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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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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26 학교급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작은책> 2019년 7월호

일터에서 온 소식

 

학교급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정명옥/ 경기 삼성초등학교 영양교사

 

 

어느 날 저녁 9시 뉴스에서 경기도교육청이 공채로 학교 영양사를 뽑는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그때는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던 터라, 시댁 아주버니가 그 밤중에 부리나케 달려와 얘기해 줘서 알게 됐다.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이라 뉴스거리였던 모양이었다. 아기도 없는 신혼집을 한밤중에 들이닥치다니,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바로 다음 날이 접수 마감일이었고 나는 마감 시간을 채 한 시간도 남겨 두지 않고 겨우 접수했다. 19895월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던 순간이었는데 그렇게 시작한 일을 올해로 30년째 하고 있다.

학교급식은 1953년에 시작되었다. 한국전쟁 후 유네스코의 부분적 구호로 빵 무료급식을 실시하였고, 19811월 학교급식법이 제정되면서 본격화됐다. 교육활동 지원을 위해 식품위생직 영양사가 운영하다가, 2003년 지금과 같은 영양교사 제도가 도입되었다. 애초에 지원 성격으로 출발했기에 급식과 교육의 연결고리는 약했다.

학교급식에서 사람들(학생이나 선생이나 모두들)을 함부로 버리는 모습을 보면 나는 지금까지도 무뎌지지 않고 실망을 넘어 거의 분노를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집에서 밥을 먹다가 한 톨이라도 흘리면 주워서 먹어야 했다. 더군다나 음식을 남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단체급식이 학교, 병원, 기업체 등에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음식 남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오호 통재라~!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라는 책도 있듯이 차라리 급식제도를 없애라~!’ 주장하고 싶을 정도이다.

학교급식은 보편성, 일회성, 주관성의 특성을 갖는다. 단체급식으로서의 보편성, 먹고 나면 서류밖에 남는 것이 없는 일회성 그리고 먹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느끼는 맛의 주관성이 그것이다. 사실 이란 레시피에 의한 과학적인 맛(절대성)이라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배가 고픈 정도(시장이 반찬)나 건강 상태(몸이 아프면 입맛이 없어진다) 등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다른 상대성이 훨씬 크다. 나에게 제일 어려운 일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건강에 이로운 음식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먹기 좋은 학교급식, 몸에 좋은 학교급식, 약이 되는 학교급식을 추구한다.

초등학교는 1학년과 6학년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1학년은 학교 밥을 잘 먹는 편인데 점점 자라서 6학년 어르신이 되면 학교 밥이 맛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불평을 한다.

나는 일부러 6학년 1학기 영양 수업을 학교급식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주제로 진행한다. 내 수업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발표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분단별 발표 주제(분단 구성원 모두 각자 발표)는 학교급식의 좋은 점 이야기하기, 학교급식의 문제점 이야기하기, 앞의 분단에서 발표한 문제점을 잘 듣고 개선 방안 제시하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양심선언을 하는 친구들이 제법 출현한다는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은 잘 먹지 않고, 몸에 이롭지 않은 음식은 엄청 먹어 댄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이 편식을 하고 있어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고쳐지질 않는 것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 주변에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학교급식을 하려면 영양교사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레시피, 이를테면 파스타나 고기 요리(고기 요리는 대충 만들어도 다 맛있다고 잘 먹는다.) 등 다양한 요리법을 연구하여 식단을 구성하고, 그 레시피와 식단을 조리사와 조리실무사들이 밥상에 구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재료비가 충분해야 하는데, 예산이란 늘 부족하거나 빠듯하다. 또 조리사와 조리실무사의 요리 솜씨도 좋아야 하고 조리기구도 잘 갖추어지면 훨씬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일하는 작업자들 간의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협력이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음식이 맛이 없게 만들어진다. 이건 진짜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옛말이 정말로 옳다. 거기에 무어라 해도 학교급식의 완성은 먹는 학생들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배가 고픈 상태에서 급식을 먹으러 오면 좋겠다. 그리고 애초에 건강하면 더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배가 적당히 고파야 맛을 제대로 느끼면서 달게 먹을 수 있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건강 상태가 좋은 친 구일수록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얘길 하다 보니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하는 말이 생각난다. 건강한 학생을 기르기 위해 학교급식을 하고 있는데, 건강한 학생들이 학교급식을 맛나게 먹는다니.

작은책(정인열)

나는 하얀 위생복을 입고 1, 2, 3(우리 학교는 식당이 3개 층으로 나뉘어 있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점심을 먹는 아이들 모습을 보러 다닌다. 우리가 마련한 음식을 얼마나 먹을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본다. 잘 먹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들이 먹는 모습, 먹는 양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내가 정성을 쏟는 일이 있는데, 퇴식구에 지키고 서서 식판을 깨끗이 정리하도록 지도하는 일이다. 밥 한 톨도 식판에 붙은 채로 배출하지 않도록 호랑이 눈을 뜨고 지킨다. 식판을 깨끗이 배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지구를 살리는 최소한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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