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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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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에 해당되는 글 1

  1. 2011.10.18 [일터 탐방] 우리보고 쉬었대요 (2011년 10월호)

정인열 / <작은책> 기자
 

  “저는 해고 2호, 여긴 해고 3호에요”

  좋은 일도 아닌데 밝게 웃으시며 자기소개를 하신다. 이분들은 청주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요양보호사(보통 간병인이라고 한다)를 하다 '짤렸다'는 권옥자(54세), 이선애(62세) 씨다. 어르신들 돌보는 게 업이라 그런가, 부드러운 인상과 말투 때문에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거리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청주노동인권센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권옥자(왼쪽), 이선애(오른쪽) 씨 / 사진_안건모


  “노조 가입한 사람들은 재계약이 안 돼서 해고됐어요. 1년마다 근로계약을 하는 데 저(권옥자 씨)는 8월 6일자로, 여기 언니(이선애 씨)는 8월 16일자로 해고됐어요. 노조 탈퇴 못하겠다고 했거든요”

  2008년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됐다. 요양보호사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기저기 요양보호사 자격 취득 광고가 넘쳐 났다. 우리 엄마도 나에게 요양보호사 자격 따 놓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학원 광고마다 ‘주부 취업, 학력 불문, 퇴직 후 대비’ 등등 솔깃한 문구들로 적혀 있어 현재 자격증을 딴 사람이 100만 명이나 될 정도다. 권옥자 씨와 이선애 씨도 그중에 한 명.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25만 명 정도다. 왜 그럴까?

  “24시간 격일제로 일을 하는 데 세금 빼면 월급이 110만 원 밖에 안 돼요. 한 사람이 8명의 환자를 돌봐야 합니다. 쉬는 시간도 전혀 없고 밥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이 일 절대 못 해요. 젊은 애기 엄마가 일하는 걸 봤는데 밤새 애들이 울면서 전화하고, 애기 엄마도 울었어요. 그리고 하루 만에 그만뒀어요. 자격증 따 놓고 병원에 실습 왔다가 전부 다 떨어져 나갑니다. 하지만 저희같이 없는 사람들, 꼭 돈 벌어 가족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거구요.”

  청주시에서 설립한 청주시립노인전문병원은 2009년에 개원해 병원 운영을 민간의료재단인 효성병원에 위탁했다. 그리고 효성병원은 요양보호사 인력을 하영테크에 또 위탁했다. 하지만 일자리 구하는 사람들이 그걸 알 리가 없다. 그이들은 파출부라도 나가야 하지만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게 필요했고, 작은 요양원보다 시립병원이 처우가 나을 것 같아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청에 하청을 주니 당연히 중간에서 인건비 떼먹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영테크는 1인당 월급을 157만 원으로 효성병원에 요청하고 실제 127만 원(세전)을 줬다. 시급으로 따지면 3천 원이 안 된다. 그리고 효성병원과 하영테크는 이윤을 내기 위해 60명을 투입해야 하는 인력에 24명으로 운영했다. 그러니 요양보호사 한 명당 환자 5~8명을 맡게 되고, 당연히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은 대부분 치매, 반신불수, 석션(기도의 분비물을 제거하기 위해 흡입기를 대고 있는 환자), 화상을 입은 어르신들입니다.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 사람들이 4~5명 되지요. 그런데 그중 꼭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려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더 힘듭니다. 우리가 병실을 비우고 그분을 부축해서 볼일 보는 것을 다 도와줘야 하거든요. 옷을 다 입혀서 다시 침대에 눕히고 나면 다른 분들 기저귀를 갈아야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분이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고, 어떤 분은 아들네 집에 가야겠다며 일어나고. 그러다 넘어지면 엉덩뼈가 부서져요. 그래서 항상 간병인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붙어서 수발 들어야 하는 환자가 8명이다. 환자들에게서 잠깐만 눈을 뗐다간 사고가 난다. 그러니 5분도 쉴 새가 없다. 게다가 수시로 욕창이 생기지 않게 체위(자세를 바꾸어 주는 것)도 해 줘야 한다. 덩치가 큰 노인들에겐 온 힘을 다 써야 움직일 수 있다. 또 남성 노인들을 돌보면서 성추행도 발생하는데, 그럴 때는 모르는 척 교육받은 대로 대처해야 한다. 밥 먹는 시간에도 혼자 못 먹는 환자 때문에 밥을 먹여 주면서 자신도 같이 먹는다. 그러다 기침해서 가래가 밥에 들어가면 밥맛이 없어지고, 또 여기저기서 간병인을 불러 대니 도저히 맘 편히 먹을 수가 없다.

  그렇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못 쉬어가며 일하다 ‘요양보호사 권리찾기 캠페인’을 추진하던 공공노조 충북지역 의료연대와 청주노동인권센터를 만나게 되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근로기준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2010년 8월에 노조에 가입했다. 임금체불진정서도 냈다. 그러자 하영테크는 근로계약서를 법에 맞게 위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서명을 편법으로 받았다.

  “입사하고 3개월이 지나서야 근로계약서에 싸인했어요. 24시간 힘들게 일하고 퇴근 시간에 통근 버스 기다리는데 ‘선생님, 잠깐만요~. 싸인하고 가세요’ 하더라구요. 내용을 보려고 하면 ‘안 봐도 돼요. 그냥 싸인하세요’라고 해서 너무 피곤하고 바쁘니 별 생각 없이 싸인을 했죠. 게다가 우리는 나이가 많아서 돋보기가 없으면 글자가 안 보여요.”

  정말 얄밉다. 소송 때문에 나중에서야 근로계약서를 확인해 보니 월급 금액을 맞추려고 4시간마다 1시간씩 무급 휴게 시간을 주었다고 계산을 했고, 밤 11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유급 휴게 시간을 주었다고 법적으로 하자가 없게 거짓 작성이 되어 있었다. 만약 근로계약서대로 요양보호사들이 쉬었다면 그 많은 환자는 누가 돌봤단 말인가? 권옥자 씨와 이선애 씨는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하영테크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원청인 효성병원과 회의가 있을 때나 새로운 인력이 투입될 때만 관리팀장이 왔다. 모든 업무 지시는 효성병원 간호사들의 지시를 받았다. 하영테크 팀장은 노조가 생긴 뒤 노조 가입한 사람들은 모두 자르겠다고 협박해서 처음 37명이었던 조합원 수가 지금은 10명만 남게 되었다. 노조에 남은 사람들은 생계 위협에도 왜 탈퇴하지 않았을까 물어봤다.

비 오는 날 집회 중인 해고 간병인들 / 사진 제공_충북지역의료연대

  “생계가 걱정되지만 분한 생각이 더 들어요. 부당한 일이 있어서 호소하겠다는 데 왜 해고하나요? 노인요양보호서비스는 어느 가정이든지 다 접할 서비스입니다. 사람들이 간병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몰라요. 다른 간병사들도 이런 일을 당하면 안 됩니다. 용역업체 안 쓰고 체제만 바로 잡히면 일하는 우리도 조금 더 편하고, 우리가 안정되면 환자에게도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노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환자가 저희를 인정해 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자기 가족도 거부하고 우리 손길만을 기다리고, 고맙다고 할 때. 슬그머니 쵸코파이를 손에 쥐어 주고, 추운 날 출근해서 오면 춥지~ 하며 손을 잡아 주고 표졍이 밝아질 때. 말을 못해서 ‘아다다~’로 표현하는 분이 있는데 제가 한 달하고 다른 병실로 넘어가니까 그 다음부터 캔(식사 대용으로 먹는 환자식)을 안 드세요. 그러면서 보호자에게 이 사람 아니면 안된다고 ‘아아아~’ 하고 의사 표현을 하면 정말 보람을 느끼고 '얼른 다시 와서 저 환자분 돌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가슴이 찡해진다. 우리 부모님도 늙어 곧 아프실 날이 오겠지. 우리 자식들도 부모님을 노인 병원에 모셔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을 돌봐 주실 그런 분들, 철없는 자식들보다 더 기댈 수 있는 그런 분들. 우리 부모님이 편해지려면 환자당 요양보호사 수가 훨씬 많아져야 하고, 충분한 휴식 시간이 보장되고, ‘목숨유지비’ 이상의 월급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 일은 우리가 잘할 수 있어요. 아무 희생자 없이 우리 요구가 들어져서 우리를 기다리는 환자에게 돌아가고 싶어요. 당당한 1급 국가자격증을 딴 사람들입니다.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해요.”

  젊어서도 고생했는데 늙어서도 고생하고 있는 우리 시대 엄마들이 생각난다. 늙어서도 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 엄마들, 좀 편하게 일하게 해 주이소. 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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