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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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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12 도망치듯 운전하고 싶지 않다(작은책 2018년 6월호)

작은책 2018년 6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 탐방_ 통학 셔틀버스 기사 

 

도망치듯 운전하고 싶지 않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아침 730, 어느 중학교 등교 시간. 15인승 셔틀버스를 운행하는 백용진 씨(가명)가 여느 때처럼 학생 십여 명을 학교 앞에 막 내려 주었을 때였다. 명찰을 단 사람이 백 씨의 차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서울시 교통지도과에서 나온 단속반입니다.”

20155월 서울시는 현행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81-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 금지)을 근거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백 씨는 잠복해 있던 단속반에 걸려 6개월 운행정지 처분을 받고 100만 원가량의 범칙금을 냈다. 왜 노란 셔틀버스는 불법인가? 또 왜 백 씨는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백 씨의 차량에 동승해 사정을 들어 보았다.

 서울의 한 학원 앞에 정차 중인 셔틀버스들 작은책(정인열)


2015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시설장이 소유한 26인승 이상 차량만 통학버스로 허용됐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영세한 학원이나 어린이집은 좁은 골목을 다닐 수 있는 소형 승합차를 소유한 지입 기사를 필요로 했고, 합법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2016년 발표한 셔틀버스 기사의 노동실태와 개선방안에 따르면 전국 통학버스가 약 30만 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으며, 한국학원총연합회는 그중 약 70퍼센트가 지입 차량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승용차 운전면허만 있으면 당장 시작할 수 있고 노동강도가 높지 않아 장년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셔틀버스 기사의 평균 연령은 60.8.

백 씨도 여기에 뛰어든 사람 중 하나다. 현재 백 씨의 고정 일감은 전국 지점까지 갖춘 A학원이다. 이 일감을 따내기 위해 백 씨는 2005년 차량값 1000만 원에 권리금 300만 원을 주고 중고 승합차를 구입했다. 오후 430분부터 1030분까지 일하고 받는 용역비는 월 170만 원. 여기서 연료비, 보험료, 수리비 등을 빼고 남는 돈은 100만 원 남짓이다.

한 가지 일 가지고는 도저히 생계가 안 돼요. 그래서 땜빵을 계속 찾아서 하는 거죠.”

비고정 일감을 현장에서는 땜빵또는 쪽탕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셔틀버스 기사 역시 사정은 비슷해 두세 가지 쪽탕을 뛴다. 백 씨는 중학교 등교 차량과 유치원, 수학학원 등 세 가지를 더 했다. 아침 7시에 시작해 마지막 운행을 마치고 집에 오면 밤 11시다. 비는 시간에는 주차 단속을 피해 차에서 대기한다.

 주차 단속을 피해 대기 중인 셔틀버스 작은책(정인열)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백 씨가 일하는 시간만 계산하면 하루 10~11시간. 토요일 근무까지 해서 버는 돈이 290만 원, 차량 유지비 등으로 약 70만 원을 뺀 순수입은 220만 원이다.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니 최저임금 수준인데,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 적용도 받지 못한다.

우리는 고용보험, 산재보험도 안 돼요. 일 그만두면 퇴직금도 없이 빈손으로 나오는 거예요.”

기사들 중 절반은 불법 소개업체를 통해 일감을 구하는데, 업체는 소개비 명목으로 과다한 금액을 요구한다.

지금 하는 170만 원짜리도 첫 달은 50~60만 원 줬어요. 한 달 월급을 뜯기는 거예요.”

국토교통부는 2013년 청주에서 발생한 유아 통학차량 사망사고를 계기로 2015년 어린이 통학차량 운행 요건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했다. 9인승 이상 소형 자가용 승합차 운행을 허가하되, 13세 미만의 어린이만 운송하고 경광등과 발판 등 안전요건을 갖추고 시설장과 기사가 차량을 공동명의로 소유한 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는 조건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맞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백 씨는 비판한다.

중학생부터는 여전히 불법이에요. 그런데 학부모들은 셔틀을 요구하고 우리도 그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시설장과 차량 지분을 공동소유하게 하는 것도 문제다. 한군데 학원에 전속해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책임은 99퍼센트 기사가 지면서 열 가지나 되는 서류를 준비해 신고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다.

기사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더 많아졌다. 유상운송 특약에 가입해야 해서 자동차 보험료가 30만 원가량 올랐고, 전체 도색 및 경광등, 발판 같은 안전장치를 설치하느라 200만 원을 썼다. 정부 지원금은 한 푼도 없다. 그러니 쪽탕을 많이 뛰어야 한다. 셔틀 기사들이 불법 통학버스를 계속 운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시는 학생들의 안전을 이유로 2015년 대대적인 중고생 셔틀버스 단속에 나섰고 백 씨를 포함해 많은 기사들이 범칙금과 운행정지 처분을 받았다.

제대로 된 정책도 없이 단속만 하니 사력을 다해 도망가다 사고가 나고.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당장 그만두라고 하니 어떻게 살겠어요?”

백 씨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하소연이라도 해 보려고 동료 기사들과 의논을 했다. 그 자리에는 1987년부터 버스 노동운동을 한 박사훈 씨도 있었다. 박 씨는 민주노총 민주버스본부장에서 물러나고 201210월부터 25인승 셔틀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찾아가려면 글귀라도 하나 만들어서 찾아가야 할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살 수 있을지를 박사훈 씨에게 써 달라고 부탁했죠.”

박 씨가 준비한 자료를 보고 동료 기사들은 감탄했다. 기사들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서 정책 대안까지 완벽했던 것이다. 박 씨가 버스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함께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여, 2015427전국셔틀버스노동자연대’(이하 셔틀연대) 결성을 언론에 알리고 행동에 나섰다. 박 씨는 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노조의 주요 요구 사항은 전용차량등록제도입과 서울시 통학버스지원센터설치다. ‘전용차량등록제는 어린이에 국한된 수송을 중고생까지 확대하되 등·하원과 통학 업무만 수행토록 하고, 차주 기사를 관할 지자체에 등록해 교통안전교육등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차량 운행 및 안전 실태와 기사의 안전교육 이수 여부 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통학생 교통안전이 강화되고 공동 소유제로 인한 불편도 해소된다고 노조는 밝히고 있다.

통학버스지원센터는 셔틀버스를 필요로 하는 학부모나 시설이 무상으로 이용하는 제도다. 통학버스 지원 조례를 제정해 셔틀버스 사업을 공적인 지자체 사업으로 가져오면 안정적인 일자리와 급여를 보장받게 된다. 또 소개업자들이 중간에서 착취하는 일도 사라지고 영세한 학원과 어린이집, 유치원 등도 안정적인 재정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셔틀연대 결성 이후 셔틀버스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투쟁했다. 셔틀버스 50여 대가 국회 주변을 도는 시위도 하고, 지난해 121일부터 서울시청 앞에서 천막농성 및 삭발, 19일간 위원장 단식투쟁도 했다. 마침내 지난 321, 서울시와 노조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안에 통학버스지원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3월 셔틀버스 50여대가 전용차량등록제를 요구하며 국회 주변을 운행했다. ⓒ전국셔틀버스연대노조(홍정순)

 박사훈 전국셔틀버스노조 위원장은 통학버스지원센터 설치를 요구하며 삭발과 19일 동안 단식을 했다. ⓒ전국셔틀버스연대노조


백 씨의 차량에 동승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스름한 저녁이 되었다. 백 씨가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를 멈추고 뒷좌석의 학생에게 주의를 주었다.

“OO, 여기서 내려서 저 앞에 차 지나가면 길 건너가, 알았지?”

백 씨는 아이가 길을 건너는 것을 확인한 후 천천히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다.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듯 운행하던 백 씨, 이제 떳떳하게 아이들 통학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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