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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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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교실 이야기


참깨반 아이들과 봄비쌤

조은영/ 김해 대진초등학교 교사


우리 학교는 김해시 외곽 진례면에 있습니다. 도시 외곽이라 하면 대개 개발이 되지 않은 한적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크고 작은 창고형 공장, 비닐하우스, 벼농사 논들이 무분별하게 섞여 있는 농공단지 안에 들어앉은 학교입니다. 전교생이 65명입니다. 학교 둘레 비닐하우스와 크고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엄마, 아빠가 많아서 학교에도 다문화가정 어린이가 40퍼센트가 넘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만나던 첫날 봄비선생님은 아이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 반 이름을 칠판에 ㅊㄲ반 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자 대뜸 아이들 입에서 참깨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참깨, 참깨, 참깨반소리 내어 부르고 보니 부르기 좋고, 고소한 맛이 좋고, 앞으로 텃밭 농사를 할 우리 반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반은 참깨반이 되었습니다.

아홉 살 남학생 열 둘, 여학생 다섯, 그리고 150살이라고 소개한 봄비쌤이 함께 만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자기 생각과 하고픈 말이 많고, 친구 사이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날마다 친구랑 다툽니다. 아직 감정 조절이 안 되어 친구랑 다투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어젯밤 술 많이 마시고 들어온 아빠가 걱정되어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린 채 슬프다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가정과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듯합니다. 학교에서 날마다 다투고 울고, 미안해 괜찮아 사과하고 용서하는 일을 놀이하듯 밥 먹듯 연습합니다.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하시고, 엄마랑 이혼한 아빠는 평소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일 나가서 전화 통화가 안 되는 성이 문제는 마을 월드마트 아주머니께 전화해서 이것저것 여쭈어 보고 부탁도 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소리 내어 읽기는 대부분 잘하지만 쓰기는 아직 서툴거나 받침이 정확하지 않은 아이가 많습니다.

아홉 살 마음사전이란 책은 감격스럽다에서 흐뭇하다까지 80개 마음 표현을 가나다순으로 소개한 책입니다. ‘좋다, 싫다, 짜증난다란 단순한 말 표현에 머물기 쉬운 아이들에게 날마다 두 낱말씩 익히게 합니다. 그날 배운 낱말은 뜻과 글자를 꼭 익히도록 하는데 감격스럽다걱정스럽다를 익히고 표정, 몸짓 연기도 하고 받아쓰기를 했을 때 일입니다. 패자부활전을 거쳐 모두 200점을 받아 5교시 피구를 했습니다. 돌봄교실을 마치고 집에 가는 성이를 운동장에서 마주쳐 모래에 아까 배운 낱말을 써 보라 했더니 여전히 잘 써서 영원히 200점이다 했더니, 이가 손을 달라 했습니다. 손 내미니 작은 두 손으로 꽉 잡아서 다쳤던 팔이 무척 아플 정도였습니다. 영원히 200점이란 말이 응원이 되고 기쁨이 된 성이도 곧 한글을 뗄 듯합니다.

2 열일곱 명과 지내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듯 합니다. 친구들이 발표 지명해 주지 않는다고 슬프다며 뒤 탁자에 나가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 자기가 원하는 팀 이름이 아니라고 운동장 저쪽으로 가 버리는 아이, 화내고 싸우고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사과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아이, 아직은 아홉 살 인생 어린이들. 그런 아이들 속에서 선생님도 어떨 땐 같이 화내고, 큰 소리로 야단치고 돌아오는 날엔 교사로서 좌절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읽어 주고 중재해 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교사 안의 에너지가 더 넉넉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2-겨울과 봄>에서 이치코는 말합니다. “뭔가에 실패해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아니 그것보다 인간은 나선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도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내가 그리는 원은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커지게 될 거야.”

선생님도 너덜너덜 지칠 땐 아이들에게 위로의 기도를 부탁합니다. 집에 가며 한 명씩 인사 나눌 때 팔을 높이 뻗어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주말이면 어머니 나라 종교의식을 행하는 아이가 있어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니 베트남식 기도를 해 주고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손을 부딪치고 맞잡는 힘은 대단합니다. 난개발이라고 불편스런 눈으로 바라본 간판들은 안정적이지 않은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현실이고, 어쩌면 그렇게나마 어울려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민낯인지도 모릅니다. 이 속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조금씩 나아가고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얼굴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다문화가정 아이인지 크게 구별하기 힘들 만큼 외모도 언어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개 다문화가정의 경우 한국 아버지의 나이가 엄마보다 스무 살 넘게 많거나 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고, 동남아 어머니는 주중에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 돌봄이 부족하여 한글을 아직 모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여 엄마랑 둘이서 사는 아이도 많습니다. 이주여성노동자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삶이 무척 힘들 것임에도 학부모상담 기간에 전화상담 신청을 하고 아이의 친구 관계, 수업 시간 모습 등을 꼼꼼히 물어보고 부탁하는 말은 우리나라 학부모와 다름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종, 국적, 성별, 빈부, 학력 그 어떤 것에서도 차별받지 않지 않고 평등해야 함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삼사월을 보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지내며 태어난 나라, 가정, 성별 등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갖가지 환경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골고루 공공의 지원과 혜택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부풀어 큰 원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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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내 일당보다는 더 줘야지

이근제/ 건설노동자

 

○○건설 마트현장으로 일을 나갔다. 나는 일반공이다. 오전에 뿌레카라는 연장으로 콘크리트를 깨어 내고, 오후에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기 위해 거푸집() 작업을 했다. 거푸집 일은 목수들이 하는 일이다. 일을 끝내고 반장이 작업 확인서에 일당을 쓰면서 오늘 고생했다고 우리 소장님이 만 원 더 쓰라고 해서 더 썼어한다. 내 일당은 12~13만 원이다. ‘뿌레카 작업에 목수 일까지 했으니 당연히 내 일당보다는 더 줘야지.’

 거푸집 작업을 하는 건설현장 노동자들 작은책


목수는 기공이라고 해서 17~18만 원 받고, 뿌레카 작업은 힘든 일이라 14~15만 원은 받는다고 들었다. 인력사무소로 오면서 작업 확인서를 봤다. 만 원 더 썼다고 해서 14만 원인 줄 알았더니 13만 원이다. 12만 원을 쓰려고 했다는 말이 아닌가? 기분이 팍 상한다. 나는 관리자가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 다 알아서 척척 해낸다. 그래서 자기가 일을 편하게 하려고 인력사무소에 이근제 보내 주세요요구하기도 하고, 나한테 친구야 내일 우리 현장으로 와사전 예약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우를 해주기는커녕 덜 주려 하다니, 괘씸하기까지 하다.

하루가 지났다. 경운기 엔진을 얹어 만든 1톤 롤러로 땅을 다지는 다짐 일을 시켰다. 돌 머리에서는 사람 힘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기계를 잘 못 다루어 쑤셔 박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고 들었다.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 싶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배워 둘 겸 일을 했다. 사고는 내지 않았지만 저녁 무렵에는 팔이 아팠다. 반장이 일당을 적으면서 말한다.

“12만 원 쓸게.”

, 12만 원?’

오늘 15만 원짜리야. 그런데 처음 이곳 와이현장에 와서 일했던 사람이 일한 시간이 얼마 안 되었다고 14만 원을 받아가서 그것이 굳어졌지만.”

…….”

작업 확인서를 봤다. 15만 원짜리라는 말까지 했건만 13만 원이다. 어제도 기분 나쁘게 하더니 오늘도……. 내가 착각 속에 빠져 사는지 모르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만난 지 두어 달도 안 됐을 때부터 마트소장이 텍크와이현장에 가서 반장을 하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맨날 우리 소장님을 입에 달고 사는 반장이 소장 돈 벌어 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설에서 반경 300미터가량 되는 곳에 텍크’, ‘’, ‘와이’, ‘에스’, ‘마트이렇게 공장 건물 다섯 동을 짓는데 마트현장은 건설사 이름만 빌려 하는 개인 사업자다.

 경기도 시내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작은책


기분 나쁘게 한 것이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힘들지 않은 일할 때는 가끔 12만 원으로 써 주었다. 같은 건설사인 텍크와이현장으로 가는 사람들은 13만 원을 받아 오는데 말이다. 이참에 일당 때문에 내 서운했던 감정을 내일은 말해야겠다. 같은 건설사에 일을 나오면서 나만 적게 받으면 기분이 무척 나쁘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게 말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쪽으로 가는 사람들 일당이 깎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해야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일을 너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당이 보통 12만 원이니까. 가장 서운하게 생각했던 뿌레카 작업을 하면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인력 소장한테 정확하게 알아봐야겠다. (일에 따라 일당이 대충 정해져 있다.)

아침에 현장을 배정받으면서 소장님한테 물었다.

소장님 뿌레카 작업을 하면 얼마를 받나요?”

큰 거로 하면 보통 14~15만 원 받고, 작은 거는 13~14만 원 받아요.”

나는 작은 것으로 했다. 그렇다면 내 욕심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마트반장이 관리하는 이라는 현장에 가서 바닥 버림 콘크리트를 쳤다. 일한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작업은 3시 조금 넘어 끝났다. 반장이 일당을 12만 원을 쓰겠다고 한다. 콘크리트 타설은 17만 원이다. 적어도 13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러라고 하면서 말했다.

어저께 같은 경우 15만 원짜리야.”

, 나도 마음 같아선 맨날 13만 원 써 주고 싶어. 어저께 너 있을 때 소장님이 말했잖아. 사무실에서 잡부 일당을 많이 준다는 말이 나왔다고. 나도 이거(확인서 써 주는 것) 하고 싶지 않아. 소장님이 했으면 좋겠어. …….”

나는 내가 일을 해 주는 만큼 일당을 못 받고 있다는 마음이 자꾸 든다.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말이다. 반장도 기분 나쁘지 않고, ‘텍크와이쪽으로 가는 사람들 일당도 깎아 먹지 않게 할 말을 며칠 동안 고민했다. ‘앞으로 나한테 사전 예약 하지도 말고, 인력에도 나를 찍어서 보내 달라는 말도 하지 말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 같다. 그러면 텍크와이쪽으로 가는 사람들 일당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고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반장도 알아먹을 테니까.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내일은 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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