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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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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4. 11:06 알림 / 엮은이의 글

 



■ 엮은이의 글

  나라 주권이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심각한 때 이 글을 쓰게 됩니다. 한미 FTA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맺은 한미 FTA 협상안을 국회에서 비준해 주면, 3개월 내 미국에 ISD 조항의 ‘재협상을 제안하겠다’고 꼼수를 부렸습니다. ISD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뜻의 약자입니다.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수돗물 장사를 합니다. 한 달 수돗물 값이 갑자기 올라 우리 월급의 반이 됩니다. 서민들은 수돗물 사 먹을 돈을 아끼느라 빗물을 받아 놓았다가 먹기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미국 기업이 장사가 안 되겠죠? 당장 우리나라 정부에 항의를 합니다. 정부는 빗물을 못 받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우리나라에게 소송을 겁니다. 판단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하지요. 그 센터가 누구 편을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빗물조차 못 받아 쓰게 됩니다.

  소설 쓰지 말라고요? 지난 2000년에 볼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미국 기업은 벡텔이라는 기업이고요. 아, 그러면 그 ISD조항을 재협상하면 된다고요? 오바마가 총 맞았나요? 그걸 해 주게? 그런데도 이명박 ‘가카’가 국회에서 한미 FTA를 일단 비준해 달라는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그걸 비꼬는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일단 김태희를 나와 혼인시켜 달라. 3개월 안에 김태희 씨에게 결혼 허락을 받겠다”는 말에 뒤집어졌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싫더라도 일단 당선시켜 주십시오. 대통령 취임하면 3개월 내에 재선거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비꼬았네요.

  독자님들, 가카가 하는 말은 꼼수가 아닙니다. 제가 바둑을 둬 봐서 좀 아는데, 바둑에서 나오는 꼼수는 정말 그럴듯하거든요. 가카가 하는 짓은 바둑 18급짜리가 9단한테 던지는 막수입니다. ‘씨바, 넘 유치해!’

                                                                                                                 2011년 11월 16일
                                                                                                                        안건모 올림


■ 차례


4 사진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4 재수 없는 날 _ 상희
18 본색을 드러낸 선생님 _ 김경희
22 회갑보다 중요한 날 _ 김현주
25 공무원이 봉이냐? _ 서애련
28 축구를 그만둔 한국의 메시 _ 고경은
32 쫄다구 형님! 제 말 좀 들으세요! _ 김영도
36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 주먹이 운다│바담풍 _ 이성수
38 여성의 일과 삶 : 한 발을 디디고 거침없이 고고씽! _ 박미경
44 살아온 이야기(3) :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긴다! _ 신혜진
50 와글와글 초딩 글
52 이야기가 있는 들녘 : 올해도 쌀 다 팔았습니다 _ 김성만
56 글쓰기 모임 뒷이야기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 :
고기 280킬로그램 볶아 보셨어요? _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 3~4일 정도면 되겠지? _ 김정훈
68 일터에서 온 소식 : 용기 있는 대리운전기사 콜 ! _ 송재성
72 일터에서 온 소식 : KT를 바꿔라! _ 조태욱
76 실업 극복 희망 일기 : 난 유리 같은 여자예요 _ 최문정
80 현장 노동법 이야기 : ‘판례’를 무시하는 판사들 _ 변영철

기획 특집
혁명은 글쓰기와 함께 온다

83 강좌 _ 윤구병

103 뒷이야기 _ 이명옥

105 만화로 보는 세상 _ 이성열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 김진숙과 송경동 _ 박노자
110 교육 이야기 : 1정 연수 괴담기 _ 설은주
114 쉬운 경제 이야기 : 끝장토론 마지막 호소 _ 정태인
122 생태 이야기 : 우주여행은 그저 꿈일 때 아름답다 _ 박병상
126 인물 바로 보기 : 《실학파와 정다산》을 쓴 최익한 _ 송찬섭

쉬엄쉬엄 가요

131 일상 예찬 : 나는 이만하면 충분해 _ 김현진
134 영화 이야기 : 신비한 주술과 생생한 현실의 만남 _ 강성률
138 추억 따라 역사 따라 : 백두대간 완주보다 더 흐뭇한 것 _ 박준성
142 아, 이 시! : 밤새 잘 기셨소 _ 오도엽
144 새로 볼 책 : 싱싱한 유기농 만화 _ 윤지은
146 돌아볼 책 : 오타쿠와 레닌 사이 _ 곽일용
148 새로 나온 책 _ 편집부
151 편집 뒷이야기

posted by 작은책
우리가 배용준 한 명만도 못하냐!(2009년 2월호)
오도엽의 일터 탐방

오도엽/ <작은책> 객원기자

‘여성 크로커다일’을 아십니까? 악어 그림의 상표가 붙은 여성 캐주얼. 이 옷을 만들어 파는 ‘(주)형지어패럴’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아날도 바시니’라는 남성 브랜드를 만들어 한국 최고 연기자 배용준을 전속 모델로 계약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이 회사의 최병오 회장은 패션 업계의 신화로 불리기도 합니다. 나이 서른에 동대문에서 허름한 옷 가게를 열어 사업을 시작했고, 25년 만에 여성 캐주얼 시장의 선두에 섰습니다. 샤트렌, 올리비아 허슬러, 라젤로……. 새로 시장에 선보인 브랜드마다 소비자의 호응이 좋았습니다. 2007년도 우리나라 매출 순위 821위, 순이익은 481위를 차지한 알짜 기업입니다. 전해 대비 매출 성장률이 30퍼센트가 넘더군요. 2008년에는 매출이 5천억을 넘어섰습니다. 2011년에는 매출 1조 원 규모의 종합 패션 전문 기업이 되겠다고 야심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에 최병오 회장이 한 모임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들은 한 참석자는 ‘이론으로만 떠드는 강사와 달리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 그리고 나눔 경영의 철학을 지닌 분’으로 ‘존경스럽다’고 하였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인간 존중, 나눔 경영.’ 얼마나 우리 사회가 바라는 경영자의 모습입니까.

존경해야 할 최병오 회장이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기사가 지난해 12월 9일 언론에 나왔습니다. 한 경제 전문 언론에는 사업 수익의 일부를 교육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금으로 쓰겠다면서 국제 구호 단체 유니세프와 나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같은 날, 이 아름다운 행사장 바깥 풍경을 다룬 인터넷 언론의 기사도 있네요. 앗,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형지어패럴 직원이 피켓을 들고, ‘5년 동안 야근하고 일요일 특근한 대가가 해고라니……’ 하면서 울부짖고 있지 않습니까. 설마, 존경스러운 경영자가 있는 회사에서…….

무엇인가 사연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형지어패럴을 찾아갔습니다. 올해 쉰셋인 이재석 씨는 형지어패럴 샘플실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취재수첩을 꺼낼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쏟아 냅니다.


△ 오도엽 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이재석 씨 ⓒ 작은책


“제가 이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했습니다. 본래 형지어패럴에는 샘플실이 없었어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알았던 분이 이곳에서 개발실 부서장으로 있었어요. 저보고 샘플실을 만들려고 하는데 와서 일을 해 달라는 거예요. 5년 전 일이죠. 샘플실은 매장에 내놓을 상품을 미리 만드는 일을 해요. 여기서 만든 샘플 옷을 가지고 품평회를 거쳐 제품을 선정하죠. 옷 패턴이 결정되면 재단도 하고 미싱도 하고 다 해요. 이 작업이 혼자서는 힘들거든요. 보통 둘이 짝이 되어 일을 하는데, 저는 아내와 함께 일했어요. 한 사람 월급만 받으면서 둘이 일을 시작한 거죠.”

이재석 씨는 얼마나 가슴에 맺힌 이야기가 많은지 지난 5년의 이야기를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계속 이어갑니다.

“하루 평균 열두 시간씩 회사에서 살며 날마다 잔업을 했어요. 토요일 격주 휴무가 된 지도 한 1년밖에 안 돼요. 명절 휴무 전에는 대체근무도 하고, 공휴일에도 특근을 했어요. 이제껏 근로자의 날에 쉬어 본 적도 없어요. 품평회가 끝나면 보통 샘플실은 잠깐 여유가 있는데, 저희는 그 다음날로 다른 브랜드 샘플 작업을 해야 했어요. 일요일에는 대리점을 방문해 상품 실태 조사를 해요. 제주도만 빼놓고 전국을 다 돌아다녀요. 저는 자가용이 없어 버스나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약도 하나 가지고 구석구석에 있는 대리점을 찾아다니려고 하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죠. 대리점을 못 찾으면 전화를 해서 길을 물어보면 되는데 회사에서 그걸 못하게 해요. 대리점에 찾아간다는 정보가 새면 안 된다고요.”

대리점을 방문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재석 씨 목소리가 커집니다.

“이 계통, 봉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많이 배우지 못해 학벌이 낮아요. 경력은 수십 년 되지만 직책은 사원이죠. 대리점을 찾아가 명함을 내밀면 점주들이 깔보기도 합니다. 찾아가면 무척 싫어해요. 본사에서 조사를 나오니 좋아할 리가 없죠. 옷 팔기 바쁜데 왜 찾아오냐, 내가 회장하고 친군데 니가 뭐냐, 뭐 이런 모욕을 받기도 해요. 샘플실 업무도 아닌데, 쉬는 날 나가서 욕만 얻어먹는 셈이죠. 내가 나이가 오십인데……(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소처럼 일만 했어요. 좋은 게 좋다고, 그냥 참고 일만 했어요.”

최병오 회장이 샘플실에 들어오면 이재석 부부에게 미안해 하더랍니다. 두 사람이 일하는데 제대로 임금을 챙겨 주지 못한 걸 안타까워 하며 말을 건넸고요. 이재석 씨 부부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좋았던지, 앞으로 샘플실은 부부 사원으로 채용하라고 했습니다. 회사가 새 브랜드를 출시하며 샘플실 직원을 늘여 갈 때 실제로 부부를 함께 채용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재석 씨 부부는 모범 사원으로 뽑혀 사이판으로 해외 연수를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출국에 필요한 서류도 다 준비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11월 12일, 점심을 먹고 작업실에 들어오니 12월 12일 자 해고 통지서가 놓여 있는 것 아닙니까.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해고를 받아들이죠. 해마다 새로운 브랜드를 출시하고, 거액을 쏟아부어 우리나라 최고 연기자를 전속 모델로 쓰면서, 5년 동안 야간에 특근해 가며 죽도록 일한 저희들을 해고하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우수 사원은 뭐 하러 선정합니까? 일을 못한 것도, 회사가 무너질 위기도 아닌데 말입니다. 지난해 가을에 주거래 은행이 바뀌면서 새로 선정된 은행이 무료로 경영 컨설팅인가 뭔가를 했어요. 불필요한 인력이 많다고, 한 100여 명인가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나. 그때부터 이유도 모르고 해고 통지가 날아오기 시작했어요. 500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400명 정도예요. 불필요한 존재였다면 왜 야근에 특근은 시킵니까? 이렇게 회사 키운 게 누군데요.”

△ 이재석 씨 차영미 씨 부부와 한수자 씨 이광년 씨 부부. 갑작스런 해고 통보에 웃음을 잃었다. ⓒ 작은책


잘나가던 회사를 컨설팅 한답시고 며칠 오가던 사람의 한마디에 백여 명의 직원이 밥줄을 잃었습니다. 꽥 소리 한 번 못하고 나간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샘플실 직원 여섯 명만이 회사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모두 부부 사원입니다. 여성들은 십대부터 이 계통에서 일을 한 사람이 많습니다. 수십 년 동안 쌓은 경력이, 배운 사람들의 세치 혀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재석 씨는 받아들일 수 없어 거대한 기업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선 그래요.‘어디 해 봐라. 오륙 년 걸릴 텐데 법적으로 가 봐라. 버틸 수 있나.’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걸 알고 있어요. 큰 회사에 맞서는 게 어렵다는 거 알아요. 이제 와서 슬그머니 돈 좀 줄 테니 나가서 아웃소싱 받아 일하래요. 저희는 다른 거 필요 없다. 첫째도 둘째도 복직이다. 정말 회사가 어렵고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미련 없이 나갈 수 있지만 지금 이거는 아니다. 이랬어요. 제 말이 틀렸나요? 이해가 됩니까?”

틀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직원을 해고하면서, 수십 명의 기자를 호텔로 불러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사업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최병오 회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강연장에서 ‘인간 존중과 배려’를 강조하시던 최병오 회장은 어디로 가셨단 말입니까. ‘나눔 경영’ 기업 이미지만 좋게 하여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는 ‘쇼’를 하신 건가요? 최병오 회장님, 혹 실수였다면 하루 빨리 해고자를 복직시켜 주십시오.

이재석 씨의 부인 차영미 씨는 해고 통보를 받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눈물만 펑펑 흘렸답니다. 하나뿐인 아들은 군 입대 자원 신청을 했습니다. 한 명의 입이라도 줄여야 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벌다가 한날한시에 쫓겨났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함께 샘플실에서 일하던 한수자, 이광년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수자 씨는 손이 덜덜덜 떨려 일이 안 되더랍니다. 해고를 당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자신이 해고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실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머리가 텅 비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다가 가끔 현실로 돌아오면 미쳐 버릴 것 같답니다. 정신병자가 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답니다.

새 옷을 만들 때마다 어떻게 하면 입는 사람이 더욱 편하고 예쁠까만을 생각하며 장인 정신으로 일했던 형지어패럴 샘플실의 세 쌍의 부부. 평생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이들은 오십이 넘어 처음으로 해고를 당했습니다. ‘여성 크로커다일’이라는 유명 브랜드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형지어패럴이라는 큰 회사에 있으면 수입은 적더라도 좀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참히 무너졌습니다.

한마디 더 하겠습니다. 배용준을 전속 모델로 계약했다는 사실을 앞 다퉈 다루던 언론들, 유니세프에 기부하는 사랑의 손길을 대대적으로 떠벌리던 기자님들, 여기 한겨울 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겁니까?

더 큰 추위가 노동자를 덮칠까, 무척 두려운 2009년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이야기, 진보월간 <작은책> www.sbook.co.kr
posted by 작은책
생명을 살리는 병원, 노동자는 파리 목숨
오도엽의 일터 탐방

오도엽/ <작은책> 객원기자

추석을 앞둔 9월 10일 강남고속터미널 너머에 있는 강남성모병원을 찾았다. 터미널과 병원을 잇는 육교에 올라서자 웅장한 글씨가 눈을 가로막는다. ‘2009년 5월, 생명을 존중하는 첨단 병원이 개원합니다.’ 이천억 원을 들여 짓는다는 가톨릭 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강남성모병원에서 간호사와 호흡을 맞춰 간호 보조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파견업체를 통해서 고용된 사람들이다. 2년을 계약하고 들어왔고, 계약 기간이 지나면 당연히 나가야 한다. 계약을 그리하고 일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해고에 아무 문제가 없다. 2006년 10월 1일에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2년을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했으니 2008년 9월 30일에는 계약대로 집에 가서 푹 쉬면 그만이다. 법을 기계처럼 적용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법이란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병원. 그것도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파리 목숨으로 여기면 안 된다.

홍석. 그는 서른일곱이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홍석 씨는 5년 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을 통해 강남성모병원에 취직을 했다. 이때는 강남성모병원과 근로계약을 맺었다. 홍석 씨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돈보다는 환자들에게 봉사도 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고된 일도 흥겹게 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2006년 9월 28일, 낡아서 잘 굴러가지도 않는 침대를 힘겹게 엘리베이터에 밀어 넣으며 침대에 누운 환자를 검사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호출기가 울렸다.

“파견업체로 가라는 거예요. 더는 병원에서 직접 고용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딱 3일 남겨 두고 파견업체로 가든지 아니면 출근을 하지 말든지 선택을 하라는 거예요. 정말 얼떨결에 파견업체로 간 거예요. 별 수 없잖아요. 파견업체로 가지 않으면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판인데, 그것도 3일 남겨 놓고 통보를 하는데 어쩌겠어요.”


△ 9월 9일 정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집회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비정규직 철폐하라>를 외치고 있다. ⓒ 작은책


홍석 씨만이 아니었다. 간호 보조 업무는 2002년 이전에는 모두 정규직이 담당하던 일이었다. 이 업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 형태를 바꾸더니 2006년에는 파견업체로 떠민 것이다. 노동자들은 선택을 할 생각은커녕 시간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채소와 다를 바 없다. 천 원에 팔리다가 해질녘에는 오백 원에 막판 떨이 신세가 되어도 그냥 이 손에서 저 손으로 팔려 나가면 그만인 존재다.

올해 서른둘인 이미경 씨도 마찬가지다. 다니던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자 이미경 씨는 새 직장을 찾아 나섰다. 그때 강남성모병원에서 사람을 뽑고 있었다. 3교대로 일을 한다지만 하루 8시간 근무니 해 볼 만했다. 물론 강남성모병원과 근로계약서를 썼다. 이리 큰 병원이면 안정되게 일을 할 수 있으니라 생각했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장난이 아니다. 말이 8시간 근무지, 잠시도 숨 돌릴 겨를이 없다. 꼬박 8시간을 잔걸음으로 쉴 새 없이 뛰면서 근무를 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겨우 짬을 내서 식당으로 가 식판에 밥을 푸는 순간 호출기가 울린다. 호출기가 울리면 허기졌던 뱃속과는 달리 입맛이 싹 사라진다. 식판의 밥은 고스란히 잔반통으로 들어가기가 일쑤다. 제 시간에 근무가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늘 30분에서 한 시간은 잔업을 해야 한다. 수당도 없는데 말이다.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다가 퇴근시간이라고 나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자신이 담당한 환자의 일은 교대 근무자가 오더라도 자신이 끝내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보조 업무라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아픈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 아닌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된다. 하루 8시간 넘게 병원 복도와 층계를 오르내리며 뛰어다녔으니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그리고 몸이 아픈 환자를 상대하다 보니 그 긴장은 육체의 피로를 몇 곱으로 가중시킨다.


△ 9월 9일 강남성모병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 ⓒ 작은책


물론 이미경 씨도 홍석 씨가 있던 자리에 2년 전에 함께 있었다.

“너무 억울했어요. 찍소리도 못하고 파견업체로 팔려 간 거잖아요. 배추 시래기처럼 버려진 느낌이었어요. 그날 황당하게 파견업체로 버려진 사람들이 터미널 앞 호프집에 모여서 술을 한잔했어요. 울기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 다짐을 했죠. 이건 아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당하지 말자.”

그리고 두 해가 지나고 9월이 왔다. 홍석 씨와 이미경 씨와 배추 시래기가 된 간호 보조 업무를 하던 파견사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한참을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했다.

홍석 씨와 이미경 씨에게, 강남성모병원 간호 보조 업무 파견 직원들에게 “2년 계약하고 들어왔으면서 이제 와서 못 나가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하며 손가락질할 사람 있습니까? 이들이 파견업체에 고용된 직원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강남성모병원에 고용된 사람입니까? 이들이 파견업체에서 일했습니까,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했습니까? 이들이 찍소리 하지 않고 나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가라사대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나무를 만들고 꽃을 만들었듯이, 강남성모병원 가라사대 간호 보조 업무가 정규직이 되라 하고 비정규직이 되라 하고 파견직이 되라 하면, 그 가라사대에 따라 고용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가톨릭의 정신입니까? 그게 생명 존중입니까? 수천억을 들여 짓는 새 병원 담벼락에 자랑스럽게 써 둔 ‘생명을 존중하는 첨단 병원’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인가요? 새 병원에는 70평짜리 초호화 병실을 만든다고 하는데요, 기업 CEO들이 입원을 해서도 회의를 할 수 있는 초특급 병실을 갖춘다고 하는데요, 가톨릭에서는 돈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고, 돈 없는 이들은 2년마다 해고를 묵묵히 감수하며 일하는 세상이 옳은가요? 간호 보조 업무를 하는 이들이 강남성모병원 간호부 소속 사원으로 되어있던데, 간호부의 부장님 과장님들이 수녀님이시던데, 수녀님! 당신 부서의 사원들이 시장판 배추 시래기 취급을 받고 있는데 침묵하거나 동조하거나 심지어 앞장서시는 것이 당신이 믿는 신앙에 따른 행동이신가요?

그리고 추석이 지났다. 강남성모병원에 비정규노동자들이 천막을 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천막이 세워진 몇 시간 뒤 강남성모병원이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천막을 철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병원에서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폭행을 당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들려왔다.


△ 농성장 천막에 내걸린 현수막. ⓒ 작은책


9월 30일.

홍석 씨와 이미경 씨의 강남성모병원 마지막 근무하는 날 찾아갔다. 스무날 전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던 이미경 씨의 눈이 탱탱 부어 있었다. 웃을 때마다 콧잔등에 주름을 가득 지으며 까르르 자지러지던 이미경 씨는 보이지 않았다. 분홍 근무복 위에는 가을 하늘 빛깔을 가득 담은 조끼를 입었다. 결국 조끼를 입고 마는 구나. 칙칙한 청색도 뜨겁게 달궈진 붉은색도 아닌 가을 하늘빛 조끼라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설마 저 푸른 가을 하늘이 이들의 소박한 소망을 저버리겠는가 하는 위안을 했다.

“언제부터 로비에서 연좌 농성을 들어가셨어요?”

“연좌 농성 아니에요. 아침부터 병원 돌며 저희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 로비에서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왜 저희가 이런지 호소를 하는데 무릎이 팍 꺾여 이 자리에 주저앉은 거예요. 그동안 설움이 복받쳐 올라 주저앉아 있는 거예요.”

인사팀 직원들이 다가와 설움에 복받쳐 주저앉은 이들에게 나가라며 협박을 하였고, 병원의 연락을 받은 서초경찰서는 정보과 형사를 보내 연행을 하겠다고 통보를 한다. 일어설 힘조차 없는 노동자들은 연행을 하든 말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투석을 받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온다는, 자신도 아이엠에프 때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아저씨 한 분은 꼭 강남성모병원에서 계속 일을 하라며 요구르트를 건넨다. 휠체어에 링거를 달고 온 한 환자 분은 바나나 우유와 빵을 담은 하얀 비닐봉지 2개를 건네고 사라진다. 비닐봉지를 열던 박정화 조합원이 갑자기 굵은 눈물을 쏟아 내며 병원 로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갔더니 손에 자그마한 쪽지 하나를 보여준다. 방금 전 우유를 건넨 환자가 봉지 안에 담아둔 쪽지다.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며 응원합니다.^^”


△ 어느 환자가 투쟁 중인 조합원에게 건넨 음료수와 <힘내세요. 좋은 결과 있기를 기도하며 응원합니다.>가 적힌 쪽지를 보고 있다. ⓒ 작은책


이미경 씨 병동에 있던 분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안다. 이들이 얼마나 병원에서 소중한 사람인지를. 아픈 자신들에게 이들이 보여 준 헌신과 애정을 환자들은 안다. 함께 일한 간호사들도 알고, 병원 청소를 하는 용역 아줌마들도 알고, 주차 관리를 하는 용역 아저씨들도 안다. 파견 간호 보조 업무를 하는 이들이 강남성모병원 직원임을 알고, 반드시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정말 환자들의 생명 존중만큼 노동자의 생명도 존중받아야 함을 세상은 알고 있다.

약물로도 수술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 2009년 광우병, 멜라민과 함께 온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비정규직,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는 사회가 무섭다. 가톨릭에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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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에 나오지 않는 노동자 이야기

   오도엽/ <작은책> 객원기자



  두 달이 넘도록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억수와 같이 비가 쏟아져도 촛불은 꺼지지가 않는다. 시청광장을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니면 유모차를 탄 아이에서 허리가 굽은 할머니까지 만날 수 있다. 녹음기 마이크를 슬며시 들이대면 갖가지 사연이 흘러나온다. 서울광장은 서민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고 달래는 공간이 되었다. 촛불 문화제에 가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런 저런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대전의 콜텍 조합원은 서울 본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천의 테트라팩도 다국적 기업과 맞서 아직 싸우고 있다. 반가움은 잠깐이고 답답함이 가슴 가득 밀려든다. 촛불이 미처 비춰 줄 수 없는 설움과 눈물이 너무도 많아 속상할 뿐이다. 서울광장에 모인 기자들의 카메라를 보면서 참담해진 순간도 있었다. 1000일을 넘기며 싸우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단식이 이제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이랜드 노동자들의 싸움도 1년을 훌쩍 넘었다. 지난 여름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쫓겨난 이랜드 노동자들이 농성을 했던 홈에버 상암점에는 다시 농성 천막이 들어섰다.

  비정규직법 시행 1년을 앞둔 지난 6월 25일 남대문에 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을 찾아갔다. 와이셔츠를 입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가슴에 매단 천에는 하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그 밑에 자그마한 글씨로 ‘비정규직의 뻥 뚫린 가슴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공공 기관이다. 서민들의 전세 자금, 연금, 학자금 들을 대출해 주는 곳이다. 5백여 명의 직원이 일을 하고 있고, 이 가운데 백여 명은 계약직 직원이다. 지난해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 대책’이 만들어졌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정책이다.

△ "사람은 일회용품이 아닙니다." 지난 6월 25일 한국주택금융공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

  계약직 직원은 보통 11개월에 한 번씩 재계약을 했다. 비정규직법 시행으로 2년이 넘은 비정규직은 이제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공공 기관인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직원들은 꿈에 부풀어 있었다. 비정규직법이 확대 시행되는 오는 7월에는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기 계약직이 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광주지사에서 근무하는 이재석 씨는 지난 3월에 익산센터로 옮기라는 제의를 받았다. 계약직인데 익산으로 옮겼다가 재계약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되었다. 아내도 광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고용이 안정되지 못한 이재석 씨에게 아내의 수입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전학시키는 일도 부담이었다.

  회사에서는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계약직으로 2년 이상 근무했기 때문에 오는 7월에 당연히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테니 안심하라고 했다. 서른여덟 이재석 씨는 결심했다. 이제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데 뭐가 걱정이냐. 맞벌이를 하던 아내에게는 직장을 그만두라고 했다. 이제 갓 입학한 아들도 전학을 시켰다. 집도 팔고 익산으로 일터를 옮겼다. 익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열심히 직장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게 4월 3일이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이재석 씨는 어김없이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익산센터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늘 하던 대로 컴퓨터를 켜고 회사 전산망에 접속을 하였다. ‘계약 인력 운용’이라는 제목으로 부사장 이름의 공문이 올라와 있었다. 이재석 씨는 무기 계약직 전환에 대한 대책이 발표된 줄 알고 기뻐서 클릭을 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공문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가. 채권추심에 근무하는 계약직 직원을 계약 해지를 한다는 공문이었다. 업무를 없애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직원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직원으로 충당한다는 것이다. 각 지사와 센터는 신규 직원에 대해서는 6개월 이하의 단기 계약직으로 뽑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국주택금융공사 계약직 직원들은 말했다.

  “능력이 없어서 쫓겨나거나 성실하지 못해서 계약 해지되었다면 억울하지 않아요. 업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상관없이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으로 2년 이상이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쫓겨나는 거잖아요.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불안해도 11개월에 한 번씩 자동으로 계약을 갱신했는데 이게 뭡니까.”

  또한 계약직 직원들은 공공 부문 개혁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공공 기관 개혁을 하라고 하니 계약직을 희생양으로 삼은 거예요. 정규직을 구조 조정할 수 없으니 계약직 직원들이 정규직이나 무기 계약으로 전환되는 걸 막아 개혁을 했다고 하려는 거 아닙니까. 저희들이 하던 업무는 계속 필요합니다. 저희가 나가는 자리를 단기 계약직으로 충원한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식 공공 기관 개혁의 실상이에요.” 6월 3일 공문에는 계약 해지자 명단이 없었다. 더는 계약 갱신 없이 모두 해고라는 통보였다. 그날 밤 퇴근을 한 이재석 씨는 차마 아내에게 이달 말로 계약 해지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 "정규직화 실시하라." 노동자들의 바람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여보, 직장에 다니지 않고 살림만 하는 것도 이제 몸에 익네.”

  아내가 된장찌개를 식탁에 올리며 말을 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다섯 살 난 딸아이가 식탁으로 달려와 숟가락을 들었다.

  “아빠 화났어?”

  딸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밥만 먹는 아빠에게 물었다. 딸의 목소리에 이재석 씨는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이재석 씨는 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말았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이대우 씨는 계약직 직원을 일회용품처럼 한 번 쓰고 버리는 행동이라고 분노를 했다.

  “계약직이라지만 회사에서 2년 넘게 근무해 온 직원들이 아닙니까. 최소한 한두 달 시간을 두고 해고 통보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모두들 집안의 가장이고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6월 3일에 달랑 전산망에 공문 한 번 올리고 그달 말에 회사를 나가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디 다른 일자리 알아볼 짬이라도 줘야 맞는 것 아니에요. 계약직 직원들이라지만 대부분 10년 이상 금융계에 근무한 베테랑이에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인데, 정말 자존심을 뭉개는 짓이에요.”

  이대우 씨는 평화은행에서 정규직으로 근무를 하다가 아이엠에프 때 은행들이 구조 조정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가로놓인 높은 벽을 하루에도 몇 차례 경험을 했다. 취재를 하고 돌아서는데 계약직 직원들이 물었다. 오늘 몇몇 기자들과 방송 카메라가 왔는데 언론에서 다뤄 주겠냐고 묻는다. 얼마 전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취재를 해 갔는데 갑작스레 촛불 집회 관련 내용으로 바뀌어 방영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알 수 없다고 답을 했다. 해고를 앞둔 계약직 직원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텔레비전에도 신문에도 한국주택금융공사 노동자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 "비정규직 법안을 악용하는 한국주택금융공사를 규탄한다."

  나흘 뒤, 세종로 프레스센터 앞에 전경차가 8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보 게재에 맞서 성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몰려 나온 날이다. 물대포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경찰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을 생중계하던 날이었다. 노란 비옷을 입고 물대포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이재석 씨로 보였다. 주홍빛 조끼를 입은 기륭전자 노동자도 보였다. 이랜드 노동자도 보였다.
 
얼굴에 맺힌 물기가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겠다.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에 맞아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울광장에는 한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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