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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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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7. 16:45 기획 특집

<작은책> 20208월호

특집_ 작업중지권

 

오늘은 배달 불가능합니다.” 이럴 때 당신은?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치고 귀가한 당신. 때마침 종일 내리던 비가 폭우로 바뀐 창밖을 바라보며 신속하게 배달 앱을 켭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신중하게 고심하여 메뉴를 고른 당신은 배달 전송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나 잠시 후 곧 도착할 저녁 식사를 기대한 당신에게 반갑지 않은, 문자가 돌아옵니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와 배달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문자를 받아 든 당신은 이성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문자를 받은 즉시 배달업체에 전화를 하여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다행히(!) 이런 일은 현실에선 좀체 벌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의 배달 요청을 거부하는 일은, 날씨가 어떻든 간에 건당 수수료를 받아 삶을 유지하는 배달 노동자에게 생계가 달린 문제이니까요. 그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고자 단행한 배달 거부(작업중지)는 곧바로 배달 음식점과의 계약 해지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간 배달 노동자들이 폭염과 폭우 등 악천후 상황에서 배달을 거부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안전운임료를 요구하며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잠시 얘기를 다른 곳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한동안 정부는 코로나19 예방 대책으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전염병 예방 대책이 통용되지 않는 공간이 있습니다. 급격히 증가한 택배 물량으로 하루 2천만 배송 건이 쏟아지는 물류센터입니다.

최근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가 보장되지 않는 일터에서 발생한 집단 감염으로, 택배업체나 물류센터가 또 다른 전염병의 진앙지가 되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특히나 유례없는 폭염이 예상되고 있는 올해, 더 빨리 찾아온 더위 속에서 바삐 물류를 옮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역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며 바삐 몸을 놀리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아찔합니다. 게다가 휴식 시간이나 휴게 공간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염병보다 무서운 고용이라는 밥줄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일을 멈춘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상황에서 일을 멈추는 것이 불온한 상상인가, 우리는 이 사회에 묻고 함께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은 모든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인의 이름을 앞세워 김용균법이라고 더 많이 불리게 된 산안법이 개정되었고, 그에 따라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보다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산안법은 일터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유해·위험에서 노동자를 보호·예방해야 할 사업주의 다양한 의무를 담고 있어, 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법 조항은 좀체 찾아볼 수 없지만 유일하게 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

▲ 안전보건공단의 작업중지권 카드뉴스 갈무리 화면.

이처럼 산안법은 급박한 위험이라는 제한된 상황을 설정하고 있지만,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추가 조항을 통해 노동자의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으면, 작업중지나 대피로 인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거나, 눈이 내려서 빙판이 생긴 날,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과 강한 태양열로 인해 정신이 아찔한 상황에서 급박한 위험을 이유로 잠시 배달을 멈추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고객의 요청에 따른 빠른 배송을 철칙으로 생각하는 택배회사라고 하지만, 전염병이라는 위험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당한 업무 지시는 급박한 위험이므로 업무를 거부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정부의 산재 사망 통계만으로도 OECD 1위를 달리며, 하루에도 6~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하는 위험 사회에서, 안전 조치나 보건 조치가 미흡한 상황에서 방어적 차원에서라도 노동자가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목숨을 지킬 수도 있다는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되고 권장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위험하면 일단 멈추고, 이를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거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일터에서 불온한 행동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상식이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권장되어 일상의 행위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실시한 작업중지, 업무 거부와 거절을 근거로 해고나 계약 해지를 들먹이며 겁박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함께 이를 방어하고 지켜 내야 할 것입니다.

법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암묵적인 제약이 되고 있는, 노동자의 작업중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행동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도 이를 응원하고, 함께 싸워야 하지 않을까요

posted by 작은책
2020. 4. 29. 16:55 기획 특집

<작은책> 25주년 특집_ <작은책> 독자 25명에게 물었다.

요즘 뭐해 먹고삽니까?”

 


먹는 거 하나는 제대로 먹자주의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IMF의 영향을 받지 않은 두 부류가 있다. 엄청난 부자. 그리고 엄청나게 가난한 자.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경기가 좋든 안 좋든 자신의 삶이 바뀌지 않는 양극단의 사람들이다. 단칸방과 재래식 화장실, 바퀴벌레, 연탄으로 불을 때고, 가스레인지로 물을 데워서 겨울을 견뎠던 나에게 IMF는 먼 세상 이야기였다. 좋은 게 있다면 더 이상 나빠질 게 없기에 걱정도 불행도 없었다. 보통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돈을 열심히 버는 게 꿈이 되지만, 이왕 뭔가 바꿔 보려면 내 삶보다는 세상을 바꿔 보고 싶었다. 덕분에 나의 물질적 욕망은 똥물이 튀지 않는 화장실과 보일러와 베란다가 있는 임대아파트다. 가난이 익숙한 탓에 가난한 활동가의 삶도 딱히 대단하다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덕분에 코로나19로 인한 타격도 종종 하던 강연이 취소된 거 외에는 별 타격이 없다.

주말에 배달해서 받는 월급 70만 원과 한겨레21,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세 군데의 기고로 얻는 소득 35만 원이 내가 버는 정기적 소득이다. 105만 원으로는 조금 빠듯해, 강연과 방송 출연으로 얻는 출연료로 130~140만 원 정도를 번다. 불만이 있다면 오르지 않는 원고료지만, 길바닥에서 배달해서 얻는 하루 일당이 원고료보다 적기 때문에 글 쓰는 것만큼 가성비 좋은 알바도 없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마감을 만나면 끄적이면 그만이다. 세상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주목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세계에서 살다 보니 글감은 내 삶 주변에 널려 있다. 가성비를 생각해 되도록 2시간을 넘지 않고 글을 쓰려고 해서, 편집 노동자들이 고생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글쓴이 박정훈 씨. 사진_ 라이더유니온 페이스북.


생계비를 벌기 위한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나머지는 내가 하고 싶은 노조 활동에 쓰는데 이렇게 살다 보면 사람 성격이 안 좋아지기도 한다. 특히 배달 산업에 대한 인터뷰나 자문을 요청할 때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주로 내게 묻는 사람들은 월급 받고 하는 질문이지만, 나는 공짜로 알려 주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1시간 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배달 산업 구조 전체를 물어 놓고는 라이더유니온한마디 안 넣었던 기자도 있었다. 이런 무료 노동이 쌓여서 라이더유니온이 알려지고 그 덕분에 나 역시 사회적으로 알려져 강연도 하고 기고도 하게 되니 완전히 공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돈인 조합원을 붙잡고 인터뷰를 하면서 한 푼도 주지 않는 몇몇 언론사의 행태는 묵과하기 힘들었다. 취재원을 사서 공적인 뉴스를 내보낼 수는 없다는 저널리즘적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언론사가 어차피 기업의 광고로 돌아가고 발행 부수와 조회 수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한 시간 인터뷰에 100만 원을 주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최소한 최저임금과 교통비를 주는 건 정보를 왜곡되게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돈 한 푼 안 나오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과는 생각은 하지 않고 기쁜 맘으로 을 같이할 수 있다.

라이더유니온 로고. 이미지 출처_ 이더유니온 페이스북.


이렇게 쓰고 보면 참 불행하게 산다고 걱정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일 쓸 돈을 모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오늘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다. 먹는 거 하나는 제대로 먹자주의자8천 원, 1만 원짜리 밥도 아깝지 않게 먹는다. 날 아는 사람은 그렇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가성비가 떨어질 거라 여길지도 모르지만(나도 속상하다) 맛있는 밥은 그 자체로 행복이다. 요즘 고기를 끊었더니 직접 해 먹지 않으면 식비로 더 써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곤란하긴 하지만 적어도 밥 먹는 데 돈 아끼지 말자는 주의다. 김치와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어린 시절의 한풀이일 수도 있겠다. 먹는 것 다음으로 많이 나가는 돈은 월세, 그 다음으로 많이 나가는 돈이 후원금이다. 12개 단체에 매달 CMS 회비를 낸다. 내가 하지 못하는 운동에 월 1만 원이라도 후원할 수 있는 건 큰 기쁨이다. 매달 후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면, 안 보내 주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걸 빼는 것도 시민단체 상근자들에게는 일이라 그냥 놓아둔다.

욕심을 버리고 유유자적 살자는 게 아니다. 이렇게 살려면 공동체에 의존하면서 살아야 한다. 우리 집 전세금의 절반은 SH공사의 무이자 대출로 해결했다. 나머지 절반의 전세금은 청년희망통장으로 마련했다. 베란다도 없고, 10평에 불과하지만 전세금 떼일 염려 없는 임대아파트에도 당첨됐다. 임대아파트에 필요한 보증금은 공익활동가협동조합 동행에 대출 신청으로 해결할 예정이다. 근로장려세제를 비롯한 각종 복지 정책들도 프리패스다. 국민들이 내는 소중한 세금과 연대로 생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정보를 가진 사람이 복지 혜택도 받는 현실이다. 각 기관의 홈페이지에 매번 접속하고 긴 안내문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공인인증서를 깔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각종 서류를 떼서 제출해야 한다. 컴퓨터도 있고 프린터도 있고 팩스도 있고 스캐너도 있고 이걸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쉬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복지 신청을 하다가 좌절하고 포기한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야지 왜 나랏돈을 받아먹으려고 하냐, 나라가 해 준 게 뭐냐고 따져 묻는다. 여기다 대고 나라가 해 주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해 봐야 소용없다. 공동체의 힘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공동체에 그만큼 기여하게 되어 있다. 가난한 이들이 타인을 보다 잘 느낄 수 있도록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소망한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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