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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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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프레시젼노동조합'에 해당되는 글 1

  1. 2019.04.03 공포의 택배 상자

<작은책> 2019년 4월호

일터 탐방_ 신영프레시젼

 

공포의 택배 상자

정인열/ <작은책> 기자

 

 소통은 성공의 기초적 수단이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 있는 표어다. 신영프레시젼은 LG전자 스마트폰 금형 설계와 제작, 사출부터 조립까지 일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그런데 회사는 소통을 강조하는 표어와는 전혀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들과 대화 없이 일방적으로 대량 해고하고, 20년간 이어 온 사업도 정리하겠다며 250명이던 노동자들을 다 내보냈다. 해고노동자들은 서울지방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까지 받았지만 회사는 201812월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노동자들 50명이 서울 독산동 사옥에 남아 청산 철회와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2018127일부터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금속노조 신영프레시젼분회 조합원 김정숙, 이순영, 최진숙, 이희태 씨를 지난 35일 사옥에서 만났다. 사무실 한쪽에는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신영프레시젼 사옥 계단에 적혀있는 표어.   작은책(정인열)

 

등기를 안 받기 시작하니까 회사에서 꼼수를 써서 택배를 보낸 거죠. 택배는 수취 확인 안 하고 놓고 가도 되니까요.”

택배 상자 안에 담긴 내용물은 해고 통지서. 처음 회사는 등기우편으로 해고장을 보냈다가 수령을 거부하는 이들이 생기자 수취 확인이 필요 없는 택배로 보냈다. 발송인 난에도 회사명을 기입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받아 본 노동자들 73명은 20187월에 해고됐다.

▲ 생산 공장과 대표이사실이 있는 신영프레시젼 사옥.  작은책(정인열)

 

신영프레시젼은 자본금 12억 원(1999~2001)으로 시작해 15년간(2003~2017) 연평균 매출 1500억 원 이상, 연평균 당기순이익은 2016년까지 91억 원에 이르는 안정적인 기업이었다. 그러다 LG전자가 2014년부터 베트남 등 해외 공장을 가동하면서 스마트폰 국내 생산량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 삼성과 LG 스마트폰의 국내 생산량이 10년 만에 5분의 1로 줄면서(한겨레, 2019213일 보도) 신영프레시젼도 물량 부족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2017년 처음으로 약 6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회사는 20179월부터 유급순환휴업, 권고사직, 정리해고 등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축했다. 하지만 분회는 정리해고도, 청산도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희태 분회장이 말했다.

 

▲ 불 꺼진 신영프레시젼 공장.   작은책(정인열)

 

단 한 사람도 회사 상황을 설명하거나 미안하다는 자리조차 없었어요. 여기 누님들 정말 10, 20년 넘게 성실히 일해 온. 제가 봤으니까요. 그런데 해고장만 배달됐거든요.”

신영프레시젼은 대표적인 여성사업장으로 이 분회장만이 유일한 남성 조합원이다. 이들이 노조를 만들게 된 이유는 남녀차별때문이었다. 사출 업무를 하는 생산부 노동자들은 주야 2교대로 일을 하다 2017년부터 주야 3교대로 일할 것을 통보받았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자 최저시급을 받던 노동자들의 임금도 줄었다. 이직하려는 남성 직원들이 생기자 회사는 남성에게만 임금 보전을 해 주었고, 여성들은 계속 최저시급을 적용했다.

남녀차별 불평등하다고 면담 신청을 했죠. 하지만 기다리라고만 했어요. 한밤중에 관리부장한테 단체로 문자 폭탄도 보냈지만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각자 방법을 알아보다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로 가서 노동 상담을 받았다. 임금차별부터 그동안 쌓였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생산부 노동자들은 사출기에서 물건이 나오면 컨베이어벨트에 일렬로 서서 분류, 조립, 검사, 포장을 했다. 사출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실내 온도는 40도에 이르렀고 화상 사고는 일상이었다. 휴대폰 반조립을 하는 제조부는 시간당 400~450개를 생산하는 것이 정량이었지만 관리자는 매일 목표치를 높여 700~800개까지 해야 했다. 목표치를 달성하려다 보니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서 일하고 점심시간에도 일을 했다. 이렇게 일한 시간은 임금으로 받지 못했다. 10년을 일한 숙련자라도 신입 사원과 똑같이 최저시급을 받았다.늙은 소는 일을 못하니 채찍질 해야 한다, 자기들이 공주인 줄 안다는 등 막말도 들었다.

얘기하다 보니까 눈물콧물까지 다 흘리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막 승질나서 욕도 나왔죠(웃음).”

회사와 달리 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는 이들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같이 고민해 주시고, 해결책도 같이 찾아 주시고. 우리 의견 존중해 주는 게 회사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신영프레시젼 노동자 이희태,김정숙,이순영,최진숙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그렇게 201712, 노동자들은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신영프레시젼분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회사에 노동인권을 포함한 현장 개선안과 영업망 확보 및 사업 다각화 등 회사 경영 발전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정리해고와 명예퇴직을 감행하고 청산 선언을 해 버렸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잠도 못 자고 시간에 쫓겨 생활한 반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지회에 따르면 신창석 회장 일가는 연봉 3억 원에 지난 20년간 배당금으로만 860억 원을 받았고, 또 사측 교섭대표는 청산 시 부채를 정리한 후 자산을 현금화한 금액만도 약 75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노조에 밝혔다. 게다가 회사는 경영 발전 대책은 내놓지 않고 2012년부터 업종과 상관없는 골프장 사업에만 총 477억 원을 투자했다.

회사가 뒷짐만 지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열심히 발로 뛰어다녔다. LG전자 여의도 본사, 목동과 성수동의 신창석 회장 집, 춘천의 로드힐스 골프장, 청와대 및 정부 관계부처에 각종 집회까지 다녔다. 이순영 씨는 운동화 밑창만 세 번을 갈았다. 이들은 51일 노동절이 뭔지,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고 멀리했던 사람들이다. 사측 관리자들이 분회가 생기기 전 금속노조에 직가입한 몇몇 직원에 대해 조심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금속노조 직가입 조합원)은 알게 모르게 수군거리고 자꾸 뭔가를 전파한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듣기에는 분명히 이상한 간첩이었어요. 그래서 관리자한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회장님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 않은데요? (노조하는 사람들이란) 참 이상하네요라고 말했다니까요.”

그랬던 이순영 씨는 부분회장이 되어 앞장서서 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김정숙 씨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이규철 사무장(금속노조 서울남부지역지회)이 소식지를 돌리잖아. 그냥 휭 지나쳐 왔지. 그런데 회사가 이렇게 갑자기 엎어질지는 몰랐지. 일단 고용이 안정됐으니까. 월급 잘 나오고 했으니까.”

독산역 주변에 설치된 노동 상담소 천막을 보면 피해 다녔던 여성노동자들은 지난 38일 세계여성의날 집회에도 참석해 율동을 선보였다. 그리고 여성사업장 구조조정에 아무 대책 없는 정부를 비판하며 레이테크코리아, 성진씨에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하얀 소복을 입고 서울 도심을 행진했다.

 

세계여성의날 집회에 참석해 율동을 선보인 신영프레시젼 노동자들(3월 8일).작은책(정인열)

 

세계여성의날 행진을 하는 모습. 이들이 소복을 입은 이유는 해고됐기 때문이다(3월 8일). 작은책(정인열)

 

자동차업계, 조선업계도 어려우면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도 엄연한 가장이거든요. 여성노동자들을 정말 하찮게 생각하는 건지. 그러면서 일자리 창출한다 어쩐다 하잖아요? 있는 일자리도 못 지키면서 진짜.”

늙은 소라고 무시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의식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자본가들의 젠더의식은 아직도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모양이다. 정부 역시 여성노동자를 가장으로 인정하고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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