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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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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9.19 [일터 탐방] 한이 맺힌 거예요 (2011년 9월호)

안건모 / <작은책> 발행인


  삼화고속노동조합이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총 26개 노선 광역버스 328대 가운데 20개 노선 242대의 운행을, 날마다 22시부터 새벽 3시까지 중단하는 부분 파업을 하고 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삼화고속버스 회사를 가려고 합정동 버스정류장을 갔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을 가려면 1601번을 타야 한다. 정류장에 있는 전광판을 보니 55분 뒤에 차가 온다고 나온다. 파업 때문인가? 나중에 알았지만 준법운행 때문이었다. 신호를 지키고 난폭 운전을 하지 않는 준법운행만 해도 이렇게 운행 시간 간격이 뜨게 되는 게 버스 운행 현실이다.

  노동조합 사무실엔 최용환 총무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용환 씨는 삼화고속에서 18년 동안 근무하다 작년에 사표를 썼다. 삼화고속에서 오랫동안 투쟁해 왔는데 회사가 인천에서 대구까지 발령을 낸데다 투쟁 중에 아내의 지병이 악화되어 사표를 썼단다. 먼저 삼화고속 조합원들이 파업을 하게 된 까닭이 무엇인가 물었다. 최용환 총무부장은 한 치 망설임 없이 말한다.

  “월급이죠.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도대체 월급이 얼마나 될까. 광역버스 시급은 4,727원이다. 고속 부문 5,010원보다 터무니없이 적다(서울시내버스 시급은 1년 근무자 8,027원, 8년 근무자 8,703원이다). 인천광역버스는 월 시급 대비 만근 일수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데 연봉으로 하면 광역은 한 달 13일(26일) 만근에 1일 19시간씩 247시간이지만 연 2,800만 원, 고속은 연3,000여만 원이다. 다른 사업장보다 턱없이 적다. 광역버스 부분은 지난 10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급은 해마다 올라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루는 교통신문에서 전화가 왔어요. 기자가 하는 말이 ‘회사가 준 자료를 보니 시급은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왜 임금이 동결됐다고 하냐?’는 거예요. 제가 한번 오라고 했어요. 회사 쪽만 찾아가서 취재하지 말고 노조도 취재해 달라고 얘기했죠. 맞아요. 시급은 올라갔어요. 근데 왜 깎였을까요? 상여금에서 잘라먹은 거예요.”

  광역버스는 2005년도에 상여금이 임금 총액의 670퍼센트였다. 하지만 시급이 올라가면서 상여금이 계속 깎였다. 임금 총액의 670퍼센트가 아니라 기본급에 야간 수당만으로 상여금이 지급됐다. 2008년도에는 야간 수당을 시급대비 300퍼센트에서 200퍼센트로 삭감했다. 복잡하게 계산할 것 없다. 임금이 10만 원 올라가면 상여금에서 10만원 깎였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10년 동안 시급은 올라갔어도 받는 임금이 그대로였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근무 시간이다.

  “지난 10년 동안 법정근로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 40시간으로 줄었는데 우리 광역버스 근무 시간은 오히려 계속 늘어났어요."

  광역버스 기사들은 서울시내버스처럼 1일 2교대제가 아니라 격일제이다.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제도다. ‘괜찮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정을 들어 보면 이렇다.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5시에 일을 시작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서울역에서 막차가 새벽 1시에 인천으로 출발한다. 그러면 종점에 빨리 들어와 봐야 새벽 2시나 2시 반이다. 집에 들어가면 세 시가 넘어 네 시쯤에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면 그 다음날 쉬는 날은 오전 내내 잠을 자야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새벽에 일하러 가야 하니 일찍 자야 되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물론 심야수당을 받기는 하지만 23시 이후는 8천 원, 24시 이후는 만 원밖에 되지 않는다. 심야 수당 안 받고 심야 근무 2시간에서 3시간 안 나가는 게 오히려 낫다.

  사실 고속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임금이 10년째 동결이다. 아이엠에프 터지고 나서 임금이 그대로인 셈이란다.

  다섯 시가 되니 나대진 지회장이 들어왔다. 나대진 씨는 지난 1월 6일 조합 선거에서 지회장으로 당선된 사람이다. 3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나대진 지회장은 지난 5월 18일에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한국노총 자동차연맹 산하였던 삼화고속버스 노조를 민주노총 민주버스 소속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했다. 아마 서울 경기 지역에서 최초로 조직 형태 변경을 하지 않았나싶다.

  지회가 민주버스로 조직 형태를 변경한 뒤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대진 지회장이 이끄는 삼화고속지회는 지난 6월 8일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을 했다. 6월 22일 조정 중지가 결정됐다. 그리고 6월 25일, 26일에 시한부 경고 파업을 했다.

삼화고속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대진 씨

  “7월 7일이 급여 지급일이에요. 사측은 ‘파업해서 수익금이 줄어서 급여를 못 주겠다’ 공고를 붙였어요. 7월 8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죠. 인천시에서 중재를 서서 7월 10일 기본합의서를 작성해서 파업을 푼 거죠. 그런데 회사가 합의서 이행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7월 22일부터 심야운행 거부 투쟁에 돌입했죠.”

  기본합의서 내용은 ‘노사 간에 자율적으로 교섭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재 삼화고속 노조는 겉으로 보면 모두 세 개다. 올해 초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변경한 현 지회와 전 ‘어용조합’이 한국노총을 상급단체로 해 새로 설립한 노조, 또 일부 조합원이 만든 제3노조이다. 사측은 ‘관련법에 따라 3개 노조가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기 전엔 교섭하기 곤란하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교섭대표권을 놓고 노노 갈등이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대진 지회장 말은 달랐다.

  “현재까지 지회에서 탈퇴한 조합원이 없어요. 2노조는 노동청에 28명으로 신고돼 있고, 3노조는 7명인데 우리 조합에서 탈퇴하지 않고 이중 가입을 하고 있어요. 사측의 회유와 압력에 의해서 복수노조를 만들었다고 보는데, 그래도 전체 조합원의 10분의 1이 돼야 공동교섭권이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 10분의 1을 확보하지 못한 거예요.”

  결국 교섭대표권이 단일화되지 않아서 교섭을 하지 않는다는 건 회사의 핑계일 뿐이라는 말이다.

  나대진 지회장한테 월급에 대해 다시 물었다. 지회장은 오늘 인천시에 갖고 간 간담회 자료를 보여 준다. 그 자료를 보니 인천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보다 급여가 적다.

  “전국 6대도시 중에서 인천이 임금이 제일 낮은 수준입니다. 삼화고속 광역버스는 인천시내버스 급여보다 월 50만 원 정도 더 적어요. 고속부분은 금호고속보다 연봉 천만 원 정도가 적습니다. 조합원들이 임금과 근로 조건에 대해 한이 맺힌 거죠.”

  정태수 씨가 들어왔다. 정태수 씨는 지금 준법운행 투쟁 중이다.

  “힘들어요. 어용하고 싸워야죠, 사측하고 투쟁해야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얼굴엔 웃음기가 떠 있다. 힘들어도 보람이 있어 보였다.

  “어젠 앞차하고 1시간 정도 간격이 벌어져서 다녔어요. 여유 있게 다니니까 스트레스도 안 받고……. 요즘에는 노선에서 사고도 없어요.”

  옆에 있던 나대진 지회장이 거들었다.

  “한 달에 사고가 평균 100건, 하루에 세 건은 나는 거죠.”

  처음 파업하는 날 어땠을까. 1987년 서울시내버스 기사들이 파업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관리자들이 기사들한테 차를 운행하지 않으면 해고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기사들은 하나둘씩 그 협박에 굴복해 운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집행부에서도 불안했어요. 45년 동안 한 번도 파업한 적 없었으니까. 쟁의 행위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85.3퍼센트가 파업 찬성했어요. 파업 투쟁에 돌입하니까 조합원들이 열정적으로 호응하고 참여하는 거예요. 집행부도 놀랬죠. 간부 파업할 때는 ‘즉시 운행 중지하고 파업 투쟁에 돌입합니다’ 하고 문자를 발송했더니 영업소가 대전인데 울산에다 차 세워 놓고 인천 농성장으로 상경한 거예요. 확대간부 80퍼센트가 참여했어요. 45년 동안 한이 맺힌 거죠. 워낙 근로 조건이 안 좋으니까. 바닥까지 온 거예요. 한이 맺혀 있었던 거예요.”

  나대진 지회장은 그동안 조합원들이 얼마나 쌓인 게 많았겠냐며 ‘한이 맺혀 있었던 거예요’를 자꾸 되풀이한다.

  그동안 사측은 ‘튀는’ 조합원들에게 탄압을 가했다. 어용조합도 나대진 지회장을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거나 제명까지 했다.

  “지노위에 부당 징계로 민사 소송 넣어서 해결하고……. 시내버스 어용조합의 기본이잖아요. 버스 해 보셔서 알잖아요. 배차시간에 쫓겨 밥 먹다 말고 나가라면 나갔잖아요. 거의 서서 김치 쪼가리하고 먹고 나갔잖아요. 배차 담당이 기사에게 ‘내일 일 나왓! 안 나와?’ 노예 부리듯 했는데 이젠 ‘일 좀 해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요. 불과 두 달 만에 상황이 바뀐 거죠. 의식이 바뀐 거예요. 파업은 학습이잖아요.”

  이번 파업이 그냥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나대진 씨는 1990년대부터 민주버스노조협의회를 다녔고, 99년 7월 1일에 삼화고속에 입사한 뒤 2005년부터 ‘참노동조합 만들기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지금에 이르렀던 것이다. 민주버스지회로 변경 후 규약도 민주적으로 모두 바꿔 버리고 조합원 교육도 많이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몰랐으니까. 처음에 대의원대회할 때 벽에 가사를 쓴 종이를 붙여 놓고 했죠. 조합원 교육 때는 하종강 선생님이 강연하는데 조합원이 눈물 흘리고 그랬어요. 그게 다 파업 동력이 된 거예요.”

  이렇게 되기까지는 나대진 지회장을 비롯한 현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희생이 컸다. 활동을 하느라 잠도 못 자고, 일을 많이 하지 못해 월급이 적을 수밖에 없다. 아내와 아이들이 얼마나 걱정할까.

  “그래도 요즘엔 집에서 응원해요. 아내가 ‘힘내세요. 당신에게는 우리 가족이 있잖아요.’ 애들한테도 ‘아빠가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지 몰랐어요.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문자가 와요.”

  나대진 지회장은 “삼화고속 사정이 다른 버스사업장하고 똑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사실 지방 버스 현실이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전북고속버스도 지금까지 파업을 이어 가고 있다. 전국의 버스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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