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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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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보미노동조합'에 해당되는 글 1

  1. 2019.06.26 여성가족부의 기막힌 꼼수

<작은책> 2019년 7월호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여성가족부 아이돌보미

 

여성가족부의 기막힌 꼼수

정인열/ <작은책> 기자

 

 

아이돌보미 고정래 씨(60)는 아침 일찍 돌봄을 요청한 이용자의 가정으로 출근했다. 네 살 아이가 있는 맞벌이 가정이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어린이집 등원 준비 및 등원을 시켜 주는 일이다.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시리얼을 먹고 있다가 고 씨를 보고 멀리 떨어졌다. 아이 아빠는 출근하러 나갔다. 고 씨는 아이가 먹는 것을 도와주려 했지만 아이는 거부했다. 하는 수 없이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잠시 후 아이 아빠한테 거실에 있는 전자기기를 꺼 달라는 문자가 왔다. CCTV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고 씨는 기분이 언짢았다. 거의 대부분 이용자 집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이용자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마다 10년 경력자인 고 씨는 아직도 위축된다. 일터에 있는 아이 엄마한테는 어린이집 위치를 알려주는 문자가 왔다. 문자를 확인하려고 고 씨는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아이 엄마는 그날 아이돌보미를 파견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센터)에 아이돌보미 교체 민원을 넣었다. 고 씨가 아이 밥은 안 먹이고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는 이유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잘리는 인생이에요. 내가 감시당하면서까지 이 일을 해야 되나?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고 씨를 비롯한 아이돌보미들은 요즘 일할 맛이 안 난다고 한다. 이용자들의 불신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 강서구 한 카페에서 고 씨와 김경인(58), 배민주(54) 씨를 만나 속사정을 들어 보았다. 이들은 모두 서울 강서·양천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소속 돌보미들로,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연대노동조합 아이돌봄분과) 조합원이기도 하다.

▲ 서울 강서.양천 지역 아이돌보미 배민주, 김경인, 고정래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아이돌봄 서비스는 여성가족부가 가정의 아이돌봄을 지원하여 아이의 복지 증진과 보호자의 일·가정 양립을 통한 가족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과 양육친화적인 사회 환경을 조성(아이돌봄 서비스 홈페이지 인용)할 목적으로 2007년부터 시작됐다. 3개월~12세 아동을 둔 가정에서 시간당 9650(2019년 기준)을 내면 이용이 가능한데, 소득 기준에 따라 최대 80퍼센트까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관련 법령 및 행정 지침 등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내리면 단체장들은 돌봄서비스를 운영할 기관을 선정하고 지역 기관들은 돌보미를 채용해 이용자 가정에 보낸다. 아이돌보미를 연계해 주는 기관은 건강가정지원센터. 각 시군구마다 있는 센터는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다양한 가족지원 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설치한 기관으로, 대부분 민간 위탁 운영되고 있다. 전국 아이돌보미 종사자는 2018년 기준 23천여 명이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어요. 아이들이 예뻐서, 손주를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배민주 씨와 고정래 씨가 말했다. 고정래 씨는 2009년부터, 배민주 씨와 김경인 씨는 2013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이용자가 많아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급격히 일감이 줄었다. 정부가 2022년까지 아이돌보미를 3만 명으로 증원하기로 계획하며 2018년부터 인력을 대폭 채용해 돌보미들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센터는 올 11일부터 주 52시간 노동시간 시행을 핑계로 종일제 서비스 이용 가정에 2시간~3시간 30분씩 돌보미를 나누어 보내는, 일명 돌보미 쪼개기를 시행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정책이었다. 돌보미들은 주 15시간(60시간)도 채우지 못하게 되는 처지가 됐다.(60시간을 채워야 4대 보험 가입 및 주휴수당과 연차휴가가 생긴다.)

() 60시간 채울려고 이 집 저 집 땜빵을 다니고. 정말 아주 치사한 집까지 다 다녔거든요. 그래야 60시간이 채워져요.”

60시간을 채워봤자 이들이 손에 쥐는 임금은 504천 원. 직업을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이다. 돌보미들은 여성가족부가 돌보미 쪼개기를 하는 이유가 휴게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라고 본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회사는 노동자에게 4시간 근무하면 30, 8시간 근무하면 1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을 의무적으로 부여해야 하는데 휴게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4시간이 되기 전에 다른 가정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동안 업무 특성상 아이돌보미들은 쉴 수가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권리인 휴게 시간을 사실상 박탈 당해 하루에 1시간 이상을 무급으로 일해 왔다. 노조가 아이돌보미에 한해 법령 개정하고 임금으로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자 여성가족부는 돌보미 쪼개기로 휴게 시간 발생을 차단한 것이다.

돌보미 쪼개기때문에 아이돌보미들은 물론 종일제 서비스 이용 가정들도 큰 고충을 겪고 있다. 아이돌보미가 너무 자주 바뀌어 아이들이 돌보미들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고정래 씨가 말한다.

기존 선생님하고는 잘 놀다가도 제가 들어가면 애가 울고불고 난리에요. 애한테도 정말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안 하고 싶고, 힘들어요.”

배민주 씨는 애착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에서 석 달이 걸린다며 정부의 탁상 행정을 비판했다.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이용자도 엄청 불만이고요.”

3~4시간을 일한 뒤 다른 가정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돌보미들의 이동 시간과 교통비도 배로 들었다. 입사할 당시에는 최저시급이 안 됐지만 교통비도 지급됐고 급여의 10퍼센트만큼 경력수당도 지급됐다. 하지만 20139월부터 교통비가 없어졌다.

거리가 좀 먼 가정은 1시간을 가야 돼요. 2시간 돌봄하고 왕복 2시간, 모두 4시간 투자해서 (2013년 당시) 1만 원을 벌려고 가는 거예요.”

시급은 법정 최저임금에 맞춰졌지만 교통비뿐만 아니라 경력수당, 활동지원금 등 각종 수당마저 삭감되자 총급여는 갈수록 줄었다. CCTV 감시, 이용자의 갑질 및 갈등에 항상 심리적 스트레스를 안고 지내다가 센터에 호소도 해 봤다.

여성가족부나 센터는 오로지 이용자 편이에요. 여성가족부에 이용자 민원이 들어가면 센터 점수가 깎이거든요. 시시비비를 가려서 이용자 갑질도 없애 줘야 하는데 무조건 이용자 편이에요.”

바뀌는 것이 없자 20179, 배민주 씨는 여성가족부에 처우 개선을 호소하는 민원을 넣었다.

“‘이 사업은 이용자를 위한 사업이지 선생님들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저희도 세금 내는 국민인데, 그리고 우리가 있어야 아이가 있는 거고 아이가 있어야 우리가 있는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냐따졌죠. 그랬더니 거기 사무관인가가 ~ . 이용자 민원 갖고도 우리 머리 폭발할 거 같으니까 전화하지 마세요한 거예요.”

배 씨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더 높은 기관인 국무총리실에 투서를 했다. 다시 여성가족부로부터 메일이 왔다.

“CCTV 있는 데는 안 가면 되고, 인권 논하지 말라는 메일을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 생각이 드는 거예요.”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자 배 씨는 인터넷으로 노동조합을 알아보았다. 광주와 울산에서 먼저 노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광주지회에 연락해 권현숙 지회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노조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부터 아이돌보미들 100명 이상에게 무작위로 연락을 했다. 10시 넘어 돌보미들을 만나고 두 달 만에 80명 넘게 조합 가입서를 받았다. 2017123,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강서분회가 설립됐다. 현재 전국 조합원 수는 약 3500. 이들의 요구는 교통비 지급 및 급여 인상, 경조사 유급휴일 적용, 근무 연수에 따른 연차수당 반영 및 미사용 휴게 시간 보상 등이다. 그리고 여성가족부 앞에 천막을 치고 진선미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노조는 여성가족부 담당 공무원들과 몇 차례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노조에 노력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조합원들이 진선미 장관과 대화를 요구하며 천막에서 기다리고 있다(2019.6.3). 사진 제공_ 공공연대노조 아이돌봄분과


열악한 처우에도 아이돌보미들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보람을 생각하며 지금껏 버티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와 이용자 가정의 신뢰를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하다. 배민주 씨가 말한다.

“3개월 아기 때 만나서 7년째 보고 있는 아이가 있어요. 애들이 저하고 떨어지기 싫어해서 그 부모님이 저 믿고 주말마다 저희 집으로 보내요. 놀고 돌아가면 애들이 그렇게 밝대요. (웃음)”

고정래 씨도 마찬가지다.

저도 18개월부터 본 애가 초등학교 2학년인데 지금까지도 보고 있어요. 저 때문에 제가 있는 곳으로 이사올 정도로. 보람 있어요.”

민감한 CCTV 설치 문제도 신뢰 속에서 풀어 갈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CCTV 달지 마시고 한 달만 믿고 지켜봐 주세요. 아이가 선생님한테 애착을 갖는지 안 갖는지가 CCTV보다 더 정확합니다하고 설득해요. 그래서 3년을 안 달고 했어요.”

묻지마 살인 같은 게 늘어나는 건 우리 사회가 불행한 거예요. 그런 일 없으려면 지금 자라는 아이들이 정말 맑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우리가 힘이 되어야 해요. 저희는 거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요. 아무리 좋은 마인드로 일을 해도 갈수록 처우가 안 좋아지고 내 급여도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아이돌봄 사업이 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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