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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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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01 내 몸값의 두 배를 팔아도 빚이 쌓인다
  2. 2019.07.25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와?

<작은책> 201911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웹툰·웹소설 작가)

 


내 몸값의 두 배를 팔아도 빚이 쌓인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2011년 죽기 전 이웃집에 마지막으로 남긴 쪽지 내용이다. 고인의 죽음으로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실태가 알려지자 그해 예술인들의 처우개선을 담은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대다수 예술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 최고은 작가처럼 상시적인 생계 곤란에 처한다. <작은책>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노동자 중 웹툰·웹소설 작가 조승우, 하신아 씨를 만나 이들이 처한 구체적 어려움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여성 웹툰·웹소설·일러스트레이트 작가로 구성된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이하 디콘지회) 임원이기도 하다.

웹툰 작가 하신아 씨(왼쪽)와 조승우 씨(오른쪽). 김재형


일감이 없다고 잘렸어요. 월세, 생활비를 갑자기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실업급여라도 받으면 몇 달간은 걱정하지 않고 다음 작품 준비할 수 있는데 수입이 딱 끊겨 버리니까 너무 막막한 거예요.”

조 씨는 어시스턴트로 2년간 그림을 그리다 지난 8월 에이전시(콘텐츠 유통·기획사)로부터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예술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조 씨와 같은 프리랜서로,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고용보험이 없어 실업급여 혜택을 못 받고 있다. 퇴직금은 물론 해고 예고도 없이 하루아침에 잘리는 신세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특고(특수고용노동자)·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국정운영 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고 국회는 고용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이와 관련, 12개 예술인 노동조합 및 예술노동단체들로 구성된 문화예술노동연대는 지난 92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고·예술인 고용보험 적용을 촉구했다.

예술인 노동자들은 수입도 적은 편이다. 조 씨의 지난 2년간 월평균 수입은 120만 원.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18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인 1년 수입이 평균 1281만 원,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으로 투잡을 뛰는 예술인은 42.6퍼센트에 달했다. 조 씨 역시 자신이 구상하는 작품에 몰두하고 싶지만 생계가 여의치 않다 보니 어시스턴트 일을 놓지 못한 상태다. 하신아 씨는 열일곱 살에 만화 스토리작가(줄거리 구상 및 그림 연출)로 데뷔했다가 잡지 및 대여점 시장이 붕괴되자 작가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창작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낮에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고, 밤에는 작가 데뷔를 위해 준비했다. 그동안 인터넷, 태블릿 등 스마트 기기들의 발전으로 웹툰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고 하 씨는 2013년 한 언론사의 웹툰 공모전을 통해 재데뷔했다. 하 씨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은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복잡다단한 유통 구조 속에서 웹툰 사업체들이 작가에게 불공정한 수익 분배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웹툰 사업체는 플랫폼과 에이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작가는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작품을 공급하며, 에이전시는 네이버웹툰, 카카오페이지, 레진코믹스 같은 플랫폼들과 계약을 맺고 플랫폼은 작품을 중개한다. (예전에는 작가플랫폼 직접 계약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작가에이전시플랫폼 계약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웹툰 사업체와 계약에서 인지도가 낮은 작가와 데뷔를 바라는 신인 작가들은 의 입장이 된다. 제도적 뒷받침도 없는 상황에서 뜯기고 또 뜯긴다. 가령 한 달 1천만 원의 매출이 났다면 작가에게 최종 지급되는 돈은 350만 원. 적지 않은 금액처럼 보이지만 작가들은 자영업자처럼 작품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훨씬 적다. 하 씨가 예를 들어 설명한다.

내 작품이 지난달에 1천만 원 매출이 났다고 쳐요. 30퍼센트는 플랫폼에서 가져가고 남은 700만 원을 에이전시와 작가가 5 5로 나눠요. 남은 350만 원에서 스토리작가, 그림작가가 3 7로 나눕니다. 저한테는 105만 원이 떨어지는 거죠.”

그림작가는 채색 어시스턴트, 배경 프로그램(또는 어시스턴트) 등 기타 프로그램 사용료, 작업실 사용료 등 부대 비용을 부담하기 때문에 실제 수입은 월 100~180만 원(작업 난이도 및 지출비에 따라 다름) 수준이다. 어시스턴트를 두지 않으면 기한 내 작품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에 추가 지출이 생긴다. 웹툰 시장이 무한 경쟁 체제에 놓이며 분량이 한정 없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신아 씨의 말이다.

“70컷은 만화책으로 12~20페이지(작가에 따라 다름)입니다. 만화책 시절에는 주간 연재를 하게 되면 12~16페이지로 정해 줬어요. 지금은 주간 12~20페이지를 풀컬러(완전 채색)로 해야 합니다. 60, 70컷 끝도 없이 요구해요. 지금은 한 회당 100컷까지도 올라갔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몸이 아파도 해야 합니다.”

과도한 분량 경쟁 속에서 웹툰 작가들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웹툰 작가 실태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5.3퍼센트는 하루 12시간, 주 평균 5.7일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웹툰 스토리작가 하신아 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콘티(영상 연출)를 짜고 있다. 김재형

 

웹툰 작가 조승우 씨가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을 위해 사용하는 부대 프로그램 사용료 등 고정 지출도 모두 본인 부담이다. 김재형


고용불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만으로도 견디기 벅찬데 작가들의 목을 조르는 제도가 있다. 바로 누적 MG(Minimum Guarantee, 최소수익보장). 하 씨는 이를 간단히 표현했다.

내 몸값의 2배를 팔아도 빚이 쌓이는 겁니다.”

플랫폼(또는 에이전시)은 작가와 일반적으로 7 3의 비율로 수익을 분배한다. 플랫폼은 다달이 작가에게 MG200만 원을 가불한다. 이후 첫 매출이 400만 원이면 작가가 받는 돈은 ‘0’원이다. 작가에게 200만 원을 선불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600만 원(정확히 667만 원이지만 계산을 간단히 하기 위해 600만 원으로 예를 듦) 매출을 올려야 비로소 플랫폼에서 요구한 MG를 채울 수 있다.

작가들이 200만 원 받을 때 7 3이기 때문에 600만 원을 (플랫폼에) 줘야 합니다.”

문제는 600만 원의 매출을 올리지 못했을 경우 부족한 금액만큼 이월된다는 것이다. 하 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 몸값의 2배 찍었어도 기존 MG 체제에서는 그냥 멸시만 당하고 말아요. ‘작가님~ 이번 달도 MG 못 채우셨어요.’ 그런데 누적 MG는 이월됩니다. 다음 달에 800만 원을 채워야 해요. 다음 달에도 나는 400밖에 안 찍었겠죠. 1년 연재가 끝나면 2400만 원 빚이 생기는 거예요. 2차 저작권 영화화 계약을 해도 빚이 남아요. 이거 깔 때(빚 갚을 때)까지 다음 작품도 구속해요.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갈 수가 없어요.”

법으로도 보호받을 길이 없다. 실제 한 웹툰 사업체가 MG 반환을 요구하며 작가를 상대로 낸 선급금 소송에서 1심은 약 3천만 원 전액 배상 판결을 내렸다. (2017년 서울중앙지법, 이후 항소심에서 그보다 낮은 금액으로 조정) 원고료는커녕 빚만 쌓이는 형국이다. 다음 작품까지 저당 잡힌 채 작가들은 노예처럼 노동하다 결국은 매절로 모든 저작권(저작재산권)을 업체에 넘기기도 한다. ‘구름빵4400억 원 매출을 올려도 작가 수입은 2000만 원에도 못 미친 사례처럼 말이다. 불공정한 저작권 양도 방지를 위해 2015년 표준계약서가 고시되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어 사용률은 7.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2017년 디지털콘텐츠산업 유통실태조사,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하 씨가 비판한다.

안전망이 전혀 없어요. 업체랑 나랑 계약만 하면 되는 거예요. 작가 네가 왜 서명을 했어? 좋아서 합의해 놓고 왜 그래?”

해결 방법은 노동조합이었다. 특히 임금 및 고용불안에서 남성 작가보다 훨씬 많이 피해를 본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디콘지회는 201812월 설립했지만 2016년부터 게임업계 사상검증 사태(여성주의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티셔츠를 입은 게임 성우를 업체가 전격 교체, 이를 비판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명단이 블랙리스트로 업계에 공유되고 작업에서 배제됨.) 활동을 시작으로, 2017년 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사태(플랫폼 업체 레진코믹스의 불공정한 수익 분배를 비판한 작가들을 대표가 블랙리스트로 규정하고 해당 작가들의 작품을 메인 화면에서 배제할 것을 지시.)에서도 활발히 투쟁해 좋은 성과를 냈다. 그리고 이 연대체는 노동조합으로 이어졌다.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소개 일러스트 디콘지회

 

디콘지회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저작권 양수자의 의무 강화 및 매출 내역을 작가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저작권법 개정, 표준계약서 정립, 그리고 가장 시급한 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즉각 입법.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다는 이유로 많은 예술인들이 고통을 참아 왔지만 이제는 노동조합을 통해 말하기 시작한다.

정당한 대가만 받아도 감당이 되겠어요. 노동력에 대한 최저선을 정해서 대가를 줘야죠. 최저시급만 받아도 난 감당한다(웃음).”

두 사람은 잠도 자고 싶고 공휴일에는 좀 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약속한 고용보험법 개정도 미뤄지고 있는 마당이라 한꺼번에 다 요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고용보험 입법이 안 되면 저도 다른 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거 같아요.”

조승우 씨가 담담히 말했다. 예술인 노동자들이 생계 걱정 없이 오롯이 자신의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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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8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한국지엠 비정규직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와?

정인열/ <작은책> 기자 

 

▲ 한국지엠 부평공장. 작은책(정인열)


한국지엠은 생산 물량 감소를 이유로 2014~2015년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약 1000명을 해고했다. 정규직은 노동조합이 있어 해고를 피했다. 인력 감축이 필요한 경우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정규직을 전환배치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이를 인소싱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이 일하던 공정에는 정규직원이 들어왔다. 정규직원들은 비정규직의 편성률(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했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자 회사는 해고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다시 불러 2~3개월간 정규직원에게 현장 업무를 가르치게 했다.

이완규 씨(40)도 인소싱으로 인해 20158월 해고됐다. 그는 2006년 군산공장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도어 라인(자동차 문)에서 일했다. 그러다 2015430, 3개월 유급 휴직 통보를 받았다. 복직 날짜는 없었다. 곧 해고된다고 생각하자 억울해서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군산비정규직지회)에 가입했다.

모범사원 상도 세 번이나 받았어요. 성실하게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너는 비정규직이니까 나가라, 그러니까 억울한 거예요.”

2018213일 군산 및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법원은 이완규 씨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 45명이 한국지엠의 노동자라고 1심 선고를 내렸다. 해고 투쟁 3년 만에 들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공장에 돌아가겠다는 생각만으로 싸웠는데 갈 곳이 없어진다니까. 괜히 (투쟁)했나? 그때 많이 힘들었죠.”

인소싱은 2009년 부평공장에서 먼저 시작됐다. 당시 금융위기로 미국의 지엠 본사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비정규직 약 1000명이 해고됐다. 사실 비규정직이 해고된 자리에 정규직 인력을 1.5~2배 더 투입해야 공정이 돌아간다. 게다가 비정규직에게는 정규직 대비 50~70퍼센트 수준의 임금만 지급하고, 자녀의 학자금 같은 복리후생 하나 제공하지 않고, 골치 아픈 노사협상을 하지 않고도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손쉽게 해고했다. 비정규직에게는 노동삼권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부평공장 안에는 2, 3차 하청업체를 포함해 약 2500명의 비정규직이 있었다. 이영수 씨(46)와 박현상 씨(45)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경험하면서 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두 사람은 2006년 부평공장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차별을 묻자 이영수 씨가 말했다.

주말에 지게차 타는 라인 그리는 거를 한 적이 있어요. 정규직하고 똑같이 라인을 그리는데 거기는 이십몇만 원 받아가고 우리는 십만 원도 안 되는 거야. 그당시만 해도 3배 차이가 나는 거야. 야 이거는 심각하다 느꼈죠.”

▲ 출고 직전 차량에 스프레이 건으로 왁스를 도포하는 방청(녹 방지작업사진 제공_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2007년 한국지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일하던 라인을 분리하고 모듈화를 도입하면서 일부 공정을 납품업체로 돌리려 했다. 이영수 씨와 박현상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에 반대하며 200792일 비정규직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발기 조합원은 30여 명이었다. 설립 일주일 만에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부터 차례대로 해고되더니 조합원이 가장 많았던 하청업체 스피드월드파워도 폐업됐다. 해고자만 25. 선전전, 천막농성, 집회를 해도 복직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71227, 박현상 씨는 해고자 복직 및 노조 인정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가지고 부평구청역 CCTV 탑에 올라갔다.

그날 비가 오고 날씨가 안 좋았어. 비닐 쳐 놓고 자고 일어났는데 못 내려가게 밑에 천막이 쳐져 있는 거야.(웃음)

하루 이틀 예상하고 올라갔던 그는 65일 만에 내려왔다. 이대우 당시 지회장이 이어받아 70일을 고공농성했다. 2008117일에는 황호인 씨가 부평역 CCTV에 올라갔다. 며칠 후 또 다른 조합원 4명이 한강대교 아치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다. 227일에는 이준삼 씨가 마포대교 외줄 농성을 했다. 정화조를 잘라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밧줄을 달고 다리 아래에 매달렸다. 이영수 씨와 박현상 씨가 말한다.

정화조가 플라스틱이잖아요. 그라인더로 그 위를 잘랐어. 밧줄도 혹시 끊어질까 봐 최고급 밧줄로 했는데 (진압하려고 하니까) 뛰어내려 버렸어.”

다행히 이준삼 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수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소방구조정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

▲ 황호인, 이준삼 조합원은 지엠대우 정문 아치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두 달간 고공농성을 했다(2010년 12월 1일 ~ 2011년 2월 1일). 사진 제공_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부평구청역에서는 고공농성이 계속됐다. 135일째 되던 20085, 지회는 해고자 22명 중 7명만 선별 복직하기로 합의하고 이대우 지회장은 내려왔다. 하지만 지회장을 비롯해 박현상, 이영수 등 핵심 간부를 포함한 15명은 복직하지 못했다. 이들은 부평공장 서문 천막 농성장에서 2년 반이 넘게 투쟁을 이어 갔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2010121일 부평공장 정문 아치 위로 황호인, 이준삼 해고자가 올라가 또다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당시 지회장이었던 신현창 씨가 단식을 했다. 201121, 노사는 해고자 전원 복직에 합의했다. 2년 후인 2013년에 복직한다는 조건이었다. 신 지회장 단식 45, 고공농성 두 달이 되던 날이었다. 만족할 만한 합의는 아니었지만 일단락을 짓기로 했다. 이날 합의대로 20137월 해고자는 모두 복직됐다. 6년이 걸렸다이영수 씨가 당시 복직한 느낌을 회상했다.

돈을 버니까 좋더라.(웃음)

하지만 6년을 무임금으로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박현상 씨가 또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영수 동지는 아직 혼자여서 버티는 거…. (웃음)

박현상 씨와 이영수 씨는 부양가족이 없는 싱글이라 버텼다며 웃는다. 겉으로는 가볍게 말하지만 아주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군산공장 이완규 씨는 어린 자녀 둘이 있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아내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지만 4인 가족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규직 해고자들은 2년치 임금을 받고 나오기라도 했지만 비정규직은 빈손이다. 해고 후 4년 동안 쌓인 빚이 3천만 원. 그럼에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 때문이다.

현재 비정규직이 1200만 명 정도 된다잖아요. 가면 갈수록 비정규직은 늘어날 거거든요. 앞으로 야네들이 살아갈 세상이 보이는 거예요. 제가 지회장이니까 기자회견도 많이 하고 티비에도 나와요. 우리 와이프가 다른 건 다 좋은데 티비만 나오지마라, 전라도 말로 '거시기'하다는 거여요. 제가 와이프한테 그랬어요. 자기는 자기 '거시기'한 게 좋아 아니면 우리 자식들이 커서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아가는 게 좋아? 그럼 당연히 아니래요. 그럼 자기도 좀 참아. 아빠의 투쟁으로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고 싶어요. 잠깐은 불편하겠지만 계속 싸우다 보면 우리 애기들에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 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이완규 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현상 씨와 이영수 씨가 박수를 치며 말한다.

이런 조합원이 있어야 되는데.(웃음)

한국지엠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영수 씨는 지난 11일부로 또 해고자가 됐다. 한국지엠이 정규직에게는 임금의 70퍼센트를 지급하며 유급휴직을 제안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무급 순환휴직을 요구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이를 거부했고 이영수 씨는 해고됐다. 비정규직 노조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생산 물량이 없는데 무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 요구냐며 차가운 눈초리를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회의 요구는 수긍이 갈 만하다. 작년 1교대로 전환되었던 부평2공장이 조만간 다시 2교대제가 될 예정인데, 이때 정규직 600여 명, 비정규직 100여 명이 필요할 것으로 지회는 예상한다. 지회 해고자는 46(부평 38, 군산 8). 그리고 이들은 정규직 노동자로 법원 판결도 이미 받은 상태다. 복직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뿐만 아니라 한국지엠은 정부로부터 8100억 원을 지원받았다.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

▲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 이영수, 이완규, 박현상 씨(왼쪽부터). 지회는 해고자 복직 및 정규직 전환 요구를 하며 507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2019년 6월 27일). 작은책(정인열)


생계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이완규 씨와 박현상 씨의 아이들 이야기가 나왔다. 싱글인 이영수 씨는 난 담배나 피워야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박현상 씨는 네 살 된 딸이 있다. 집은 충북 진천. 딸이 두 살 때 육아휴직을 쓰고 1년 전 공장에 복귀하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완규 씨는 6월부터 상경 투쟁을 하고 있다. 이완규 씨가 아이들과 통화한 이야기를 한다. “‘아빠는 왜 회사 가면 (집에) 안 와?’ 이런다니까.” 이 말에 박현상 씨가 받아쳤다. 우리 애는 아빠 우리 집에 언제 놀러 와?’ 한다니까. ‘언제 와도 아니고. 하하하하.”

두 사람은 서로 네 사정이 더 낫네 하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돌려서 표현했다. 싱글인 이영수 씨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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