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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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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11월호

일터 이야기

작은책 노동 상담소

 

 

복귀하니 회사가 사라졌다

박공식/ 이팝 노동법률사무소, 작은책 자문 노무사

  

 

박미래 씨(가명, 40)는 올해 초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경력이 있었기에 일을 시작하고 담당 업무인 회계 경리 업무를 거침없이 해 나갔습니다. 회사는 규모가 상당히 큰 ○○클럽입니다. 박미래 씨는 근로계약서를 요구하고 4대보험 가입을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박미래 씨가 입사한 지 한 달 뒤에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사유는 사업주 명령 불이행이었습니다.

해고통지서를 들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뛰고 그저 두려웠습니다. 둘레에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법대로 해 보자.’ 하고 의지를 다지며 노동위원회라는 곳에 가서 직접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부당해고구제신청이 접수된 것을 알고서는 바로 업무 복귀를 명령했습니다.

회사는 첫 번째 복귀한 날부터 본격적으로 감시와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중 개인 휴대폰 사용 금지, 화장실도 최소 시간으로 다녀올 것, 잡담 금지를 지시하고, 모든 업무에서 배제하고 그날그날 업무만 지시했습니다. 뭐만 하면 꼬투리부터 잡고서 경위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당당하게 업무 지시에 따라 일을 했는데 경위서를 작성하라고 하여 작성한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회사는 경위서를 다시 작성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경위서 작성으로 하루를 다 보낸 적도 여러 날입니다.

경위서가 여러 장 쌓이자 회사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박미래 씨를 해고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다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직접 접수했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했습니다. 회사도 어디서 법률 자문을 받는지 반박 서류를 치밀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박미래 씨는 그보다 더 꼼꼼하고 치밀하게 부당해고 이유서를 노동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노동위원회는 회사의 징계 해고는 부당해고라고 판단했습니다. 회사는 이번에도 복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복귀하는 날 출근하니 회사가 그 사이에 이사를 갔습니다. 문 닫힌 회사 건물 앞에서 대표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대표님, 어디로 갈까요?’ 회사는 그제야 박미래 씨에게 문자로 옮겨 간 주소를 보내왔습니다.


박미래 씨가 두 번째 복귀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회사는 코로나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는 핑계로 일방적 휴직 명령을 내렸습니다. 박미래 씨는 3개월 뒤에 다시 출근했습니다. 회사는 인력 재배치를 한다는 이유로 다시 출근한 박미래 씨에게 회계 업무와는 전혀 다른 재고 업무를 시켰습니다. 박미래 씨는 꿋꿋하게 출근을 하며 무거운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고 파악 업무를 했습니다.

회사는 다시금 박미래 씨만 콕 집어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세 번째 해고 사유는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였습니다. 박미래 씨는 계절이 두 번 바뀔 동안 노동위원회를 세 번째 찾아갔습니다. 문래동에 있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를 찾아가는 길이 익숙해질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 판정에서도 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라고 했습니다. 회사의 해고 사유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부당해고 인정을 받은 날 회사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세 번째 복귀 명령입니다. 박미래 씨는 다시 출근했습니다.

회사는 박미래 씨에게 야간 업소 입구에서 체온 측정 등의 업무를 지시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일을 하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회사 건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유 없이 거부당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주변 건물의 화장실을 찾아 어두운 길목을 뛰어갔다 와야 했습니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 이런 것이 직장 내 괴롭힘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박미래 씨는 지금도 회사의 괴롭힘에 맞서 힘쓰고 있습니다. 동료들의 감시, 이유 없는 업무 배제, 알 수 없는 업무 배치, 업무 시설 사용의 제한, 부당해고와 싸우는 동시에 직장 내 괴롭힘에 둘러싸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동료들은 괴롭힘인 줄 알면서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외면하고 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97월에 시행되었습니다. 그 인정 요건은 첫째, 가해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둘째, 그 행태가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셋째,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등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률(근로기준법 제76조의2, 76조의3, 109조 제1)에는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는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반쪽짜리 규정이라고 합니다. 다만 사업주에게 괴롭힘 신고를 한 이유로 피해자에게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에는 회사를 처벌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피해자가 회사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였음에도 별도의 조치가 없는 경우 고용노동청에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청은 이 경우에도 사업장 지도 개선 방식에 머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 싸울 때 동료 근로자들의 외면 그리고 입증 책임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동료를 외면하지 않고 응원하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사람 곁에 열려 있는 <작은책> 노동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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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5:20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박소영


엮은이의 글 

 

2021년 새해를 맞습니다. 지난 1년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을 참 많이 바꿔 놓았습니다. 날마다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인지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느라 작은책도 연말연시 모임이나 행사는 아예 계획하지 않았고요, 다달이 독자분들과 유일한 소통 창구인 글쓰기 모임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하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인터넷으로 접속을 하니 멀리 지방에 계신 독자분들도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시절에 맞게 독자님들께 다가갈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새해부터 안건모의 사람여행연재를 시작합니다. <작은책>과 인연이 있는 분들을 만나 그분들의 삶을 여행하고자 합니다. 1월호 사람여행의 첫 주인공은 제주도에서 집 없이 사는 최성희·최상천 부부입니다. 맘 편히 여행 다니기 어려운 시절이니 <작은책>을 읽으며 함께 사람여행을 떠나기로 해요.

올해도 <작은책>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바뀐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새로 시작한 꼭지의 필자님들과 함께 다달이 웃고 우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요. <작은책> 자문위원인 정태인 님의 희망의 경제학과 홍세화 님의 낮은 곳, 나의 자리로도 연재됩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작은책>은 작고 낮은 곳에서 독자님들과 함께하겠습니다. 독자님들, 늘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1215

유이분 올림

 

목차

 

4 안건모의 사람여행

제주 니어링 부부 최씨네안건모

24 엮은이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26 추접스런 젊은 여자의 김장 체험기 장진영

29 코로나19로 노인 연대가 핀다 고현종

33 1인 가구, 수술 동의서 서명은 어떻게? 권영란

37 아버지 때문에 글을 쓰고 싶었다 전혜진

43 50대 백수 아줌마의 가출, 문제는 이다 김영주

47 살아온 이야기(1)

돈에 관한 혼돈 속으로 최현숙

53 나는야 뉴욕의 무료 변호사

국보 빵잽이 미국 변호사 되다 남수경

57 우리 동네 주치의

조폭 아저씨의 신박한 건강법 추혜인

61 요즘 중딩 교실 이야기

저기요, 고객님? 체온 재게 마빡 좀안정선

66 남해 바다 어촌 일기

물고기들이 자를 들고 다닌다? 황은주

70 제소라의 아는 여자

아는 여자를 시작하며 제소라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74 우리가 뉴스다 윤미영

80 신나게! 독하게! 당당하게! 정민규

86 한 시간가량 소명했는데 귓구녕이 막혔나 최창덕

92 작은책 법률 상담소

부당 징계에 대항하는 법 김예지

96 작은책 노동 상담소

복귀하니 회사가 사라졌다 박공식

 

100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102 낮은 곳, 나의 자리로

낮은 자리, 가장자리가 편해 홍세화

106 공공의료 이야기

병상은 많은데 왜 부족하다는 걸까 문정주

112 희망의 경제학

희망의 경제학을 시작합니다 정태인

118 생태 이야기

근대 문명을 버려야 행복한 생태 문명 박병상

124 어린이 해방과 평화

대우주의 말초는 오직 어린이에게 있습니다 이주영

130 이야기가 있는 사진 최인기

132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소녀들이여, 두려움 없이 말하라 김현진

136 독립영화 이야기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들 류미례

142 조재도의 시 읽기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2012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재난 지원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김유진/ 대한민국 9급 공무원

 

 

주민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2년차 9급 공무원이다. 내가 일하는 주민센터에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 민원인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거다. 어떤 때는 정말 다들 손에 손을 잡고 사이좋게 함께 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꺼번에 몰리기도 한다. 그 시간 동안에는 정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빠진다. 점심시간 중에도 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민원을 봐야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요즘, 잘릴 염려 없고, 어쨌든 입에 풀칠은 하고 사니 나는 운이 좋구나 싶다가도, 한 번씩 인터넷상에서 공무원들을 놀고먹는 철밥통에 세금이나 축내는 한심한 존재로 싸잡아서 얘기하는 댓글들을 보면 좀 억울하기도 하다.

내 경우만 해도 몇 년에 한 번 주민센터에 가서 민원을 볼까 말까 하기 때문에, 뭐 사람들이 그리 있을까 생각들 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정적의 시간 동안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봤던 사람들에게는 주민센터가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롭게 일하는 곳으로 비치기도 할 테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화된 지금도 단골 민원인들은 있다. 어떤 민원인들은 마실 삼아 주민센터에 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온다. 아침에 번호 대기표의 전원 스위치를 올리면서 오늘은 좀 사람들이 덜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마치 보름달을 보며 소원 빌듯이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야 화장실도 제때 갈 수 있고, 점심도 체하지 않게 먹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악성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요즘 일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내재되어 있는 화가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질라치면 화를 내고, 규정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 달라고 떼를 쓰는데 안 된다고 하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고, 직원이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존감 뭉개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그야말로, 던진다. 과연 이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나라는 공무원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도 이 일을, 먹고살기 위해 직업으로 택한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저 위에 계신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같은 말단 공무원들은 말이다. 비록 '노동자의 날'에 노동자로 대접받지 못하기는 하지만, 월급을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어 보면 거의 최저시급이고, 민원인들이 갑질을 하더라도 내 생각이나 주장을 얘기하면 더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하는, 그래서 억울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 맘속에 꾹꾹 눌러 담아야만 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욕도 배부를 정도로 참 많이 먹은 것 같다. 우리가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재난 지원금과 관련된 경우였다. 먼저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정부에서 1차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고 기사가 난 이후 주민센터로 그와 관련된 문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지침도 안 내려오고, 우리도 아는 거라고는 기사로 난 정보가 다였는데 말이다. '지침이 안 내려와서 안내를 드릴 수가 없다'는 답변을 하면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있지만, 주민을 위해야 하는 주민센터에서 그것도 모르고 그 정도의 답밖에 못 해 주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재난 지원금 지급이 시작되면서, 야근에, 주말 출근에,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갔지만,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해외 체류 등으로 지원금 수급의 자격이 안 된다거나, 가족이라 세대 분리가 안 되는 등의 사유로 본인들이 원하는 만큼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비난의 화살들이었다. 우리도 돈 더 드리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럴 땐 진짜 내 월급이라도 까서 드리고 이제 그만 하시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보게 된 경우가 많아, 사람에 대한 회의감과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괴로웠다. 물론 좋은 민원인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인한 상처와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인 걸까?

나는, 아니 대부분의 말단 공무원들은, 하루하루 성실히,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길 원한다면, ‘내가 내는 세금으로 너 먹여 살리고 있는데 이러느냐?’와 같은 말은 하지 말아 줬으면 한다. 우리도 세금 누구보다 꼬박꼬박 성실히 납부하고 있고, 돈이라는 건 원래 돌고 도는 존재라, 그 사람들이 말한 세금이 우리 월급에서 차지하는 지분만큼 나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각종 부문에서 성실히 소비하고 있는 돈이 흐르고 흘러 그들에게 눈꼽만큼이라도 가는 것이니 말이다.

서류 한 장에도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고 미소 지으며 말씀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다. 그런 분들 덕분에 힘을 얻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작은 미소, 따뜻한 말 한마디의 소중함을 더욱더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posted by 작은책
2020. 12. 30. 13:49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2020년 마지막 호입니다. 올해는 기승전코로나였습니다. 요 며칠 새 감염자가 200명 가까이 나와서 거리두기 1.5단계로 가느냐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아무리 한국이 코로나 확산을 잘 막는다 해도 한계가 있을 터인데 얼른 백신이 나와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올해 연재가 끝나는 꼭지가 많습니다. <작은책>을 펼치면 맨 앞에 나오던 책이 이끄는 여행꼭지가 끝납니다. 그 밖에 끝나는 꼭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항공사 객실 승무원 김수련 씨의 살아온 이야기’,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교장 일기, 시 읽고 감상하기,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옛 그림 속 여성들,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존버 씨의 시간들,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책 읽고 딴 생각, 두꺼비 손글씨입니다. 그동안 마감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글을 보내 주신 모든 필자님들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드립니다.

20211월호부터는 책이 이끄는 여행을 마치고 전국에 있는 <작은책> 독자를 찾아가 그이들의 삶을 인터뷰합니다. <작은책> 독자님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평범하게 사는 분도 있고, 길거리에서 투쟁하는 분도 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도 있고, 귀촌·귀농한 분들도 있겠지요. 혹시 찾아간다고 연락을 드리면 거절하지 마시고 반갑게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꼭지를 연재해 주실 분은 모두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참,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언제 밝혀지는 걸까요?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20201118

발행인 안건모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책에만 있는 문학의 자리 하명희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연필 두 자루를 못 사게 했던 남편,

백화점 가라고 카드를 주었다 임지현

18 편의점에서 만난 사람들 백은주

22 오늘도 전쟁 김병수

26 공부만 하는 바보 임혜진

29 재난 지원금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 김유진

33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에헤라디야! 김장 잔치를 벌였구나 윤혜신

39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40 살아온 이야기

가 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시간 김수련

46 시 읽고 감상하기

봄의 기억 박영수

49 교장 일기

교장의 역할과 남은 임기에 할 일 최관의

54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독감 백신 맞아야 할까요?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58 경영진이 큰 착각을 했나 봅니다 정민규

62 와장창!” 유리가 깨지는 일터 남기웅

67 유승민 전의원에 대한 만감(萬感) 최배근

73 작은책 법률 상담소

코로나19 시대의 노동과 돌봄 전다운

 

특집_ 내가 아프면 누가 돌볼 것인가

78 딸부잣집 둘째 딸의 돌봄에 대한 고민들 추혜인

84 당신은 어떤 노년을 살고 싶습니까? 박재만

88 돌보는 능력과 돌봄을 받는 능력 이은주

92 여든아홉 살 엄마의 돌봄 강정민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우리도 오르고 싶다, 그 봉우리 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아감벤과 백인주의 문명의 몰락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어린이들에게 놀이터를 만들어 주시오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흙을 멀리하면 몸이 허약해진다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현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 평가 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박물관이 가까워지는 네 가지 방법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서진학교는 문을 닫지만 그것이 끝이 아님을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삶의 지혜까지 이끌어 내는 과학 책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2020. 11. 13. 16:27 기획 특집

<작은책> 11월호

특집_ 전태일 열사 50주기, 아동·청소년 노동

 

 

생계형 알바를 하는 학교 밖 청소년

이정현/ 일하는학교 사무국장

  

민주는 스물네 살 청년이다. 열세 살 때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돈 문제로 다투는 일이 많던 엄마 아빠가 그 무렵 완전히 이혼을 했고, 건강이 나빠진 엄마는 일을 하지 못했다. 민주는 학교 준비물도 사고 친구들과 간식도 사 먹으려고 떡볶이집에서 시급 2000원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잠깐 일하고 용돈을 벌려는 생각이었지만, 이후 민주의 삶은 '끝없이, 쉼없이' 일해야 하는 알바 생활로 이어졌다. 엄마의 병이 깊어지고 이혼한 아빠가 몇 해째 생활비를 보내 주지 않아 민주는 고등학교 입학 두 달 만에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유소, 피시방, 호프집, 제빵 공장. 민주는 몇 달에 한 번씩 여러 가지 일을 오가며 일했다. 한동안 일하다가 몸이 지치면 잠시 그만두고 쉬었다가, 돈이 부족해지면 다시 일을 하러 나가는 패턴을 반복했다.

 

불성실하고 예의 없는 자퇴생

일하는 곳을 계속 옮기게 되면서, 민주에게는 '불성실하다'거나 '끈기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10대 청소년이 긴 시간을 지속해 일하기는 힘들었다. 일이 어렵거나 정해진 시간을 지켜 출퇴근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민주를 가장 지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일터의 사람들'이었다. 사장은 민주가 '당연한 것을 모른다'며 자주 혼을 냈고 민주가 스스로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근로계약서나 주휴수당에 대해서 말해 주지 않았다. 민주가 의지하고 싶었던, 그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매니저나 선임들은 나이 어린 민주를 무시하거나 텃세를 부리며 일터에서 존재감을 내세우려 했다. 사장이나 선배들이 던지는 수많은 거칠고 아픈 말들을 민주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마음이 지치면 몸이 지치고 아파 왔다. 하지만 병원에 가거나 쉴 수 없었다. 민주는 고등학교 졸업도 안 한 자신을 사회가 어떤 눈으로 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병원에 간다고 조퇴를 하거나 결석을 하면 불성실하고 무례한 아이로 낙인찍히기 쉬웠다. 민주는 아파도 참고 버티며 일했다. 그러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어지면,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연락을 끊고 일을 그만뒀다.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무서워 아예 연락처를 차단하거나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민주가 '불성실하고 예의 없는 자퇴생'으로 평가되고 기억되는 악순환의 시간들은 그렇게 지나갔다.

 

알바가 직업인 청년들

우리 주변에는 '생계형 알바'를 하며 살아가는 청년,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열악하고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놓여 있지만, '알바'라 부르기에는 주 5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고 그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 가야 하는 사실상의 직업 노동자들이다.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아무런 지지를 받을 수 없었던 그들은, 의미없게 느껴지는 학교 생활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친구들이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닐 무렵인 17세에 첫 알바를 시작한다. 하지만 절박한 생활환경임에도 불구하고 한곳에서 오래 일하지는 못한다. 이들 중 35퍼센트는 6개월 이내에, 70퍼센트가량은 1년 이내에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생계형알바 실태조사 보고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 2016).

 

'불성실'이 아니라, 마음의 고통과 싸우는 과정

오래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른들은 '인내심이 없다', '불성실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그들이 '그만둔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마음의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학교'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모르고 부당함을 느끼는 일에 대해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겪어 온 '비난과 공격'을 이겨 내는 방법도 아직 갖지 못했다. 그래서 '민주'처럼 어렵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홀로 참고 마음의 고통과 싸우다가 단절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뿐이다.

민주가 그랬던 것처럼, 10대에게 일터는 어렵고 두려운 곳이다. 너무나 일방적이고 불친절하고 윗사람이나 선배들 관계에 눈치껏 끼어들지 못하면 쉽게 왕따가 되는 힘든 곳이기도 하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을 '당연한 상식'이라며 되레 혼을 내는 막막한 곳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일터'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학교'라는 성장의 유예 기간, 친구를 만나 어울리는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 좌절과 은둔의 시간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그들은 '일과 일터'를 통해서 성취의 경험들을 채우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는 일터가 '학교'이고 '삶의 터전'이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나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서, 조금 더 배우고 성장하기 위해서 그들은 일한다.

이 청소년들을 위해서 일터가 변화하면 좋겠다고 꿈꾸고 싶지만, 사실 너무 허황되고 요원하다. 다만 내 곁에 이렇게 일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고, 조금 더 이해하고 응원할 수는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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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3. 15:57 기획 특집

<작은책> 202011월호

특집_ 전태일 열사 50주기, 아동·청소년 노동

 

 

열세 살 때 나는 7번 시다였다

신순애/ 열세 살 여공의 삶저자

 

 우리 아버지는 1919년 남원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죽지 않기 위해 산속에서 약 6개월을 살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고생을 하셨다. 오빠들은 한국전쟁 때문에 생긴 장애로 모두가 불편한 몸으로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는 삯바느질 혹은 품팔이 등으로 겨우겨우 먹고살아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난 나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하고 싶은 공부 다 포기하고 살았다.

우리 가족은 1965년에 서울로 상경하였고 중랑교 무허가촌에서 살았다. 나는 당시 중랑교 휘경동에 있는 PAT 공장을 찾아갔다. 공장장은 면접에서 "꼬마야, 몇 살이야?" 하고 물었다. 나는 "열두 살이요." 했더니 공장장은 "집에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 계신 엄마를 돕고 싶었다. 주인집 언니는 평화시장의 미싱사였다. 나에게 평화시장에서 재봉틀 기술을 배워 보라고 권유했다.

1966년 봄, 나는 평화시장 3층 삼양사 아동복 블라우스 만드는 공장에서 7번 시다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에는 시다들은 다락방 마룻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일을 해야 했다. 그곳에선 옷 라벨 뒤에 번호를 꼭 써야 했다. 왜냐하면 혹시 잘못된 옷이 만들어지면 수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7번 시다였다. 내 옆에는 1번 미싱사와 1번 시다가 있었고, 3, 5, 2번 미싱사와 시다가 함께 있었다. 당시에 S, M, L, XL, XXL, 이렇게 다섯 가지 사이즈가 있었다. 시다들은 일감을 받으려면 다락방에서 내려가서 받아 와야 했다. 여름에는 하루에 9~10번 정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고, 겨울철에는 두꺼운 잠바를 만들기 때문에 서너 번으로 줄어들었다.

1960~70년대 당시 여공들은 열세 살 아동이었다. 사진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출근 시간은 아침 8시였는데 퇴근 시간은 각자 조금씩 달랐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남에서 다니는 노동자들은 밤 1030분 퇴근, 창동에서 다니는 노동자들은 11시 퇴근, 나는 1120분에 퇴근을 하는데 통금에 걸리지 않으려고 평화시장에서 동대문까지 달려가야 했다. 당시 사장들은 창신동, 신당동 주변에서 다니는 노동자들은 제일 좋아했다. 집이 가까우니까 밤 1130분까지 일을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다들은 점심을 먹고 바로 또 일을 해야만 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때 도시락 먹고 또다시 일을 했고,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밤 1120분까지 일을 했었다. 그 때문에 나는 척추가 바로 서지 못해 건강하지 못하다.

나는 삼양사에서 약 4년 일을 했지만 이름을 아무도 모른다. 7번 미싱사 언니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얼굴은 계란형이었고, 오뚝한 코에 눈이 아주 빛이 났고, 머리는 양쪽으로 늘 따고, 앉아서 미싱을 했다. 약간 여드름도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모른다. 한 번도 이름을 불러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알게 된 1번 시다는 윤자이다. 윤자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 다락방에서 내려가 일감을 받아 온다. 시다들은 쭉 붙어 있는 라벨을 하나하나 쪽가위로 잘라서 미싱사에게 줘야 한다. 1번 시다 윤자는 M자를 자르는데 잘못 잘라 W로 나올 때가 많았다. 1번 시다는 다시 다락방에서 사다리로 내려가서 받아 오는데 미싱사들은 절대 그냥 주지 않고 혼을 냈다. 1번 시다는 혼이 났고 울면서 일을 했었다.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하루는 내가 "1번 시다, 왜 매번 혼이 나야?" 물었더니 1번 시다가 ", 내가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를 어떻게 알아?" 했다. 영어 M자와 W자를 구분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1번 시다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하느님, 부처님, 오늘 M자 일감을 받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출근을 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는 M자 사이즈 라벨을 잘라 주는 것을 도와주었다. 라벨 10개 자르는 시간은 약 10초면 충분했기에 나는 그 일을 도와주면서 윤자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삼양사에서 나와 진선미공장에서 일을 할 때에도, 윤자는 정전되면 나를 꼭 찾아와 나를 보고 싶어 했다. 윤자와 나는 그 인연으로 1978년에 노조에서 한글반 공부를 조합원들과 함께 배우기도 하였다.

나는 하루 14~15시간 일을 하면서도 기술자만 되면 당시 가장 높은 삼일 빌딩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면서 열심히 배웠다. 첫 월급으로 700원 받았는데, 미싱사는 1만 원~12천 원 정도 받았다. 나는 1만 원만 받으면 우리 가족 생활비를 하고도 저축할 수 있을 거라고 계산을 하였다. 공장에서는 물 한 모금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물 먹고 싶은 것, 배고픈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 참는 것은 미치도록 힘들었다. 화장실 한 번 가면 20~30명이 줄을 서 있어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는 한 달에 두 번, 첫째 셋째 일요일이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쁘면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일요일 아침까지 24시간 꼬박 밤을 지새웠다. 하지만 시다들은 월급을 더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추석과 설 명절에 설탕 3킬로그램, 혹은 식용류 1.8리터 받은 기억이 있다.

나는 미싱사가 되어서도 열심히 일을 하였다. 한 달 동안 지각이나 결근을 하지 않아서 가끔 사장님이 가게로 내려오라고 해서 500원을 특별히 받기도 했다.

사춘기가 되면서 생리를 하게 되었다. 생리를 하면 생리대를 자주 갈아 줘야 했다. 재단사는 하루에 한두 번 가는 화장실을 자주 가면 생리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은 하지 않고 화장실만 갔다고 큰 소리로 야단을 쳤다. 현대판 성희롱이다. 나는 도시락 가방에 천연 생리대를 챙겨 갔지만 장시간 일을 하다 보니 늘 부족했고, 그럴 때마다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속으로 삭이면서 일을 했었다.

1960년대는 밀가루, 우유 가루를 외국에서 지원받았다. 그 밀가루 자루는 잠바 주머니 속으로 재활되었다. 당시에는 약국에서 생리대를 팔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내 주머니에는 교통비 10원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2018년 어느 방송에서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이 생리대 구입할 돈이 없어서 운동화 깔창으로 생리대를 대신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날 밀가루 자루로 생리대를 대신했던 과거로 돌아가니, 내 몸에 진동이 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허탈하기도 했고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19701113일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하며 분신자살을 하였고, 분신 이후 청계노조가 탄생하였다. 하지만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잘 알지 못했다.

당시에 나는 진선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공장장은 "평화시장 구름다리 밑에 깡패가 죽어서 가마니로 덮어 놨으니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하였다. 나 역시 알지 못했다. 훗날 노조를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 오열하는 사람들과 전태일의 운구를 운반하는 모습. 사진_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우리나라는 2020년 현재 GDP 세계 10위권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는 청소년이 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한 지 50년이 지났지만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1960년대 열심히 일을 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2020년의 청소년들은 희망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빈부 격차 때문이다.

1998IMF 사태가 터졌을 때 정부는 공적 자금을 기업에 한없이 지원을 했다. 이제 공적 자금을 사람에게 투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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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 투자와 투기는 어떻게 다른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 전 마을이장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는 신성한 것들이다."

유명한 1854'시애틀 추장의 편지'. 모든 생명의 바탕인 "신성한" 땅 자체를 상품화하여 부동산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생각"이자, 법적·윤리적으로는 죄악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봉건주의나 노예주의를 극복한 역사적 업적을 상쇄하고도 남을, 인간과 자연의 착취와 파괴라는 해악을 극도로 보여 준다. 그 한 측면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그리고 기후위기가 아니던가?

원래 땅은 뭇 생명의 어머니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얻는 토대이자 온갖 야생동물들도 먹여 살린다. 풀과 꽃, 나비와 벌, 채소와 열매 없인 살기 힘들다. 크게 보면 강이나 바다조차 땅이다. 수산물, 해산물도 모두 땅의 산물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땅이 있으니 집을 짓고 산다. 허공의 아파트조차 땅의 기초 없인 불가능하다. 그 땅에 길이 있어 사람들이 다닌다. 학교나 일터나 문화 등 그 모든 게 그래서 가능하다. 이렇게 살림살이 관점에서 보면 땅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 토대이며, 따라서 고맙고도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요즘은 땅이 돈인 세상이 되었다. 살림살이 관점이 아니라 돈벌이 관점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땅이 돈이다. 그래서 어느 부동산 중개소의 간판에는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고 외친다. 땅에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번다는 뜻. 그러나 살림살이 관점에서 보면 이 말 자체가 거짓말이다. 왜 그런가?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서울 강남 소재의 어느 기획 부동산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철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을 고용한다. 연봉이 얼마며, 앞으로 전망이 어떠하다며 그럴듯하게 꼬드긴다. 전국의 시골 구석구석 골짜기까지 상세히 그려진 지도를 보여 준다. 요즘은 컴퓨터 내지 휴대폰으로 전국 곳곳을 들여다본다. 이들이 하는 일은 특히 세종시나 여타 혁신도시들처럼 새로이 건설되는 곳, '기회의 땅'이 열리는 곳과 그 외곽까지 마치 이를 잡듯 샅샅이 뒤져 미개발 농경지나 임야를 찾아낸다. 상대적으로 값싸지만, 머리를 잘 쓰면 금세 황금이 되는 곳들이다. 이제 투자와 투기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원래 자본의 투자 자체가 투기다. 수익에 대한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시세 차익(지대)을 노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투자는 경제학적인 용어이고 투기는 사회학적인 용어일 뿐이다.

이제 돈을 벌려면 그런 땅을 팔아야 한다. 누구에게? 중산층 이상, 돈이 좀 있는 이들에게. 그래서 매주 요일마다 부동산 세미나를 연다. '누구는 어디에 투자해 1년 만에 몇억 벌었다.' 이 한마디면 모두 눈이 뒤집힌다. 그래서 15명 내외를 한 팀으로 꾸려 매주 세종시로 '부동산 투어'를 한다. 현장까지 소풍을 가는 셈이다. 나들이를 하며 맛집도 즐기고 돈벌이도 하고! 무슨 이런 환상적인 프로그램이 다 있나, 하며 너도나도 몰린다. 좋은 말로 투자, 나쁜 말로 투기가 바로 이것이다.


현장에 가 보면 농경지나 임야(야산)가 있다. "저기에 어떻게 집을 짓나요?" 누가 물으면, 회사는 멋진 설계도를 내민다. 잘 정리된 전원주택 단지 그림이다. 200평씩 되는 땅을 하나씩 분양한다. 원래 농경지나 산을 개발하려면, 특정 용도에 맞아야 하고 각종 허가 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예컨대, 쌍방 통행이 가능한 진입로도 만들어야 하고, 행정 당국에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오폐수 시설 등 여러 가지 인프라(도로, 전기, 수도, 근린생활시설 등)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인이 하긴 힘드니 회사가 다 알아서 한다며 예비 투자자들을 안심시킨다. 이제 투자자들은 전체 비용의 1/N씩만 부담하면 된다. 개인이면 엄두도 안 날 일인데, 부동산 회사가 다 알아서 한다니, 뭉칫돈 불리고 싶은 자들은 그냥 일정한 돈을 통장으로 쏴 주면 끝이다. 세상, 참 편리하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정말 '식은 죽 먹기'. 어차피 남아도는 돈, 일정 액수의 돈만 투자하면 집 지을 땅이 저절로 생기고, 일단 산을 까부순 뒤에 몇 년 기다리면 산 위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하나 지을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시세 차익을 남기고 팔아넘기면 된다. 이렇게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

그러나 '회사''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 법이나 정책으로 규제되는 지역도 마치 규제가 없는 것처럼, 개발이 불가능한 보존 지역인데도 개발이 되는 것처럼 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청 공무원들 역시 높은 사람의 부탁이나 뇌물 앞에 거짓을 행한다. 머리와 돈을 쓰면, 불법이 합법처럼 둔갑한다. 각종 조작과 편법을 쓴다. 예컨대, 거주자가 거의 없는 농경지 한복판에 '근린생활시설' 허가가 나고, 좁은 농로가 2차선 도로로 변한다. 산지 경사도 기준을 피하기 위해 의원들을 통해 조례를 바꾼다. 이런 식이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규정을 우회한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각종 개발 정보를 남보다 우선 접하기에 땅 투기하기도 좋다. 개발업자들을 잘 도와야 미리 사 놓은 땅도 쉽게 황금으로 변한다. 일심동체다. 인생은 아름답고 땅은 황금이다!

그래서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며 술잔치, 돈 잔치를 벌인다. 돈밖에 보이지 않는 자들이 '순진한'(?) 그러나 탐욕적인 중산층을 꼬드겨 투기꾼으로 만든다. 처음엔 투자자이지만 갈수록 투기꾼으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이 '삼천리 투기강산'으로 변했다. 이런 분위기에 남북통일? 아이고, 무섭다. 북한도 투기 대상이 될까 봐 두렵다. 투기와 난개발, 기획 부동산을 잡지 않으면, 경제도 통일도 모두 헛일이다. 난개발과 투기를 확실히 잡을 장치(: 중국, 싱가포르, 에티오피아처럼 땅은 모두의 것이니 매매 금지, 건축물만 매매)를 마련하기 전에는 행정수도 세종시라든지 지방 분권 강화, 남북통일 등은 모두 헛일이다. 정치가나 행정가들, 그리고 시민들이여, 제발 정신 차리자! 시애틀 추장의 외침처럼,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임을 알기나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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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2. 16:27 알림 / 엮은이의 글

▲ 표지 그림_ 박소영


발행인의 글

 

202011, 전태일 50주기입니다. 19701113일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50년이 흘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전태일3법을 만들자고 외치고 있을까요. 여전히 전태일이 말한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태일3법이 뭘까요? 첫째, 5인 미만 사업장에게도 근로기준법적용, 둘째, 230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셋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입니다. 다 중요하지만 그중에 가장 시급한 법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최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똑같은 사고가 나는 겁니다.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최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는다면 그런 사고가 또 일어날까요? 지난 20081월에 이천시 냉동 창고에서 8명이 숨졌던 화재 참사 때 최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았다면, 20204월에 이천 물류 창고에서 3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을까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이 산재로 사망했을 때 원청 책임자를 감옥에 넣고 책임을 물었더라면 하루에 7명씩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가 됐을까요?

독자님들, 이번 특집은 청소년 전태일이 경험했던 노동이 현재는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혹시 둘레에 근로기준법도 모르고 노동 아닌 노동을 하는 아동·청소년들이 없나요? 되풀이되는 자본가들 횡포의 고리를 끊는 길은 독자님들의 관심입니다.

 

20201019

발행인 안건모

 

목차

 

4 책이 이끄는 여행

폐족을 넘어, 오직 공부 이동수

12 발행인의 글

 

살아가는 이야기

14 , 투자와 투기는 어떻게 다른가? 강수돌

19 백정과 약자 임혜진

22 집값을 내가 올렸냐?” 어이없는 친구와 절교를 했다 박영희

26 시어머니가 던진 직격탄, 애꿎은 들깨가 미웠다

하채현

29 다움의 폭력성을 말할 때 반드시 읽는 책 유채림

35 돌모루댁의 살림살이

대팟국 윤혜신

41 두꺼비 손글씨 김상화

42 살아온 이야기

밴쿠버에서 발견한 할아버지의 빗자루 김수련

48 시 읽고 감상하기

빈 들판 신경현

51 교장 일기

코로나19 시대, 나도 일을 벌여 볼까 최관의

56 한의사 권해진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곳으로 가신다는 말씀은 삼가 주세요 권해진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61 와아, 선물 주고 돈 떼 간다 김미르

65 서열업체 3사의 공동 파업 윤채원

71 작은책 법률 상담소

인터넷에 올린 허위 글, 명예훼손이 될 수 있을까요? 박시진

 

특집_ 전태일 열사 50주기, 아동·청소년 노동

76 열세 살 때 나는 7번 시다였다 신순애

82 카메라 속 아이들의 노동 이한솔

86 생계형 알바를 하는 학교 밖 청소년 이정현

90 전태일처럼 일하는 현장 실습생 김경엽

 

96 이동슈의 생활 만화 _ 삼삼한 삶

 

세상 보기

98 옛 그림 속 여성들

담장 밖의, 어떤 모임 텬로력뎡이종수

104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트럼프의 포퓰리즘 고태경

110 어린이 해방과 평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히 타일러 주시오 이주영

116 생태 이야기

인구 절벽의 고통을 최소화하려면 박병상

122 존버 씨의 시간들

이주 노동, 강산이 변해도 노예 노동김영선

128 정작 모르는 유물 이야기

그림이 된 그날의 행사들 박찬희

134 독립영화 이야기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보게 하는 영화 류미례

140 책 읽고 딴 생각

보톡스는 젊어 보이게 하는 데 쓰는 약이 아니다 변정수

144 새로 나온 책 편집부

148 지난 호를 읽고

150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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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년 10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에서 온 소식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

김계월/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부지부장

 

저는 항공기 기내 청소를 하는 노동자입니다. 20146월 아시아나항공 하청의 재하청 업체인 케이오()에 입사해서, 코로나19로 인하여 2020511일자로 정리해고가 되었습니다. 거리에 천막을 치고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고 있으며, 그 해고 판결문을 받기까지 100일 하고도 15일이 지났습니다.

저희 청소 노동자들은 승객들의 쾌적한 비행을 위해 사용했던 모포와 베개를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좁은 기내를 오가고, 의자 벨트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포켓에서 오물을 빼내며 허리를 잠시 펼 시간도 없이 반복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항공기 한 대라도 더 일 시키려고 밥시간을 지켜 주지 않아 저희는 승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 초콜릿 등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한여름 더위에 에어컨조차 틀어 주지 않아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 반복하며 일했고 캄캄한 항공기에서 손전등을 켜고 일하는 것도 다반사였습니다. 퇴근 시간도 지켜 주지 않아서 감독(중간 관리자)하고 자주 언쟁도 해 가며 퇴근 시간 지키기(퇴근 15분 전에는 비행기 청소 안 받기), 밥시간 지키기, 파워(전원) 안 들어온 비행기 청소 안 하기 등 기본적 권리 찾기를 하며 근무한 지 6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해 온 저에게 회사는 코로나19를 핑계로 희망퇴직을 하거나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서를 쓰라고 했지만, 서명을 하지 않았고 민주노조 조합원 8명과 함께 정리해고 당했습니다. 회사는 정리해고를 하기 전 4월부터 9월까지 70퍼센트의 유급휴직을 주겠다고 3161노조(한국노총 소속)와 합의한 내용을 공지했지만, 3일 만에 합의한 내용을 뒤집었습니다. 선택의 시간은 일주일뿐이었고 그 시간 동안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없는 회사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민주노조의 간부로서 이 부당한 결정에 팀장과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항의와 설득도 했지만, 고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씩 희망퇴직을 하고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를 썼습니다. 한 동료는 아끼던 작업복을 깨끗이 세탁해 "다음에 저를 불러 주면 제 작업복을 주세요" 하고 울면서 회사를 떠났고, 또 다른 동료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살이 빠진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인천공항을 뒤덮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모든 책임을 케이오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고, 위로 한마디나 대책의 말도 없었습니다. 선종록 대표라는 사람은 정말 악덕 사장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시국을 이용해 민주노조 간부들을 정리해고하는 지경에 이른 것도 민주노조를 말살하려는 속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항의하며 종각역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그것도 광주민중항쟁 40주년 기념일에 농성 천막이 종로구청과 공권력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고 두 번, 세 번 농성 천막을 설치했지만 그마저 강제 철거당해 1톤 트럭과 1인용 텐트로 농성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713일 인천지방노동위원회, 716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아 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아직도 복직 이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재벌의 횡포는 법도 무시하며 이렇듯 해고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 지난 6월 세 번째로 천막이 강제 철거된 날 1인용 텐트를 치고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노숙하는 김계월 부지부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코로나19로 원청 아시아나항공은 17천억 원이라는 고용유지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아냈지만 하청 또 그 하청 케이오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수백 명이 희망퇴직으로 무기한 무급휴직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선종록 대표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민주노조 탄압과 말살로 일관하면서 인간의 기본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아시아나 하청 노동자들이 하루빨리 복직할 수 있도록 사측을 제대로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거리에서 농성한 지도 어느덧 봄을 지나 긴 장마를 견디고 9월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살갗을 스쳐 지나는 바람이 새삼 고맙기까지 한 건 여름 내내 습하고 더운 날씨에 땀띠로 고생한 일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뜨거운 땡볕 아래에 구슬땀을 흘리며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피켓 선전을 함께해 주신 연대 동지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동지애로 남아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절대로 포기하지는 말자, 뼛속 깊이 다짐 또 다짐하며 저는 오늘도 해고자란 딱지를 떼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해고자 없는 세상을 위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재촉하겠습니다.

▲ 해고 통보 내용증명을 피켓으로 만들어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는 김계월 부지부장. 사진 제공_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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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0월호

책이 이끄는 여행

 

평등 세상을 꿈꾸며 걷는 단양팔경


_ 김용심, 사진_ 정인열

 

▲ 단양 남한강 잔도길. ⓒ작은책(정인열)


우리가 옳다!(이용덕, 숨쉬는책공장, 2020)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7개월간의 투쟁을 기록한 책이다. 직접고용 판결을 묵살한 채 노동자를 비정규직 자회사로 내모는 거대 공기업 한국도로공사의 횡포에 맞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처절하게 투쟁한다. 그 뜨거운 기록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과 아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고 일어서려는 강렬한 의지와 희망이 오롯이 담겨 있다.

▲ 우리가 옳다!(이용덕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 2020)


책과 함께 충청도 단양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함께한 <작은책일꾼 정인열 씨의 차는 하이패스 차량인지라 톨게이트를 거침없이 휭휭 지나간다. 그래서 여행길에 가끔 마주치곤 했던, 피곤하지만 선량해 보였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만나지 못했다. 그들을 일으켜 세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도로공사 관리자가 저보고 선생님, 잠깐 자리에 앉으세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댁의 선생님입니까.’ 반박했습니다. 제가 장애인으로 2002년 입사했습니다. 그동안 언제 그렇게 대우해 줬다고 선생님, 선생님 합니까. 저는 나이가 많고 직접고용이 된다 해도 얼마 다니지 못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장애인, 비정규직, 고연령, 여성···. 세상의 모든 약한 고리를 다 모은 듯한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그런데도 자신들만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많은 비정규직, 더 많은 약자들을 위해 싸웠다. 그래야 더는 자신처럼 끔찍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없을 테니까. 그래야 좀 더 사람답게살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까.

이제는 나로 한번 살아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들의 투쟁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도, 흩어지지도 않는다. 언제나 곧게 제 길을 간다. 마치 모든 이들을 품어 안는 성스러운 어머니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본래 이름: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처럼.

단양에 도착해 양방산 꼭대기에 올랐다. 비록 초모랑마처럼 드높은 산은 아니지만 양방산은 그 우뚝한 정상에 서면 단양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인다. 오밀조밀 세워진 도시를 시원하게 휘감아 내려가는 남한강 모습에 속이 탁 트인다.

▲ 양방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단양 시내 전경. ⓒ작은책(정인열)

이때 보이는 단양은 신단양이다. 1985년 충주댐의 건설로 댐의 상류에 있던 옛 단양은 거의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새로 구획된 신단양으로 이주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졸지에 실향민이 된 사람들은 고향이 그리울 때면 강둑에 내려가 하염없이 물속을 바라본다고 한다. 맑은 날이면 그 깊은 물속에서 언뜻 자신이 살던 집의 지붕이 보인다던가.

단성면 벽화마을은 그렇게 수몰된 구단양의 모습이 벽화로나마 남아 있는 곳이다. 붉은 꽃과 푸른 덩굴 사이로 간간이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 벽화마을 입구. 알록달록한 그림들 사이로 왼쪽에 있는 적성비가 눈에 띈다. ⓒ작은책(정인열)


벽화마을에서 조금 올라간 언덕에는 단양수몰이주기념관이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문은 닫혀 있었지만 주위의 수려한 경치에 취해 잠시 기념관 앞뜰을 거닐어 본다.

뜰에는 수몰 지역에서 가져온 석탑과 비석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우화교 돌다리 설명이 눈에 띈다. 마을에 꼭 필요한 다리라 모두가 호응하여 젊은이는 힘을 보태고 나이 든 사람은 곡식을 내어 돌다리를 놓았다는 사연. 그렇지. 꼭 필요한 일이라면 다 같이 호응하여 힘도 보태고 곡식도 내어 모두 함께 살길을 도모해야지. 그렇게 연대는 시작된다. 그리고 거기서 비로소 변화도 시작된다.

▲ 우화교 돌다리 기념비. 충주댐의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단양수몰이주기념관으로 옮겨 왔다. ⓒ작은책(정인열)

돈으로, 힘으로 억압하는데 우리는 연대의 힘으로 싸워야 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싸우는 동료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직도 저들은 우리가 자기들 시다바리인 줄 압니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 정규직 되는 분들도 대단하지요. 하지만 남들이 하기 싫은 일들, 꺼리는 일들을 하는 것도 대단한 거란 걸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세상의 잣대에 제 생각이 길들여진 것이죠. 노동자는 평등한 겁니다.”

그랬다. 노동은 평등하며 모든 노동자, 혹은 모든 사람들은 다 평등하다. 그 평등함을 억누르는 것이 부당함이요, 부조리며, 진짜 불법이다. 결국 문제는 하나이다. 우리가 옳다!의 저자는 그 문제를 이렇게 정의한다.

결국, 근본적 질문은 삶이 먼저냐, 이윤이 먼저냐다. 이 가치관으로 싸워야만 노동자들은 더 인간답고 풍요로운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삶이 이윤보다 앞서는 세상. 노동이 자본보다 소중한 세상. 그런 세상은 정말 꿈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으며 단양 잔도길을 걸어 보았다. 잔도(棧道)는 험한 벼랑이나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따라 낸 길을 뜻한다. 관광 목적으로 지었다지만 목적이야 어쨌든 굽이치는 남한강 자락을 따라 만들어진 절벽길 잔도의 풍경은 아찔하고 황홀하다.

본디 단양은 아름다운 절경이 많은 곳이다. 그 유명한 단양팔경도 있지 않던가. 강줄기를 따라 제7경과 8경인 도담삼봉과 석문을 시작으로 제1, 2, 3경인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두루 돌아보았다. 발길 닿는 어디나 다 절경인지라 도시의 칙칙한 잿빛 풍경에 익숙한 눈이 마냥 행복해진다.

▲ 단양 제1경인 하선암. 널찍한 마당바위 위로 보이는 크고 둥글넓적한 바위가 하선암이다. ⓒ작은책(정인열)

마지막으로 제4경 사인암을 들렀다. 사인암은 고려 때 사인벼슬을 살았던 대학자 우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탁은 역동(易東)선생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가 어찌나 역학에 밝았던지 역이 동으로 넘어왔다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 한다. 또한 우탁은 임금 앞에서도 꼿꼿한 성정으로 유명한데 고려사에 그 모습이 잘 나와 있다.

우탁이 흰옷에 도끼를 메고 궁궐 앞에 거적을 깐 채 왕의 잘못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하들이 상소문을 펴들고 감히 읽지 못하는데, 우탁이 크게 소리를 질러 신하로서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않은 죄를 알고 있느냐!’ 하고 매섭게 꾸짖었다. 신하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충선왕도 부끄러워했다.”(고려사109 <우탁 열전>)

▲ 단양 제4경인 사인암.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풍인 양 힘차게 서 있다. ⓒ작은책(정인열)

권력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기개가 돋보인다. 우탁이 옳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고, 부끄러움은 가르쳐야 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저 비겁한 자본을 향해 우리가 옳다!”고 외쳤던 것처럼. 그래야 자본가들도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더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뒤흔들 수 있는 진짜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깨닫지 않겠는가.

노동자 계급에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과 판매, 서비스의 주체로 마음먹으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단결과 협동, 연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톨게이트 투쟁은 그 힘의 아주 작은 일부를 보여 주었을 뿐이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별의 이름은 노동자.


*<작은책> 편집위원인 글쓴이는 《문체반정, 나는 이렇게 본다》(보리, 2012)와 《백정, 나는 이렇게 본다》(보리, 2019)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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