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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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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7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탐방_ 한국잡월드

 

직접고용 원하는 사람은 양심이 없다?


어린이·청소년 진로 길잡이 역할 할 한국잡월드,

상시·핵심업무 맡은 체험관 비정규직 강사 직접고용은 외면


정인열/ <작은책> 기자

 

 

죄송해요. 저희는 비정규직이라 명함도 없어요.”

지난 64일 청와대 앞. 이곳에서 피켓 시위 중이던 한국잡월드 직업 체험강사(이하 체험강사)들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명함을 건네자 이재희 강사가 던진 말이었다.

한국잡월드(이하 잡월드)2012어린이와 청소년의 건전한 직업관 형성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된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잡월드는 국내외 최대 규모의 종합직업체험관으로, 청소년체험관은 42개 체험실에 66개 직업을, 어린이체험관은 41개 체험실을 갖추고 54개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얼마 전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이 중 어린이체험관과 청소년체험관 관람객만 472만 명으로, 잡월드의 핵심은 바로 체험관이다.

▲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잡월드 내 어린이체험관 ⓒ작은책(정인열)


그런데 아이들의 체험을 이끄는 강사 275명은 모두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위탁업체 직원이다. 잡월드가 체험관 운영을 민간기업에 위탁했기 때문이다. 잡월드는 2년마다 업체를 바꾸었고, 이 때문에 체험관 노동자들은 업무는 그대로 하면서 소속 업체만 4차례 바뀌었다. 상시 지속 업무임에도 2년 이상 계약 시에는 해당 위탁업체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현재 이들의 소속은 서울랜드.

“2년 후면 떠날 회사니 명함 요구도 안 하게 됐죠. 진정한 우리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어린이들이 체험강사의 안내에 따라 피자게게 체험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매일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을 상대로 수업을 하는 체험강사들은 수업 외에도 체험실 기기 점검청소비품 관리까지 도맡아 한다직접 체험관을 관람해 보니 이들이 없다면 체험관 운영은 전면 불가능할 정도로 체험강사에게 의존하는 업무는 95퍼센트 이상으로 보였다.

청소년체험관의 경우 1시간짜리 체험을 하루 5회 진행하는데수업 사이사이 20분간의 준비 및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하루 종일 서서 일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앉아서 쉬고 싶지만 화장실만 겨우 다녀오는 실정이다메이크업숍·화장품 연구소 안미경 강사가 말했다.

수업 마치고 나서 체험실 다시 세팅하고, 다음 수업 10분 전에 스탠바이하고 5분 전에는 학생들 입장을 받으니까 쉬는 시간이 부족해요. 그러니 하지정맥류나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 피자가게 체험강사들이 다음 수업준비를 하고 있다(수업 전·후 뒷정리와 준비를 해야하므로 쉬는 시간은 사실상 없다) ⓒ작은책(정인열)


대부분의 강사들은 한국잡월드에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입사 지원을 했다청소년체험단 패션디자인실 이효진 강사는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 직원이었다안미경 강사 역시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하고 직업상담 자격을 취득했다각자 자신만의 전문성도 살리면서 공공기관에서 진로 교육을 하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일을 시작했다그런데 잡월드와는 업무 연관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위탁업체가 있었고 업체도 2년마다 바뀌었다가장 크게 실망한 점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임금이었다.

월급명세서를 보고 기가 막혔어요금액이 어이가 없어서요.”

최저임금 수준이었다법정 최저시급보다 100원에서 200원 많았고 최저임금에 맞춰 임금이 올라갔다기본급에 식대 84,000원과 휴일 근무 시 발생하는 약간의 수당이 전부였다복리후생도 없었다체험강사들의 평균 월급은 식대와 휴일 근무(월 4회 기준수당을 포함해도 약 182만 원이마저도 입사 1년차나 6년차나 똑같다반면 잡월드 전체 인력 중 약 13퍼센트를 차지하는 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약 456만 원(잡월드가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보고한 자료).

이렇게 체험강사들이 최저임금에 고용불안 및 소속감도 없는 환경에 처하다 보니 회의감이 들고 의욕도 저하되는 것은 사실이다특히 청소년체험관 수술실 이재희 강사는 낮아지는 자존감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았다.

처음에는 정말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의 좋은 미래를 위해 기여하겠다는 의지로 시작했어요진로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많이 했고요그런데 직접고용돼서 일하는 형태도 아니고콘텐츠를 내가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자꾸 자존감이 떨어졌어요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가장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면 흔들리던 마음이 다시 사라진다고 체험강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내가 왜 힘들게 이 짓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학생들 보면 다시 잘해 주고 싶고반갑고요반복이죠하하하.”

▲ 어린이체험관 이진형 강사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2017년 7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정부는 체험강사처럼 상시·지속적 업무는 정규직 전환을 하도록 했다이 소식을 들은 체험강사들은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직접고용 또는 자회사 설립도 포함되어 있었다잡월드는 직접고용 방식을 제외한 채 자회사 설립을 결정했다이를 위해 가이드라인에 따라 노·사 및 전문가 컨설팅의 협의회(이하 노사전협의회)를 꾸리고 의결 절차를 밟았다그런데 체험강사들은 실제 내용면에서 당사자를 배제한 형식적인 협의와 의결 절차였다고 주장한다.

“10여 차례 정규직 전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1, 2, 3차 회의에 저희는 끼지도 못했고 자기들끼리 하다가 결정적으로 우리가 필요할 때만 끼워 준 거예요.”

협의회에는 전문가 컨설팅업체로 G경영컨설팅 회사가 들어왔다그리고 올 3월 초 체험강사 단체 교육에 G업체 관계자가 등장해 이런 말을 했다.

“‘직접고용 원하는 사람은 양심이 없어요여러분들 말고도 밖에서 취업 준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 정규직 들어오려고 하는데 여러분들 때문에 못하고 있다면 사회적 공감 얻으시겠어요?’ 하고 말하는데 굉장히 모멸감을 느꼈어요저 사람이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 직접고용은 안 된다고 해우리를 무시하네?”

체험강사들은 직접고용이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나 잡월드 사측 인사와 전문가 컨설팅 인사들은 수적 우세로 또 다른 간접고용 형태인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기존 외주 용역인 미화주차시설관리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전환 동의서를 받았다이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체험강사들은 자신들의 의견이 묵살되자 모여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서명을 거부하고 4월 1일 노조(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를 설립했다.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어요막다른 길에 몰려서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겠다 해서.”

▲ 6월 4일 청와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는 이재희 강사와 강선경 강사(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이후 전체 체험강사 257명 중 153명이 가입했고 강사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잡월드 앞에서 집회와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그리고 휴관하는 월요일에는 관계부처인 고용노동부청와대총리관저고용노동부 성남지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잡월드는 체험강사는 잡월드 직원이 아니라는 공문을 냈다청소년체험관 모터스포츠실 강선경 강사가 말한다.

최근에 노조 설명회 때문에 늦게까지 회사에 남은 적이 있었거든요체험실 입구 대기석에 모여 있었는데 잡월드에서 업무 끝나고 나서는 사용하지 말라는 거예요이유를 물었더니 우리는 서울랜드 직원이지 잡월드 직원은 아니니까 사용하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어요기분 되게 나빴어요.”

2012년 설립부터 지금까지 잡월드의 핵심 업무는 직업체험관이다. 500만 관람객 중 체험강사의 지도를 받지 않은 어린이·청소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꿈한국잡월드에서 찾으세요’ 라며 홍보하는 잡월드는 체험강사들이 쌓아 온 업적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 청소년체험관 이재희 강사와 안미경 강사(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직접고용이 왜 필요하냐고요내 일이니까책임감과 애정을 갖게 되잖아요이게 잡월드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니까 좋은 세상 만들어 줘야죠.”

우리 아이들에게 심어 줘야 할 건전한 직업관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그렇기에 이들은 누구보다 잡월드의 일꾼으로 나무랄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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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27. 15:07 알림 / 엮은이의 글


엮은이의 글

 

투표하는 날, 7월호 마감하느라 사무실에 나왔는데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생각이 변하지 않는 보수층이 많은 지역에 사는 분이시랍니다. 대표님이 그 동네 사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죠?”라고 우스개로 안부를 여쭈니, “그니까 작은책 보지요!” 하고 답하십니다. 독자님의 그 한마디에도 힘을 얻습니다. 휴일에도 나와서 일하는 보람도 느끼고요. !

이번 지방선거 투표율이 60.2 퍼센트였다고 해요. 소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반려동물 의료비 지원이나 입양센터 설립 확대 등 동물복지 공약을 내놓은 후보들도 있었습니다. 길고양이에게도 지방선거의 여파가 미쳤다고 할까요?

이번 호 표지 주인공은 재건축으로 주민들이 모두 떠난 둔촌주공아파트 단지에 덩그러니 남은 길고양이들입니다. 이 길고양이들을 안전하게 이주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정미진 씨의 글도 담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웃고 울고 마음을 쓸어내렸던 이하나 씨의 연재가 끝났습니다. 이달부터는 <한사람연구소> 소장 송추향 씨의 살아온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쉬어쉬엄 가요꼭지에는 박일환 시인의 우리말과 국어사전 짚어 보기도 새로 연재됩니다. <작은책>과 귀한 인연 맺어 주신 필자님들, <작은책>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는 독자님들, 모두 참 고맙습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2018620

유이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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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교실 이야기


참깨반 아이들과 봄비쌤

조은영/ 김해 대진초등학교 교사


우리 학교는 김해시 외곽 진례면에 있습니다. 도시 외곽이라 하면 대개 개발이 되지 않은 한적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크고 작은 창고형 공장, 비닐하우스, 벼농사 논들이 무분별하게 섞여 있는 농공단지 안에 들어앉은 학교입니다. 전교생이 65명입니다. 학교 둘레 비닐하우스와 크고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엄마, 아빠가 많아서 학교에도 다문화가정 어린이가 40퍼센트가 넘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만나던 첫날 봄비선생님은 아이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 반 이름을 칠판에 ㅊㄲ반 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러자 대뜸 아이들 입에서 참깨라는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참깨, 참깨, 참깨반소리 내어 부르고 보니 부르기 좋고, 고소한 맛이 좋고, 앞으로 텃밭 농사를 할 우리 반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 같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반은 참깨반이 되었습니다.

아홉 살 남학생 열 둘, 여학생 다섯, 그리고 150살이라고 소개한 봄비쌤이 함께 만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아직 자기 생각과 하고픈 말이 많고, 친구 사이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날마다 친구랑 다툽니다. 아직 감정 조절이 안 되어 친구랑 다투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어젯밤 술 많이 마시고 들어온 아빠가 걱정되어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린 채 슬프다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가정과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말은 아닌 듯합니다. 학교에서 날마다 다투고 울고, 미안해 괜찮아 사과하고 용서하는 일을 놀이하듯 밥 먹듯 연습합니다.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하시고, 엄마랑 이혼한 아빠는 평소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하고 일 나가서 전화 통화가 안 되는 성이 문제는 마을 월드마트 아주머니께 전화해서 이것저것 여쭈어 보고 부탁도 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소리 내어 읽기는 대부분 잘하지만 쓰기는 아직 서툴거나 받침이 정확하지 않은 아이가 많습니다.

아홉 살 마음사전이란 책은 감격스럽다에서 흐뭇하다까지 80개 마음 표현을 가나다순으로 소개한 책입니다. ‘좋다, 싫다, 짜증난다란 단순한 말 표현에 머물기 쉬운 아이들에게 날마다 두 낱말씩 익히게 합니다. 그날 배운 낱말은 뜻과 글자를 꼭 익히도록 하는데 감격스럽다걱정스럽다를 익히고 표정, 몸짓 연기도 하고 받아쓰기를 했을 때 일입니다. 패자부활전을 거쳐 모두 200점을 받아 5교시 피구를 했습니다. 돌봄교실을 마치고 집에 가는 성이를 운동장에서 마주쳐 모래에 아까 배운 낱말을 써 보라 했더니 여전히 잘 써서 영원히 200점이다 했더니, 이가 손을 달라 했습니다. 손 내미니 작은 두 손으로 꽉 잡아서 다쳤던 팔이 무척 아플 정도였습니다. 영원히 200점이란 말이 응원이 되고 기쁨이 된 성이도 곧 한글을 뗄 듯합니다.

2 열일곱 명과 지내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듯 합니다. 친구들이 발표 지명해 주지 않는다고 슬프다며 뒤 탁자에 나가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 아이, 자기가 원하는 팀 이름이 아니라고 운동장 저쪽으로 가 버리는 아이, 화내고 싸우고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사과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아이, 아직은 아홉 살 인생 어린이들. 그런 아이들 속에서 선생님도 어떨 땐 같이 화내고, 큰 소리로 야단치고 돌아오는 날엔 교사로서 좌절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읽어 주고 중재해 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교사 안의 에너지가 더 넉넉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2-겨울과 봄>에서 이치코는 말합니다. “뭔가에 실패해 나를 돌아볼 때마다 난 항상 같은 걸로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서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이 아니라 나선을 그렸다고 생각했어. 맞은편에서 보면 같은 곳을 도는 듯 보였겠지만 조금씩은 올라갔거나 내려갔을 거야. 아니 그것보다 인간은 나선그 자체인지도 몰라.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면서도 그래도 뭔가 있을 때마다 위로도 아래로도 자랄 수 있고 옆으로도내가 그리는 원은 점차 크게 부풀어 조금씩 커지게 될 거야.”

선생님도 너덜너덜 지칠 땐 아이들에게 위로의 기도를 부탁합니다. 집에 가며 한 명씩 인사 나눌 때 팔을 높이 뻗어 하이파이브를 합니다. 주말이면 어머니 나라 종교의식을 행하는 아이가 있어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니 베트남식 기도를 해 주고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손을 부딪치고 맞잡는 힘은 대단합니다. 난개발이라고 불편스런 눈으로 바라본 간판들은 안정적이지 않은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현실이고, 어쩌면 그렇게나마 어울려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민낯인지도 모릅니다. 이 속에서 아이들도 어른들도 조금씩 나아가고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얼굴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다문화가정 아이인지 크게 구별하기 힘들 만큼 외모도 언어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개 다문화가정의 경우 한국 아버지의 나이가 엄마보다 스무 살 넘게 많거나 장애를 가진 경우가 많고, 동남아 어머니는 주중에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아 돌봄이 부족하여 한글을 아직 모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여 엄마랑 둘이서 사는 아이도 많습니다. 이주여성노동자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삶이 무척 힘들 것임에도 학부모상담 기간에 전화상담 신청을 하고 아이의 친구 관계, 수업 시간 모습 등을 꼼꼼히 물어보고 부탁하는 말은 우리나라 학부모와 다름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인종, 국적, 성별, 빈부, 학력 그 어떤 것에서도 차별받지 않지 않고 평등해야 함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삼사월을 보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과 지내며 태어난 나라, 가정, 성별 등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에 각자에게 주어진 갖가지 환경에서도 차별받지 않고 골고루 공공의 지원과 혜택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부풀어 큰 원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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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살아가는 이야기


내 일당보다는 더 줘야지

이근제/ 건설노동자

 

○○건설 마트현장으로 일을 나갔다. 나는 일반공이다. 오전에 뿌레카라는 연장으로 콘크리트를 깨어 내고, 오후에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기 위해 거푸집() 작업을 했다. 거푸집 일은 목수들이 하는 일이다. 일을 끝내고 반장이 작업 확인서에 일당을 쓰면서 오늘 고생했다고 우리 소장님이 만 원 더 쓰라고 해서 더 썼어한다. 내 일당은 12~13만 원이다. ‘뿌레카 작업에 목수 일까지 했으니 당연히 내 일당보다는 더 줘야지.’

 거푸집 작업을 하는 건설현장 노동자들 작은책


목수는 기공이라고 해서 17~18만 원 받고, 뿌레카 작업은 힘든 일이라 14~15만 원은 받는다고 들었다. 인력사무소로 오면서 작업 확인서를 봤다. 만 원 더 썼다고 해서 14만 원인 줄 알았더니 13만 원이다. 12만 원을 쓰려고 했다는 말이 아닌가? 기분이 팍 상한다. 나는 관리자가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무슨 일이든 다 알아서 척척 해낸다. 그래서 자기가 일을 편하게 하려고 인력사무소에 이근제 보내 주세요요구하기도 하고, 나한테 친구야 내일 우리 현장으로 와사전 예약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우를 해주기는커녕 덜 주려 하다니, 괘씸하기까지 하다.

하루가 지났다. 경운기 엔진을 얹어 만든 1톤 롤러로 땅을 다지는 다짐 일을 시켰다. 돌 머리에서는 사람 힘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힘들고, 기계를 잘 못 다루어 쑤셔 박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다고 들었다. 혹시 다치지나 않을까 싶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배워 둘 겸 일을 했다. 사고는 내지 않았지만 저녁 무렵에는 팔이 아팠다. 반장이 일당을 적으면서 말한다.

“12만 원 쓸게.”

, 12만 원?’

오늘 15만 원짜리야. 그런데 처음 이곳 와이현장에 와서 일했던 사람이 일한 시간이 얼마 안 되었다고 14만 원을 받아가서 그것이 굳어졌지만.”

…….”

작업 확인서를 봤다. 15만 원짜리라는 말까지 했건만 13만 원이다. 어제도 기분 나쁘게 하더니 오늘도……. 내가 착각 속에 빠져 사는지 모르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일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만난 지 두어 달도 안 됐을 때부터 마트소장이 텍크와이현장에 가서 반장을 하라고 했을 정도니까. 그런데 맨날 우리 소장님을 입에 달고 사는 반장이 소장 돈 벌어 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건설에서 반경 300미터가량 되는 곳에 텍크’, ‘’, ‘와이’, ‘에스’, ‘마트이렇게 공장 건물 다섯 동을 짓는데 마트현장은 건설사 이름만 빌려 하는 개인 사업자다.

 경기도 시내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작은책


기분 나쁘게 한 것이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힘들지 않은 일할 때는 가끔 12만 원으로 써 주었다. 같은 건설사인 텍크와이현장으로 가는 사람들은 13만 원을 받아 오는데 말이다. 이참에 일당 때문에 내 서운했던 감정을 내일은 말해야겠다. 같은 건설사에 일을 나오면서 나만 적게 받으면 기분이 무척 나쁘다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게 말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쪽으로 가는 사람들 일당이 깎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말을 해야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일을 너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 욕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일당이 보통 12만 원이니까. 가장 서운하게 생각했던 뿌레카 작업을 하면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인력 소장한테 정확하게 알아봐야겠다. (일에 따라 일당이 대충 정해져 있다.)

아침에 현장을 배정받으면서 소장님한테 물었다.

소장님 뿌레카 작업을 하면 얼마를 받나요?”

큰 거로 하면 보통 14~15만 원 받고, 작은 거는 13~14만 원 받아요.”

나는 작은 것으로 했다. 그렇다면 내 욕심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마트반장이 관리하는 이라는 현장에 가서 바닥 버림 콘크리트를 쳤다. 일한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작업은 3시 조금 넘어 끝났다. 반장이 일당을 12만 원을 쓰겠다고 한다. 콘크리트 타설은 17만 원이다. 적어도 13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러라고 하면서 말했다.

어저께 같은 경우 15만 원짜리야.”

, 나도 마음 같아선 맨날 13만 원 써 주고 싶어. 어저께 너 있을 때 소장님이 말했잖아. 사무실에서 잡부 일당을 많이 준다는 말이 나왔다고. 나도 이거(확인서 써 주는 것) 하고 싶지 않아. 소장님이 했으면 좋겠어. …….”

나는 내가 일을 해 주는 만큼 일당을 못 받고 있다는 마음이 자꾸 든다.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려고 하지만 말이다. 반장도 기분 나쁘지 않고, ‘텍크와이쪽으로 가는 사람들 일당도 깎아 먹지 않게 할 말을 며칠 동안 고민했다. ‘앞으로 나한테 사전 예약 하지도 말고, 인력에도 나를 찍어서 보내 달라는 말도 하지 말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거 같다. 그러면 텍크와이쪽으로 가는 사람들 일당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고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반장도 알아먹을 테니까.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내일은 말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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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6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 탐방_ 통학 셔틀버스 기사 

 

도망치듯 운전하고 싶지 않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아침 730, 어느 중학교 등교 시간. 15인승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백용진 씨(가명)가 여느 때처럼 학생 십여 명을 학교 앞에 막 내려 주었을 때였다. 명찰을 단 사람이 백 씨의 차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서울시 교통지도과에서 나온 단속반입니다.”

20155월 서울시는 현행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 금지)을 근거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백 씨는 잠복해 있던 단속반에 걸려 6개월 운행정지 처분을 받고 100만 원가량의 범칙금을 냈다. 왜 노란 셔틀버스는 불법인가? 또 왜 백 씨는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백 씨의 차량에 동승해 사정을 들어 보았다.

 서울의 한 학원 앞에 정차 중인 셔틀버스들 작은책(정인열)


2015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시설장이 소유한 26인승 이상 차량만 통학버스로 허용됐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영세한 학원이나 어린이집은 좁은 골목을 다닐 수 있는 소형 승합차를 소유한 지입 기사를 필요로 했고, 합법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6년 발표한 셔틀버스 기사의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국 통학버스가 약 3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으며, 한국학원총연합회는 그중 약 70퍼센트가 지입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승용차 운전면허만 있으면 당장 시작할 수 있고 노동강도가 높지 않아 장년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셔틀버스 기사의 평균 연령은 60.8.

백 씨도 여기에 뛰어든 사람 중 하나다. 현재 백 씨의 고정 일감은 전국 지점까지 갖춘 A학원이다. 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백 씨는 2005년 차량값 1000만 원에 권리금 300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구입했다. 오후 430분부터 1030분까지 일하고 받는 용역비는 월 170만 원. 여기서 연료비, 보험료, 수리비 등을 빼고 남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다.

한 가지 일 가지고는 도저히 생계가 안 돼요. 그래서 땜빵을 계속 찾아서 하는 거죠.”

비고정 일감을 현장에서는 땜빵또는 쪽탕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셔틀버스 기사 역시 사정은 비슷해 두세 가지 쪽탕을 뛴다. 백 씨는 중학교 등교 차량과 유치원, 수학학원 등 세 가지를 더 했다. 아침 7시에 시작해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다. 비는 시간에는 주차 단속을 피해 차에서 대기한다.

 주차 단속을 피해 대기 중인 셔틀버스 작은책(정인열)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백 씨가 일하는 시간만 계산하면 하루 10~11시간. 토요일 근무까지 해서 버는 돈이 290만 원, 차량 유지비 등으로 약 70만 원을 뺀 순수입은 220만 원이다.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니 최저임금 수준인데,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적용도 받지 못한다.

우리는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안 돼요. 일 그만두면 퇴직금도 없이 빈손으로 나오는 거예요.”

기사들 중 절반은 불법 소개업체를 통해 일감을 구하는데, 업체는 소개비 명목으로 과다한 금액을 요구한다.

지금 하는 170만 원짜리도 첫 달은 50~60만 원 줬어요. 한 달 월급을 뜯기는 거예요.”

국토교통부는 2013년 청주에서 발생한 유아 통학차량 사망사고를 계기로 2015년 어린이 통학차량 운행 요건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9인승 이상 소형 자가용 승합차 운행을 허가하되, 13세 미만의 어린이만 운송하고 경광등과 발판 등 안전요건을 갖추고 시설장과 기사가 차량을 공동명의로 소유한 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는 조건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백 씨는 비판한다.

중학생부터는 여전히 불법이에요. 그런데 학부모들은 셔틀을 요구하고 우리도 그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시설장과 차량 지분을 공동소유하게 하는 것도 문제다. 한군데 학원에 전속해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책임은 99퍼센트 기사가 지면서 열 가지나 되는 서류를 준비해 신고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기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더 많아졌다. 유상운송 특약에 가입해야 해서 자동차 보험료가 30만 원가량 올랐고, 전체 도색 및 경광등, 발판 같은 안전장치를 설치하느라 200만 원을 썼다.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없다. 그러니 쪽탕을 많이 뛰어야 한다. 셔틀 기사들이 불법 통학버스를 계속 운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시는 학생들의 안전을 이유로 2015년 대대적인 중고생 셔틀버스 단속에 나섰고 백 씨를 포함해 많은 기사들이 범칙금과 운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단속만 하니 사력을 다해 도망가다 사고가 나고.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당장 그만두라고 하니 어떻게 살겠어요?”

백 씨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하소연이라도 해 보려고 동료 기사들과 의논을 했다. 그 자리에는 1987년부터 버스 노동운동을 한 박사훈 씨도 있었다. 박 씨는 민주노총 민주버스본부장에서 물러나고 201210월부터 25인승 셔틀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찾아가려면 글귀라도 하나 만들어서 찾아가야 할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 수 있을지를 박사훈 씨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죠.”

박 씨가 준비한 자료를 보고 동료 기사들은 감탄했다. 기사들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 정책 대안까지 완벽했던 것이다. 박 씨가 버스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함께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여, 2015427전국셔틀버스노동자연대’(이하 셔틀연대) 결성을 언론에 알리고 행동에 나섰다. 박 씨는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노조의 주요 요구 사항은 전용차량등록제도입과 서울시 통학버스지원센터설치다. ‘전용차량등록제는 어린이에 국한된 수송을 중고생까지 확대하되 등·하원과 통학 업무만 수행토록 하고, 차주 기사를 관할 지자체에 등록해 교통안전교육등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차량 운행 및 안전 실태와 기사의 안전교육 이수 여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통학생 교통안전이 강화되고 공동 소유제로 인한 불편도 해소된다고 노조는 밝히고 있다.

통학버스지원센터는 셔틀버스를 필요로 하는 학부모나 시설이 무상으로 이용하는 제도다. 통학버스 지원 조례를 제정해 셔틀버스 사업을 공적인 지자체 사업으로 가져오면 안정적인 일자리와 급여를 보장받게 된다. 또 소개업자들이 중간에서 착취하는 일도 사라지고 영세한 학원과 어린이집, 유치원 등도 안정적인 재정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셔틀연대 결성 이후 셔틀버스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투쟁했다. 셔틀버스 50여 대가 국회 주변을 도는 시위도 하고, 지난해 121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천막농성 및 삭발, 19일간 위원장 단식투쟁도 했다. 마침내 지난 321, 서울시와 노조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안에 통학버스지원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3월 셔틀버스 50여대가 전용차량등록제를 요구하며 국회 주변을 운행했다. ⓒ전국셔틀버스연대노조(홍정순)

 박사훈 전국셔틀버스노조 위원장은 통학버스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며 삭발과 19일 동안 단식을 했다. ⓒ전국셔틀버스연대노조


백 씨의 차량에 동승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백 씨가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뒷좌석의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OO, 여기서 내려서 저 앞에 차 지나가면 길 건너가, 알았지?”

백 씨는 아이가 길을 건너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듯 운행하던 백 씨, 이제 떳떳하게 아이들 통학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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