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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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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5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마냥 흔쾌할 수 없는 도쿄올림픽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는 다시 축제 분위기에 달아오를 것인가? 56년 만에 개최하는 하계올림픽을 대비해 우리나라도 출전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에 돌입할 텐데, 나이 들어 그런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가대표로 선발될 젊디젊은 선수들은 일단 뿌듯하더라도 색다른 마음 준비가 더 필요하겠다.

작년 105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에 보관하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정부 주장에 동의해 물의를 빚었다. 허용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겠다지만 아무리 희석해도 방사능 총량은 줄지 않는다. 규제위원회가 오염수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늘어나는 오염수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양해하겠다는 건데, 일본 어민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우리와 일본을 포함한 세계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올림픽위원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에서 시작하려는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후쿠시마에서 개최할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를 지원할 자원봉사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이다. 핵발전소 폭발 이후 9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후쿠시마의 새로운 희망을 국제사회로 전파하겠노라 기염을 토하지만 자원 봉사자가 목표의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다는 거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일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그렇게 짐작한다지만, 도쿄에 비해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지극히 적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한술 더 떴다. 국제적 문제 제기를 외면하는 건지, ‘도쿄 2020 음식 제공에 관한 기본 전략에서 경악할 계획을 밝혔다. 올림픽 기간 동안 후쿠시마를 비롯해 지진과 핵발전소 폭발로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해 선수촌 식당에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런 방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세계의 건장한 젊은이들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셈인데,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2011년 핵발전소 폭발 이후, 후쿠시마 농산물과 그 농산물로 가공한 제품들을 먹어서 후쿠시마에 힘을 실어 주자!”던 민간 캠페인이 있었다. 그 여파로 유명 방송인과 연예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시달려야 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안전해졌을까? 그럴 리 없다. 1986년 폭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땅과 대기는 지금도 일반적 허용 기준치를 5배 넘나든다. 핵발전소 폭발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과 그 위험성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시민 거주 공간은 기준치 이내라고 홍보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생활하수가 모이는 지역이라면 여전히 위험 수준이다.

우리 정부도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연간 1밀리시버트로 규정했는데, 이하의 수치를 보이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나라마다 제각각인 방사능 허용 기준치는 그 나라의 시민의식을 반영한다. 시민이 반사능에 민감하다면 엄격하겠지만, 아니라면 그 나라의 핵 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그런 기준치는 대개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에 따른다. 방사능 위험성을 주목하며 탈핵운동에 앞장서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의 김익중 교수는 무리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해석한다.

연간 1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을 받는다면? 만 명당 1명이 암에 걸릴 확률이라고 전문가는 풀이한다. 암에 걸린다고 무조건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살아나려면 경제적이나 신체적으로 힘겨운 치료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가 예정된 후쿠시마는 현재 안전하다 확신할 수 없는데, 내년엔 나아질까? 그럴 리 없다. 방사성 물질에서 내뿜는 방사능을 1년 만에 줄일 방법은 없다. 사고 이후 황급히 집을 떠난 후쿠시마 시민들은 되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주거 지역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 완화한 사실에 분노할 따름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공유하는 벨라루스는 직격탄을 맞았다. 폭발을 알았어도 대규모 행사를 강행했는데, 하필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방사능 낙진이 집중된 게 아닌가. 벨라루스는 아직도 기형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으로 몸에 들어간 게 원인이었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4기가 연속 폭발한 일본은 예외였을까?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겉흙 1400만 제곱미터를 걷어 냈지만 오염된 흙을 모두 들어낼 엄두는 내지 못한다. 대신 꾐수를 고안했다.


킬로그램당 100베크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일본은 8000베크렐 이하인 흙을 도로포장에 활용하기로 기준치를 슬그머니 완화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5000베크렐 이하인 흙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를 허용했다. 사고 이후 걷어 낸 흙을 커다란 자루에 담아 산더미로 쌓아 놓고 있는데, 당국은 170년이 지나야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기준치로 낮아질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때까지 속절없이 기다릴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세슘이 있는 흙 위에 콘크리트를 덮는다면 괜찮을까?

베타선을 방사능으로 방출하는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다. 30년 뒤에 방사능 선량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독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반감기가 최소 10번 계속되어야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데, 베타선은 콘크리트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사람 피부는 능히 통과한다. 30년 이상 틈이 벌어지지 않는 도로포장은 없는데, 폭발된 핵발전소에서 내놓은 방사성 물질이 세슘만이 아니다. 간단한 장비로 검색하지 못할 뿐, 세슘보다 반감기가 길고 독성이 강한 물질이 많다. 폭발 전에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핵발전소를 이중 삼중 안전시설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문제는 음식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험해지는 방사성 물질이 몸속에서 방사능을 내놓는다면 아무리 낮은 수치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허용 기준치 이하라는 걸 올림픽을 앞둔 일본 당국은 유난히 강조하겠지만, 그런 말에 마음을 놓을 환경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를 찾은 후쿠시마 농부들은 환경단체 활동가의 손을 잡고 제발 후쿠시마 농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오염된 농토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납품된다면? 우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음식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우리나라처럼 킬로그램 당 100베크렐로 정했는데, 김익중 교수는 그 수치를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비교한다. 제한속도를 시속 1000킬로미터로 규정한다면 속도위반 차량이 없더라도 도로는 매우 위험해지겠지. 몸에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 플루토늄이라면 더욱 끔찍하다. 반감기가 24천 년인 플루토늄은 60만 명을 폐암으로 사망케 할 방사능을 가진다고 전문가는 강조한다. 철보다 무거운 플루토늄은 후쿠시마 앞바다에 쌓였을 텐데, 설마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는 해산물을 선수촌에 공급하는 건 아니겠지?

세계 51개국이 일본의 농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하는 현실이건만 일본은 한국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1심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 현지 실태 조사보고서 작성을 중단하고 제출하지 않아 패소했다. 국가가 제 기능을 상실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 다행히 2심에서는 한국이 승소했다. 2심에서 이긴 게 기적이라고는 하지만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가 원산지를 확인하고, 정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후쿠시마산 해산물을 먹지 않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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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4월호

세상보기

키워드로 보는 우리 사회

 

공정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고태경/ 정치철학연구자

 

 

지난 2월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에 서울대 총학생회가 성명을 내며 논란이 인 바 있다. 노조의 파업은 지지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서관 난방은 중단하지 말아 달라는 게 성명의 골자였다.

성명 발표 후 대학 내외부에서 비판이 쏟아졌고, 총학생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3일 만에 노조와의 연대로 입장을 선회했다. 논란은 사그라졌지만, 대학사회의 이러한 혼란이 이례적이지는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의 20대 청년학생들은 대체로 87민주화투쟁을 경험한 386세대의 2세들이며, 최근 공공부문 정규직화 이슈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한 세대집단이다. 노동의 기본권과 학생들의 피해를 저울질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공정함이란 어떤 것일까.

 

두 노동자의 죽음

잠시 두 개의 죽음에 대해, 혹은 그 죽음에 반응하는 방식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전태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동료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진 그는 평화시장 한복판에서 근로기준법 책을 든 채로 산화한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은 80년대 평전의 출간과 함께 청년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다.

전태일 이후 한국사회는 열사투쟁이라는 것을 시대의 유산처럼 경험한다. 80년대에는 전태일의 친구가 되고자 한 수많은 청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열사정국이라는 것이 형성되었다. 이들의 죽음은 대체로 비슷했다. 군중이 모인 곳에서 불타는 모습을 전시하는 것. 몸에 시너를 뿌렸고, 많은 이들이 유언처럼 구호를 외치며 산화해 갔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마라라는 유언은 당대 시민사회가 응답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적 정언명령이 되었다.

48년이 지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발생했다. 아무도 없는 작업장에서 홀로 기계 속에 끌려 들어간 그의 몸은 (사진 한 장 외에) 우리에게 어떤 목소리도 남기지 못한다. 이미 2000년대를 전후로 노동자들의 죽음은 철저히 고립되는 형태를 띠었다. 크레인 위에서 조용히 목숨을 끊은 김주익이 그랬고, 열사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유서를 남긴 기아차 윤주형의 죽음이 그랬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이 죽음들의 비참과 고통에 주목했다. 그런데 정작 묻지 않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전태일은 왜 자신의 죽음에 사회가 응답할 거라 생각했을까. 그가 원한 대학생 친구는 정말 그의 편이었을까.

 

공정성이라는 낯선 물음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어떤 추상의 집합체가 존재한다. 가족공동체나 근대화 이전의 지역공동체와는 달리, 익명의 사람들이 시장과 미디어를 통해 엮인 거대한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예컨대, 올림픽 경기에 함께 열광하는 사람들, 혹은 사회적 재난에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은 익명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에 휩싸이는 순간 하나의 집합체에 결속된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이 네트워크는 때로는 이해관계에 의해 연결되고, 일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는 상상의 네트워크다. 우리가 공적 가치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 예컨대 기본권, 인권, 정의, 법 등과 같은 것들은 이 네트워크가 만들어 낸 공론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재난에 대한 분노, 정의의 감정들 역시 이것의 파생물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을 시민사회혹은 사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의 지반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부르는 오늘날의 용어가 바로 공정성이다. 이 용어와 함께 거론되는 또 다른 표현이 기회의 균등이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있어 공정성은 기성세대의 정의 관념과는 판이한 내용을 갖는다. 예컨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노동3은 헌법에 속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는 하나의 기본권이다. 그것은 이미 전제되었거나, 협상의 대상으로 축소될 수 없는 판단의 절대적 준거로 간주된다.

반면, 공정성 담론은 모든 것을 협상의 테이블로 올린다. 기회가 균등해야 하기에 어떠한 절대적 준거도 불필요하며, 모든 것은 이해관계의 문제처럼 협상 가능한 대상으로 쪼개져야 한다. 서울대 시설관리노동자들의 파업은 학생들의 피해와 거래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해관계로 간주되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기회 균등을 무너뜨리는 무임승차행위로 간주된다.

요컨대, 청년들의 도덕 감정은 완전히 새로운 틀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사회 정의의 관념이나 도덕 감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떤 것에는 사회적 재난을 만난 것처럼 격분하고(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 등), 또 어떤 것에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치시키며 냉담한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합의체제가 필요한 시점인데, 문제는 그 합의의 지점에 우리가 기본권이라고 부르던 것들이 들어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새로운 합의체제와 위태로운 기본권

새로운 합의의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것이 정부 주도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합의 모델 중 하나로 등장한 것은 공론화위원회라는 것이었다. 어떠한 절대적 가치 준거도 없이 시민들의 숙의에 모든 것을 위탁한다는 공론화위의 유토피아 정신은 사회문제의 책임을 정부와 지배권력에 묻던 이전 시대의 감성을 완전히 이탈하고 있다.

시장은 언제나 불안정할 수밖에 없기에, 정부는 사회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동원하는 통치술을 사용하곤 한다. 80년대까지는 정부 주도의 하향식 내치모델이 지배적이었다. 한국을 비롯한 개발독재국가들, 복지 중심의 유럽 국가들 일체가 그러했다. 영어로는 거번먼트(goverment), 우리말로는 통치라고도 번역되는 이 내치의 기법은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이 일정 수준 확보될 때 가능한 것이었다(새마을운동을 생각하자). 반대로, 2000년대 이후 시장 중심의 작은 정부모델이 부흥하며 새롭게 등장한 내치모델이 우리말로 민관협치로 번역되곤 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모델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보자. ‘협치의 협력 대상은 시장의 이해관계 당사자들이다. 공적 영역으로 기업이 호출되고, 기업의 이해관계와 협상의 줄다리기를 할 시민단체들이 또 하나의 파트너로 호출된다. 이 내치의 기법에서 중요한 것은 파트너십이며, 정부는 이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다.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한 것으로 환원되자(광주형 일자리에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할 수 있느냐가 주쟁점이었다), 이제 쟁점은 이 거래에서 얼마의 파이를 나누어 갖느냐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이후 노동자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노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주체가 명확했다는 점이다. 1840년대 이후 노동문제를 통칭한 용어가 사회문제(social question)였다. 빈곤과 죽음이라는 유령은 사회 그 자체가 낳은 난제(question)라는 것, 궁극적으로 자본과 지배권력이 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은 이제 뒤바뀌게 되었다. 국가가 갈등의 중재자로 빠지고, 노동기본권이 협상 테이블로 올려지며 혼돈이 시작되었다. 전태일은 1969년의 한 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 과제이다.” 어떠한 것으로도 외면할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타협 불가능한 무엇이 존재한다고 가정된 시대가 있었다. 서울대총학생회의 혼란은 2019년 우리 모두의 혼란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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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3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최근 한 인기 있는 방송에서 어린이 주먹만큼 큰 딸기가 선보였다. 이름하여 킹스베리’. 계란만큼 큰 딸기를 보고 놀란 적 있는데, 비닐하우스와 식물 성장호르몬이 우리 농업에 등장했던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계란보다 훨씬 큰 킹스베리는 어떻게 재배할까? 그 방면에 견문이 없지만 우리 기술진이 개발해 최근 첫 출하했다는 거, 가격이 높아도 인기가 많다는 건 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까닭도 있겠지. 당도가 높다고 한다. 그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식품 수출을 이끌 차세대 수출 유망 품종 5가지 품목 중의 하나로 선정했고 벌써부터 수만 달러의 수출길에 올랐다고 언론은 뿌듯해한다.

사진_ Pixabay


첫눈 내리기 전부터 과일점 좌판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딸기는 5월이 제철이지만 3월이면 끝물이다. 할인 경쟁에 나서는 상인은 재고 처리 하자마자 참외를 펼쳐놓겠지. 장마 전에 즐겨 먹던 참외도 제철을 잊었다. 비닐하우스가 계절을 앞당겼지만 더 빨리 더 많이 출하하려는 농부들의 경쟁은 난방을 끌어들였다. 킹스베리는 계란 크기의 딸기보다 적정 재배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높다는데, 태워야 할 석유가 늘었겠다. 꽃가루는 어떻게 수정시키나? 꿀벌은 겨울에 활동을 하지 않는데. 별걱정 다 한다. 한겨울 비닐하우스를 위한 꿀벌이 있단다. 일회용이다.

첨단을 달리는 비닐하우스는 수경재배를 채택한다. 뿌리를 붙잡는 스펀지 같은 물질에 필요한 영양분을 적시 적량 공급하는 수경재배는 흙을 퇴출시켰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도 대량 생산하는 까닭에 출하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농산물의 유전자는 극단적으로 단순해졌다. 단순한 유전자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재배환경을 맞춰야 소기의 품질과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농부는 투자비를 아끼기 어렵다.

요즘은 한술 더 뜬다. 얼마 전 취임한 농촌진흥청장은 스마트 농업의 보급을 선언했다. “개방의 심화, 기후변화, 고령화 등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농업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해 농업인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고도화된 바이오기술과 디지털이 결합한 스마트 농업 기술로 우리 농업의 혁신 동력을 만들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는데, 그런 농업은 농부를 존중할까? 농부대신 알바를 고용하는 건 아닐까?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최첨단 시설에서 로봇이 파종에서 재배, 수확에서 포장까지 책임지는 스마트 농업은 나이 든 농부를 거부할 것이다. 거액의 투자자는 소비자에 직배송하거나 대형마트와 계약할 테니 농촌도 외면할 게 틀림없다. 외부 환경을 차단하는 만큼 기상이변에 무심해도 무방하겠지만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만큼 온실 밖의 기상이변은 한층 거세지겠지. 국민이 체감할 성과? 어떤 성과일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농촌진흥청은 농촌 해산을 선도하려는가?

중국 인민대학교의 원로, 원톄쥔 교수는 3농을 주장한다. 세계의 공장이 되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국가의 부를 자랑하지 않는 그는 경작할 땅이 시골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내일의 대안을 찾는다. 농부는 물론, 농촌과 상생할 수 있는 농업이어야 자급 가능한 식량을 보장한다고 강조하는데, 산업화를 부추기는 스마트 농업은 흙뿐 아니라 농부와 농촌을 배제한다. 바이오와 디지털을 번지르르하게 내세우지만 신기루다. 막대한 석유가 값싸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무너질 사상누각인데, 지구촌의 석유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다. 산유국이 자료를 숨겨도 퍼올리는 양보다 소비가 많은 지 10년은 족히 넘었다.

땅은 농업의 오랜 기반이다. 다양한 미생물, 지렁이와 곤충들, 온갖 식물의 뿌리가 뒤섞인 흙이 있기 때문이다. 흙은 농작물의 뿌리를 잡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농작물이 성장해 수확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제공한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균사를 한없이 펼쳐 내는 미생물이 질소와 인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흙에 내놓으면 농작물은 미생물이 생장하는 영양분을 흘려보낸다. 그런 관계가 태곳적부터 지속되면서 흙은 우리에게 농작물을 풍요롭게 베풀었고, 농부는 땀 이상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았다. 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 석유를 태우는 농기계를 사용하기 전까지.

흙은 탄소를 잡아 준다. 미생물과 지렁이와 거미와 곤충은 물론이고 다채로운 나무와 풀의 씨앗,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생장하고 죽으며 남긴 탄소가 뒤섞여 있다.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기는 농작물이 흙속의 탄소를 흡수하는 건 아니다. 녹색 잎의 엽록체가 탄소동화작용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곡식이나 과일로 생산한다. 막대한 에너지에 의존하는 농업은 진정한 생산이 아니다. 봄에 뿌린 한 톨의 씨앗이 농민의 땀과 햇빛과 빗물을 머금으며 가을에 수십 배의 소출을 내놓는 생산과 거리가 멀다. 차라리 변형이다. 수확한 농작물에서 얻는 열량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 주로 석유가 낭비되지 않았나.

농기계와 화학비료로 옥수수를 수확하는 미국의 드넓은 밭은 영양분이 고갈돼 흙이 딱딱하다. 무거운 농기계로 땅을 대규모로 갈아엎는 농업은 옥수수에서 얻는 열량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석유 에너지를 들이부어야 수확이 가능하다. 맹독성 농약으로 흙이 생명력을 거의 잃었기 때문인데, 흙마저 배제하는 스마트 농업은 어떤가? 생명을 아예 품지 않는다. 투자자의 이윤을 위해 종업원을 고용하는 공장일 따름이다. 흙을 배제하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혹한 식량위기를 초래한다.

엽채소와 과채소 위주의 비닐하우스와 스마트 농업이 수출을 염두에 두는 한, 식량자급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식민지로 만들려면 그 나라의 농업을 죽여야 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의 귀띔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급률이 20퍼센트에 턱걸이하는 상황에서 수출을 장려하다니. 우리 농업정책은 위기를 증폭한다.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을 비롯해 고기와 과일도 진정한 생산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수입은 한계에 부딪히고 식량주권을 잃은 국가는 종속될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미국식 농업은 수확물의 대부분을 소비자의 식탁보다 산업축산의 사료, 그리고 가공식품 공장으로 보낸다. 고기와 가공식품이 아니라면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대부분 농촌의 농부가 흙에서 생산한 농작물이다. 가공식품이 드문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발밑의 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흙을 살리면 지구온난화도 어느 정도 예방하면서 내일의 식량을 견고하게 자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곳곳의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남북한 합해 7000만이 넘는 인구는 농부가 흙에서 생산하는 농작물로 자급할 수 있어야 내일도 생존할 수 있다. 늦기 전에 농토를 확보하면서 흙을 살려야 하는데, 스마트 농업과 비닐하우스로 수출농업을 꿈꾸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비축량이 얼마나 많은지 고갈 신호를 무시하며 여태 저렴한 석유, 그런 석유 덕분에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낮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부자나라의 농산물을 싸게 수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식량 자급을 준비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 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많은 식량을 수입해 놓고 음식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만용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간지럽히는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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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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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그 몸으로 임신할 수 있니?

박지주/ 장애여성자립생활센터 파란대표

 

 

나는 올해 48살이 되었다. 나의 장애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초등학교 때부터 척수염을 앓았고 신경마비가 와서 중학교 2학년 중퇴의 학력으로 21살까지 재가 장애인으로 살았다. 재가 장애인이란 일 년에 집 밖을 한두 번 나갈까 말까 할 정도로 외출이 없는 장애인을 말한다. 외출하더라도 주기적이고 주도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하루를 주로 집에서 보내며 사회 참여에 원활하지 못한 장애인이다.

우리 엄마는 부잣집의 막내딸이었지만 모든 재산은 남자 형제에게만 상속되었고, 가난한 아버지와 결혼하여 우리는 가난을 물려받았다. 가난한 집이 그러하듯 의료·교육 환경은 열악하여 나의 장애는 잘 치료되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존한 삶이 이어졌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왜 집에만 있나?’ 하는 의문을 안고, 텔레비전과 음악, 자연, 책을 친구 삼아 지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늘 사람이 그립고 친구가 그리웠다. 사람은 사회 안에서 살며 인간됨을 완성하는데, 나의 사춘기는 친구다운 친구 한 명 만들지 못한 채 흘러갔다. 그러던 중 장애인 단체의 회원 방문을 받아 운전을 배웠고, 차를 몰고 다니며 사회와 교류하고 꿈을 키워 22살의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연애를 통해 장애가 있는 내 몸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경험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하고 본능적으로 성관계에 대한 열망이 일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시도하면서 나는 가슴 아픈 수치심을 맛보았다. 척수장애인이 성관계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방광을 비우는 일이다. 그런 교육이나 지원을 받아 본 적 없이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사랑을 할 때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의식과 욕망의 실현체인 몸이, 개인적·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때 장애를 가진 몸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몸의 통로가 제대로 가동할 수 없다. 장애로 인한 실패의 아픔을 겪은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자연 안에서 깨달은 나는, 나처럼 상처받은 장애 여성들을 위한 인권 운동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독학으로 대학교 문을 두드려 드디어 제주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가난의 근본, 자본과 노동에 관한 공부를 하며 숭실대학교를 상대로 중증 장애인 교육권 투쟁도 이어 갔다. 3년여간의 소송에서 승소하여, 힘들고 어려웠지만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장애인에게도 있다는 판결에 기뻐하며, 존엄한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사회적 변화를 꾀하려 노력하였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존재도 부정당하기 일쑤이다. 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생물학적 여성성을 의심받았고, 심지어 고착화된 성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는 여성이란 이유로 결혼 제도 진입과 임신·출산도 부정당했다.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질문들 앞에서 좌절하기도 했다. ‘그 몸으로 임신할 수 있니?’, ‘생리는 하니?’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더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이 샘솟았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것은, 장애 여성에게는 단순히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 큰 삶의 선택이자 기회이며 실현이 어려운 소망을 깨고 싶은 도전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금기의 영역처럼 존재하는 장애 여성에게 대한 편견을 깨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 셋을 낳아 키우고 있다. 살면서 참 잘한 선택이고 행복한 선택이다. 그러나 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엄마의 피와 살과 영혼이 담긴 삶을 통째로 아이를 키우는데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피눈물 나는 삶의 현장이다. 장애가 있는 몸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에서부터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 그지없지만 육아는 90퍼센트 이상이 육체노동이다. 육아의 현장에서 나의 장애가 더욱 심한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육체라는 도구가 또 다른 세계와 연결되는 자아실현의 통로이나, 장애가 있는 엄마는 아이를 맘껏 안거나 업을 수가 없다. 아이를 업지 못한다는 것은, 수시로 아이를 안아 주지 못한다는 것은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

넘어진 아이를 두 손으로 안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우는 아이의 안전을 지키려다가 전동휠체어가 구르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이와 함께 타고 갈 구급차가 없다. 아이는 아프다고 목 놓아 울고, 엄마는 그걸 보고도 함께 병원에 가지 못하는 현실이 과연 옳은가. 장애 엄마의 장애가 장애로 다가오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장애인도 사람이다. 사람은 자연스러운 본능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존엄함이 유지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장애 부모의 입장에서 사회적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를 개인적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이해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 엄마의 모성권은 양육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실현 가능한 것이다. 비장애인의 모성권 개념에 추가적으로 반드시 들어가서 확대된 모성권 범주의 실현이 필요한 것이다. 육체노동이 90퍼센트가 넘는 육아를 장애 엄마가 홀로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고, 그것은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 비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아이돌보미 제도는 장애 부모에게 진입 기회만 제공하고 있고, 장애 부모의 특수성을 반영한 시간 확대, 자부담 폐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장애 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때는 반드시 사회권적 양육받을 권리가 실현되기 위해 한걸음 나아간 장애 부모 입장의 제도적 지원과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인 활동지원제도에도 아이가 태어나는 6개월간은 양육 활동 지원이 가능하나 그 이후에는 전무한 상황이다. 각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양육 관련 서비스도 낮은 수혜율과 시간을 보이고 있다.

장애 엄마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이다. 내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다. 부정적인 장애가 있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현상으로서 장애가 있는 엄마이고 싶고, 최대한 아이를 잘 키우고 행복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양육받을 권리가 장애인의 특수성을 반영한 보편적 권리로 실현되어야 한다.

장애 부모와 그 자녀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편견과 사회적 시선의 개선도 필요하다. 그냥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로 돌아봐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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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28. 16:06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작은책>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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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서유럽에는 공공의료라는 말이 없어요

문정주/ 의사, 공공의료 연구자

 

공공의료가 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면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내가 속한 분야인 의료에 대한 비판을 담아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공의료는 말 그대로 공공성에 충실한 의료라 할 수 있습니다. 공공성은 소수의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사회에 두루 관계하고 유익하게 작용하는 특성이지요. 그러므로 공공성에 충실한 의료란 도시에 살든 농어촌에 살든, 부자든 가난하든, 누구나 건강을 지키고 증진하게 돕는 의료입니다. 이러한 의료를 제공하는 활동, 기관, 제도를 모두 합하여 공공의료라 합니다.

참 좋은 말이지요? 그런데 무슨 비판이 있느냐고요? , 우리나라 의료에 공공성이 허약하여 의료만으로는 공공성의 의미가 살지 않는다는 문제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공의료의 개념이 따로 세워졌으니 이 말은 문제점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점을 살펴볼까요. 첫째, 병의원이 주로 대도시, 더 자세히는 수도권 대도시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지방 소도시나 읍면에서는 의료를 이용하기 어려워요. 전국의 232개 시군 중 60곳에는 산모가 분만할 의료기관이 전혀 없을 정도입니다. 둘째, 건강보험제도가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 주지만, 가난한 계층을 든든히 보호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 제때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심지어는 돈이 없어 건강보험료가 밀려 병의원 출입을 아예 할 수 없는 사람도 어림잡아 200만 명이나 됩니다. 셋째, 돈 되는 것과 돈 안 되는 것을 노골적으로 구분하는 의료기관이 많습니다. 척추와 관절 수술, 심장병 치료, 성형수술, 건강검진 등 돈 되는 데에는 설비 투자를 하여 확장하지만 돈 안 되는 응급, 분만, 신생아 진료, 감염병 진료, 재활, 질병 예방과 상담 등은 안 하거나 최소한만 하려 합니다. 공공성에 충실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도립 진주의료원을 없애 버린 어떤 정치인을 기억하시나요. 그런 분들은 공공성이 의료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핸드백이나 자동차처럼 의료도 시장에서 사고팔면 된다고요. 소비자는 자기 용도와 취향에 맞게 필요한 걸 고를 테고 공급자는 소비자를 의식하여 의료의 내용과 질을 관리하므로 시장에 맡겨두면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의료가 공급된다고, 그래서 공공성을 강조하는 대신에 자유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 의료의 발전을 돕는 길이고 영리 병원 등 의료 민영화도 나쁠 것이 없다고 하죠. 그러나 이 견해는 의료의 핵심적 특징인 정보의 비대칭성을 너무 가볍게 다룹니다. 의료서비스에는 수많은 정보가 포함되는데 그중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가 오간다지만, 실제 의료는 전문적인 내용이 워낙 많고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영역이 제한적이어서 소비자가 충분히 알고 고른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요. 그래서 공급자인 의료인이 지배적인 위치에 서 있는 비대칭성, 즉 기울어진 운동장이 의료의 특징입니다. 교환도 환불도 원상복귀도 불가능한 의료서비스를 기울어진 관계에서 이용해야 한다니, 으스스하지요? 그러니 의료인의 전문성, 책임감, 환자에 대한 신의가 더없이 중요할 수밖에요. 어쨌든 이러한 비대칭성을 가볍게 다룬다면, 글쎄요, 소비자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의료 시장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그분들조차 농어촌 주민이나 가난한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는 서비스, 돈이 되지 않아 시장이 외면하는 서비스에 관해서는 정부가 따로 방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아요. 의료의 공공성을 아주 외면하지는 못하는 거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요? 그보다는 공공성이 의료의 본질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잠시, 서구의 공공의료를 알아보지요. 그곳에는 공공의료라는 말이 없습니다. 놀랍죠? 영국에는 국영의료제도가 있어 국가가 의료 전반을 책임지고, 독일도 질병보험을 중심축으로 하여 국민 모두에게 의료를 든든하게 보장한다는 얘기를 들어 보셨을 테니까요. 그렇습니다. 서유럽 국가 중 절반은 국영의료제도를, 절반은 보험 방식의 의료보장제도를 두고 있는데 국민 누구나 수준 높은 의료를 무료 또는 거의 무료로 이용하는 데에는 다를 바가 없어요. 그런데도 그곳에 공공의료라는 말이 없는 이유는 의료가 그대로 공공의료이기 때문이랍니다. 영어로 헬스케어(Healthcare)가 의료이자 곧 공공의료를 뜻해요. 또한 보건, 의료, 재활서비스를 다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고요. 국가적 헬스케어란 국민 누구나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폭넓게 이용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이며 예방과 치료와 재활을 통합하여 제공하는 제도이니까요. 이렇게 의료가 곧 공공의료인 나라, 새삼 부럽지 않습니까?

, 미국 말씀이군요. 그 나라는 참, 별종이에요. 국영의료도, 국가적인 의료보험도 없어 인구의 약 9퍼센트인 3천만 명이 의료보장 바깥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나라가 미국이랍니다. 의료보험도 모두 영리적인 민간 회사가 운영하여 보험료가 매우 비싸고 보장 내용도 천차만별이라, 산모가 아이를 낳고 12일 만에 쫓기듯이 퇴원하면서 병원에 2천만 원을 냈다는 기막힌 얘기가 들려옵니다. 그런데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미국이 잘사는 나라의 표준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예외적인 나라고, 특히 의료보장에 관해서는 안쓰러운 눈길을 받는 뒤처진 곳이지요.

다시, 우리나라 의료가 공공성에 충실하게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도립병원 같은 공공병원을 더 세우면 될까요? 그건 꼭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일차의료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국민 누구나 자신의 건강 전반을 돌봐줄 의사를 정하여 부담 없이 진료받고 상담하는 제도입니다. 서구 사람들이 마이 닥터라 부르는 그 의사는 환자와 꾸준히 교류하며 건강을 돌봅니다. 동네에 있으므로 환자가 언제든 찾아갈 수 있고, 질병의 초기 또는 발병 전 단계에서 진료하고 상담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밀검사나 입원치료를 받도록 환자를 종합병원에 의뢰합니다. 서구에서는 보편적인 제도로, 국민 누구나 의료를 적절히 이용하고 건강을 보호하는 데 큰 효과를 낸다고 인정받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일차의료 제도가 없어, 공간적으로 가깝고 정서적으로 친밀한 의료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어요. 환자는 값비싼 시설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쏠려 동네 의사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들고요. 2012OECD가 한국 의료 현황을 검토한 뒤에 이 제도를 도입하기를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한국이 지금처럼 종합병원 중심으로 의료를 운영하다가는 고령화 시대에 중증 만성질환 환자가 급격히 늘어 개인과 국가 모두 엄청난 비용을 들이게 되리라는 우려와 함께 말이지요.

다음으로, 지방자치단체 및 시민사회가 의료와 건강에 관련하여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지금은 중앙정부가 의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해요. 지자체는 보건소를 운영하여 방역, 예방접종, 건강증진사업, 간단한 진료와 취약계층 방문서비스 정도를 할 뿐입니다. 의료제도에 관해 시민이 참여할 기회는 거의 없고요. 그러나 의료는 생활하는 장소 가까이에서 이용할수록 효과적이고, 건강은 생활에 밀착하여 관리할 때 증진됩니다. 이른바 생활 밀착형 의료가 필요한데 고령 인구가 많아질수록 이게 더욱 절실해요. 앞으로 자치분권이 강화되면 지방자치단체가 의료에 관련하여 상당한 책임을 지고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일차의료 제도를 도입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 우리나라에서도 의료가 곧 공공의료가 되어, 공공의료 개념을 굳이 따로 정할 필요가 없어질 테지요. 우리 함께 그런 날을 상상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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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8. 23:05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작은책> 2018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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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다 사람이 우선인 세상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교통대학원 원장

 

길을 걷다 보면 우리들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이 하나 있다. 골목길에서 자동차가 오는 기색이 보이면 사람들은 얼른 구석으로 피해서 자동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양보해 주는 것이다.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서조차 보행자는 자동차를 먼저 보내 주고 나서야 길을 건넌다. 이렇게 자동차가 우선시되는 문화는 우리 삶 속에 너무나 깊숙이 배어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자동차를 먼저 보내 줘야 하지?”라는 질문도 떠올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가령 자동차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지!”라고 주장하며 먼저 길을 건너려 했다가는 당장 운전자로부터 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어?”라는 욕설을 듣게 될 것이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이나 유럽은 어떨까? 한번은 필자가 미국 여행을 가서 교통신호등이 없는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마침 저만치에서 자동차가 다가오기에 한국에서 늘 하던 대로 자동차가 얼른 통과하기만을 기다리며 딴전 피우듯 길 건너편을 주시하고 서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자동차를 쳐다봤더니, 그 자동차 역시 횡단보도 앞에 정지한 채 내가 길을 건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안 잡혀 멍하게 있다가 운전자와 눈이 마주쳤다. 운전자는 헤이! 당신 왜 빨리 길을 안 건너고 있는 거야? 당신 때문에 나도 못 가고 있잖아라는 의미로 팔을 뻗어 어깨를 살짝 들어 올리는 미국인 특유의 몸짓을 하며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사태 파악이 돼서 손을 들고 무안하게 길을 건넜다. 그 후로도 횡단보도에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 의식적으로 자동차보다 내가 우선권이 있어!”라며 몇 번이고 스스로 다짐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애당초 길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원래부터 자동차가 도로의 주인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와 다른 선진국은 보행자를 대하는 태도에 왜 이런 차이가 있는 걸까?

사람이 우선인지 자동차가 우선인지에 대한 관념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 단적인 예가 보행 중 사망사고율이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자 열 명 중 네 명 정도가 걷다가 죽은 사람이다. 반면 네덜란드와 미국은 약 한 명이다. , 우리나라가 네 배나 더 많이 보행 중에 죽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선진국이지만 일본도 3.5명이나 된다. 일본이 다른 교통사고 통계는 선진국 중 으뜸 수준이지만 보행자 사고에서만큼은 후진국 수준인 이유는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운전자들이 보행자들을 그다지 배려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절반 정도의 운전자들만 보행자를 위해 차를 세워주었다.

그럼 서구 선진국에서도 원래부터 사람이 자동차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듯 약자(보행자)들이 가만히 있으면 강자(자동차)들이 알아서 보호해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약자들이 단결해서 자신들의 걸을 수 있는 권리 즉, 보행권을 쟁취해 낸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도로교통법에는 본엘프라는 제도가 있다. 본엘프는 네덜란드말로 도로의 정원이라는 뜻인데, 이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동차는 보행속도보다 빨리 달리면 안 된다. 심지어 아이들이 이 거리에서 마음대로 뛰놀아도 괜찮다. 이렇게 사람과 자동차가 함께 살아가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고 이걸 어기면 엄격하게 처벌한다. 이 본엘프의 유래를 알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힌다. 1970년대 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이라는 도시의 한 동네에 공사장 트럭이 통과하기 시작해서 아이들 등하교 길이 매우 위태롭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참다못한 어느 주민이 자기 집 앞을 지나는 트럭이 속도를 못 내도록 화분을 내놓았고, 이걸 본 다른 주민들도 하나둘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트럭들은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줄이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화분들 때문에 삭막하던 동네 길이 꽃으로 예쁘게 치장된 정원처럼 바뀌어 사람들이 도로의 정원’, 본엘프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본엘프는 다름 아닌 주민(약자)들이 자동차(강자)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도한 시민운동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이 운동에서 영향을 받아 먼저 네덜란드 정부가 본엘프를 법제화했고, 이후 독일의 템포30, 영국의 홈존, 일본의 커뮤니티존 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스쿨존, 실버존, 생활도로구역 등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적으로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으나 사람들의 의식은 완전히 전환되지 않은 것이 문제의 핵심인 것 같다.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 길의 주인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크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물리적인 시설이 제공될 필요가 있다. 본엘프에는 세 가지가 없다고 한다. 첫째는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보도가 없다. 골목길에서만큼은 사람이 자동차를 피해 길 가장자리로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둘째는 차량 통행의 편의를 위해 중앙에 차선을 그려 놓지 않았고 길을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자동차의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셋째는 횡단보도가 없다. , 본엘프 안에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아무 때나 길을 건널 권리가 있다는 것을 시설로 운전자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적당한 채찍이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동차 운전자에게 너무 관대한 처벌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음주운전이다. 여러분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운전자가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은 음주운전을 형사사건 살인죄로 엄하게 다스린다.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시속 30킬로미터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는 본엘프에서 이를 어기고 사고를 내면 엄한 처벌을 받는다. 미국 운전자들이 횡단보도에서 보행자를 기다려 주는 이유 중 하나는 엄한 벌칙 때문이기도 하다. 엄격한 규칙은 처음에는 부담스럽지만 습관이 되면 곧 익숙해진다. 골목길에서 천천히 다녀 버릇하면 그 속도에 익숙해진다. 세 번째는 자동차에 대한 우리 마음이 바뀌어야 된다. 요즘 내 마음에 꼭 드는 교통안전 광고가 있다. “운전자! 당신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입니다.”라는 광고다. 맞는 말이다. 평생 운전자로서만 살아가는 사람이 지구상에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일반적으로 직업운전자들 외에는 하루 24시간 중 아무리 길어도 서너 시간만 운전자이고 나머지는 보행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영원한 강자라도 된 양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꼴불견 운전자를 꼽아 보라고 한다면 횡단보도 정지선을 넘어와서 길 건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거나, 횡단보도 신호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도 빨리 건너라는 식으로 차머리를 밀고 들어오며 위협하는 운전자, 또는 사람들이 지나가야 할 인도나 횡단보도 위에 떡하니 무단주차해 놓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아직도 지도자들의 책임감(노블리스 오블리주)이 부족한 천민자본주의 사회라고 한탄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강자의 책임의식과 관용이다. 강자인 운전자가 약자인 보행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 충만해진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문화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강자와 약자가 더불어 사는 진짜 사람 사는 맛 나는 세상이 된다는 의미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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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8월호

어린이 해방과 평화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운동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어린이 해방이라는 말은 192351일 제1회 어린이날 선전문에서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어린이들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1회 때 선언문을 20만 장 만들어서 전국에 배포했고. 19242회 때는 35만 부를 만들어서 배포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어린이 해방운동은 1920년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을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강력하게 등장하였다.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게 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날어린이라는 말이 지향하고 있는 뜻이 어린이 해방이라는 건 잘 모른다. 1920년대 당시 어린이 해방 운동가들은 어린이라는 말을 젊은이’, ‘늙은이와 평등하게 독립된 인격과 인권을 가진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만들었다. 곧 당시 어리석고 작은 어른의 물적 소유물이 아니라 당당한 한 사람으로 인권을 가진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20년대 방정환과 김기전을 비롯한 그의 동지들이 지향했던 어린이 운동은 어린이 해방운동이었다. 어린이 해방운동을 펼치기 위해 192251일 오전에 천도교 청년회 중심으로 세계노동자의 날 기념식을 하고, 오후에 천도교 소년회 중심으로 제1회 천도교 어린이날 선언식을 했던 것이다. 19233월에는 천도교 개벽사에서 잡지 <어린이>를 발행하였다. <어린이>는 소년회 회원들은 물론 어린이 해방운동에 나선 어른들까지 함께 만들고 함께 읽는 잡지였다. 192351일에는 소년 운동 단체들이 연합해서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했다. 곧 천도교 소년회에서 1922년에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하고, 1년 뒤인 1923년에는 전국 소년회들이 모여서 다시 제1회 어린이날로 선언한 것이다. 이는 천도교에서 시작한 어린이 해방운동을 기독교와 불교 및 각 사회단체와 함께 손을 잡고 펼쳐 나가는 기점이 된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 곳곳에 소년회를 만들어 나가면서 어린이 해방운동을 넓혀 나갔다.


이렇듯 방정환과 그 동지들이 어린이 해방운동에 나선 까닭,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 많은 호응을 얻은 까닭은 3·1대혁명, 3·1독립만세운동 때문이었다. 물론 동학과 동학을 잇는 천도교에서는 어린이도 어른과 평등한, 아니 더 소중한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3·1독립만세운동 시작과 전개 과정에서 당시 보통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어린 사람들의 참여가 많았다. 우리 역사에서 어린 사람들이 사회변혁 운동에 집단으로 앞에 나선 첫걸음이다.

31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선언서 낭독 후에 일경에 자진해서 잡혀갔지만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를 이끈 주인공들은 어른이 아니라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다. 유관순 사례에서 보듯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간 학생들이 앞장서서 준비한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32일 인천의 보통학교 어린이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보통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3·1독립만세운동에는 우리 민족 모든 연령과 계급과 지역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특히 소년소녀들이 앞장서 참여하고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본 많은 어른들이 감동하였고,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해 민족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정치체제로 하는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를 수립하였고, 대한독립군을 조직하였다. 이렇듯 대한제국이라는 군주제를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제로 바꾼 시민혁명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3·1대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를 기점으로 국외에서는 독립군을 만들어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각종 사회운동이 일어났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과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 해방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것이다.

3·1대혁명을 계기로 천도교는 물론 각 종교 단체와 지역 활동가들 사이에서 어린이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어른보다 더 앞장 서 나가는 독립된 사람으로 존중하는 사회적 자각이 확장되었으며,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어린이 해방운동이 힘을 받으면서 확산되었다. 그 힘으로 192251일 천교도에서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하였다. 나아가 어린이 해방운동이 천도교를 넘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결성되었고, 조선소년운동협회 이름으로 192351일에 다시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 해방운동은 소년회라는 단체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당시 소년회는 천도교 소년회, 기독교 소년회, 불교 소년회처럼 종교에 기반을 둔 소년회와 진주 소년회, 화성 소년회, 마산 소년회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소년회들이 있었다. 또는 무산자 소년회나 소년 척후군처럼 계급운동이나 무장독립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소년회도 있었다.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출범이나 활동이 기사로 나온 소년회만도 500여 개에 이른다.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되지 못한 소년회들도 많았을 것이고, 기사로 소개되거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기사로 드러나지 않았던 소년회들이 요즘으로 견주어 보더라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소년회 회원은 보통 30~40, 많은 곳은 200~300명까지 되었다. 마산 신화소년회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0세 전후 어린이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고, 지역 어린이 운동가들이 안내자나 후원자를 맡았다. 회는 어린이들이 앞장서 만들고, 자치적으로 운영하였다. 주로 놀이, 체육, 토론, 책 읽기와 글쓰기, 동화 구연과 연극 발표를 비롯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소년회 활동은 어린이들이 사회변혁에 앞장서는 힘으로 작용했다.

앞에서 살짝 짚었듯이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종의 승하로 대한제국이라는 군주제가 끝나고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독립을 선언한 의미가 더 크다. 이렇듯 군주제를 버리고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3·1대혁명에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어른들보다 앞에 섰다. 당시 어른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고, 천지개벽하는 감동을 느끼게 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이렇게 어린이 혁명으로 태어난 나라다. 그후 순종 장례를 계기로 일으킨 19266·10만세운동, 일본 학생들과 일본 경찰의 횡포에 맞서 시작한 광주학생의거를 일으킨 바탕이 되는 힘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방정환과 그 동지들이 일으킨 어린이 해방운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린이 해방운동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겨레 역사가 갖고 있는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방정환의 어린이 해방운동은 좌우익 주도권 쟁탈과 일본제국의 끈질기고 악랄한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37년 제15회 어린이날 기념식을 마지막으로 지하운동으로 숨어들었다. 조선총독부는 소년회를 해체하면서 건아단을 만들어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해방군으로 진주하면서 분단되었고, 6·25전란을 통과하면서 어린이 해방운동가들이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학살당하거나 숙청되면서 거세당했다. 그럼에도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에 앞장선 것이다. 이렇듯 우리 겨레 역사에서 중요한 사회변혁의 분기점이 되는 3·1혁명과 4·19혁명은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앞장선 어린이 혁명이었다.

그런데 5·16군사반란 이후 어린이라는 말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덜 자라고 어리석어서 어른이 될 준비에만 매진해야 하는, 곧 어른이 되기 전에는 모든 인격과 인권을 유보해야 하는 어른들의 소유물로 다시 퇴화되었다. 이렇듯 1920년대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운동 정신을 퇴화시키는 작업은 해방 후 독재자들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어린이날 선언문이다. 1960년대 초까지 어린이날이면 이 선언문을 낭독하였는데, 이제는 어린이날 행사 때 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어린이 해방운동을 불러내야 한다. 201610월부터 시작한 촛불혁명이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어른에 속한 미숙하고 어리석은 물적 자원으로 보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길은 100여 년 전 방정환과 그 동지들이 밝혀 준 어린이 해방운동을 다시 이 시대에 불러내고, 어린이 그들이 한 사람의 온전한 민주시민으로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하는 일이다.

인류 역사를 해방의 역사로 본다면 근현대사는 인류가 해방 범위와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쟁사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문예부흥은 인간 해방운동의 시작이고, 18세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은 시민 해방의 시작이고, 19세기 노동자 투쟁은 계급해방의 시작이고, 20세기 성평등 운동은 여성해방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해방, 시민 해방, 노동자 해방, 여성해방 다음으로 인류가 나갈 길은 세대 혁명, 곧 어린이 해방이다. 어린이와 젊은이와 늙은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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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7년 11월호

<'그때 그 사건다시 보기>   


노 파사란!

김형민/ 방송 프로듀서

 

몇 년 전 아베 일본 수상의 안보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대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북을 두들기며 어깨를 들썩이며 랩같은 구호를 반복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흥겨운 시위였다. 그때 일본의 한 젊은 여성이 외치던 구호 가운데 일본어도 영어도 아닌 스페인어가 끼어 있었다. “노 파사란!”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의 스페인어였다. 그 구호는 약 80년 전 스페인을 달뜨게 했던 역사적인 구호였다. 그 구호가 지구를 반 바퀴 돌고 8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모습에 감회가 젖었던 기억이 새롭다. 80년 전 이 구호를 외친 이도 그 또래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 여성이 외친 구호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시위대가 많이 부른 훌라송의 일부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 더 원한다 훌라훌라일어서서 저항하다가 죽을지언정 무릎을 꿇고 생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는 이 가사의 저작권자 역시 같은 여성이었다. 이름은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

그녀는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 광산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원래 다산(多産) 전통의 남유럽 국가답게 그녀의 형제들도 축구팀급이었다. 11남매. 그중에 그녀는 8번째였다. 여기서 바스크 지역의 역사를 잠깐만 훑고 지나가자.

바스크인들의 언어는 유럽 대륙의 인도·유럽 어족과 완전히 다른 고립어 계열이다. 즉 바스크인들은 언제 어디에서 왔고 왜 그곳에 살고 있는지부터가 미스터리인 민족이다. 로마 제국이 스페인을 지배하던 시절에도,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에 초승달 깃발을 꽂았을 때에도 독립적 지위를 유지했던 깐깐한 사람들이었다.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 대체로 바스크인들은 공화파 정부에 충성했다. 공화파 정부가 더 많은 자치를 허용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프랑코를 돕는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쑥밭이 됐고 피카소의 그림으로 영원히 역사에 남은 게르니카도 바스크의 도시였다. 이 바스크족 광부의 딸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당연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소녀티를 벗자마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여 열댓 명의 아이들을 낳고 그들을 건사하느라 여념이 없는 여느 스페인 시골 여자들과는 팔자가 달랐다.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녀는 각종 사회과학 서적을 독학으로 읽으며 자신과 조국의 상황을 체득하고 사회운동가로 성장해 갔던 것이다. 1918<미네로 비스카이노> 신문에 처음으로 자신의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때 필명이 열정의 꽃이라는 뜻의 라 파시오나리아였다. 열정의 꽃1920년 이후 스페인 공산당에 입당했고 당 중앙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됐으며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3차 공산당 전체회의에 스페인 대표로 참석하는 등 좌파 진영의 주요한 지도자로 성장해 갔다. 19362월의 운명적인 선거에서 그녀는 목이 쉬어라 연설하며 좌파 연합 인민전선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스페인의 1936년 총선은 치열했다. 72퍼센트의 높은 투표율 속에 좌파와 우파의 표 차이가 1퍼센트도 나지 않는 초접전이었다. 어쨌든 다수의 의사가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선거법에 따라 인민전선이 다수 의석을 가져갔고 공화파 정부를 수립했다. 돌로레스 이바루리도 국회의원이 됐다. 하지만 이미 프랑코 이하 군부나 지주 등 우익 세력은 정부에 복종할 마음이 없었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피비린내 나는 스페인 내전이 시작됐다. 스페인 내전은 전 세계 모든 이념들이 모인전쟁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시험대라고 불렸다. 전 세계의 양심들이 몰려와 국제여단을 구성하여 프랑코 군대와 싸웠다. 영국인 조지 오웰도, 미국인 헤밍웨이도 그중의 하나였다.

이 내전에서 돌로레스 이바루리 의원은 저항의 여신(女神)으로, 그리고 용기와 열정의 꽃으로 스페인 사람들과 공화파를 도우러 온 외국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된다. 1936년 마드리드 방어전을 앞두고 그녀가 10만 군중 앞에서 한 연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큰 울림으로 남았다.

파시즘은 무사히 통과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 파사란! (No pasaran!) 왜냐하면 파시즘의 진로를 막아 왔던 우리의 방어가 더욱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비겁한 적은 우리처럼 전쟁터로 이끄는 이상이 없기에 용감하게 돌진해 오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프랑스로 가서 공화파 지지 연설을 하며 국제적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바로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더 원한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다.

노 파사란! 그들은 이곳을 통과하지 못한다!”무릎 꿇고 살기보다를 절규하는 열정의 꽃이 어느 정도의 향기를 내뿜었는지는 헤밍웨이의 걸작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속 등장인물의 증언으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 등장인물은 돌로레스 이바루리의 연설을 듣고 와서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고 음성만으로도 진실을 말하는 줄을 알겠더군. 그녀가 전하는 소식을 그 대단한 목소리로 들었을 때 그 순간은 이 전쟁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의 하나였네. 선과 진실이 마치 백성의 참된 사도에서 뿜어져 나오듯 그녀도 그랬어.”

그러나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 군대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이나 고향을 떠나야 했다. 비참한 운명을 맞은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소련으로 망명해 큰 파란은 없었지만 아들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잃어야 했음에도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으로서 꿋꿋이 자신의 이상과 신념을 고수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사태, 즉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군의 체코 침공 때 오랜 침묵을 깨고 소련 공산당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던 그녀는 프랑코가 죽은 후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오던 1976년 스페인으로 귀환한다. 그녀의 나이 여든한 살.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카를로스 국왕의 균형 잡힌 리더쉽 아래 민주화의 발길을 내딛었고 공산당도 합법화돼 선거에 참여한다. 1977년 무려 41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이바루리는 다시 한 번 국회의원이 된다. 역시 41년 만의 재선. 당시 그녀의 나이 여든둘이었다. 내전 시작 전의 스페인을 41년 살았고 독재 치하 스페인을 41년 떠나 있었던, 늙었으나 싱그러운 열정의 꽃라 파시오나리아의 귀환이었다.

재출발한 민주주의에도 위기는 있었다. 최대의 위기는 역시 1981223일의 쿠데타 기도였을 것이다. 헌병대 중령이 수상 선출을 위해 모든 국회의원이 모여 있던 국회의사당을 습격했다. 자동소총이 난사되고 모두 엎드리라는 호령이 떨어졌을 때 모든 의원들이 책상 밑에 납작 엎드렸지만 두 사람만은 자리를 지켰다. “내가 왜 당신들 명령을 들어야 하는가.” 수아레스 당시 수상과 돌로레스 이바루리의 후계자로 스페인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산티아고 카리조였다. 마치 쿠데타군에게 노 파사란! 여기는 민의의 전당 국회다를 외치듯 그들은 똑바로 자리에 앉아 쿠데타군을 노려보았다.

이후 카를로스 국왕이 군복을 입고 방송에 출연, 결연한 쿠데타 반대를 표명했고 1936년을 꿈꾼 군부의 반란자들이 체포되면서 쿠데타는 막을 내렸다. 아마 이 모습을 보면서 열정의 꽃 라 파시오나리아,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페인의 민주주의는 다시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돌로레스 이바루리 고메스, ‘라 파시오나리아19891112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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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작은책> 편집자문위원 

* 이 글은 국회에서 열린 ‘한미 FTA 끝장토론’ 마지막 날(10월 24일)의 마지막 발언 원고입니다. (글쓴이 주)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오늘 저는 토론이 아니라 호소를 하려고 합니다. 미국 의회가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도 꼭 비준해야 할까요? 지난 3일 동안의 토론에서 우리는 정부도, 국회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한미 FTA를 비준한다는 것은 여러분의 직무 유기입니다. 

  엉터리 수치
 
  ‘GDP(국내총생산) 5.66퍼센트 추가 성장, 일자리 35만 개 증가.’ 

  국회가 한미 FTA를 비준해야 하는 근거라고, 정부가 제시한 수치입니다. 찬성하는 의원 여러분, 그리고 많은 국민들도 이 수치를 믿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가짜입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GDP 성장률이 플러스로 나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CGE 모형을 돌리면 언제나 플러스 수치가 나옵니다. 한미 FTA로 일자리를 잃은 농민이나 중소기업 노동자가 모두 삼성반도체나 현대자동차에 취직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CGE(연산 가능 일반 균형) 모형은 어떤 정책을 취했을 때 GDP나 무역수지 등이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상대적 비교를 하기 위한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FTA 상대국에 따라 서로 다른 가정을 하면 안 됩니다.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가정해서 계산을 해야 합니다. 한미 FTA의 경우처럼 제조업 1.2퍼센트, 사업서비스 1퍼센트 생산성 향상을 가정해서 CGE를 돌린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와 같은 가정을 한 경우가 하나라도 있으면 알려 달라고 했지만 정부는 아직 대답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론 2006년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 수치가 너무 낮게 나왔다고 화를 낸 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급조한 가정입니다.

  더구나 무역 수지는 산업별 합산이라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표준 CGE에서는 무역 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당연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 관세율 7.5퍼센트가 미국의 2.5퍼센트에 비해 세 배이기 때문입니다. 관세를 더 많이 내린 쪽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엉터리 가정을 하면 당연히 그 결과도 엉터리로 나옵니다. 역사적 사실로도 이 수치가 엉터리라는 걸 금방 증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어떤 나라도 이렇게 GDP나 일자리가 증가한 나라는 없습니다.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17년째인 캐나다와 멕시코는 2000년대 들어 오히려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1인당 GDP 성장률 1퍼센트 남짓이 우리의 목표일까요? 우리나라는 다르다, 한국인의 유전자는 우수하다고 우기는 것만큼 비과학적인 게 또 어디 있을까요? 어처구니없게도 우리 정부의 주장이 바로 그렇습니다.  

시장 만능의 미국 시스템을 상대국에게 강요하는 협정

  2008년에 발발한 세계금융위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이 동시 침체에 들어갔습니다. 역사는 이 시대를 “장기 침체”라고 부르게 될 겁니다. 당연히 한국의 수출은 줄어들 것이고, 지금도 아슬아슬한 우리 내부의 부동산 거품이 폭발하면 우리는 또다시 금융위기를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미국의 기조는 “수출만이 살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5년 동안 대 아시아 수출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적자 때문에 재정 정책을 사용할 수도 없고, 이미 금리가 제로이기 때문에 금융정책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환율조작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절상 압력을 넣을 만큼 다급합니다. 불행하게도 주요 나라들 중 우리 원화만 거의 절상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화가 절상되면 당연히 수출은 줄어듭니다. 한미 FTA는 이런 압력의 통로, 위기의 전달 통로가 됩니다. 

  지난 30년간 모든 걸 시장에 맡기자는 시장 만능론, 시장 근본주의가 판을 쳤습니다. 미국식 FTA는 시장 만능의 미국 시스템을 상대국에게 강요하는 협정입니다. 애초에 “경쟁적 자유화”라는 전략을 설계한 로버트 죌릭은 미국 FTA의 목적이 상대국의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G20 논의에서 보듯이 미국식 글로벌 스탠다드는 퇴조하고 있습니다. 이제 FTA뿐 아니라 각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제약하는 WTO(세계무역기구)의 규정도 바뀌게 될 겁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스티글리츠 교수를 좌파로 매도했습니다만 ‘스티글리츠 보고서’는 스티글리츠 혼자 쓴 게 아닙니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 은행 총재들이 쓴 것이고 UN(국제연합)의 보고서입니다. 215개국이 만장일치로 수용한 보고서입니다. 아무 데나 색깔론을 들이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보고서는 FTA는 물론 WTO의 서비스 분야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기를 맞지 않으려면, 그리고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국가의 정책 공간이 넓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한미 FTA 반대론자들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였습니다. 하지만 시대착오라는 점에서는 한미 FTA야말로 구한말 대원군의 정책과 같습니다. 시대가 변화할 때는 얼마나 새로운 조류에 먼저 부응하느냐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지금은 국가의 자율성을 확보해서 위기에 대비할 때입니다. 미국식 시장 국가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복지 국가 시스템을 갖추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멕시코의 철도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 끊어져 있습니다

  이미 파산이 증명된 미국식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게 과연 나라를 발전시키는 방향일까요? 미국은 관세법과 무역법 등 4개의 법률만 고치면 그만이고 우리는 정부 주장으로도 23개의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건, 한미 FTA가 미국의 법과 제도를 직수입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세계 최강국이면서도 지니 계수(소득 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 최악 세계 4위인 나라의 제도를 꼭 받아 들여야 할까요? 17년 전에 미국과 FTA를 맺은 멕시코는 그 부문, 부동의 1위입니다. 아메리카의 복지국가로 불리던 캐나다마저 우리보다도 못한 12위로 상황이 악화됐습니다(우리는 14위). 이런 나라들을 우리가 꼭 뒤따라야 할까요?

  양극화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특히 절망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한국의 양극화는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세계화’로부터 시작됐고 외환 위기와 한미 FTA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과연 이런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게 옳은 정책 방향일까요? 

  대처 수상 때 철도를 민영화했던 영국은 대형 사고가 빈발하자 시설 부문을 다시 국유화했습니다. 한미 FTA가 발효된 후, 우리 정부가 철도를 자발적으로 민영화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우린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 유치국의 협정 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 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 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절차) 등 각종 독소 조항들 때문입니다. 멕시코의 철도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다 끊어져 있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 길일까요?

건강보험 보장성은 축소만 될 뿐입니다

  지난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이제 우리 국민들도 복지를 원한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는 복지의 확대를 가로막습니다. 우리나라 복지 제도 중 그래도 괜찮은, 세계 5위 정도로 평가받는 건강보험이 위험해집니다. 캐나다 정치학자 클락슨은 나프타를 초헌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한미 FT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협정이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는 외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축소만 될 수 있을 뿐 확대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의료 제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모든 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다는 뜻), 비영리법인, 그리고 전 국민 가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상교섭본부가 확인했듯이 경제자유구역은 미래 유보(개방을 하지 않고 국가의 규제 권한을 유지하는 것)의 예외입니다. 경제자유구역이 확대되는 만큼 건강보험이 설 자리는 축소됩니다. 

  약값이 올라갑니다. 허가-특허 연계 등으로 미국 제약 회사의 특허권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글리벡(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같은 불치병 약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같이 계속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 모두 고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나 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건강보험 재정은 더 흔들릴 겁니다. 

  야당들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 FTA가 발효되면 불가능합니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사회보험은 예외”라고 강변하지만 암 100퍼센트 보장으로 인해 망하게 된 AIG(미국 보험회사)가 과연 가만 있을까요? 투자자국가소송은 통상교섭본부장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투자자가 이길 만하면 걸 수 있는 겁니다. 예외라 하더라도 국제관습법에 입각한 최소 기준 대우는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는 게 토론에서 확인됐습니다. 3명의 법률가 중 다수가 건강보험 보장성 90퍼센트가 국제 관습에 어긋난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마저 제약하는 초헌법을 우리가 굳이 받아들여야 할까요?

농업과 제조업이 무너집니다

  농업이 무너집니다. 돈 좀 더 준다고 농업이 살아나는 게 아닙니다. 세계의 학자들은 피크 오일, 즉 석유 생산량이 감소하는 시기가 곧 온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요즘 농사는 석유로 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식량 위기가 오면, 과연 돈 좀 더 준다고 농산물을 살 수 있을까요? 식량 주권은 가장 중요한 주권입니다. 한번 시스템이 무너지면 다시 농업을 살릴 길이 요원해집니다. 

  제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제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기계화학, 특히 정밀기계, 정밀화학이 약하다는 겁니다. 제약이 바로 정밀화학입니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허리를 끊어 버릴 겁니다. 제조업은 우리가 미국보다 우위라는 건 정말 환상입니다. 우리의 제조업 생산성은 미국의 40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버시바우 미 대사에게 “국회의원들이 농민들에 저항하는 건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까지 의원들은 농민들을 두려워해, 진정한 현안들을 다루는 대신 보조금만 지급해 왔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사실이 아니겠지요? 미국 대사를 만났으면 미국의 농업 보조금을 문제 삼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미국 정부는 쌀 농가당 연간 6천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이걸 없애는 내용이 한미 FTA에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요? 재협상을 해서라도 말이죠. 

검토하는 사이에 우리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남희섭 변리사께서 말씀하시겠지만 우리가 논의조차 못한 의제가 한가득입니다. 저희가 알지 못하는 문제도 많을 겁니다. 한미 FTA는 방대합니다. 과연 한미 FTA 협정문을 꼼꼼히 읽고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다 찾으셨나요? 국민의 삶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미국이 비준했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의원들은 지난 5년 동안 자기 선거구민의 이익을 위해서 끝없이 미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선결 과제, 재협상, 재재협상, 그리고 행정명령을 통해 실리를 챙겼습니다. 과연 우리 국회는 그동안 무엇을 했나요?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8년 국회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한미 FTA 비준안을 의결하려 했습니다. 만일 한미 FTA가 우리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하신다면 그 역사적 결정을 숨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국회 본청에 찬성과 반대한 분들의 이름을 새겨서 사람들이 길이 되새기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오늘 남희섭 변리사와 이해영 교수가 제시하는 여러 과제에 확실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한미 FTA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증거일 겁니다. 제발 충분히 검토하고 토론해 주십시오.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린 일,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정책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정책을 토론 없이 의결한다면 그건 말 그대로 날치기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날치기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6개월이 걸리든, 1년이 걸리든 그 사이에 우리나라, 망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제발 철저히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미 FTA의 대표적 독소 조항 네 가지

① 투자자-국가소송제도 (ISD: Investor-State Disment)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상대 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며, 공공정책도 제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국 투자자는 어떨까. 이번에 오바마가 미 의회에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에 따르면,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한-미 협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ISD는 그 자체로 치명적이고, 심지어 불평등하다. 

② 네거티브 리스트 (Negative List)
포지티브 리스트(Positive List)는 내가 개방하고자 하는 분야를 고르는 것이고, 네거티브 리스트는 개방하지 않을 분야를 쓰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네거티브 리스트가 개방의 폭이 훨씬 넓다. 게다가 이 조항의 특징은 새로 생기는 서비스 분야는 무조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서비스 분야는 압도적으로 미국에서 많이 생긴다. 한국의 첨단 서비스 시장은 당연히 미국 기업에게 넘어가게 된다. 

③ 래칫조항 (rachet: 역진방지조항)
래칫은 톱니바퀴의 역진을 막는 장치를 말한다. 앞으로 개방하고 시장에 맡기는 건 가능하지만, 거꾸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서비스 시장에 적용된다.

④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Future Most Favored Nation Treatment)
 우리가 미래에 다른 나라와 FTA를 맺게 될 경우, 그 나라에 개방하는 만큼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개방해야 한다. 한미 FTA는 앞으로도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posted by 작은책
2011. 10. 18. 15:32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전단이 편지로 왔다. “아직도 안 받으셨나요?” 묻는 전단은 검진 비용의 90퍼센트를 공단에서 담당하니 조기 진단으로 건강을 잃지 말라는 고마운 친절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친절을 이미 여러 차례 받은 처지에서 마음이 흔쾌하지 않는 건 왜일까. 가부장적이거나 상업적 친절이라는 냄새를 느낀다고 반응하면 좀 지나친 걸까.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에서 원장으로 은퇴한 어떤 의사가 사석에서 자신은 건강 검진을 여태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까닭을 묻자, “무서워서!”라고 답했다며 그 은퇴 의사의 친구인 선배는 실소했는데, 그 선배는 해마다 사원 개인에게 마치 크나큰 권리라도 선물하는 양, 건강 진단 다녀올 것을 해마다 회사는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나이 들은 만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당연한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무게 잡는 의사들의 과잉 전문성이 불편하다며 ‘모를 권리’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토로했지만 회사는 알고 싶었을 게다. 미리 정리할 사원이 누구일지를.

  충성스런 고객에게 특별한 배려처럼, 구형 손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 주겠다는 호들갑스런 전화를 극성스레 받는다. 멀쩡한 전화기를 바꾸라니!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배터리 성능도 좋은데 왜 바꾸라는 겐가. 할부금 시한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기능을 더한 제품을 내놓는 세태에서 재고품을 처리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헐값의 프린터를 내준 뒤 고가의 잉크나 토너를 파느라 여념 없는 업체의 상혼과 비슷한 건 아닐까. 아무튼, 옛 번호를 고집하는 손전화는 아직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탈퇴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라이버시 유출에 진저리를 친 경험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언론은 귀띔했다. 진저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기심을 과시하는 누리꾼들이 공개하지 않은 개인 정보를 ‘신상 털기’라며 인터넷에 흘리자 관음증과 더불어 조회가 폭발하지 않던가. 이런 와중에 손 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모를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아 갈 소지가 다분하다. 사전 허락 없이 사용자의 행적을 감시하던 손전화기 제조 회사가 고발되었고, 벌금이 부과된 게 엊그제다.

  “건강 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전자 피부’가 나온다!”며 독자에게 가슴 벅찰 것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잘 휘어질 뿐 아니라 견고한, 가로 2센티미터 세로 1센티미터에 두께가 37마이크로미터의 전자 피부를 문신처럼 심장 가까이 붙이면 환자의 심박수나 체온은 물론 근육의 움직임과 뇌파의 변화까지 24시간 감지하며 주치의에 연결한다는 언론 기사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을 시작했다”는 과학자의 소견을 소개했다. 다만 “생체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거리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 원거리 전송이 필요한 의료 기기 적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덧붙이면서.

  전자 피부의 가능성을 타진한 과학자의 순진한 의도는 기술 개발 속도를 미루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스마트폰 기술과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GPS)을 활용한다면 미약한 생체 신호가 담당 의사의 손전화 모니터에 전달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세계 과학기술의 추이를 분석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를 기반으로 만든 칩을 피부에 이식할 경우, 개인의 맞춤 의학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담당 의사는 컴퓨터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적절한 약품을 그때그때 처방할 뿐 아니라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는지, 먹지 않고 독한 술을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만큼 마시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호자에게 일러바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전자 피부에 개개인의 DNA칩을 넣어 환자, 아니, 모든 국민의 피부에 태어나자마자 이식한다면 어떠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될까. 집 잃은 개를 얼른 찾게 할 뿐 아니라 함부로 버린 개의 임자를 꼼짝없이 잡아내고, 물린 이가 예방 주사 접종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자칩은 개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이 훨씬 빼어나고 비싼 DNA 전자 피부가 전하는 은밀한 정보를 병원은 물론이고 행정망의 중앙컴퓨터와 연결한다면 생활은 무시무시하게 편해질 게 틀림없다. 말썽 많은 주민등록증이나 인감증명이 지갑에서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출입국 수속을 위해,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공항에서 길게 기다릴 이유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1990년대 말, 인감증명과 건강보험카드의 기능을 포함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을 편의를 앞세우며 추진하려는 정부에 시민 단체는 맞서야 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로 시민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들이 은행이나 보험 회사, 그리고 기업에 흘러들어갈 경우 빚어질 감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계획을 철회했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살아나려 한다. 전자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일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 시민과 달리 정부는 아쉬움이 큰 모양인데, 그 실체가 도대체 뭘까. 전국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는 폐쇄회로 카메라보다 효율적인 그 무엇은 감시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까.

  넓은 아스팔트가 한산해진 야심한 밤,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횡단보도로 찾아갈 때 저기 경찰차가 보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횡단보도 도착 전에 길을 건넜더니, 경찰 순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남발하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민중의 지팡이를 믿어 안심하고 건넜다는 핑계를 귓전에도 듣지 않으며 도로교통법 운운하던 경찰은 전과가 없으니 봐 준다며, 더 바쁜 일이 있었는지 가던 길로 휑하니 사라져 갔다.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남이 보든 말든, 순찰차의 작은 단말기로 모든 범죄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에서 더욱 가깝게 다가온 전자주민등록증이 걱정인데, 최첨단을 찬미하는 과학 기술은 전자 피부를 넘어설 세상을 장밋빛으로 그린다.

  전자 피부의 쌍방향 정보는 주치의와 환자의 스마트폰 사이만 맴돌까. 그런 정보는 고객의 수가를 조절하고 싶은 보험 회사에서 반색하고 이윽고 가입을 거부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어떤 이의 입사를 원하지 않겠지만 그 정도는 약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자 신호의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편의에 사로잡힌 개인은 중앙이 은밀히 수집해 분류할 뿐 아니라 가공하는 정보에 굴복할 뿐, 중앙의 의도를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철두철미한 감시 사회에 내팽겨진 개인은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면 저절로 병원 고객으로 등록되면서 나아가 ‘디지털 치매’에 들어간다. 현관 자물쇠의 번호를 기억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전자 신호 체계에 소외된 이는 ‘디지털 학대’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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