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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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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8년 7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에서 온 소식


간호사는 천사로 인증받기 싫습니다

홍슬아/ 경희의료원 간호사

 

 

저는 경희의료원 호흡기, 신장내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최근에는 안과, 비뇨기과에서 근무한 13년차 간호사로 현재 노동조합에서 근무한 지 2개월이 되었습니다. 10년을 넘게 데이, 이브닝, 나이트라는 불규칙한 생활 패턴을 유지해 왔던지라 교대 근무를 벗어난 지 2개월이 된 지금도 잠이 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교대 근무를 하는 대부분의 간호사가 경미하게 혹은 수면제를 복용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수면장애를 앓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직종들의 특수성을 제가 다 알지 못하지만 일주일 동안 데이, 이브닝, 나이트라는 3교대 스케줄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 직종은 간호사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간호 업무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밤에 환자들이 자면 너네도 좀 잘 수 있지 않니? 밤에는 앉아서 일하니 좀 낫지 않니?”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간호사들은 나이트라는 야간 근무제 때문에 현장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간호사의 나이트 근무는 당직의 개념이 아닙니다. 주간에 이뤄지는 모든 업무가 간호사의 나이트에도 동일하게 이뤄집니다. 나이트 근무 때는 간호사 수를 줄여서 간호사 1인이 보는 환자의 수가 늘어납니다. 한 예로 일부 병동은 야간에 간호사 2명으로 근무를 돌립니다. 그렇게 되면 간호사 1명당 20명 이상의 환자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트 근무 동안 간호사들은 시간에 쫓기듯 일을 합니다. 의사 처방 확인, 잘못된 처방들을 걸러서 처방 낸 의사 및 당직의에게 재확인하기, 하루 동안 시행 예정인 검사 및 수술 준비하기, 하루 동안 사용할 수액 준비하기, 경구약 챙기기, 퇴원 예정인 환자 정리하기, 밤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신환(새로운 환자) 받기, 이브닝 때 수술 갔다 리턴 오는 환자 수술 후 처치하기, 어두운 곳에서 작은 불빛만 비추고 수차례 다니는 라운딩, 의사가 병동에 상주하지 않는 야간에 발생하는 CPR(심폐소생술) 등등 대기하는 의미의 당직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나이트 근무로 심지어 병실 물품 정리와 청소까지 해야 상황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인력을 뺀 채 근무하는 밤번 간호사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신입 때 새벽 5시가 다가오는 게 두려웠습니다. 5시부터는 병실을 돌며 활력 징후 측정하기, 섭취량·배설량 체크하기, 가래 흡인하기, 무균적 소변검체 받기, 주사 처치, 모든 환자들이 깨면서 파도같이 몰려오는 컴플레인을 해결해야 하는데 5시에 처치를 나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을 미처 다 마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희 병원의 식대는 2500원입니다. 13년간 근무하면서 한 달 동안 식대가 25천 원을 넘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간호사들이 병동에서 나와서부터 밥 먹고 다시 병동에 올라가고 양치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입니다. 어느 날은 밥을 먹고, 아니 마시고 있는 제게 조무사가 말하더군요. 밥을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다며 같이 식사를 하면 그 속도에 맞추려다 보니 본인이 체할 것 같다고요.

병동에 아직 해결 못해 밀려 있는 일들과 앞으로 쏟아져 올 신환과 수술 리턴 나올 환자들, 2차 식사 당번을 식사하러 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장에 있는 우리 간호사들은 밥을 편하고 여유롭게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간호사들은 직장에서 다른 직종에는 보장되어 있는 인간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이팅게일 선언을 시작으로 다니기 시작한 학교에서 희생정신과 소명 의식을 배우고 현장으로 나왔습니다. 간호사는 당연히 힘들 것이며 아프고 약한 환자들 앞에서는 참아 내라고 배웠습니다. 학교 때 해야 할 공부나 레포트가 남아 있으면 학교에 남아서 하듯이,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당연하게 병원에 남아서 일을 하는 거라고 알고, 공짜 노동인 줄도 모르고 공짜 노동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남들처럼 공부해서는 잘 못 따라가겠다 싶으면 예습하듯이, 당연히 일찍 출근해서 일을 미리 시작했습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와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직과는 다르게 간호사 업무는 인계 전에 환자를 파악하고 오더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최소 30~40분 전에서 2시간까지 일찍 와서 일을 합니다.

부서장들 또한 그건 누가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일 못해서 하는 자율적인 업무니 시간 외 수당 신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일찍 나와서 환자를 파악하는 경우 출근 펀치는 출근 시간 30분 전에 찍으라고까지 요청하는 실정입니다. 병원과 부서장들은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간호사들에게 공짜 노동을 시키는 것에 너무 익숙하고 당당합니다. 개인이 일을 못해 오버타임을 하는 것이라는 묵시적인 압력과 당연한 인식, 시간 외 근무를 신청하면 시간 내에 근무를 왜 못했는지 이해 못하는 부서장들의 공개적인 또는 비공개적인 압박, 근무 전에도 근무 후에도 이어지는 카톡 업무와 쉬는 날도 상관없이 이어지는 이른바 교육이라는 이름의 워크숍, 친절 교육, 병동 컨퍼런스 참여, 매년마다 QI(의료 질 향상, quality improvement), 논문, CS(고객서비스, customer service) 등을 간호사들에게 제출하도록 부서장과 병원은 강요합니다. QI, 논문, CS, 컨퍼런스는 근무시간에 이루어지는 것들이 아닙니다. 근무 외 시간인 오프 때 간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매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는 공짜 노동의 결과물들입니다.

공짜 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극에 달하는 시기는 바로 의료기관 평가인증 기간입니다. 간호사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사직을 생각하고 실제로 많은 간호사들이 사직하고 있습니다. 데이 업무를 마친 간호사나 오프번 간호사는 본인의 병동에서 청소를 하는 미화원도 되어야 하고 2명씩 짝을 이룬 사람들끼리 수시로 만나서 인증 내용을 철자 하나 안 틀리고 대답할 있도록 외우거나 서로 질문을 던지고 인증내용을 외우지 않았으면 기한 내에 외우도록 하는 감시자가 되어야 합니다. 간호사가 대답을 못해서 인증 평가에 문제가 생기면 그 간호사는 병원의 대역 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의료기관 평가인증은 병원 현장의 간호사에게만 해당되는 인증이며 간호사만 죽이는 제도입니다. 간호사들만 괴롭혀 인증에 통과해서 병원이 득을 얻게 되는, 인증에 뒷짐만 지고 있던 타 직종들에게 그 공이 돌아가는 제도입니다.

현재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일한 만큼 대우도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힘든 교대근무를 하면서 공짜 노동과 장시간의 노동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는 간호사 업무를 할 때 제가 제일 힘든 줄 알았습니다. 노동조합에 와서 여러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전국에 있는 모든 간호사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그게 열악한지도 모르고 묵묵히 본인들의 주어진 업무를 하느라 몸도 돌보지 않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고, 간호사들의 대변인이 되어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간호사들의 교대근무로 인한 업무 과중과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며, 이는 간호사의 인력 확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모든 간호사들이 간호사가 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간호사가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간호사를 위한 좋은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작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