다. 뜬금없이 춘천이라니? 그래,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 주자고 마음먹었다. 30주년인데!


아뿔싸! 다음 날 103일 눈을 떠 보니 3시다. 오후 3. 지금이라도 춘천에 가면 되지 뭐 하고 그녀에게 말을 했더니 너무 늦었다고 한다. 평소 좋아하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자고 한다. 이왕이면 뭔가 평소와 다르게 하고 싶어 좀 더 고급진 중국집을 찾아갔다. 가격표를 보던 그녀가 그냥 나가자고 했다. 자리 핑계를 댔지만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 것이 뻔하다. 결국 평소에 가던 중국집에 갔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그 집 짜장면이 맛이 없다며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차이가 없는 듯한데. 어쨌건 그녀와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왔다.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 이렇게 30주년이 지나가는 것도 괜찮지 아니한가? 하하하~. (혹시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든 건가?)

 

아내 해옥 이야기

몇 년 전부터 남편은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해외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결혼하고 나서 여행을 간 적이 거의 없으니 이참에 가까운 대만이나 일본이라도 갔다 오자는 것이었다집 나가면 고생이고 다 돈이야. 무슨 해외여행까지. 국내도 가 본 데가 별로 없구만.” 말은 이렇게 했지만 해외여행을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솔깃했다. 십여 년 전에 중국에 가 보긴 했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전에 가서 책만 보다 왔으니 여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업무가 아닌 여행으로, 물가가 싸고 음식이 맛있다는 태국이나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베트남에 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속으로 살짝 기대를 했다.

올해 103.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되었다. 해외여행은 진작에 포기했고 가까운 춘천이라도 갈까 싶었다. 봄의 시내라는 뜻의 춘천이라는 지명이 마음에 들었고 전철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말로만 듣던 공지천을 천천히 걷다가 오면 좋을 듯했다. 피차 평소에는 기념일 같은 거 안 챙겨도 결혼 삼십 년 정도 되면 작은 이벤트를 하는 것도 좋겠지.

드디어 기념일 당일. 남편은 오후 3시쯤 내게 전화를 했다. 작업실에서 자다가 지금 일어났다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좀 늦긴 했는데 지금이라도 춘천에 갈까?” 좀 늦은 게 아니라 아주, 엄청, 많이 늦었다. 간단하게라도 씻고 출발하면 춘천에는 6시 넘어서 도착할 거 같은데. 금방 어두워질 그 시간에 낯선 동네에서 뭘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안 될 거 같다. 그럼 아쉬운 대로 영화라도 볼까? 부랴부랴 가까운 극장의 상영 시간표를 찾아봤다. 보고 싶은 영화가 없다. 그럼 서울에는? 서울의 극장도 원하는 영화는 시간이 안 맞는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12시를 넘어갈 무렵부터 이게 뭐지 싶었는데 3시 넘어서 이런 통화를 하고 있자니 심사가 편치 않다. 해외여행 가자더니 춘천도 못 가냐, 결혼기념일이고 뭐고 다 집어치워, 하고 소리 지르고 싶다. 화를 낼까 말까. 잠깐,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화를 내면? 남편은 기분이 나빠지고 더 이상 미안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일이 많아서 그런 걸 어쩌란 말이냐며 도리어 내게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면 내 기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질 게다. 결국 두 사람 다 마음만 상하고 얻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어찌 되든 간에 화났다는 표시를 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쩔까? 아니 아니, 안 될 말이다. 정신 차리자. 지금 짜증을 부리고 나면 수습이 어렵다. 이미 상황이 안 좋지만 더 꼬이게 하지는 말자. 갈등을 끝내고 태연한 척하면서 대안을 제시한다. 지금은 간단하게 먹고 저녁때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이나 먹읍시다.

춘천의 공지천을 걷는 대신 중국집까지 삼십 분 정도 걸어갔다. 결혼기념일이니까 다정하게 손을 잡고. 오늘따라 중국집의 실내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식초와 춘장과 기름쩐내, 상한 음식 등등이 섞인 듯한 냄새가 조금 역하다. 그냥 나갈까 말까. 달리 아는 곳도 없고 배도 고프다. 자리에 앉아서 짜장면과 고기탕면을 주문했다. 계속 미안해하던 남편이 탕수육도 먹자고 한다. 이 집에서 뭘 더 주문하고 싶지 않아 말렸지만 탕수육으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수보다 조금 늦게 나온 탕수육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오래된 기름으로 튀겨 낸 거 같다. 주문하지 말라니까 굳이 왜 했느냐고 한마디 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하다. 할까 말까? 이미 나온 음식인데 안 좋은 말을 보태서 뭐 어쩌려구. 이가 부실한 남편은 탕수육을 먹다가 고기를 잘못 씹어서 때운 앞니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결국 치과에 갈 일까지 생겼다. 그럴 수도 있지. 병원 갈 일이 생기면, 가면 된다. 가볍게 가볍게. 오늘은 결혼 30주년 기념일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식당 근처에 맛있는 커피숍이 있었는데 찾아갔더니 없어졌다. 업종은 그대로인데 상호가 바뀌었다. 그냥 집에 가자. 해외여행을 꿈꾸었던 결혼 30주년 기념일 이벤트는 이렇게 동네 중국집으로 끝났다.

나이를 먹으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남편도 맘대로 안 되고, 중국집도, 커피숍도 마음대로 안 된다.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 자신뿐.

여보~, 당신이 오후 3시에 일어나서 춘천도 못 간 거 그냥 무사히 넘어간 줄 알면 엄청난 오해다. 쭈욱 지켜볼 거야

posted by 작은책
2019. 10. 29. 12:49 알림 / 엮은이의 글


표지 그림_ 고창수

 

발행인의 글

 

독자님들, 요즘 유니클로에서 내보내는 광고 보셨나요? 98세의 할머니와 13세인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입니다. 광고에서 아이는 스타일이 완전 좋은데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나요?”라고 묻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오래전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광고 자막에만 뜨는 문구입니다.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

85년 전인데 왜 굳이 80년 전이라고 했을까요? 80년 전이면 1939, 일제강점기 때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고 강제징용과 위안부를 동원하던 해입니다. 왜 하필 13살 소녀를 내세웠을까요? 위안부로 끌려간 아이 중 가장 어린 아이가 만으로 열세 살이었답니다. 우리는 그 끔찍한 역사를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설마 우리를 조롱하려고 만든 광고는 아니겠지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강제징용자 문제라든가 위안부 문제를 연상시키고 조롱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또한 한글 자막에만 ‘80이라는 자막을 특정한 것에는 다분히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말합니다.

독자님들, <작은책> 이번호 특집은 위안부였던 이옥선 할머니를 그린 이라는 만화책을 일본어판으로 내는 일본인 쓰즈키 스미에 씨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에는 아베를 추종하는 보수 우익들보다 스미에 씨처럼 정의롭고 선량한 이들도 많습니다. 스미에 씨의 눈으로 일본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20191019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김동준과 전태일, ‘믿음의 몸짓최규화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부부 30년 맞짱일기

결혼 30주년, 참자 참자 참자! 최해옥과 이동수

18 청년으로 살아가기

나물 뜯어 먹고살 수 없어서 유지향

22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우리가 스페인을 왜 왔지? 윤혜신

28 이야기가 있는 사진 장영식

30 살아온 이야기(17)

꼰대로 살아가도 괜찮겠습니까? 송추향

36 교장 일기

문제는 부모한테 있다 최관의

40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권해진

44 교실 이야기

나중은 끝이 없는 거였어 구자숙

48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한 남자, 한 여자의 가을걷이 조혜원

52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5 일터 탐방_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웹툰·웹소설 작가)

내 몸값의 두 배를 팔아도 빚이 쌓인다 정인열

 

62 일터에서 온 소식

민영화 저지 투쟁조끼를 아직도 입는다 남성화

67 작은책 법률 상담소

전셋집에 들어간 비용, 청구할 수 있을까? 양성우

 

작은책이 만난 사람_ 쓰즈키 스미에

71 쓰즈키 스미에가 만난 위안부이야기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플랫폼 시대의 인간형 김영선

103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유령이 된 87년과 개혁 없는 검찰개혁고태경

108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른에게 자리를 사양하도록 합시다 이주영

113 여성으로 살아가기 나는 다만 노래 부르고 싶었을 뿐 홍승은

118 생태 이야기 올해 태풍은 일곱 개로 그치려나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3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너의 이름은 박찬희

128 책 읽고 딴 생각 수포자들도 볼 만한 수학책 변정수

131 독립영화 이야기 힘들다면, 아직 끝이 안 온 거야 류미례

136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하지감자와 수미감자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19. 9. 26. 15:00 알림 / 엮은이의 글



발행인의 글

 

독자님들, 지난 한 달 내내 조국 법무부 장관 소식으로 정신이 없으셨지요? 가짜 뉴스가 너무 많아서, 저는 (이낙연 총리처럼) “좀 더 공정한 채널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요즘 기사를 보면 지난 2009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하려고 논두렁 시계’, ‘아방궁 사저같은 온갖 조작, 가짜 기사를 쏟아냈던 때와 비슷합니다. 이번엔 조국 법무부 장관을 쫓아내려고 거의 모든 언론이 나선 형국입니다. 검찰 개혁을 막으려고 쿠데타를 일으킨 검찰이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 사실을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고 살을 붙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독자님들,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발표 저널리즘이라고도 합니다. 이를테면 민심은 이미 조국에 공직 사형선고구속 수사해야이런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고 칩시다. 시민들은 제목만 언뜻 보고 , 민심이 이제 조국을 버렸구나하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말을 한 주체가 그 신문사 대표인지, 자한당 황교안 대표인지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누가 한 말을 큰따옴표 안에 넣어 제목으로 달고, 본문에는 그가 주장한 말을 받아쓰는 찌라시언론을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합니다.

독자님들, 기껏 한 달 뒤, 길어봤자 몇 년 뒤면, 요즘에 나온 기사가 얼마나 왜곡, 혹은 조작돼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논두렁 시계’, ‘아방궁 사저같은 기사들처럼요.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을 되새기며 <작은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9919

안건모 올림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구름의 정거장, 선유도 하명희

10 발행인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살아가는 이야기

12 절대 자식을 위해 살지 마세요 정설경

16 청년으로 살아가기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유지향

20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도시락 열전 윤혜신

26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28 살아온 이야기(16)

그녀에 대하여; 우리가 엄마라고 부르는 송추향

34 교장 일기

학교는 부모도 모험하며 성장하는 곳 최관의

38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암이면 어떡하죠? 권해진

42 교실 이야기

교장 노릇 열흘 임덕연

46 산골부부의 시골살이

유기농 부부의 단호박 그리고 희망 조혜원

50 글쓰기 모임 안내

 

일터 이야기

53 일터 탐방_ 영남대의료원

보호자 침대는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 정인열

60 전국학교비정규직 수기 공모 우수작

산재 승인을 이렇게 받았습니다 손태련

 

65 일터에서 온 소식

강사법 적용 이후에 생긴 일 김어진

69 작은책 법률 상담소

직장인 부부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김묘희

 

작은책이 만난 사람_ 김용희, 이재용

73 삼성 골리앗에 맞선 노동자 다윗들 안건모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이동수

 

세상 보기

98 존버 씨의 시간들 번아웃과 일터 은어 김영선

103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마스크 시위의 존재론 고태경

108 어린이 해방과 평화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이주영

113 여성으로 살아가기

할 수 있는 목요일 오후 3시 홍승은

118 생태 이야기 인류세 종말을 부추기는 아마존 화재 박병상

 

쉬엄쉬엄 가요

123 오앵의 일상의 온도 오앵

124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이 탑은 왜 실내에 있을까 박찬희

128 책 읽고 딴 생각 대항표현의 방법을 제시하는 책 변정수

131 독립영화 이야기 잊혀진 이름들을 찾아서 류미례

136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 싱크홀과 땅꺼짐 박일환

142 와글와글 아이 글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9월호

세상 보기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

고태경/ 정치철학 연구자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 저널 <디 애틀랜틱>이 최근 미국 20~30대 좌파들을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무엇을 기다리다 지쳤다는 말일까. 미국 밀레니엄 세대의 생활 환경을 특징짓는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다. 1940년대 미국 30세 청년의 소득이 그들 부모의 30세 당시 소득보다 높을 확률은 대략 90퍼센트. 그러나 2019년 현재 이 비율은 50퍼센트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이들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화두는 단연 기후 위기다. 산업혁명 후의 역사를 돌아보자.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말은 체제를 불문하고 지구상 모든 국가의 비전을 특징짓는 단어였다. 산업화의 진보를 통해 다다른 곳이 기후 위기의 종말론적 파국이라는 사실, 경제 개발의 서사가 도달한 결론이 글로벌 경제 위기라는 사실 앞에 다시 한 번 기다림을 역설할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기다림에 조응하는 말은 약속이다. 20세기에는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진보의 약속이 있었다. 밀레니엄 좌파들이 기다림에 지쳤다는 말은 이 모든 것과 대립한다. 그들은 대안을 원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런 것은 아니어야 한다.

 

구심력의 붕괴

밀레니엄 좌파들이 기다림에 지쳤다는 말과 함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그들의 강한 사회주의 지향이다. 최근 미국 내 29세 이하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을 다룬 여론 조사에서 대략 50퍼센트 정도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먼저 21세기의 서막과 함께 거대한 구심력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였고, 출발점이 된 것은 2010년 아랍 민주화 운동이었다. 미국의 월가 점거와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시위가 연이어졌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논란(결국 잔류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카탈루냐의 스페인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 시도가 나타나며 국제 질서의 대변동 역시 촉발되었다.

체제의 구심력 붕괴는 기성 정치 세력의 몰락을 동반했다. 잠시 유럽에서 회자된 파소키제이션(Pasokization)이라는 말에 주목해 보자. 그리스의 양대 정당 중 하나였던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사회당(PASOK)2010년 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지지율 급락을 경험했고, 2015년 총선에서는 제7당으로 몰락한다. 1980년대 이후 긴축 기조의 친자본 정책을 받아들이며 일어난 노동계급 지지 기반 이탈의 결과였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향들이 네덜란드와 프랑스와 독일 등지의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연이어 나타났다. 파소키제이션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풀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사회당화’. 조롱 섞인 이 말은 유럽사회민주주의의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 것을 함축한다.

사회민주주의의 몰락은 동시에 노동계급의 동요를 불렀다. 20세기 혁명의 거점이라 여겨졌던 중화학공업 산업단지는 경제 위기의 광풍으로 혼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미국 대선을 경유하며 이런 표현이 등장했다. ‘앵그리 화이트’. 이 표현 끝에 붙는 단어가 노동계급이다. 화가 난 백인 노동계급은 자신들의 직장을 이주노동자들로부터 보호해 주겠다고 선언한 트럼프를 지지했다. 백인이 중심에 된 서구의 구 혁명 중심지들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새로운 극우 정당 독일의 대안(AfD)의 주요 정치적 거점은 구 동독공산당과 현 좌파당의 거점이었던 구 동독 지역이다.

대중의 우파적 동원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대중의 좌파적 동원은 불가능할까. 미국 29세 이하 유권자들 절반이 지지한다고 말한 사회주의의 이름은 민주사회주의. 이 세력이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공유하는 몇 가지의 관념이 있다. 하나는 기성 정치는 시효 만료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민들의 목소리가 표현되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동원의 시작, 그런데 어떤 동원인가

영국과 미국의 신흥 좌파들은 최근 민주사회주의의 정책적 경향을 사회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의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핵심 특징들을 정리해 보자.

첫째는 20세기의 종말론적 파국의 상황과 연관된다. 미국 민주당 좌파 오카시오 코르테스가 최근 대표 발의한 그린뉴딜 결의안은 이 파국에 대한 잠정적 대안을 담고 있다. ‘그린뉴딜에서 뉴딜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루스벨트 정부의 확대재정정책의 기조를 받아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확대재정정책은 유색인종,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포괄하는 보다 보편적 성격을 수반한다. ‘그린은 기후 위기와 연관된다. 기후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정부의 적극적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확장될 것이고, 이것이 일자리를 창출하며 선순환 경제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린뉴딜은 산업화를 축으로 전개된 20세기 경제 패러다임과의 결별을 추구한다.

둘째는 시민들의 직접적 공론장 참여라는 문제다. 전후 유럽에서 전개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체제는 경제적 재분배 정책에 크게 의존했다. 확대재정정책을 통해 국가의 공공부문을 확장하고, 누진세 등의 세제 정책을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개별 시민의 일상에서는 시장의 개인주의화, 경쟁, 실업의 리스크가 일부분 상존하지만 중앙정부의 소득이전정책과 복지를 통해 사후적으로 이들을 규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자연스레 중앙정부의 역할은 비대해졌고, 개별 시민과 중앙정부를 매개할 장치는 (노조와 정당 외에는) 희소해져 갔다.


여기서 밀레니엄 좌파는 기다리는 데 지쳤다라는 말의 함의를 다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개별 시민들이 공론장과 맺는 수동적 관계에 한계가 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 세대가 지금 당장 행동하기를 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후 파업의 열풍을 선도하는 것은 전 세계 10대 청소년들이다.

마찬가지로 밀레니엄 좌파들 사이에서 최근 새로운 도시 대안모델로 주목하는 미국의 클리블랜드와 영국의 프레스턴시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 이 두 도시의 공통점은 기존에는 산업중심의 도시였다가 2000년대를 전후로 기업들이 자본을 빼 가며 산업생태계에 위기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지방정부가 중심이 되고 지역 공공기관과 비영리기관의 주도하에 산업생태계의 재편에 들어갔다. 공공연구기관이 시장 관계망들을 조사한 후, 지역 주민들이 직접 노동하고, 경영에 참여하는 노동자자주관리형 협동조합 모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된 이 두 도시의 모델을 부르는 개념 중 하나가 지역기반형 경제(place-based)라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시민들을 잇는 것은 사실상 선거를 제외하면 사회계약이라는 추상적 원리뿐이다. 반대로 지역은 지방의 공공기관과 시민의 참여가 만나는 공간으로, 시민사회의 새로운 합의의 모델을 구축하는 장이 될 수 있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남용되는 민관협치형 거버넌스 모델은 사실상 공공부문을 민간의 시장으로 외주화하는 형태를 띠었다. 한국의 민관협치 모델로 주목된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를 끼고 노동3권을 잃은 저가의 노동력이 현대차에 외주화되는 구조를 띠었다. 공공부문을 시민들의 직접 참여의 장으로 환수하는 클리블랜드 지역 기반 모델은 새로운 공적 참여의 모델로서 이 민관협치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밀레니엄 세대는 누군가에 의해 대의되는 것을 꺼린다. 대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참여는 직접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이제 지금 여기의 대안을 필요로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9월호

세상 보기

존버 씨의 시간들

 

금지되어야 할 표현 통상적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저자

 

 

정신적 이상 상태의 양상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는 자해 행위로 인한 결과인 자살 자체를 원칙적으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몇 가지 예외를 인정하는데, 그 구체적인 경우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 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 둘째,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한 경우. 셋째,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6: 자해 행위에 따른 업무상 재해의 인정 기준).

그런데 세 사유 모두 정신적 이상 상태또는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정신적 이상 상태라는 전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차치하고라도, 정신적 이상 상태의 정도에 대한 내용들이 그렇게 명확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호함은 판정 과정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판정 내용의 모호함으로 인해 판정 결과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업무상 자살 사유로 산재를 신청한 케이스 가운데 2017년 판정된 총 63(승인 23건과 불승인 40)을 대상으로 업무 스트레스 - 정신적 이상 상태 - 자살 간의 관련성을 판정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에 대한 판정 내용의 불명확성이 어떠한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구체화해 보자.

우선, 업무로 인한 자살이 산재로 승인 받으려면 업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이 발생했음을 밝혀야 하는데, 업무와 정신적 이상 상태 간의 관련성을 밝히는 과정에서 정신적 이상 상태를 유발할 만큼의 업무 스트레스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23건의 승인 사례에서 발견되는 정신적 이상 상태의 내용들을 <재해조사서><업무상질병판정서>에 기술된 대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너무 억울하고 이번 일로 인해 직장과 당신 그리고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두려워 죽겠다.”

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만두고 싶다. 아예 사라져 버리고 싶다.” 

손톱 옆살을 물어뜯는 등의 불안한 모습,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죽을 것 같다,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 등의 말을 수시로 함

걱정에 몹시 불안해하였고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흥분함, 평소와 다르게 입으로 손톱을 뜯으면서 땀을 흘리고 혼자 중얼거림.

재해 직전에 보인 행동들은 평소 때의 모습이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고 하지 않던 욕도 처음으로 했고 밤중에 소리를 지르기도 함.

주위의 시선이 너무나 따갑다. 인간적으로 나를 이렇게 매장당하게 할 줄 몰랐다. 억울하고 너무나 원망스럽다.”

자기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개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는 말을 함.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도살장 끌려가는 소가 된 기분.”

위에 언급된 스트레스의 양상들은 자살에 이를 만큼의 정신적 이상 상태로 제시되고 산재 승인에 합당한 이유로 설명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스트레스의 양상들이 발견되어도 승인되지 못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통상적인 수준의 스트레스라니?

여러 불승인 사유들 가운데 눈에 띄는 지점은 정신적 이상 상태에 이를 만큼의 스트레스는 아닌 통상적인 수준의 스트레스라는 설명 방식이다. 통상적인 수준이란 이유로 자살을 업무상 사유로 판정할 수 없다는 사례들을 <재해조사서><업무상질병판정서>에 기술된 대로 몇 가지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역할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업무 스트레스 및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통상 업무에서 적응할 수 없을 만큼 과다한 부담으로 보이지 않고 20여 년간 해당 업무 근무 이력을 감안해 볼 때, 업무 스트레스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

(새로운 인사관리 업무 등의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지만) 고인이 그동안 수행하던 일상적인 조리 업무의 일부로 판단되고 자살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을 직무 요인이나 업무상 스트레스가 없었다.”

업무 부담이 컸던 것으로 보이나, 통상적인 수준의 업무 수행으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해 민감하게 책임감을 느끼는 개인적인 소양이 사망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매출 압박에 대한 스트레스는 통상적인 수준(타 영업팀장들도 있는 부분)이다.”

환경상 업무 스트레스(조직 개편으로 부하 직원 1명 퇴사, 영업 관련 비용으로 추정되는 채무로 이에 대한 독촉 전화 수시로 받음)가 없지 않았으나, 통상적인 범위 내라고 보이고 업무 환경의 결정적 변화, 충격 사건, 인간관계 변화 등 없어 과도한 스트레스로 정신 이상 상태에서 자살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인사이동(재해 1주일 전 타 부서로 이동)이 업무상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나, 인사이동이 고인에게 특정하여 실시된 것은 아니고 고인의 업무적 스트레스는 일반적 기자 업무 환경에서의 스트레스다.”

관리자로서의 책임감과 업무 실적에 대한 부담감 등 평소 업무 스트레스가 있었다 하더라도, 20여 년간 같은 업무를 수행해 해당 업무에 익숙했다.”

업무상 스트레스(자존감 상처, 의욕 저하, 우울감, 불면, 분노 감정 등의 증상으로 진료)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어 보이나, 우울증 등 질병에 이를 만큼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스트레스 요인을 확인하기 어렵다.” 

업무 질이나 강도가 정황상 문제적인 것으로 추정되더라도 많은 경우 통상적인 수준’, ‘자살을 유발할 정도의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보기 어려움’, ‘○○년 차에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과중한 업무는 아님’, ‘업무에 있어 큰 변화라고 볼 수 없는 수준등의 이유로 불승인되는 경향이 높다. 그런데 불승인 사례의 업무 스트레스들을 왜 통상적인 수준이라고 보는지에 대한 근거들을 <재해조사서><업무상질병판정서>에서는 찾기 어렵다. 판정 내용의 불명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목이다.

국어사전에서 통상은 특별하지 않고 늘 예사로 있는 일이나 상태를 뜻한다. 그 일이나 상태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관행적으로 오래전부터 해 오던 것들이란 의미들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너만 힘드냐, 다들 힘들다. 그 정도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식이다. 이러한 통상적인 수준이나 ○○년 차 정도의 업무라는 설명 방식은 업무 스트레스를 재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려한 것도 아니요, 당시 업무 맥락에 기초해 고려한 것이라고도 보기 어렵다.

심히 주관적일 수 있는 통상적이란 표현 그 자체는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판정의 언어들은 더욱 타당하고 객관적 자료에 기초한 판정 내용을 담는 것이어야 한다. 사실 우리가 통상적인 업무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그 수준이란 것이 이미 문제의 정도를 넘어선 상태라는 점을 먼저 인지하고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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