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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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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27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작은책 2019년 5월호)

<작은책> 20195월호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교사

 

 

2017년부터 해마다 할 말 있어요를 하고 있다. ‘할 말 있어요는 작은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교사인 내게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할 말 있어요는 칭찬할 일, 억울한 일, 부당하다 생각되어 신고할 일 따위를 적어 내는 종이다. 이것을 나는 모두 읽어 보고 해결을 본다.

10년도 더 전이다.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 말을 물리치지 말고 잘 들어 주는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아이들 말은 다 들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다 들어 주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 명 가까운 교실에서 듣는 사람은 나 혼자인 데다 수업 준비와 잡다한 일로 말 걸어오는 아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되겠지 하며 모든 것을 허용하고 다 들어 주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허물없이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나와의 소통을 독점하면 수줍음이 많아 나서기 힘든 아이들은 앓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기도 했다. ‘왜 말 안 했니?’라고 물어도 입을 닫고 있다. 이미 늦었다. 아이 탓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참 어렵다. 그냥 모두 다 듣겠다는 분위기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종이에 써서 내는 것이다. 처음 누구나 써낼 수 있도록 좀 넘치는 말을 했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웃었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그 뒤로 나는 써내는 글은 모두 받아 읽고 당사자를 불러 중재를 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듣고는 중재를 했다. 이러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뭐든 써냈다. ‘지나가다 쳤어요’, ‘화를 냈어요. 아주 사소한 불만, 불합리함 그리고 조금의 칭찬과 장난 글까지 많이도 써냈다. 지난해에 600개가 넘는 할 말 있어요를 받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 쓰게 한 덕이 컸다. 그냥 써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확 줄었다. 보통 아이들은 앞뒤 잘라 내고 말을 하는 터라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몇 번을 물어 가며 들어야 좀 알아듣는데, 글로 내용을 미리 보며 이야기하니 그 시간이 확 줄었다. 또 기록의 힘도 있다. 이렇게 써낸 기록을 모두 모아 놓으니 뒤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재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일에 자칫 편을 들다가는 원망을 사기도 한다. 처음에는 잘못 판단해서 학부모님의 연락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하면 할수록 요령은 늘었다. 천 번이 넘도록 중재를 하며 자리 잡은 방법은 대충 이렇다. 먼저 들어온 할 말 있어요를 읽는다. 그리고 당사자를 부른다. 서로 같이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할 기회를 준다. 부족할 때는 본 아이들도 부른다. 그렇게 따져 보고 고의로 했는지를 밝힌다. 따져 보면 대부분 오해 때문이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진지하게 사과하도록 한다. 그러면 끝난다. 이제는 과정이 3분 이내로 끝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나름 속 시원한 것이 있나 보다. 지난해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두면 바로 사라졌다. 아무리 많이 복사해 둬도 그렇다. 이는 몇몇 단골손님(?)들이 이 종이를 뭉텅이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단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니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또 헤어지며 할 말 있어요종이를 일부러 가지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 서먹한 아이가 없다. 예전에는 헤어지고 다시 보면 한두 아이는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다 웃으며 본다. 나는 이것이 정말 좋다. 헤어진 누구와도 서로 웃으며 인사한다.

이렇게 아이들 말을 많이 듣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일에 서로 소통이 안 되어 오해를 산다는 것이다. 작은 불만을 표현할 줄 몰라 마음에 담아 뒀다가 다른 충돌이 있을 때는 더 큰 감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혼자 자라고 잘 놀지 못하는 환경이 이런 수줍음을 낳았다고 여겼다. 나는 이런 수줍음이 서로 놀지 않아 그렇다는 데에 생각이 닿아 교실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했다. 쉬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도구를 두고 놀도록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다툼은 더 늘었다. ‘할 말 있어요는 더 들어왔다. 놀이의 시비를 가리는 일까지 내게 들고 왔다. 왜 이리 많냐며 불평했지만 그래도 다 받았다. 그런데 이게 딱 한 달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어서 잘 논다. 자기들끼리 규칙이라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서로 심판을 보며 큰 다툼 없이 논다.

올해도 나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지난해 선배들이 한 두툼한 할 말 있어요뭉텅이도 보여 준다. 이를 보더니 몇몇 아이는 지난해 선배들보다 더 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올해는 할 말 있어요받는 부서를 두고 아이들 도움으로 같이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무들끼리 서로 나누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내가 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쉬는 시간 내 책상 위에는 할 말 있어요종이가 쌓여 간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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