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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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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24 한티재 하늘

쉬엄쉬엄 가요-함께 읽고 싶은 책

  한티재 하늘과 권정생 선생님

장재화/ 대구 성서고등학교 교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티재 하늘》 권정생 씀, 지식산업사 펴냄

 

내가 권정생 선생님의 《한티재 하늘》을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5월경이다. 당시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문학 교과서를 만들고 있었는데,《한티재 하늘》이 추천 작품으로 올라왔다. 그때 내가 만난 부분은 달수네 집으로 민며느리로 갔던 귀돌이가 소박을 당한 뒤, 다시 능마루골 장씨 집으로 훗살이를 떠나는 장면이었다.

그 뒤, 두 권으로 된 《한티재 하늘》을 읽었다. 특별한 주인공이 없이 그저 이야기를 이루고 있는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펼치는 이야기들은 순간순간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권정생 선생님이 잘 살려 놓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말들은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촘촘히 박힌 활자들을 따라가면서 느낀 것은 그런 감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사람살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가?’, ‘인간의 삶을 옥죄는 구조적 모순은 그 끝이 어디인가?’ 하는 생각들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은 순간적인 충동에 사로잡히게 하기도 했다.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티재 하늘》을 읽었다. 울컥 눈물이 치솟을 것 같은 느낌은 여전했지만 당시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놓치고 지나갔던 많은 부분들이 구체적인 형상을 가지고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방이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삶을 살면서도 다시 아이를 낳고 그 아이로 하여금 삶을, 이 땅의 역사를 새롭게 이루어 가게 한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이제 5월 17일이면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년이 된다. 새삼 아쉬운 마음이 든다. 특히 한티재 고개를 오르내리며 그 고개만큼이나 가파른 삶을 살았던 한티재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서 더 아쉽다.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만히 한티재 하늘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름들을 불러 본다. 겁이 나서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빤란구이 들의 시신을 매장해 주고 제사까지 지내 주었던 향교골 자부래미 박 서방, 낯선 마을 고지기로 살면서도 아이들로 하여금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고, 그렇게 희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이석,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팔려가 온갖 구박을 다 받았지만 끝내 달수를 다시 만나 그나마 행복한 삶을 살았던 귀돌이, 바람병(문둥병)에 걸려 평생을 회한 속에서 몸부림치다 죽어간 분옥이, 그 분옥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끝내 자신도 문둥병에 걸려 떠돌아다니게 된 동준이. 이 모든 이들은 분명 서로 다른 삶을 살았고, 기쁨의 빛깔, 슬픔의 빛깔 역시 달랐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이제 다시 한티재 하늘 아래 살다 떠난 사람들의 이름 위에 권정생이란 이름을 올려 놓고 선생님이 살아 오신 길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그 이름들이 다르지 않고 또 그이들이 눈물로 넘던 수많은 고개들과 선생님이 살아 오신 길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선생님이 살아 오신 그 길이 《한티재 하늘》 3권으로 이어지는 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고 아쉬움까지 덮는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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