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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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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성/ 대전대리운전 노동조합 사무국장


  2010년 6월, 망설이고 망설이던 대리운전을 시작했습니다. 

  대리운전 노동자들은 사연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택시 기사, 공무원, 은행원, 보험 영업인 등 다양한 전, 현직을 가지고 대리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컴퓨터 프로그램 판매 및 유지 보수를 하며 10년 이상 사장님 소리를 듣다가 대리운전을 한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술을 드신 고객들은 여기저기 대리운전 회사마다 부르고, 10분 이상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빨리 가지 못하면 콜이 취소됩니다. 대전의 대리 요금은 기본이 8,000원입니다. 거의 모든 지역이 그렇기 때문에 고객에게 갈 때 택시를 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콜이 많은 시간에는 콜을 잡아 놓고 지원 차를 기다릴 시간도 없었고 2천 원을 내야 하는 지원비도 부담스러웠습니다. 거의 20년을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을 해 왔기에 몸은 불어나고 운동이라고는 전혀 안 하다가 갑자기 대리운전을 하며 뛰어다니기 시작하니 약해진 인대가 버티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늘어나서 절룩거리며 일했습니다. 뛰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가족들의 생계 때문에 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콜을 받고 절룩거리며 뛰는데 손님이 뛰지 말랍니다. 손님을 태우고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왜 그리 절룩거리냐고 묻기에 안 하던 운동을 갑자기 해서 그렇다고 하니, 무릎 인대가 늘어나서 그런 거라고 2주 이상 쉬어야 한다고 합니다. 손님은 병원의 의사였고 내 증상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 주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말고 치료를 하고 그 다음에 일을 하랍니다. 하루하루 생계가 빠듯한데 2주를 쉬어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손님의 조언도 있고, 저도 너무 아팠기에 그렇게 대리운전 일주일 하고 2주 동안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2주를 쉬면서, 관리비(하루 2,800원)를 안 내 보려고 “사정이 이래서 병원에 다녀야 하니 관리비를 보류 좀 하자”고 하니 콜센터에서 “안 된다”고 합니다. 처리하려면 퇴사 처리를 해야 하고, 그러면 입사할 때 냈던 보증금 10만 원을 돌려받을 수 없으니 그냥 하루 2,800원씩 39,200원을 내는 것이 더 낫다고요. 결국 저는 일을 안 한 2주의 관리비를 내고 치료를 끝내고 다시 밤거리를 뛰어다녔습니다.
 
  한 콜을 타고 다음 콜을 찍는데 보통 20~30분 정도 걸립니다. 손님한테 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한 시간에 한 콜 타기도 힘들었습니다. 대리운전에 익숙해지면서, 한 회사의 콜만 타던 저는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7~8콜 정도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때쯤 지원 차를 타는 다른 기사님들의 손에는 두 개의 핸드폰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어보니 한 회사의 콜만 타면 기다리는 시간들이 많아져서 두 회사의 콜을 받으며 탄다고 했습니다.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제 손에도 두 개의 핸드폰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두 개 회사의 콜을 타며 콜당 25퍼센트의 수수료에 하루 5,600원씩 관리비를 내며 저녁 7시부터 새벽 6시까지 밤거리를 뛰며 버는 돈은 고작 7~8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하루 종일 13~15콜 정도를 타야 나오는 수입입니다. 

  1년 정도를 대리운전을 하며 날마다 내가 탄 콜 수와 금액, 취소 벌금 건수 및 금액, 지원 차량비 등을 꼼꼼히 기록해 봤습니다. 일 년 통계를 내 보니 회사로 들어가는 금액이 내가 벌은 금액의 30퍼센트 이상이고, 또 지원 차를 탈 때마다 내는 지원비 등을 포함하면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까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을 하는 건 기사인데 회사가 너무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는 걸 알았습니다. 혼자서 돈이 모아지면 대리 기사들을 위한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쯤 대전에 대리운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거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가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노조는 7월 3일 출범식을 하고 6차례에 걸친 교섭 요구 공문을 업체들에게 보냈습니다. 업체들은 공문에 반응하지 않았고, 들려오는 이야기로는 ‘너희는 노동자가 아니니 너희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 8명을 부당 해고했습니다. 부당 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찾아가 대표자 면담을 요구한 간부들이 경찰에 업무 방해로 고소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노조는 두 차례의 파업을 했습니다. 우리는 8월 18일 하루, 그리고 10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파업을 했습니다. 이런 파업을 보면서 일반 사람들은 그런 말들을 합니다. 하루 하는 파업이 파업이냐고. 하지만 하루하루 일을 하지 않으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 10월 20일, 2차 파업 결의 대회 때 저는 삭발을 했습니다. 삭발을 하는 동안 동지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습니다. 결의 대회 시작 전에 사측에서 전체 공지를 보냈습니다. 파업에 동참하면 한 달간 콜을 제한하겠다는 공지였습니다. 결의 대회를 준비하던 저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400여 명 조합원 중 결의 대회 참여 인원은 고작 60여 명. 계획했던 무료콜 투쟁(파업은 하지만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료로 집에 데려다 주는 투쟁, 콜센터와의 싸움이 우리 힘만으로는 이길 수 없기에 시민의 여론을 이끌어 내려고 처음 시도해 본 방법이었음)도 진행하기 힘든 인원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와 준 60여 명의 조합원 앞에서 삭발을 하면서 그이들을 떳떳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측의 협박 때문에 눈치를 보며 참석하지 못한 조합원들에게 우리 노조가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참여해 준 용기 있는 조합원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습니다. 삭발식 내내 저는 하늘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리운전 업계에는 많은 비리가 있습니다. 25퍼센트에 달하는 많은 수수료를 징수하면서도 회사의 경상비에 해당하는 보험료, 프로그램 사용료, 영업비, 광고비를 대리운전 노동자들에게 떠맡기고, 그것도 모자라 고객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콜 취소 벌금(요금 체계를 거리에 관계없이 동일 요금으로 책정해 놓고는, 장거리 콜을 기사들이 기피했을 때 물리는 페널티)이란 것을 만들어 2중 3중의 착취를 하고 있습니다. 보험도 같은 보험회사에 두 개씩 들고 콜을 타야 합니다(2011년 4월 22일 KBS ‘소비자 고발’).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대화로 고치고자 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로서의 기본 권리를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어디에도 우리 대리운전 노동자를 지켜 줄 법은 없었습니다. 대전광역시장에게 중재도 요청해 봤지만 관련 법규가 없는 관계로 중재를 할 수 없다는 답변만을 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뉴스에만 나오는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악질 센터’를 이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이기고 동지와 함께 짐을 지고,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posted by 작은책
2011. 11. 24. 11:06 알림 / 엮은이의 글

 



■ 엮은이의 글

  나라 주권이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심각한 때 이 글을 쓰게 됩니다. 한미 FTA 이야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과 맺은 한미 FTA 협상안을 국회에서 비준해 주면, 3개월 내 미국에 ISD 조항의 ‘재협상을 제안하겠다’고 꼼수를 부렸습니다. ISD는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뜻의 약자입니다. 간단하게 사례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수돗물 장사를 합니다. 한 달 수돗물 값이 갑자기 올라 우리 월급의 반이 됩니다. 서민들은 수돗물 사 먹을 돈을 아끼느라 빗물을 받아 놓았다가 먹기도 하고, 빨래도 합니다. 미국 기업이 장사가 안 되겠죠? 당장 우리나라 정부에 항의를 합니다. 정부는 빗물을 못 받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우리나라에게 소송을 겁니다. 판단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하지요. 그 센터가 누구 편을 들지는 불을 보듯 뻔하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빗물조차 못 받아 쓰게 됩니다.

  소설 쓰지 말라고요? 지난 2000년에 볼리비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 미국 기업은 벡텔이라는 기업이고요. 아, 그러면 그 ISD조항을 재협상하면 된다고요? 오바마가 총 맞았나요? 그걸 해 주게? 그런데도 이명박 ‘가카’가 국회에서 한미 FTA를 일단 비준해 달라는 겁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그걸 비꼬는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일단 김태희를 나와 혼인시켜 달라. 3개월 안에 김태희 씨에게 결혼 허락을 받겠다”는 말에 뒤집어졌습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싫더라도 일단 당선시켜 주십시오. 대통령 취임하면 3개월 내에 재선거하겠습니다”라는 말로 비꼬았네요.

  독자님들, 가카가 하는 말은 꼼수가 아닙니다. 제가 바둑을 둬 봐서 좀 아는데, 바둑에서 나오는 꼼수는 정말 그럴듯하거든요. 가카가 하는 짓은 바둑 18급짜리가 9단한테 던지는 막수입니다. ‘씨바, 넘 유치해!’

                                                                                                                 2011년 11월 16일
                                                                                                                        안건모 올림


■ 차례


4 사진
10 엮은이의 글
11 원고를 기다립니다
12 작은책을 읽고

살아가는 이야기

14 재수 없는 날 _ 상희
18 본색을 드러낸 선생님 _ 김경희
22 회갑보다 중요한 날 _ 김현주
25 공무원이 봉이냐? _ 서애련
28 축구를 그만둔 한국의 메시 _ 고경은
32 쫄다구 형님! 제 말 좀 들으세요! _ 김영도
36 타조알 선생의 교단 일기 : 주먹이 운다│바담풍 _ 이성수
38 여성의 일과 삶 : 한 발을 디디고 거침없이 고고씽! _ 박미경
44 살아온 이야기(3) : 조금만 더 버티면 이긴다! _ 신혜진
50 와글와글 초딩 글
52 이야기가 있는 들녘 : 올해도 쌀 다 팔았습니다 _ 김성만
56 글쓰기 모임 뒷이야기

일터 이야기

58 일터 탐방 :
고기 280킬로그램 볶아 보셨어요? _ 정인열
64 일터에서 온 소식 : 3~4일 정도면 되겠지? _ 김정훈
68 일터에서 온 소식 : 용기 있는 대리운전기사 콜 ! _ 송재성
72 일터에서 온 소식 : KT를 바꿔라! _ 조태욱
76 실업 극복 희망 일기 : 난 유리 같은 여자예요 _ 최문정
80 현장 노동법 이야기 : ‘판례’를 무시하는 판사들 _ 변영철

기획 특집
혁명은 글쓰기와 함께 온다

83 강좌 _ 윤구병

103 뒷이야기 _ 이명옥

105 만화로 보는 세상 _ 이성열

세상 보기

106 생각해 봅시다 : 김진숙과 송경동 _ 박노자
110 교육 이야기 : 1정 연수 괴담기 _ 설은주
114 쉬운 경제 이야기 : 끝장토론 마지막 호소 _ 정태인
122 생태 이야기 : 우주여행은 그저 꿈일 때 아름답다 _ 박병상
126 인물 바로 보기 : 《실학파와 정다산》을 쓴 최익한 _ 송찬섭

쉬엄쉬엄 가요

131 일상 예찬 : 나는 이만하면 충분해 _ 김현진
134 영화 이야기 : 신비한 주술과 생생한 현실의 만남 _ 강성률
138 추억 따라 역사 따라 : 백두대간 완주보다 더 흐뭇한 것 _ 박준성
142 아, 이 시! : 밤새 잘 기셨소 _ 오도엽
144 새로 볼 책 : 싱싱한 유기농 만화 _ 윤지은
146 돌아볼 책 : 오타쿠와 레닌 사이 _ 곽일용
148 새로 나온 책 _ 편집부
151 편집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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