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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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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에 해당되는 글 1

  1. 2019.09.27 보호자 침대는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1

일터 이야기

일터 탐방_ 영남대의료원

 

보호자 침대는 저절로 생긴 게 아니다

 

정인열/ <작은책> 기자

 

 

민주화가 밥 먹여 주냐?”라는 물음에 반론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홍구 교수는 이에 대해 한 칼럼에서 민주화운동을 거치고 노무현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는 박정희 독재정권 때 비해 군 의문사(비전투 인명손실)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며 민주화의 성과 사례로 꼽았다(<한겨레>, 201338).

대구의 종합병원인 영남대의료원. 이곳은 박정희와 박근혜가 지배하는 곳이다. 박정희는 죽고 박근혜는 감옥에 있지만, 박근혜가 추천한 이사진들이 영남대의료원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청산하지 못한 적폐들이다. 그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지난 71일 새벽, 두 명의 간호노동자가 의료원 본관 옥상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지상 약 70미터. 이들은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해고 조합원 박문진, 송영숙 씨로 1990년대부터 의료민주화노동조건 개선투쟁을 하다가 2007년 해고돼 무려 13년째 해고자 생활을 하고 있다.

영남대의료원 본관 옥상 70미터 높이에 사람이 있다. 검정 천막이 농성장이다. 작은책(정인열)

영남대학교는 1968년 박정희가 대구대와 청구대를 강탈, 통합해 출연 자금 한푼 들이지 않고 설립했다. 박정희 사망 후 1980, 딸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부임해 영남학원 정관 1조를 개정하며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문구를 넣었다. 1987년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영남대의료원에도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박근혜 이사장 재임 기간 부정입시 등 온갖 비리가 1988년 국정감사에서 다뤄지자 박근혜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교육부는 영남학원을 관선이사체제로 관리하며 이사들을 파견했다. 총장, 학장, 의료원장도 직선제로 선출하는 등 박근혜 없는 영남학원에는 민주화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였다. 1990년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조직을 변경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임금인상 등 노동조건 개선뿐만 아니라 환자·보호자를 위한 선택진료제 폐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보호자 없는 병동) 등 의료민주화 투쟁도 시작했다. 교직원 대부분(의사 제외)이 노조에 가입해 조합원 수는 약 850명으로 절반 이상이 여성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이었다. 노조 지부장 김진경 씨와 사무장 김지영 씨는 각각 1992, 1996년 입사한 간호노동자다. 당시 간호사(간호조무사)들은 미스 김, 미스 리로 불리며 교수들의 담배와 커피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결혼하면 퇴사해야 했고 생리휴가도 사용할 수 없었다. 높은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김지영 씨가 근무하던 심장내과는 응급환자가 많아 심폐소생술만 하루에 5번도 더 했다. 간호사 두 명이 54병상을 담당했다. 응급환자 처치를 하느라 다른 환자의 수액 교체가 늦어지면 화가 난 환자·보호자들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김지영 씨가 겪은 일이다.

프린터기를 던져서 머리에 맞은 적도 있었고 수액 폴대를 휘두르는 분들도 있었죠.”

노조는 병원 내 폭언·폭행 금지방안을 꾸준히 요구했고 정부는 지난 4월에야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을 위한 법·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대부분 종합병원은 이와 관련한 공지를 환자·보호자에게 안내하고 있다. 인력충원도 꾸준히 요구했다. 김지영 씨가 말한다.

지금은 배로 좋아졌죠. 보통 4~5, 많게는 7명까지.”

▲ 고공농성자에게 점심 도시락과 선물로 들어온 꽃을 전달하러 옥상으로 가는 김진경(왼쪽,) 김지영(오른쪽) 씨. ⓒ작은책(정인열)

199550일 파업 투쟁을 시작으로 노조는 해마다 임단협 투쟁을 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임금과 복지는 대구지역 병원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대구지역 간호대 졸업생이 선망하는 일터가 됐다. 노조는 조합원만을 위한 막무가내 요구는 하지 않았다. 보호자 침대 설치, 환자·보호자 차량 무료 주차, 환자·보호자 위안 행사와 상시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이뤄냈다. 이에 대해 김진경 지부장이 말한다.

외환위기 때는 자진 임금 동결했고요, 비정규직 처우 개선하면서 정규직 임금은 소폭만 인상했어요. 무조건 요구만 하는 게 아니라 병원 발전을 위해 노동조합이 어떻게 할 것인지 항상 고민했던 거 같아요. 병원이 발전해야 우리 행복도 같이 오니까요.”

▲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이 이뤄낸 의료민주화와 의료개혁작은책(정인열)

그러나 2006년 영남대의료원이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자문 계약을 맺으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당시 창조컨설팅은 이미 성애병원, 캡스, 레이크사이드CC 노동조합 등을 파괴시킨 전적이 있었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은 창조컨설팅의 계획대로 장악되기 시작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노사 합의사항 불이행, 교섭 불참 및 해태, 파업 유도, 개악안 제시, 단협 해지, 노조 간부 징계 및 해고, 조합원 탈퇴 유도. 이로 인해 2007년 김진경 씨와 김지영 씨를 비롯해 박문진, 송영숙 고공농성자까지 10명이 해고됐고 의료원은 노조에 56억 원 손해배상 청구 및 조합비, 간부 개인통장까지 가압류했다. 집회 장소인 병원 로비에 CCTV 16대를 설치하고 노조 활동을 밀착 감시했다. 조합원 탈퇴도 줄을 이었김진경 지부장이 당시를 회상했다.

탈퇴서가 내용증명으로 하루에 50, 100통까지 왔어요.”

▲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제출한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 영남대의료원도 노조파괴 성공 사례로 적혀 있다.(2011년 4월 28일)

노조는 의료원 측이 조직 내 위력을 이용해 탈퇴를 종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병원 교육은 노조 탈퇴가 주 내용이었고, 탈퇴하지 않는 간호사에게는 수간호사가 일을 주지 않았다. 950명이던 조합원은 현재 80명으로 줄었고 가입률은 약 3퍼센트밖에 안 된다. 노조는 의료원과 창조컨설팅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9년 관선이사체제가 끝나자 이명박 정권은 박근혜에게 7인 이사 중 4인의 추천권을 주었다. 그리고 박근혜가 추천한 이사 4명이 들어왔다. 공주의 귀환이었다. 김지영 씨의 말이다.

본인(박근혜)이 주인이 아니라고는 해도 의료원장실이나 병원장실에 지금도 박정희 사진이 걸려 있어요.”

2010년 이사회는 의료원장, 총장, 학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과거로 돌아가 임명제로 변경했다. 같은 해 대법원은 해고자 10명 중 7명만 부당해고로 판결하고, 박문진, 송영숙, 곽순복 3명에 대해서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는 2012년 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전모가 드러나기 전 판결이다. 노조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남학원의 실질 주인인 박근혜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기로 하고 2011년부터 박근혜 일정을 따라다니는 그림자 투쟁을,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집 앞에서 박문진 씨가 57일간 삼천 배 투쟁을 했다. 송영숙 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서울에 지하방을 얻어 2년 동안 본격적으로 광주로 강릉으로 인천으로,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을 돌며 그림자 투쟁을 전개했고, 박근혜 집 앞에서 매일 아침 1인시위를 했고, 종일 국회 앞과 서울역 1인시위와 당시 한나라당 앞 집회와 1인시위도 했습니다.” (2018426, 보건의료노조 집중 집회 발언 중)

▲ 영남대의료원 간호조무사 박문진(왼쪽), 간호사 송영숙(오른쪽) 씨가 지난 7월 1일 본관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해고자들에게 눈길 한번 안 주던 박근혜는 2017년 탄핵, 구속됐다. 창조컨설팅 심종두 전 노무사와 김주목 전무도 노조 파괴 혐의로 지난 828일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감옥에 있다. 하지만 박정희-박근혜의 적폐인 영남대의료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다. 노조는 해고자 원직 복직 및 명예회복’, ‘노조 기획 탄압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 ‘영남학원재단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 영남대의료원 로비 스케치.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이 해고자 복직 기도회를 하고 있다. ⓒ그림_이동수


소수의 조합원만 남았지만 노조가 아무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협은 계속 이어졌고 의미 있는 성과도 꽤 이뤄냈다. 2016년에는 교직원 모두 선생님으로, 2017년에는 청소, 경비 등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선생님으로 호칭을 똑같이 하기로 합의했다. 청소 노동자 및 교직원 휴게실도 설치됐다. 반면 노조의 힘이 약해지면서 유급이던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바뀌었고, 2018년 고용노동부가 근로조건을 점검한 결과 연장근무, 휴게시간 미보장 등에 대해 시정 권고를 받을 정도로 노동시간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나마 노조가 있어 휴게시간 미부여 수당을 직원들에게 환원하기로 의료원과 합의했고 의료원은 20187월 교직원에게 3년치 수당을 지급했다.

노조 임단협은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체 교직원에 적용된다. 전체 직원의 3퍼센트밖에 안 되는 조합원들의 노력과 눈물로 이룬 성과를 보자면 한홍구 교수의 말에 한 가지 주장을 더 보태야 할 것 같다. 민주화는 밥도 먹여 준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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