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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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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립합창단'에 해당되는 글 1

  1. 2019.04.29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작은책> 2019년 5월호

일터탐방_ 양주시립예술단

 

양주시에 노조가 없는 까닭

정인열/ <작은책기자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

전문 성악인들과 연주자들이 경기도 양주 시내 한 교차로에 서서 민중의 노래(영화 <레 미제라블> 삽입곡)’를 부른다. 이 곡은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 때 광화문에서 불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노래다. 박근혜는 감옥에 있는데 이들은 무슨 일로 길거리에서 음악회를 하는 것일까?

이들은 양주시 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이하 양주시립예술단) 단원들이다. 그런데 지난 11일부로 60명 전원이 해촉됐다(합창단 25, 교향악단 35). 예술단을 계획하고 운영하는 양주시가 사업을 종료하고 양주시의회는 예산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합창단은 2003년에, 교향악단은 2009년에 창단되어 시민들에게 해마다 20회 이상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갑작스런 사업 종료로 시민들은 올해부터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됐다.

양주시 교향악단, 합창단 2016년 송년음악회 모습.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양주시립예술단 단원이자 공공운수노조 양주시립예술단지회(이하 지회) 조합원 김용원 씨(37)와 송수진 씨(31)를 만나 이유를 들어보았다. 합창단에서 베이스 파트를 맡은 김용원 씨는 2017년에, 교향악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송수진 씨는 2016년에 각각 모집 공고를 보고 입단했다.

시립(단원)이라는 것은 (음악 전공자로) 거의 최고죠. 공인된 느낌? 레슨도 많이 들어오고 경쟁률도 엄청나고요.”

▲ 2016년 양주시 교향악단합창단의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홍포 포스터.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이들은 정기연주회 외에도 찾아가는 시민음악회’, ‘파크 콘서트등의 무대에 서며 양주시 곳곳에서 연주를 해 왔다. 연주회를 위해 주 23시간씩 함께 모여 연습을 하고 받는 임금은 50만 원. 타 지자체 예술단보다 20만 원가량 적은 금액이다.

상임단원들은 지방공무원 8급 대우에 복지카드도 나오고요, 저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계약직이죠.”

2회 연습에 월 50만 원을 받는다면 임금이 많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합주하는 시간말고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노동시간이 있다.

합창단은 보통 (곡을) 외워 오라고 해요. 가사가 다 외국어인데 내 시간 내서 외워야죠. 어려운 곡들도 있는데 그때는 스트레스죠.”

악기의 경우 악기 유지관리비와 개인 연습실 사용료 등 지출이 크지만, 양주시에서는 보조해 주지 않는다.

한번은 연습 때 만든 단이 무너져서 튜바가 쓰러졌어요. 해외에서 수리해야 하는데 천만 원 정도 드는 거예요. 그래서 문화관광과(담당 부서)에 얘기를 했거든요. 시는 예산이 없다고 해서 결국 50만 원 받고 끝냈어요.”

단원들은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임금인상이나 상임단원으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연주를 해왔지만 점점 참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012년 교향악단에 부임한 김OO 지휘자는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교향악단을 데리고 다른 단체명으로 시와 관련 없는 외부 연주를 했다. 2014년에만 연 10회 이루어졌고, 2015년과 2016년에는 지휘자의 아들들이 포함된 음대 입시생들의 협연에도 동원됐다.

관객이 학부모들로 열 명도 안 되고, 학예회 수준이었어요.”

김 지휘자는 찬성한 단원들을 동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지휘자가 있는 데서 거수로 투표가 이루어져 불이익을 받을까 반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고 지회는 주장하고 있다. , 지회는 시외 공연을 위해 양주시교향악단 근무시간에 외부 공연 연주곡을 연습하는 날도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단원들은 김 지휘자에게 시청 모르게 하는 연주는 하지 말 것’, ‘협연 학생들에게 돈 받지 말고 양주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을 선발하여 양주에서 협연자 음악회를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양주시가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들이지만 시는 예술단에 대한 기본 관리·감독조차 하지 않았다. 예술단을 총괄하는 단무장은 역시 시외 연주를 강요했다.

양주시립교향악단 송수진 씨와 합창단 김용원 씨.  작은책(정인열)

2017년 참다못한 수석단원들이 문화관광과에 찾아가 호소했다. 송수진 씨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일로 찾아오지 말라고 했대요. 심지어 누가 찾아갔는지 지휘자한테 전했고요.”

시외 공연에 반대한 단원들은 경고를 받거나 평정(오디션)으로 수석단원에서 일반단원으로 강등됐다. 이들은 평정 부정심사 의혹도 제기한다.

평정 점수를 당사자한테 공개 안 해요. 어떤 심사위원이 어떤 점수를 줬는지 저도 알아야 뭘 잘못했는지 아니까요. 다른 데는 다 알려줘요.”

김 지휘자가 레퍼토리도 다르게 구성한 사례도 폭로했다. 특정 단원에게 어펴운 파트를 집중시켜 실수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송수진 씨가 말한다.

지휘자가 트럼펫 수석을 자르려고 마음을 먹고 트럼펫 솔로만 세네 줄 나오는 서곡을 2개 넣었어요. 틀리면 실력 미달로 어떻게 하려고 했었나봐요. 우리 트럼펫 주자들 따로 모여서 진짜 독기를 품고 연습했죠.”

보통 서곡-교향곡으로 구성되는 연주회는 지휘자의 권력으로 서곡이 2개인 이상한 구성이 되었고, 이를 견제해야 할 단무장이나 담당 부서 역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지회는 밝혔다.

합창단 단역시 고통받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2015년 부임한 이OO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막말과 고성, 반말을 일삼았다. 김용원 씨가 말했다.

저한테 쌍놈의 새끼라고 소리 질렀어요. 지휘자가 너무 소리질러서 지휘자님,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했거든요. 어린이합창단하고 협연할 때도 꺼져!’ 하는 거예요.”

양주시 합창단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양주시 공식 블로그 갈무리. 

합창단 단원들도 교향악단 단원들처럼 지휘자에게 시정 요구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거의 대부분 단원들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시에 제출했지만 이 지휘자는 대표격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러 간 단원 4명에 대해 해촉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해촉당하면 다른 데 시험 볼 때 불이익을 받아요.”

해고 위협을 느낀 단원 3명은 개인사정 등을 이유로 사임하고 김민정 씨만 버텼다. 이 지휘자는 김민정 씨를 연습과 공연에서 두 달간 배제시켰다. 김용원 씨가 증언한다.

매일 저희 연습실 대기실에 앉아 있었어요. 혼자 배제돼서 연습실에 못 들어가는 게 얼마나. 누나도 울었죠.”

합창단 단원들은 2018918일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하고 양주시립예술단지회를 설립했다. 김민정 씨는 노조 지회장이 됐다. 곧이어 교향악단 단원들도 노조에 가입했다.

시의회는 양주시립예술단이 20181212일 송년음악회를 끝으로 연간 일정을 마치자 곧바로 양주시립예술단 운영예산 전액(75천여만 원, 1218)을 삭감했다. 이어서 시는 예술단 전원에게 1226일 해촉 통보를 했다.

▲ 송수진 씨가 양주시로부터 받은 해촉통지서.  사진제공_ 공공운수노조 양주시예술단지회. 

양주시립예술단은 전원 비상임단원으로 해마다 평정에 통과하면 자동 재위촉됐다. 근로계약서도 없이 시는 단원들을 프리랜서처럼 위촉했다. 하지만 이 아무개 단원이 낸 부당강등 구제신청에서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20186, 201811).

지회는 2018년 송년음악회 준비 때부터 시와 시의회가 예술단 사업을 종료할 계획이었다고 보고 있다. 적어도 공연 2주 전에는 포스터가 나오고 시 전역에 홍보가 되어야 하는데, 이성호 시장은 홍보 결재를 공연 7일 전에 했고, 협조 공문 발송은 6일 전에야 시작되어 홍보 기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결국 항상 관람객으로 꽉 들어차던 객석이 송년음악회에는 100석도 채우지 못했고, 이를 빌미삼아 정덕영 시의원은 예산 삭감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회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해촉됐다고 주장한다.

양주시에 노조가 하나도 없어요. 청소용역 노조가 있었는데 지금 시장이 노조 없애면 처우 개선해 주겠다 했대요. 공공연히 다 퍼진 얘기예요.”

▲ 양주시 홈페이지. 양주시와 시의회는 단순히 사업 종료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양주시 홈페이지 갈무리.

황영희, 김종길 의원도 예산 심의 때 노조 만든 곳에 예산 세워 줘야 하냐며 노골적으로 노조를 반대했다. 하루아침에 해촉 당한 단원들은 해촉 철회, 양주시립예술단 정상화를 요구하며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이들의 장기인 음악으로 시위했다. 이들의 투쟁 소식이 알려지자 양주시민사회단체는 대책위를 꾸렸고 전국 예술단체들도 연대하기 시작했다.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서 양주시 합창단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작은책(정인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예술단체들도 다 노조가 있더라고요.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서울시향, 성남, 제주, 광주 전부. 솔직히 놀랐어요.”

지회의 요구는 양주시민을 위한 음악을 하는 것뿐이다. 지휘자의 사적 용도로 쓰이는 예술단이길 거부하고, 폭언과 갑질에서 벗어나 음악에만 집중해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단이 되고 싶다.

심장 박동 요동쳐 북소리 되어 울릴 때, 내일이 열려 밝은 아침이 오리라~”

이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음악으로 투쟁한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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