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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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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2.08 구금시설에서 의료제도의 진면목을 본다

<작은책>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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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이야기

구금시설에서 의료제도의 진면목을 본다

문정주/ 의사, 공공의료 연구자

 

2000명 넘는 사람이 건물 안에 있다가 그중 절반이 코로나19에 걸렸다.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수용자 2292명 중 1133명이 확진되었다.

수용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알렸다. 지난해 말, 창살 틈새로 손을 내밀어 “살려 주세요/ 확진자 한 방에 8명씩 수용/ 편지 외부 발송 금지”라 적힌 종이를 바깥세상이 보게 한 것이다.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 찾아낸 비상 대책이었고, 처벌을 각오한 시위였다. 뒤이어 <한겨레>에 실린 기사는 바깥세상을 경악하게 했다. 수용자 8명이 누워 자는 좁은 방, 마스크를 지급받기는커녕 돈 내고 사기도 힘든 구매 통제, ‘열이 나고 아파 죽을 것 같은데 아무런 조처를 안 해 주고 무시해 서러워서 눈물이 난다’는 수용자의 편지, 확진자와 같은 방을 쓴 밀접 접촉자 180명을 다른 방으로 옮기기에 앞서 강당에 한꺼번에 모아 놓고 4시간이나 머물게 했다는 어설픈 행정은 하나같이 코로나19 방역의 기본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 차마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2020년 12월 29일,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 수용자들이 창문 틈으로 요구 사항이 적힌 종이를 든 손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이동수

유엔의 ‘수용자 처우에 관한 최저 기준 규칙’에 따르면 구금 기간은 수용자가 사회로 돌아가 통합되고 준법과 재활의 삶을 살게 하는 데 이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라야 자유를 박탈하는 처분의 주된 목적인, 사회를 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재범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 국가는 수용자에게 의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수용자는 지역 주민과 같은 수준의 의료를 차별 없이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구금시설 의료는 유엔의 최저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구금시설당 수용 인원이 평균 1000명이고 대다수가 30~50대 남성인데 전체 인원의 절반이 ‘환자’이며 그중 38퍼센트가 고혈압을, 20퍼센트가 당뇨병을, 15퍼센트가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2019 교정통계연보). 이 많은 환자를 진료할 인력은 의사가 두세 명, 간호사가 한두 명, 약사와 의료기사가 한 명 정도다. 간단한 의료 장비를 갖춘 ‘의료과’에서 진료하는데 의사 1인이 하루에 보는 환자가 보통 200여 명으로, 진찰과 상담을 제대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다. 외부 의료기관 진료를 수용자가 요청할 수 있으나 허가 받기 어렵다.

상황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구금시설에 의료인이 부족할 뿐 아니라 고용 또한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의사는 2~3년 임기의 계약직이거나, 의과대학을 갓 졸업한 뒤 또는 전문의 과정을 이제 막 마친 뒤 군 복무 대신으로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다. 불안정하게 단기 근무하는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뿐, 행정적 권한을 갖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의사가 코로나19 집단감염 위험에 대비해 방역 조치를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판단했어도 실제 무엇을 하기는 어렵다. 마스크를 수용자에게 일괄 지급하거나, 열이 나는 수용자를 즉시 격리하거나, 다수 인원의 집합을 금지하거나, 어떤 조치든 권한이 있어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금시설 의료가 그 나라 의료제도를 보여 준다

보건소에서 10년,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에서 10년을 일했어도 나는 구금시설 현장에 가 본 적이 없다. 보건소나 지방 의료원에 관해서는 보건복지부가, 구금시설 의료에 관해서는 법무부가 관할해 서로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나눌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건 외국 의료제도를 견학하면서였다.미국 뉴욕주 시립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병원에서 진료하는 외에 순번에 따라 지역 의료 센터에 나가 진료하며 교도소에도 간다고 했다. “교도소(jail)?” 생각지 못한 말에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는데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립병원 의사는 공무원으로서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해 수용자를 진료한다고 했다.

국영의료의 나라 이탈리아에 가서 본 것은 아예 금을 긋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의료에 관한 한, 교도소 담벼락은 분리와 배제의 경계가 아니었다. 일반 시민과 마찬가지로 동네 일차 의료 의사, 전문의, 정신 건강 센터 활동가가 구금시설을 오가며 수용자를 진료하고 돌본다. 건강에 위험 요소가 있는지, 만성질환이 있는지, 심각한 합병증을 앓는지 등을 고려해 수용자 본인의 동의 아래 개인별 계획을 세워 의료를 제공한다. 출소를 앞둔 이에게는 구역 간호사가 따로 배정돼 필요한 도움을 준다. 구금시설 밖이든 안이든 인간으로서 건강할 권리에는 다를 바 없도록 보장한다.

이처럼 국가마다 의료제도가 다르다. 차이가 시작되는 뿌리는, 헌법이다.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의료제도에 대해 헌법의 영향력이 크리라 생각된다. 헌법은 ‘국가의 형태 및 통치구조,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관한 기본법’(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고 건강과 의료가 바로 그 기본권의 필수 요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국영의료 역시 그 나라 헌법에 뿌리를 박고 있다. 1948년에 제정된 헌법에 “공화국은 건강을 개인의 기본권이자 집단 공동의 관심사로 보호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무상의료를 보장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그 뒤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우파가 장기 집권하면서 헌법 정신이 빛을 보지 못했지만, 30년이 지난 1978년에 좌우 거대 양당이 타협해 집권 연합을 이루면서 국영의료법이 제정되었다. 법의 첫머리가 이렇게 시작된다. “공화국이 국영의료를 통해 건강을 개인의 기본권이자 집단 공동의 관심사로 보호한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보호할 때 인간의 존엄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헌법 정신을 그대로 받아안고 실현하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법으로 구금된 수용자의 건강도 보호한다.

그런데 어찌 된 걸까. 우리나라 헌법에는 건강과 의료에 관한 독립된 조문이 없다. 다만 분야별 권리를 밝히는 마지막 조문(제36조) 마지막 항에서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할 뿐이다. 이 짧고 애매한 글은 보건의 내용이 어떠한지, 이에 관해 국가가 무슨 의무를 지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대조적으로 교육(제31조), 근로(제32~33조), 사회복지(제34조), 환경(제35조)에는 하나하나 독립된 조문이 있고 국민이 누릴 권리와 국가의 의무가 자세히 적혀 있다. 우리 헌법이 유독 건강과 의료를 형식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헌법의 ‘짧고 애매함’이 현실에 투사되고 국가 행정에 반영된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 안에서 의료에 관련된 정책이나 관리·감독 업무가 여러 법률에 쪼개져 여러 부처로 나누어진 것이다. 물론 보건복지부가 주된 역할을 하지만 법무부, 국토부, 고용부, 교육부 등 다른 부처도 의료제도 일부를 관리한다.

법무부가 구금시설 의료를 관장하며 국립법무병원(공주치료감호소)을 운영한다. 국토부가 교통사고 환자의 자동차보험 진료를 관장해 연간 진료비 2조 원을 다루며 국립교통재활병원을 운영한다. 고용부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보상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을 관장해 연간 진료비 1조 원을 다루며 전국에 근로복지공단 병원 10개소를 운영한다. 교육부 또한 서울대학교병원을 포함한 10개 국립대학병원을 관리·감독한다. 중증질환의 최종 단계를 진료하는 이 병원들은 대규모 병상을 보유하고 우리나라 공공의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이에 대한 관리·감독이 교육부에 맡겨진 것은 의료 정책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 업무에 상당한 제한이 된다. 실제 예는 이보다 많다.

쪼개진 체계에서는 부처 간 칸막이 너머 사정을 서로 알지 못한다. 부처마다 독자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니 행정의 일관성은 고사하고 제도 전반을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쪼개진 제도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건 허상이다. 대학병원 의료가 눈부시게 발전해도 구금된 수용자에게 그림의 떡이고, 바깥세상 방역이 아무리 철저해도 구치소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난다. 누구나 건강하게 하려면 의료제도를 돌아봐야 한다. 전반을 책임질 총괄 체계가 필요하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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