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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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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8월호

어린이 해방과 평화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운동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어린이 해방이라는 말은 192351일 제1회 어린이날 선전문에서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어린이들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1회 때 선언문을 20만 장 만들어서 전국에 배포했고. 19242회 때는 35만 부를 만들어서 배포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어린이 해방운동은 1920년대 우리 사회 변혁운동을 위한 중요한 개념으로 강력하게 등장하였다.

방정환이 어린이날을 만들고, ‘어린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게 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날어린이라는 말이 지향하고 있는 뜻이 어린이 해방이라는 건 잘 모른다. 1920년대 당시 어린이 해방 운동가들은 어린이라는 말을 젊은이’, ‘늙은이와 평등하게 독립된 인격과 인권을 가진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만들었다. 곧 당시 어리석고 작은 어른의 물적 소유물이 아니라 당당한 한 사람으로 인권을 가진 민주공화국 시민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20년대 방정환과 김기전을 비롯한 그의 동지들이 지향했던 어린이 운동은 어린이 해방운동이었다. 어린이 해방운동을 펼치기 위해 192251일 오전에 천도교 청년회 중심으로 세계노동자의 날 기념식을 하고, 오후에 천도교 소년회 중심으로 제1회 천도교 어린이날 선언식을 했던 것이다. 19233월에는 천도교 개벽사에서 잡지 <어린이>를 발행하였다. <어린이>는 소년회 회원들은 물론 어린이 해방운동에 나선 어른들까지 함께 만들고 함께 읽는 잡지였다. 192351일에는 소년 운동 단체들이 연합해서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했다. 곧 천도교 소년회에서 1922년에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하고, 1년 뒤인 1923년에는 전국 소년회들이 모여서 다시 제1회 어린이날로 선언한 것이다. 이는 천도교에서 시작한 어린이 해방운동을 기독교와 불교 및 각 사회단체와 함께 손을 잡고 펼쳐 나가는 기점이 된다. 이를 기점으로 전국 곳곳에 소년회를 만들어 나가면서 어린이 해방운동을 넓혀 나갔다.


이렇듯 방정환과 그 동지들이 어린이 해방운동에 나선 까닭,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 많은 호응을 얻은 까닭은 3·1대혁명, 3·1독립만세운동 때문이었다. 물론 동학과 동학을 잇는 천도교에서는 어린이도 어른과 평등한, 아니 더 소중한 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3·1독립만세운동 시작과 전개 과정에서 당시 보통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어린 사람들의 참여가 많았다. 우리 역사에서 어린 사람들이 사회변혁 운동에 집단으로 앞에 나선 첫걸음이다.

31일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은 선언서 낭독 후에 일경에 자진해서 잡혀갔지만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위를 이끈 주인공들은 어른이 아니라 나이 어린 학생들이었다. 유관순 사례에서 보듯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간 학생들이 앞장서서 준비한 곳이 많았고, 무엇보다 32일 인천의 보통학교 어린이들이 주도한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보통학교 어린이들이 단체로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3·1독립만세운동에는 우리 민족 모든 연령과 계급과 지역을 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특히 소년소녀들이 앞장서 참여하고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본 많은 어른들이 감동하였고, 어린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 민족은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해 민족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공화국을 정치체제로 하는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를 수립하였고, 대한독립군을 조직하였다. 이렇듯 대한제국이라는 군주제를 버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제로 바꾼 시민혁명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은 3·1대혁명이라고 불렀다. 이를 기점으로 국외에서는 독립군을 만들어 독립전쟁을 시작했고, 국내에서는 각종 사회운동이 일어났다. 노동운동과 농민운동과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방정환을 중심으로 어린이 해방운동이 크게 일어났던 것이다.

3·1대혁명을 계기로 천도교는 물론 각 종교 단체와 지역 활동가들 사이에서 어린이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어른보다 더 앞장 서 나가는 독립된 사람으로 존중하는 사회적 자각이 확장되었으며,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어린이 해방운동이 힘을 받으면서 확산되었다. 그 힘으로 192251일 천교도에서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하였다. 나아가 어린이 해방운동이 천도교를 넘어서 사회 전체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선소년운동협회가 결성되었고, 조선소년운동협회 이름으로 192351일에 다시 제1회 어린이날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린이 해방운동은 소년회라는 단체를 통해서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당시 소년회는 천도교 소년회, 기독교 소년회, 불교 소년회처럼 종교에 기반을 둔 소년회와 진주 소년회, 화성 소년회, 마산 소년회처럼 지역에 기반을 둔 소년회들이 있었다. 또는 무산자 소년회나 소년 척후군처럼 계급운동이나 무장독립투쟁을 목적으로 하는 소년회도 있었다.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출범이나 활동이 기사로 나온 소년회만도 500여 개에 이른다. 신문이나 잡지에 소개되지 못한 소년회들도 많았을 것이고, 기사로 소개되거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기사로 드러나지 않았던 소년회들이 요즘으로 견주어 보더라도 더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소년회 회원은 보통 30~40, 많은 곳은 200~300명까지 되었다. 마산 신화소년회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10세 전후 어린이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고, 지역 어린이 운동가들이 안내자나 후원자를 맡았다. 회는 어린이들이 앞장서 만들고, 자치적으로 운영하였다. 주로 놀이, 체육, 토론, 책 읽기와 글쓰기, 동화 구연과 연극 발표를 비롯한 문화예술 활동을 하였다. 이러한 소년회 활동은 어린이들이 사회변혁에 앞장서는 힘으로 작용했다.

앞에서 살짝 짚었듯이 3·1독립만세운동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종의 승하로 대한제국이라는 군주제가 끝나고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독립을 선언한 의미가 더 크다. 이렇듯 군주제를 버리고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3·1대혁명에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어른들보다 앞에 섰다. 당시 어른들을 얼마나 부끄럽게 하고, 천지개벽하는 감동을 느끼게 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이렇게 어린이 혁명으로 태어난 나라다. 그후 순종 장례를 계기로 일으킨 19266·10만세운동, 일본 학생들과 일본 경찰의 횡포에 맞서 시작한 광주학생의거를 일으킨 바탕이 되는 힘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방정환과 그 동지들이 일으킨 어린이 해방운동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어린이 해방운동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겨레 역사가 갖고 있는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방정환의 어린이 해방운동은 좌우익 주도권 쟁탈과 일본제국의 끈질기고 악랄한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937년 제15회 어린이날 기념식을 마지막으로 지하운동으로 숨어들었다. 조선총독부는 소년회를 해체하면서 건아단을 만들어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해방군으로 진주하면서 분단되었고, 6·25전란을 통과하면서 어린이 해방운동가들이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학살당하거나 숙청되면서 거세당했다. 그럼에도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에 앞장선 것이다. 이렇듯 우리 겨레 역사에서 중요한 사회변혁의 분기점이 되는 3·1혁명과 4·19혁명은 18세 이하 어린이들이 앞장선 어린이 혁명이었다.

그런데 5·16군사반란 이후 어린이라는 말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덜 자라고 어리석어서 어른이 될 준비에만 매진해야 하는, 곧 어른이 되기 전에는 모든 인격과 인권을 유보해야 하는 어른들의 소유물로 다시 퇴화되었다. 이렇듯 1920년대 방정환과 어린이 해방운동 정신을 퇴화시키는 작업은 해방 후 독재자들이 우리 사회를 장악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어린이날 선언문이다. 1960년대 초까지 어린이날이면 이 선언문을 낭독하였는데, 이제는 어린이날 행사 때 이 선언문을 낭독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어린이 해방운동을 불러내야 한다. 201610월부터 시작한 촛불혁명이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을 어른에 속한 미숙하고 어리석은 물적 자원으로 보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길은 100여 년 전 방정환과 그 동지들이 밝혀 준 어린이 해방운동을 다시 이 시대에 불러내고, 어린이 그들이 한 사람의 온전한 민주시민으로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사회를 창조하는 일이다.

인류 역사를 해방의 역사로 본다면 근현대사는 인류가 해방 범위와 수준을 높이기 위한 투쟁사라고 할 수 있다. 15세기 문예부흥은 인간 해방운동의 시작이고, 18세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은 시민 해방의 시작이고, 19세기 노동자 투쟁은 계급해방의 시작이고, 20세기 성평등 운동은 여성해방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해방, 시민 해방, 노동자 해방, 여성해방 다음으로 인류가 나갈 길은 세대 혁명, 곧 어린이 해방이다. 어린이와 젊은이와 늙은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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