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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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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비정규직'에 해당되는 글 1

  1. 2019.07.25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와?

<작은책> 2019년 8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한국지엠 비정규직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와?

정인열/ <작은책> 기자 

 

▲ 한국지엠 부평공장. 작은책(정인열)


한국지엠은 생산 물량 감소를 이유로 2014~2015년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약 1000명을 해고했다. 정규직은 노동조합이 있어 해고를 피했다. 인력 감축이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전환배치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이를 인소싱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이 일하던 공정에는 정규직원이 들어왔다. 정규직원들은 비정규직의 편성률(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회사는 해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시 불러 2~3개월간 정규직원에게 현장 업무를 가르치게 했다.

이완규 씨(40)도 인소싱으로 인해 20158월 해고됐다. 그는 2006년 군산공장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도어 라인(자동차 문)에서 일했다. 그러다 2015430, 3개월 유급 휴직 통보를 받았다. 복직 날짜는 없었다. 곧 해고된다고 생각하자 억울해서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에 가입했다.

모범사원 상도 세 번이나 받았어요. 성실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너는 비정규직이니까 나가라, 그러니까 억울한 거예요.”

2018213일 군산 및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법원은 이완규 씨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45명이 한국지엠의 노동자라고 1심 선고를 내렸다. 해고 투쟁 3년 만에 들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공장에 돌아가겠다는 생각만으로 싸웠는데 갈 곳이 없어진다니까. 괜히 (투쟁)했나? 그때 많이 힘들었죠.”

인소싱은 2009년 부평공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당시 금융위기로 미국의 지엠 본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비정규직 약 1000명이 해고됐다. 사실 비규정직이 해고된 자리에 정규직 인력을 1.5~2배 더 투입해야 공정이 돌아간다. 게다가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 대비 50~70퍼센트 수준의 임금만 지급하고, 자녀의 학자금 같은 복리후생 하나 제공하지 않고, 골치 아픈 노사협상을 하지 않고도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손쉽게 해고했다. 비정규직에게는 노동삼권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부평공장 안에는 2, 3차 하청업체를 포함해 약 2500명의 비정규직이 있었다. 이영수 씨(46)와 박현상 씨(45)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경험하면서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두 사람은 2006년 부평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차별을 묻자 이영수 씨가 말했다.

주말에 지게차 타는 라인 그리는 거를 한 적이 있어요. 정규직하고 똑같이 라인을 그리는데 거기는 이십몇만 원 받아가고 우리는 십만 원도 안 되는 거야. 그당시만 해도 3배 차이가 나는 거야. 야 이거는 심각하다 느꼈죠.”

▲ 출고 직전 차량에 스프레이 건으로 왁스를 도포하는 방청(녹 방지작업사진 제공_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2007년 한국지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일하던 라인을 분리하고 모듈화를 도입하면서 일부 공정을 납품업체로 돌리려 했다. 이영수 씨와 박현상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에 반대하며 200792일 비정규직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발기 조합원은 30여 명이었다. 설립 일주일 만에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부터 차례대로 해고되더니 조합원이 가장 많았던 하청업체 스피드월드파워도 폐업됐다. 해고자만 25. 선전전, 천막농성, 집회를 해도 복직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71227, 박현상 씨는 해고자 복직 및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가지고 부평구청역 CCTV 탑에 올라갔다.

그날 비가 오고 날씨가 안 좋았어. 비닐 쳐 놓고 자고 일어났는데 못 내려가게 밑에 천막이 쳐져 있는 거야.(웃음)

하루 이틀 예상하고 올라갔던 그는 65일 만에 내려왔다. 이대우 당시 지회장이 이어받아 70일을 고공농성했다. 2008117일에는 황호인 씨가 부평역 CCTV에 올라갔다. 며칠 후 또 다른 조합원 4명이 한강대교 아치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다. 227일에는 이준삼 씨가 마포대교 외줄 농성을 했다. 정화조를 잘라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밧줄을 달고 다리 아래에 매달렸다. 이영수 씨와 박현상 씨가 말한다.

정화조가 플라스틱이잖아요. 그라인더로 그 위를 잘랐어. 밧줄도 혹시 끊어질까 봐 최고급 밧줄로 했는데 (진압하려고 하니까) 뛰어내려 버렸어.”

다행히 이준삼 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수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방구조정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 황호인, 이준삼 조합원은 지엠대우 정문 아치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두 달간 고공농성을 했다(2010년 12월 1일 ~ 2011년 2월 1일). 사진 제공_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부평구청역에서는 고공농성이 계속됐다. 135일째 되던 20085, 지회는 해고자 22명 중 7명만 선별 복직하기로 합의하고 이대우 지회장은 내려왔다. 하지만 지회장을 비롯해 박현상, 이영수 등 핵심 간부를 포함한 15명은 복직하지 못했다. 이들은 부평공장 서문 천막 농성장에서 2년 반이 넘게 투쟁을 이어 갔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2010121일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로 황호인, 이준삼 해고자가 올라가 또다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당시 지회장이었던 신현창 씨가 단식을 했다. 201121, 노사는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2년 후인 2013년에 복직한다는 조건이었다. 신 지회장 단식 45, 고공농성 두 달이 되던 날이었다. 만족할 만한 합의는 아니었지만 일단락을 짓기로 했다. 이날 합의대로 20137월 해고자는 모두 복직됐다. 6년이 걸렸다이영수 씨가 당시 복직한 느낌을 회상했다.

돈을 버니까 좋더라.(웃음)

하지만 6년을 무임금으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박현상 씨가 또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영수 동지는 아직 혼자여서 버티는 거…. (웃음)

박현상 씨와 이영수 씨는 부양가족이 없는 싱글이라 버텼다며 웃는다. 겉으로는 가볍게 말하지만 아주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군산공장 이완규 씨는 어린 자녀 둘이 있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아내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지만 4인 가족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규직 해고자들은 2년치 임금을 받고 나오기라도 했지만 비정규직은 빈손이다. 해고 후 4년 동안 쌓인 빚이 3천만 원. 그럼에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 때문이다.

현재 비정규직이 1200만 명 정도 된다잖아요. 가면 갈수록 비정규직은 늘어날 거거든요. 앞으로 야네들이 살아갈 세상이 보이는 거예요. 제가 지회장이니까 기자회견도 많이 하고 티비에도 나와요. 우리 와이프가 다른 건 다 좋은데 티비만 나오지마라, 전라도 말로 '거시기'하다는 거여요. 제가 와이프한테 그랬어요. 자기는 자기 '거시기'한 게 좋아 아니면 우리 자식들이 커서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아가는 게 좋아? 그럼 당연히 아니래요. 그럼 자기도 좀 참아. 아빠의 투쟁으로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어요. 잠깐은 불편하겠지만 계속 싸우다 보면 우리 애기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 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완규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현상 씨와 이영수 씨가 박수를 치며 말한다.

이런 조합원이 있어야 되는데.(웃음)

한국지엠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영수 씨는 지난 11일부로 또 해고자가 됐다. 한국지엠이 정규직에게는 임금의 70퍼센트를 지급하며 유급휴직을 제안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무급 순환휴직을 요구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거부했고 이영수 씨는 해고됐다. 비정규직 노조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생산 물량이 없는데 무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 요구냐며 차가운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회의 요구는 수긍이 갈 만하다. 작년 1교대로 전환되었던 부평2공장이 조만간 다시 2교대제가 될 예정인데, 이때 정규직 600여 명, 비정규직 100여 명이 필요할 것으로 지회는 예상한다. 지회 해고자는 46(부평 38, 군산 8). 그리고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로 법원 판결도 이미 받은 상태다. 복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뿐만 아니라 한국지엠은 정부로부터 81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이영수, 이완규, 박현상 씨(왼쪽부터). 지회는 해고자 복직 및 정규직 전환 요구를 하며 507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2019년 6월 27일). 작은책(정인열)


생계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이완규 씨와 박현상 씨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싱글인 이영수 씨는 난 담배나 피워야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박현상 씨는 네 살 된 딸이 있다. 집은 충북 진천. 딸이 두 살 때 육아휴직을 쓰고 1년 전 공장에 복귀하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완규 씨는 6월부터 상경 투쟁을 하고 있다. 이완규 씨가 아이들과 통화한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왜 회사 가면 (집에) 안 와?’ 이런다니까.” 이 말에 박현상 씨가 받아쳤다. 우리 애는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 와?’ 한다니까. ‘언제 와도 아니고. 하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 네 사정이 더 낫네 하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돌려서 표현했다. 싱글인 이영수 씨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었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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