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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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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2011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 투자와 투기는 어떻게 다른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 전 마을이장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 수 있는가? 우리에게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는 신성한 것들이다."

유명한 1854'시애틀 추장의 편지'. 모든 생명의 바탕인 "신성한" 땅 자체를 상품화하여 부동산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이상한 생각"이자, 법적·윤리적으로는 죄악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봉건주의나 노예주의를 극복한 역사적 업적을 상쇄하고도 남을, 인간과 자연의 착취와 파괴라는 해악을 극도로 보여 준다. 그 한 측면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그리고 기후위기가 아니던가?

원래 땅은 뭇 생명의 어머니다.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얻는 토대이자 온갖 야생동물들도 먹여 살린다. 풀과 꽃, 나비와 벌, 채소와 열매 없인 살기 힘들다. 크게 보면 강이나 바다조차 땅이다. 수산물, 해산물도 모두 땅의 산물이다. 집도 마찬가지다. 땅이 있으니 집을 짓고 산다. 허공의 아파트조차 땅의 기초 없인 불가능하다. 그 땅에 길이 있어 사람들이 다닌다. 학교나 일터나 문화 등 그 모든 게 그래서 가능하다. 이렇게 살림살이 관점에서 보면 땅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 토대이며, 따라서 고맙고도 고마운 존재다.

그런데 요즘은 땅이 돈인 세상이 되었다. 살림살이 관점이 아니라 돈벌이 관점으로 세상을 보니 모든 땅이 돈이다. 그래서 어느 부동산 중개소의 간판에는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고 외친다. 땅에 투자하면 반드시 돈을 번다는 뜻. 그러나 살림살이 관점에서 보면 이 말 자체가 거짓말이다. 왜 그런가? 아주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서울 강남 소재의 어느 기획 부동산이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철학을 강조하며 청년들을 고용한다. 연봉이 얼마며, 앞으로 전망이 어떠하다며 그럴듯하게 꼬드긴다. 전국의 시골 구석구석 골짜기까지 상세히 그려진 지도를 보여 준다. 요즘은 컴퓨터 내지 휴대폰으로 전국 곳곳을 들여다본다. 이들이 하는 일은 특히 세종시나 여타 혁신도시들처럼 새로이 건설되는 곳, '기회의 땅'이 열리는 곳과 그 외곽까지 마치 이를 잡듯 샅샅이 뒤져 미개발 농경지나 임야를 찾아낸다. 상대적으로 값싸지만, 머리를 잘 쓰면 금세 황금이 되는 곳들이다. 이제 투자와 투기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원래 자본의 투자 자체가 투기다. 수익에 대한 위험성이 크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시세 차익(지대)을 노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투자는 경제학적인 용어이고 투기는 사회학적인 용어일 뿐이다.

이제 돈을 벌려면 그런 땅을 팔아야 한다. 누구에게? 중산층 이상, 돈이 좀 있는 이들에게. 그래서 매주 요일마다 부동산 세미나를 연다. '누구는 어디에 투자해 1년 만에 몇억 벌었다.' 이 한마디면 모두 눈이 뒤집힌다. 그래서 15명 내외를 한 팀으로 꾸려 매주 세종시로 '부동산 투어'를 한다. 현장까지 소풍을 가는 셈이다. 나들이를 하며 맛집도 즐기고 돈벌이도 하고! 무슨 이런 환상적인 프로그램이 다 있나, 하며 너도나도 몰린다. 좋은 말로 투자, 나쁜 말로 투기가 바로 이것이다.


현장에 가 보면 농경지나 임야(야산)가 있다. "저기에 어떻게 집을 짓나요?" 누가 물으면, 회사는 멋진 설계도를 내민다. 잘 정리된 전원주택 단지 그림이다. 200평씩 되는 땅을 하나씩 분양한다. 원래 농경지나 산을 개발하려면, 특정 용도에 맞아야 하고 각종 허가 조건들이 맞아야 한다. 예컨대, 쌍방 통행이 가능한 진입로도 만들어야 하고, 행정 당국에 각종 인허가를 받아야 하며, 오폐수 시설 등 여러 가지 인프라(도로, 전기, 수도, 근린생활시설 등)를 만들어야 한다. 한 개인이 하긴 힘드니 회사가 다 알아서 한다며 예비 투자자들을 안심시킨다. 이제 투자자들은 전체 비용의 1/N씩만 부담하면 된다. 개인이면 엄두도 안 날 일인데, 부동산 회사가 다 알아서 한다니, 뭉칫돈 불리고 싶은 자들은 그냥 일정한 돈을 통장으로 쏴 주면 끝이다. 세상, 참 편리하다! 돈 놓고 돈 먹기가 정말 '식은 죽 먹기'. 어차피 남아도는 돈, 일정 액수의 돈만 투자하면 집 지을 땅이 저절로 생기고, 일단 산을 까부순 뒤에 몇 년 기다리면 산 위 경치 좋은 곳에 별장을 하나 지을 수도 있고, 정 안 되면 시세 차익을 남기고 팔아넘기면 된다. 이렇게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

그러나 '회사''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 법이나 정책으로 규제되는 지역도 마치 규제가 없는 것처럼, 개발이 불가능한 보존 지역인데도 개발이 되는 것처럼 속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청 공무원들 역시 높은 사람의 부탁이나 뇌물 앞에 거짓을 행한다. 머리와 돈을 쓰면, 불법이 합법처럼 둔갑한다. 각종 조작과 편법을 쓴다. 예컨대, 거주자가 거의 없는 농경지 한복판에 '근린생활시설' 허가가 나고, 좁은 농로가 2차선 도로로 변한다. 산지 경사도 기준을 피하기 위해 의원들을 통해 조례를 바꾼다. 이런 식이다.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고, 규정을 우회한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각종 개발 정보를 남보다 우선 접하기에 땅 투기하기도 좋다. 개발업자들을 잘 도와야 미리 사 놓은 땅도 쉽게 황금으로 변한다. 일심동체다. 인생은 아름답고 땅은 황금이다!

그래서 '땅은 거짓말을 않는다'며 술잔치, 돈 잔치를 벌인다. 돈밖에 보이지 않는 자들이 '순진한'(?) 그러나 탐욕적인 중산층을 꼬드겨 투기꾼으로 만든다. 처음엔 투자자이지만 갈수록 투기꾼으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삼천리 금수강산이 '삼천리 투기강산'으로 변했다. 이런 분위기에 남북통일? 아이고, 무섭다. 북한도 투기 대상이 될까 봐 두렵다. 투기와 난개발, 기획 부동산을 잡지 않으면, 경제도 통일도 모두 헛일이다. 난개발과 투기를 확실히 잡을 장치(: 중국, 싱가포르, 에티오피아처럼 땅은 모두의 것이니 매매 금지, 건축물만 매매)를 마련하기 전에는 행정수도 세종시라든지 지방 분권 강화, 남북통일 등은 모두 헛일이다. 정치가나 행정가들, 그리고 시민들이여, 제발 정신 차리자! 시애틀 추장의 외침처럼,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임을 알기나 하는가?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