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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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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쉬엄쉬엄 가요

책 읽고 딴 생각_ 바벨탑 공화국(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9)

 

 

 

모두가 용이 될 수는 없다

변정수/ 출판 편집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가 되곤 하는 갑질을 그저 예외적인 일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오히려 워낙 일상화되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뿐이지, 크고 작은 갑질을 예사로 당하고 사는 게 대다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벨탑 공화국에서 강준만은 우리는 사람들의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들의 결과로 갑질이 창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결코 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갑질은 우리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들의 의도하지 않은결과에 의해 생겨나며 좋지 못한 의도와 행위도 실은 그런 의도하지 않은결과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질을 낳는 옳거니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개천에서 난 용을 보면서 열광하는 동시에 꿈과 희망을 품계층 이동의 가능성을 보면서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확신마저 갖는모습이다. “모두가 다 용이 될 수는 없으며, 용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며, 용이 되지 못한 실패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좌절과 패배감을 맛봐야 하는지는 안중에도 없다며 “‘개천에서 용 나는모델을 깨지 않는 한, 지금의 과도한 지역간 격차, 학력·학벌 임금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격차와 그에 따른 갑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이 책 제목의 바벨탑탐욕스럽게 질주하는 서열 사회의 심성과 행태, 그리고 서열이 소통을 대체한 불통 사회를 가리키는 은유이자 상징이다. 이는 바벨탑은 결국 무너진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상생을 거부하는 탐욕을 건전한 상식으로 만든 사회, 그 상식을 지키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사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거니와 국민 다수가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해도 그건 내 손톱 밑의 가시보다 하찮은 일이라는 사고방식에 중독되어 있는것이 바벨탑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환기하면서 바벨탑의 붕괴로 가는 길이라 진단한다.

욕망의 바벨탑의 이면은 모욕의 바벨탑이기도 하다. “낮은 서열의 사람을 모욕하는 걸 자기 존재 증명으로 삼으려는 사람이 많은 건 물론이려니와 모욕의 강도를 높여 나가는 걸 자신의 위계가 올라가는 것과 동일시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사코 모든 사람을 일렬종대로 세워 서열을 매기고 그 격차를 크게 벌려야만 직성이 풀리는이유를 삶의 만족과 보람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의 사회경제적 비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저자가 바벨탑 공화국의 실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으로 지목하는 건 서울 초집중화이다. 거칠게 간추리면 지방을 희생한 대가로 서울이 모든 자원을 독식하는 갑질이야말로 이 나라를 온통 서열 사회로 몰고 가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적잖은 사람들이 개천에서 난 용의 첫 번째 조건을 우선 서울에 진입하는 것이라 여기곤 한다는 점에서 크게 무리한 주장도 아니다. 그 결과 지방은 점점 더 황폐화되는데. 그 피해가 지방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가령 도시 인구가 20만에서 10만으로 줄었다고 해도 그 도시의 도로나 수도, 전선, 통신망을 절반으로 줄일 수는 없는 일이고 어느 도시나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인프라 비용때문에 똑같은 면적에 절반의 인구가 살게 되면 재정 효율성은 급격히 떨어질수밖에 없다. 그건 결국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올까.

더 의미심장한 건 지방이 식민화되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사회적 자본조차 약화된다는 지적이다. 워낙 한국 사회의 사회적 신뢰가 바닥이기는 하다. “겨우 한 자릿수 신뢰도를 갖고 있는 권력기관, 10퍼센트대의 신뢰도를 갖고 있는 언론과 종교, 20퍼센트대의 상호 신뢰도를 갖고 있는 국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이라니까. 그런데 저신뢰 사회의 부정적 효과는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다. “지방에서 사회적 자본의 약화는 지방 소멸에 대해 저항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주체가 파편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통찰은 비단 지방민뿐 아니라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난제를 단적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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