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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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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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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이야기

 

벌써 모기가 나타났다는데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입하(立夏). 고마운 계절이 어느새 여름 문턱에 다다랐다. 어린이날 미세먼지가 심했는데, 하루 지나자 쾌적해졌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으로 매우 좋다. 초미세먼지가 나빠도 마스크 착용하고 걸었으니 이런 날 집 안에 머물면 예의에 벗어난 일이다. 급한 원고가 더 급해지더라도 밖에 나갔는데, 조금 쌀쌀해졌다. 벚꽃이 떨어지면서 한낮에 그늘을 찾았는데, 양지로 걸었다. 북풍이 멈추면 따뜻해질 거라 예보하는데, 이내 무더워지겠지.

요즘 날씨는 느닷없다. 어제오늘은 아닌데, 산들바람으로 가로수를 초록으로 물들이던 날씨가 어느새 여름이다. 기상이변이라는 말은 이제 식상하다. 우리의 언어와 달리 자연의 변화는 더디다. 여태 기상이변에 적응하지 못한다. 순서를 놓친 봄꽃이 뒤죽박죽이자 새들은 짝을 찾기 어려워한다. 개구리가 물가 찾는 순서를 놓치면 잡종이 생긴다. 잡종은 예외적이어야 한다. 일상화되면 생태계는 안정을 잃는다. 생식 능력이 없는 잡종이 늘어나면 먹이사슬이 무너지지 않는가.

요 며칠, 거리에서 폭염 냄새가 났다. 작년 여름은 참 유난했는데, 올여름은 견딜 만할까? 롱패딩이 씻은 듯 사라진 거리에 반팔 티셔츠가 갑자기 늘었는데, 가지치기로 앙상해진 플라타너스들은 새잎을 몇 가닥 펼치지 못했다. 넓은 가로수 그늘이 햇살을 막지 못할 올여름이 벌써 두렵다. 여름은 초미세먼지를 줄이니 다행인데, 경각심까지 무뎌질지 모른다. 아닐까? 폭염은 에어컨 가동을 부추기고 중국 동해안의 화력발전은 석탄 사용량을 늘릴 테니 미세먼지가 오히려 늘어나는 건 아닐까?

괭이갈매기 집단 번식지로 잘 알려진 홍도의 평균 기온이 40년 동안 섭씨 1도 상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뿐 아니라, 2010년 제주도에서 발견돼 학자들 놀라게 한 아열대성 식물 고깔닭의장풀이 작년에는 홍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올해는 무성하려나? 거제도의 평균 수온이 1970년대보다 0.6도 정도 올랐다고 하니 홍도 해역도 비슷할 텐데, 우리에게 생소한 범돔과 아홉동가리 같은 아열대성 어종이 홍도 해역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언론은 덧붙였다. 아열대 어류가 고유 어류를 밀어낸 형국인데, 괭이갈매기는 번식에 이상이 없을까?

0.6도의 변화는 피부로 느끼기에 미미하다. 자판기에서 뽑아 든 믹스커피가 미지근해지는 온도보다 훨씬 작지만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드넓은 바다의 생태계는 변화에 예민하고 우리는 그 변화 폭을 감내하며 물고기를 잡아 왔다. 잡는 종류와 양이 들쭉날쭉했어도 익숙한 범위 이내였으므로 견뎌 냈다. 하지만 이젠 모른다. 누적된 기상이변은 새로운 적응을 요구할지 모른다. 쥐치가 사라진 홍도 해역에서 잡아 올린 범돔과 아홉동가리의 요리법을 연구해야 한다.

수온 변화는 플랑크톤 변화로 이어지고 필히 어류 변화로 연결된다. 국립공원공단에서 홍도 괭이갈매기가 2003년보다 열흘 빨리 번식했다는 보도 자료를 돌린 모양이다. 괭이갈매기는 새끼들에게 범돔과 아홉동가리를 먹여야 할지 모르는데, 처음에 흔쾌하지 않았을 거 같다. 지금도 그리 흔쾌하지 않을 텐데, 쥐치는 어떨까? 남획으로 사라진 쥐치가 홍도 주변에 회복되더라도 아열대 어류를 능가하기 어려울 거 같다. 우리 눈에 띄지 않는 플랑크톤이 이미 아열대성으로 바뀐 상황이므로.

온난화는 태풍과 해일의 수와 힘을 키운다. 아시아, 그중 우리나라를 둘러싼 바다의 수온이 크게 상승했다. 태풍 피해가 전 같지 않다. 바다에서 비롯되는 자연재해 기록이 자주 바뀌다 보니 이제 눈에 띄는 뉴스거리가 아닌데,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온난화에 대한 대비는 충분한가? 태풍이 일으키는 홍수와 산사태, 해일과 폭풍만이 아니다. 평균 기온과 수온의 변화가 일으키는 생태계 변화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어야 하나?

곧 제주도 남쪽 해역부터 아열대성 해파리가 올라올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지만 종류와 양이 늘어나기만 한다. 쥐치가 흔전만전할 때, 해파리는 그물 올리는 어부와 해수욕장의 청춘 남녀를 괴롭히지 않았지만 지금은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해파리들은 서해안에 밀집한 발전소에 적지 않은 비용을 청구한다. 터빈 돌린 수증기를 식히기 위해 끌어 올리는 바닷물에 감당하기 어렵게 섞이는 해파리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터빈을 식히고 나오는 온배수가 다시 해파리를 끌어들인다. 바다의 온도를 높이는 탓이다.

발전 용량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석탄화력발전소는 발전설비 1기마다 초당 50톤의 온배수를 내놓는다. 우리나라 화력발전 사업소마다 그런 설비가 적으면 서넛, 많으면 예닐곱 이상이고, 그로 인해 영흥도, 평택, 당진 주변 10킬로미터의 바다가 1도 정도 따뜻하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영광군에 막대한 온배수를 쏟아 내는 핵발전소가 6기 가동 중이다. 같은 용량인 화력발전소보다 2배의 온배수를 황해에 내놓은 핵발전소는 우리보다 중국에 훨씬 많다. 더 늘어날 태세인데, 중국의 화력발전소는 우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부분 황해에 온배수를 쏟아 내는 실정이니, 괭이갈매기의 식성 변화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백령도에서 북한 장산곶 사이의 인당수는 물살이 거세, 예전부터 고깃배의 접근이 어려웠나 보다. 중국 어선에 오른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걸 보면. 물고기가 많아도 남북 접경 수역이라 보전되었지만 그건 어부에게 안타까운 이야기이고, 점박이물범은 덕분에 식솔을 늘리고 몸집도 불렸다. 고마웠을까? 얼마 전 해양수산부는 백령도 물개바위 인근에 인공 쉼터를 만들었다. 경계심이 많아 처음엔 접근하기 꺼려했지만 차차 익숙해진다고 언론이 보도하던데, 물개바위가 비좁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보도했듯 단순히 개체가 늘어났기 때문일까? 그 명확한 이유를 연구할 필요가 있겠다.

황해 점박이물범은 겨울이면 바다가 얼어붙는 발해만으로 이동해 안전한 해빙에 새끼를 낳는다. 황하의 강물이 닿았던 발해만은 오랜 황금 어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공업용수로 전환된 뒤 폐수가 되어 발해만으로 빠져나가면서 바다 같았던 황하가 9개월 동안 건천으로 바뀌었다. 이후 점박이물범은 발해만을 포기해야 했다. 먹이가 마술처럼 사라졌을 뿐 아니라 바닷물도 얼지 않으니 새끼를 낳을 해빙도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점점 따뜻해지는 황해에서 멸종되는 걸까? 모른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도, 8000마리였지만 200여 마리로 줄었다고 걱정했다. 한데 늘었다니? 물고기가 남은 물개바위 주변에 모이는 개체가 늘었을 따름이 아닐까?

현재 황해의 점박이물범은 생태계 변화가 치명적이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쥐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은데 모기가? 입하가 막 지났는데 남녘에 모기가 나타났다고 한다. 입동 지나도 자취 감추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니 입하에 모습 드러내는 게 이상하지 않은데, 가려워서 그런지 인간은 호들갑이다. 요즘 모기는 예전과 같은 종류일까? 여름철 모기장으로 피신시키던 모기는 아니겠지. 독성을 강화한 분무기로 퇴치되지 않는 요즘 모기는 초여름부터 존재를 과시한다. 이러다 사시사철 긁적여야 하나?

며칠 맑아지니 미세먼지 걱정이 무뎌진다. 정부 대책도 흐지부지되는 건 아니겠지? 홍도 괭이갈매기는 누적된 지구온난화의 결과다. 더우면 에어컨 켜고 추우면 보일러 온도 높이는 인간에 대한 강력한 경고다. 모기를 이기지 못하는 인간은 생태계의 변화에 예민하게 대처해야 생존이 가능한데, 몹시 굼뜨다. 온실가스를 줄이려 들지 못한다. 그럴 생각이 아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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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년 5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마냥 흔쾌할 수 없는 도쿄올림픽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일본 도쿄는 다시 축제 분위기에 달아오를 것인가? 56년 만에 개최하는 하계올림픽을 대비해 우리나라도 출전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에 돌입할 텐데, 나이 들어 그런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가대표로 선발될 젊디젊은 선수들은 일단 뿌듯하더라도 색다른 마음 준비가 더 필요하겠다.

작년 105일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부지에 보관하는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정부 주장에 동의해 물의를 빚었다. 허용 기준치 이하로 희석하겠다지만 아무리 희석해도 방사능 총량은 줄지 않는다. 규제위원회가 오염수의 위험성을 모를 리 없다. 늘어나는 오염수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양해하겠다는 건데, 일본 어민들의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우리와 일본을 포함한 세계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와 올림픽위원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에서 시작하려는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후쿠시마에서 개최할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를 지원할 자원봉사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이다. 핵발전소 폭발 이후 9년이 경과한 시점에서 후쿠시마의 새로운 희망을 국제사회로 전파하겠노라 기염을 토하지만 자원 봉사자가 목표의 3분의 1에 미치지 않는다는 거다. 시민사회의 관심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일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그렇게 짐작한다지만, 도쿄에 비해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지극히 적은 현상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본 올림픽위원회는 한술 더 떴다. 국제적 문제 제기를 외면하는 건지, ‘도쿄 2020 음식 제공에 관한 기본 전략에서 경악할 계획을 밝혔다. 올림픽 기간 동안 후쿠시마를 비롯해 지진과 핵발전소 폭발로 피해를 입은 이와테, 미야기 지역에서 식재료를 구해 선수촌 식당에 다양한 식단을 제공하겠다는 게 아닌가? 그런 방침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세계의 건장한 젊은이들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셈인데,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2011년 핵발전소 폭발 이후, 후쿠시마 농산물과 그 농산물로 가공한 제품들을 먹어서 후쿠시마에 힘을 실어 주자!”던 민간 캠페인이 있었다. 그 여파로 유명 방송인과 연예인이 백혈병으로 사망하거나 시달려야 했는데, 8년이 지난 지금, 안전해졌을까? 그럴 리 없다. 1986년 폭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땅과 대기는 지금도 일반적 허용 기준치를 5배 넘나든다. 핵발전소 폭발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과 그 위험성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시민 거주 공간은 기준치 이내라고 홍보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생활하수가 모이는 지역이라면 여전히 위험 수준이다.

우리 정부도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연간 1밀리시버트로 규정했는데, 이하의 수치를 보이므로 안전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나라마다 제각각인 방사능 허용 기준치는 그 나라의 시민의식을 반영한다. 시민이 반사능에 민감하다면 엄격하겠지만, 아니라면 그 나라의 핵 산업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뜻이다. 그런 기준치는 대개 ALARA(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 원칙에 따른다. 방사능 위험성을 주목하며 탈핵운동에 앞장서는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의 김익중 교수는 무리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해석한다.

연간 1밀리시버트의 방사능을 받는다면? 만 명당 1명이 암에 걸릴 확률이라고 전문가는 풀이한다. 암에 걸린다고 무조건 사망에 이르지 않지만, 살아나려면 경제적이나 신체적으로 힘겨운 치료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소프트볼과 야구 경기가 예정된 후쿠시마는 현재 안전하다 확신할 수 없는데, 내년엔 나아질까? 그럴 리 없다. 방사성 물질에서 내뿜는 방사능을 1년 만에 줄일 방법은 없다. 사고 이후 황급히 집을 떠난 후쿠시마 시민들은 되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주거 지역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1밀리시버트에서 20밀리시버트로 완화한 사실에 분노할 따름이다.

1986년 체르노빌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공유하는 벨라루스는 직격탄을 맞았다. 폭발을 알았어도 대규모 행사를 강행했는데, 하필 그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 방사능 낙진이 집중된 게 아닌가. 벨라루스는 아직도 기형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방사성 물질이 호흡이나 음식으로 몸에 들어간 게 원인이었는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4기가 연속 폭발한 일본은 예외였을까?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겉흙 1400만 제곱미터를 걷어 냈지만 오염된 흙을 모두 들어낼 엄두는 내지 못한다. 대신 꾐수를 고안했다.


킬로그램당 100베크렐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일본은 8000베크렐 이하인 흙을 도로포장에 활용하기로 기준치를 슬그머니 완화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5000베크렐 이하인 흙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판매를 허용했다. 사고 이후 걷어 낸 흙을 커다란 자루에 담아 산더미로 쌓아 놓고 있는데, 당국은 170년이 지나야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기준치로 낮아질 거라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때까지 속절없이 기다릴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부담이다. 세슘이 있는 흙 위에 콘크리트를 덮는다면 괜찮을까?

베타선을 방사능으로 방출하는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다. 30년 뒤에 방사능 선량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독성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반감기가 최소 10번 계속되어야 안전해진다고 주장하는데, 베타선은 콘크리트를 통과하지 못하지만 사람 피부는 능히 통과한다. 30년 이상 틈이 벌어지지 않는 도로포장은 없는데, 폭발된 핵발전소에서 내놓은 방사성 물질이 세슘만이 아니다. 간단한 장비로 검색하지 못할 뿐, 세슘보다 반감기가 길고 독성이 강한 물질이 많다. 폭발 전에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핵발전소를 이중 삼중 안전시설로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문제는 음식을 통해 몸으로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위험해지는 방사성 물질이 몸속에서 방사능을 내놓는다면 아무리 낮은 수치라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허용 기준치 이하라는 걸 올림픽을 앞둔 일본 당국은 유난히 강조하겠지만, 그런 말에 마음을 놓을 환경단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우리나라를 찾은 후쿠시마 농부들은 환경단체 활동가의 손을 잡고 제발 후쿠시마 농산물이나 그 가공식품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오염된 농토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 납품된다면? 우리는 일본 정부의 태도를 주목하고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음식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를 우리나라처럼 킬로그램 당 100베크렐로 정했는데, 김익중 교수는 그 수치를 고속도로 제한속도에 비교한다. 제한속도를 시속 1000킬로미터로 규정한다면 속도위반 차량이 없더라도 도로는 매우 위험해지겠지. 몸에 들어오는 방사성 물질이 플루토늄이라면 더욱 끔찍하다. 반감기가 24천 년인 플루토늄은 60만 명을 폐암으로 사망케 할 방사능을 가진다고 전문가는 강조한다. 철보다 무거운 플루토늄은 후쿠시마 앞바다에 쌓였을 텐데, 설마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는 해산물을 선수촌에 공급하는 건 아니겠지?

세계 51개국이 일본의 농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하는 현실이건만 일본은 한국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바 있다. 1심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 현지 실태 조사보고서 작성을 중단하고 제출하지 않아 패소했다. 국가가 제 기능을 상실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 다행히 2심에서는 한국이 승소했다. 2심에서 이긴 게 기적이라고는 하지만 늘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가 원산지를 확인하고, 정부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후쿠시마산 해산물을 먹지 않을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posted by 작은책

<작은책> 20193월호

생각해봅시다

생태 이야기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최근 한 인기 있는 방송에서 어린이 주먹만큼 큰 딸기가 선보였다. 이름하여 킹스베리’. 계란만큼 큰 딸기를 보고 놀란 적 있는데, 비닐하우스와 식물 성장호르몬이 우리 농업에 등장했던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다.

계란보다 훨씬 큰 킹스베리는 어떻게 재배할까? 그 방면에 견문이 없지만 우리 기술진이 개발해 최근 첫 출하했다는 거, 가격이 높아도 인기가 많다는 건 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까닭도 있겠지. 당도가 높다고 한다. 그에 발맞춰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식품 수출을 이끌 차세대 수출 유망 품종 5가지 품목 중의 하나로 선정했고 벌써부터 수만 달러의 수출길에 올랐다고 언론은 뿌듯해한다.

사진_ Pixabay


첫눈 내리기 전부터 과일점 좌판의 가운데를 차지하는 딸기는 5월이 제철이지만 3월이면 끝물이다. 할인 경쟁에 나서는 상인은 재고 처리 하자마자 참외를 펼쳐놓겠지. 장마 전에 즐겨 먹던 참외도 제철을 잊었다. 비닐하우스가 계절을 앞당겼지만 더 빨리 더 많이 출하하려는 농부들의 경쟁은 난방을 끌어들였다. 킹스베리는 계란 크기의 딸기보다 적정 재배 온도가 섭씨 2도 이상 높다는데, 태워야 할 석유가 늘었겠다. 꽃가루는 어떻게 수정시키나? 꿀벌은 겨울에 활동을 하지 않는데. 별걱정 다 한다. 한겨울 비닐하우스를 위한 꿀벌이 있단다. 일회용이다.

첨단을 달리는 비닐하우스는 수경재배를 채택한다. 뿌리를 붙잡는 스펀지 같은 물질에 필요한 영양분을 적시 적량 공급하는 수경재배는 흙을 퇴출시켰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도 대량 생산하는 까닭에 출하 가격을 낮출 수 있지만 농산물의 유전자는 극단적으로 단순해졌다. 단순한 유전자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재배환경을 맞춰야 소기의 품질과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농부는 투자비를 아끼기 어렵다.

요즘은 한술 더 뜬다. 얼마 전 취임한 농촌진흥청장은 스마트 농업의 보급을 선언했다. “개방의 심화, 기후변화, 고령화 등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농업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해 농업인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고도화된 바이오기술과 디지털이 결합한 스마트 농업 기술로 우리 농업의 혁신 동력을 만들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했는데, 그런 농업은 농부를 존중할까? 농부대신 알바를 고용하는 건 아닐까?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최첨단 시설에서 로봇이 파종에서 재배, 수확에서 포장까지 책임지는 스마트 농업은 나이 든 농부를 거부할 것이다. 거액의 투자자는 소비자에 직배송하거나 대형마트와 계약할 테니 농촌도 외면할 게 틀림없다. 외부 환경을 차단하는 만큼 기상이변에 무심해도 무방하겠지만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만큼 온실 밖의 기상이변은 한층 거세지겠지. 국민이 체감할 성과? 어떤 성과일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농촌진흥청은 농촌 해산을 선도하려는가?

중국 인민대학교의 원로, 원톄쥔 교수는 3농을 주장한다. 세계의 공장이 되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국가의 부를 자랑하지 않는 그는 경작할 땅이 시골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내일의 대안을 찾는다. 농부는 물론, 농촌과 상생할 수 있는 농업이어야 자급 가능한 식량을 보장한다고 강조하는데, 산업화를 부추기는 스마트 농업은 흙뿐 아니라 농부와 농촌을 배제한다. 바이오와 디지털을 번지르르하게 내세우지만 신기루다. 막대한 석유가 값싸게 뒷받침되지 않으면 바로 무너질 사상누각인데, 지구촌의 석유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다. 산유국이 자료를 숨겨도 퍼올리는 양보다 소비가 많은 지 10년은 족히 넘었다.

땅은 농업의 오랜 기반이다. 다양한 미생물, 지렁이와 곤충들, 온갖 식물의 뿌리가 뒤섞인 흙이 있기 때문이다. 흙은 농작물의 뿌리를 잡아 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농작물이 성장해 수확물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골고루 제공한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균사를 한없이 펼쳐 내는 미생물이 질소와 인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도록 흙에 내놓으면 농작물은 미생물이 생장하는 영양분을 흘려보낸다. 그런 관계가 태곳적부터 지속되면서 흙은 우리에게 농작물을 풍요롭게 베풀었고, 농부는 땀 이상의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았다. 석유를 가공한 농약과 화학비료, 석유를 태우는 농기계를 사용하기 전까지.

흙은 탄소를 잡아 준다. 미생물과 지렁이와 거미와 곤충은 물론이고 다채로운 나무와 풀의 씨앗,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이 생장하고 죽으며 남긴 탄소가 뒤섞여 있다. 농부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기는 농작물이 흙속의 탄소를 흡수하는 건 아니다. 녹색 잎의 엽록체가 탄소동화작용으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곡식이나 과일로 생산한다. 막대한 에너지에 의존하는 농업은 진정한 생산이 아니다. 봄에 뿌린 한 톨의 씨앗이 농민의 땀과 햇빛과 빗물을 머금으며 가을에 수십 배의 소출을 내놓는 생산과 거리가 멀다. 차라리 변형이다. 수확한 농작물에서 얻는 열량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 주로 석유가 낭비되지 않았나.

농기계와 화학비료로 옥수수를 수확하는 미국의 드넓은 밭은 영양분이 고갈돼 흙이 딱딱하다. 무거운 농기계로 땅을 대규모로 갈아엎는 농업은 옥수수에서 얻는 열량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석유 에너지를 들이부어야 수확이 가능하다. 맹독성 농약으로 흙이 생명력을 거의 잃었기 때문인데, 흙마저 배제하는 스마트 농업은 어떤가? 생명을 아예 품지 않는다. 투자자의 이윤을 위해 종업원을 고용하는 공장일 따름이다. 흙을 배제하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가혹한 식량위기를 초래한다.

엽채소와 과채소 위주의 비닐하우스와 스마트 농업이 수출을 염두에 두는 한, 식량자급에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식민지로 만들려면 그 나라의 농업을 죽여야 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의 귀띔이었다는데,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급률이 20퍼센트에 턱걸이하는 상황에서 수출을 장려하다니. 우리 농업정책은 위기를 증폭한다. 주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밀과 옥수수 같은 곡식을 비롯해 고기와 과일도 진정한 생산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수입은 한계에 부딪히고 식량주권을 잃은 국가는 종속될 것이다.

다국적기업이 주도하는 미국식 농업은 수확물의 대부분을 소비자의 식탁보다 산업축산의 사료, 그리고 가공식품 공장으로 보낸다. 고기와 가공식품이 아니라면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은 대부분 농촌의 농부가 흙에서 생산한 농작물이다. 가공식품이 드문 국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 일본과 중국,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발밑의 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흙을 살리면 지구온난화도 어느 정도 예방하면서 내일의 식량을 견고하게 자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곳곳의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남북한 합해 7000만이 넘는 인구는 농부가 흙에서 생산하는 농작물로 자급할 수 있어야 내일도 생존할 수 있다. 늦기 전에 농토를 확보하면서 흙을 살려야 하는데, 스마트 농업과 비닐하우스로 수출농업을 꿈꾸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비축량이 얼마나 많은지 고갈 신호를 무시하며 여태 저렴한 석유, 그런 석유 덕분에 수입 농산물의 가격이 낮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부자나라의 농산물을 싸게 수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식량 자급을 준비해야 한다. 여유가 없다. 공산품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로 많은 식량을 수입해 놓고 음식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만용은 머지않아 종말을 고할 것이다. 그래서 눈을 간지럽히는 이맘때 딸기는 외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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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24. 11:06 알림 / 엮은이의 글

 



■ 엮은이의 글

  나라 주권이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심각한 때 이 글을 쓰게 됩니다. 한미 FTA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맺은 한미 FTA 협상안을 국회에서 비준해 주면, 3개월 내 미국에 ISD 조항의 ‘재협상을 제안하겠다’고 꼼수를 부렸습니다. ISD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뜻의 약자입니다.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수돗물 장사를 합니다. 한 달 수돗물 값이 갑자기 올라 우리 월급의 반이 됩니다. 서민들은 수돗물 사 먹을 돈을 아끼느라 빗물을 받아 놓았다가 먹기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미국 기업이 장사가 안 되겠죠? 당장 우리나라 정부에 항의를 합니다. 정부는 빗물을 못 받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우리나라에게 소송을 겁니다. 판단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하지요. 그 센터가 누구 편을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빗물조차 못 받아 쓰게 됩니다.

  소설 쓰지 말라고요? 지난 2000년에 볼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미국 기업은 벡텔이라는 기업이고요. 아, 그러면 그 ISD조항을 재협상하면 된다고요? 오바마가 총 맞았나요? 그걸 해 주게? 그런데도 이명박 ‘가카’가 국회에서 한미 FTA를 일단 비준해 달라는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그걸 비꼬는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일단 김태희를 나와 혼인시켜 달라. 3개월 안에 김태희 씨에게 결혼 허락을 받겠다”는 말에 뒤집어졌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싫더라도 일단 당선시켜 주십시오. 대통령 취임하면 3개월 내에 재선거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비꼬았네요.

  독자님들, 가카가 하는 말은 꼼수가 아닙니다. 제가 바둑을 둬 봐서 좀 아는데, 바둑에서 나오는 꼼수는 정말 그럴듯하거든요. 가카가 하는 짓은 바둑 18급짜리가 9단한테 던지는 막수입니다. ‘씨바, 넘 유치해!’

                                                                                                                 2011년 11월 16일
                                                                                                                        안건모 올림


■ 차례


4 사진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4 재수 없는 날 _ 상희
18 본색을 드러낸 선생님 _ 김경희
22 회갑보다 중요한 날 _ 김현주
25 공무원이 봉이냐? _ 서애련
28 축구를 그만둔 한국의 메시 _ 고경은
32 쫄다구 형님! 제 말 좀 들으세요! _ 김영도
36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 주먹이 운다│바담풍 _ 이성수
38 여성의 일과 삶 : 한 발을 디디고 거침없이 고고씽! _ 박미경
44 살아온 이야기(3) :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긴다! _ 신혜진
50 와글와글 초딩 글
52 이야기가 있는 들녘 : 올해도 쌀 다 팔았습니다 _ 김성만
56 글쓰기 모임 뒷이야기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 :
고기 280킬로그램 볶아 보셨어요? _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 3~4일 정도면 되겠지? _ 김정훈
68 일터에서 온 소식 : 용기 있는 대리운전기사 콜 ! _ 송재성
72 일터에서 온 소식 : KT를 바꿔라! _ 조태욱
76 실업 극복 희망 일기 : 난 유리 같은 여자예요 _ 최문정
80 현장 노동법 이야기 : ‘판례’를 무시하는 판사들 _ 변영철

기획 특집
혁명은 글쓰기와 함께 온다

83 강좌 _ 윤구병

103 뒷이야기 _ 이명옥

105 만화로 보는 세상 _ 이성열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 김진숙과 송경동 _ 박노자
110 교육 이야기 : 1정 연수 괴담기 _ 설은주
114 쉬운 경제 이야기 : 끝장토론 마지막 호소 _ 정태인
122 생태 이야기 : 우주여행은 그저 꿈일 때 아름답다 _ 박병상
126 인물 바로 보기 : 《실학파와 정다산》을 쓴 최익한 _ 송찬섭

쉬엄쉬엄 가요

131 일상 예찬 : 나는 이만하면 충분해 _ 김현진
134 영화 이야기 : 신비한 주술과 생생한 현실의 만남 _ 강성률
138 추억 따라 역사 따라 : 백두대간 완주보다 더 흐뭇한 것 _ 박준성
142 아, 이 시! : 밤새 잘 기셨소 _ 오도엽
144 새로 볼 책 : 싱싱한 유기농 만화 _ 윤지은
146 돌아볼 책 : 오타쿠와 레닌 사이 _ 곽일용
148 새로 나온 책 _ 편집부
151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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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3. 10:15 기획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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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18. 15:32 월간 <작은책>/세상 보기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 · 환경연구소 소장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암 검진 대상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전단이 편지로 왔다. “아직도 안 받으셨나요?” 묻는 전단은 검진 비용의 90퍼센트를 공단에서 담당하니 조기 진단으로 건강을 잃지 말라는 고마운 친절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친절을 이미 여러 차례 받은 처지에서 마음이 흔쾌하지 않는 건 왜일까. 가부장적이거나 상업적 친절이라는 냄새를 느낀다고 반응하면 좀 지나친 걸까.

  국내 굴지의 종합병원에서 원장으로 은퇴한 어떤 의사가 사석에서 자신은 건강 검진을 여태 한 번도 받지 않았다고 친구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까닭을 묻자, “무서워서!”라고 답했다며 그 은퇴 의사의 친구인 선배는 실소했는데, 그 선배는 해마다 사원 개인에게 마치 크나큰 권리라도 선물하는 양, 건강 진단 다녀올 것을 해마다 회사는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나이 들은 만큼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야 당연한데,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무게 잡는 의사들의 과잉 전문성이 불편하다며 ‘모를 권리’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토로했지만 회사는 알고 싶었을 게다. 미리 정리할 사원이 누구일지를.

  충성스런 고객에게 특별한 배려처럼, 구형 손전화를 스마트폰으로 바꿔 주겠다는 호들갑스런 전화를 극성스레 받는다. 멀쩡한 전화기를 바꾸라니!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는데 아무 지장이 없고 배터리 성능도 좋은데 왜 바꾸라는 겐가. 할부금 시한보다 훨씬 빨리 새로운 기능을 더한 제품을 내놓는 세태에서 재고품을 처리하려는 속셈은 아닐까. 헐값의 프린터를 내준 뒤 고가의 잉크나 토너를 파느라 여념 없는 업체의 상혼과 비슷한 건 아닐까. 아무튼, 옛 번호를 고집하는 손전화는 아직 내 손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탈퇴하는 이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린다. 프라이버시 유출에 진저리를 친 경험이 쌓이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언론은 귀띔했다. 진저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그치지 않는다. 호기심을 과시하는 누리꾼들이 공개하지 않은 개인 정보를 ‘신상 털기’라며 인터넷에 흘리자 관음증과 더불어 조회가 폭발하지 않던가. 이런 와중에 손 안의 인터넷인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모를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아 갈 소지가 다분하다. 사전 허락 없이 사용자의 행적을 감시하던 손전화기 제조 회사가 고발되었고, 벌금이 부과된 게 엊그제다.

  “건강 이상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전자 피부’가 나온다!”며 독자에게 가슴 벅찰 것을 요구하는 언론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잘 휘어질 뿐 아니라 견고한, 가로 2센티미터 세로 1센티미터에 두께가 37마이크로미터의 전자 피부를 문신처럼 심장 가까이 붙이면 환자의 심박수나 체온은 물론 근육의 움직임과 뇌파의 변화까지 24시간 감지하며 주치의에 연결한다는 언론 기사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을 시작했다”는 과학자의 소견을 소개했다. 다만 “생체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거리가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 원거리 전송이 필요한 의료 기기 적용에 한계”가 있으므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덧붙이면서.

  전자 피부의 가능성을 타진한 과학자의 순진한 의도는 기술 개발 속도를 미루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다. 스마트폰 기술과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GPS)을 활용한다면 미약한 생체 신호가 담당 의사의 손전화 모니터에 전달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리라. 그뿐이 아니다. 새 세기가 시작될 즈음, 세계 과학기술의 추이를 분석한 미래학자는 개인의 DNA를 기반으로 만든 칩을 피부에 이식할 경우, 개인의 맞춤 의학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담당 의사는 컴퓨터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해 적절한 약품을 그때그때 처방할 뿐 아니라 환자가 약을 제대로 먹는지, 먹지 않고 독한 술을 어디에서 누구와 얼마만큼 마시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보호자에게 일러바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전자 피부에 개개인의 DNA칩을 넣어 환자, 아니, 모든 국민의 피부에 태어나자마자 이식한다면 어떠한 장밋빛 미래가 약속될까. 집 잃은 개를 얼른 찾게 할 뿐 아니라 함부로 버린 개의 임자를 꼼짝없이 잡아내고, 물린 이가 예방 주사 접종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전자칩은 개에 한정하는 게 아니다. 안전할 뿐 아니라 효율이 훨씬 빼어나고 비싼 DNA 전자 피부가 전하는 은밀한 정보를 병원은 물론이고 행정망의 중앙컴퓨터와 연결한다면 생활은 무시무시하게 편해질 게 틀림없다. 말썽 많은 주민등록증이나 인감증명이 지갑에서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출입국 수속을 위해, 내 나라든 남의 나라든, 공항에서 길게 기다릴 이유도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1990년대 말, 인감증명과 건강보험카드의 기능을 포함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을 편의를 앞세우며 추진하려는 정부에 시민 단체는 맞서야 했다. 지문과 주민등록번호로 시민을 감시하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들이 은행이나 보험 회사, 그리고 기업에 흘러들어갈 경우 빚어질 감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전자주민등록증 계획을 철회했지만 어느새 슬그머니 살아나려 한다. 전자주민등록증이 없어도 일상에 아무 문제가 없는 시민과 달리 정부는 아쉬움이 큰 모양인데, 그 실체가 도대체 뭘까. 전국 곳곳에서 눈을 번뜩이는 폐쇄회로 카메라보다 효율적인 그 무엇은 감시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까.

  넓은 아스팔트가 한산해진 야심한 밤, 흐느적거리는 몸으로 횡단보도로 찾아갈 때 저기 경찰차가 보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횡단보도 도착 전에 길을 건넜더니, 경찰 순찰차는 요란한 소리를 남발하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주민등록증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민중의 지팡이를 믿어 안심하고 건넜다는 핑계를 귓전에도 듣지 않으며 도로교통법 운운하던 경찰은 전과가 없으니 봐 준다며, 더 바쁜 일이 있었는지 가던 길로 휑하니 사라져 갔다.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남이 보든 말든, 순찰차의 작은 단말기로 모든 범죄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현실에서 더욱 가깝게 다가온 전자주민등록증이 걱정인데, 최첨단을 찬미하는 과학 기술은 전자 피부를 넘어설 세상을 장밋빛으로 그린다.

  전자 피부의 쌍방향 정보는 주치의와 환자의 스마트폰 사이만 맴돌까. 그런 정보는 고객의 수가를 조절하고 싶은 보험 회사에서 반색하고 이윽고 가입을 거부할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기업은 어떤 이의 입사를 원하지 않겠지만 그 정도는 약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전자 신호의 감시와 통제는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다. 편의에 사로잡힌 개인은 중앙이 은밀히 수집해 분류할 뿐 아니라 가공하는 정보에 굴복할 뿐, 중앙의 의도를 좀처럼 파악하지 못한다. 철두철미한 감시 사회에 내팽겨진 개인은 나이 들어 몸이 쇠약해지면 저절로 병원 고객으로 등록되면서 나아가 ‘디지털 치매’에 들어간다. 현관 자물쇠의 번호를 기억 못하는 차원이 아니다. 전자 신호 체계에 소외된 이는 ‘디지털 학대’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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