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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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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08 정규직 되니 '아줌마'라고 안 불러요(2018년 3월호)

작은책 2018년 3월호

일터 이야기 / 일터 탐방_인천광역시 남동구도시관리공단


정규직 되니 '아줌마'라고 안 불러요

정인열/작은책 기자


▲ 소래역사관 전경 ⓒ작은책(정인열)

어시장으로 유명한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 소래포구. 이곳에는 소래 지역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설립한 소래역사관이 있다. 역사관 안내데스크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이정희 씨(53)와 황운숙 씨(50)를 비롯한 역사관 노동자는 모두 남동구도시관리공단(이하 공단) 소속 정규직원이다. 공단은 남동구의 체육 시설, 공공 청사 시설 관리, 공원, 주차 관리, 문화 복지 사업 등을 관리·운영하는 지방 공기업으로 약 170여 명의 노동자들이 있다.

남동구도시관리공단은 비정규직 없는 보기 드문 사업장이다. 무기 계약직이나 하청회사 정규직 같은 가짜 정규직이 아니다. 환경미화원까지 공단 시설 관리직으로 호봉제 및 8급 주임에서 5급 대리까지 근속 승진도 가능한 진짜 정규직원이다.

▲ 소래역사관 안내 직원 이정희 씨와 황운숙 씨(왼쪽부터) ⓒ작은책(정인열)


다 우리가 파업하고 투쟁해서 일궈 낸 거예요.”

이정희 씨가 당당하게 웃으며 말한다. 이정희 씨는 2011, 황운숙 씨는 2008년부터 공단 노상공영주차장 주차 정산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1년마다 고용 계약을 갱신하는 일용직(비정규직)이었다. 황은숙 씨가 당시 환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때는 부스도 휴게실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점심을 그냥 길바닥에서 먹는데 너무 창피했어요. 그래서 아예 안 먹고 일주일을 굶었어요. 비오는 날은 그대로 비 맞고, 추울 때는 바람 맞고 일했죠. 소지품도 둘 곳도 없어서 구두 수선이나 노점상 하는 사람 사귀어서 소지품 맡기고.”

황 씨는 도로 중앙선을 넘어 다니며 목숨의 위험을 느끼면서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했다. 주말에는 특근수당도 지급한다는 말에 한 달에 하루만 쉬고 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단은 최저임금에 특근수당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 황 씨가 손에 쥐는 월급은 120만 원이 채 안 됐다.

이 씨는 공단에 들어오기 전 도시가스 검침을 했다. 그 일 역시 임금이 너무 적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공단에 입사했다.

소래포구 주차장은 꽃게철이면 주말에 차량 1000여 대가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었다. 횟집에서 술 한잔 걸치며 서너 시간 주차장을 이용하는 손님들도 많아서, 요금을 정산할 때면 반말을 하며 화를 내는 취객들도 상대해야 했다.

▲ 소래포구 노상공영주차장에서 한 노동자가 주차 정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_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


요금 7, 8천 원 나왔다고 사람을 팰 것처럼 행패 부려요. ‘왜 이렇게 비싸? 아줌마.’ 하고 따지고. 그런 일이 하루에 10건 이상이에요.”

뿐만 아니라 여자 혼자 사나? 그래서 길거리에 돈 벌러 나왔나 보네. 아줌마 시간 있어?’ 같은 성적인 농담을 듣는 것도 예사였다. 노동조합을 통해 환경이 개선된 것은 2012년 파업에서 승리해 정규직이 된 뒤였다. 이 씨가 말했다.

노조가 뭔지 민주노총이 뭔지 하나도 몰랐죠. 그런데 누가 회사에 노동조합이 있으니 가입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막연하게 그냥 우리는 노동자니까, 조합에 가입하면 좋지않을까 해서 입사 동기들과 같이 가입을 했죠.”

노조 지부장 강동배 씨는 남동국민체육센터 소장이었다.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아침 6시에 출근하는 안내 데스크 여성 직원이 아침 식사를 굶어 안내 데스크에서 빵을 먹었다. 한 이용객이 민원을 넣자 관리부장이 사실 확인서를 서너 차례 쓸 것을 강요했다. 확인서는 징계 또는 인사이동의 근거가 된다. 책임자로서 후배 하나 못 지켜 주는 내 역할에 회의가 들었다며 노조 설립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그렇게 2009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가 생겼다. 이듬해 취임한 김현익 당시 이사장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일용직 시설 관리, 환경미화 노동자들과 계약직 스포츠 강사를 해고하고 용역을 쓰려 했다.

김현익 이사장은 우리 필요 없다고, 용역 쓰면 된다고 무시했어요. 그리고 행정직들은 우리를 어이’, ‘아줌마라고 부르고 반말도 했고요. 무시하는 말투며, 태도며. 그런게 제일 속상하더라고요. 우리도 누군가의 딸이고 어머니인데.”

이에 반발해 환경미화, 시설 관리, 스포츠 강사 등 노동자 170여 명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셔틀버스 폐지 철회 등을 요구하며 2012216일 파업에 돌입했다.

전에는 파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유, 저 빨갱이들 왜 저렇게 길거리에 나와서 난리야?’ 하고 비난했던 이정희 씨는 자신도 똑같이 겪어 보고 나서야 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씨는 동료 황운숙, 강명자 씨와 몸짓패 우아해(우리 노동자들의 아름다운 해방을 위하여)’를 결성해 다른 투쟁사업장에 연대도 다니며 노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57일간의 파업 끝에 노조는 공단으로부터 요구 사항을 대부분 쟁취한다. 특히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비노조원까지 포함됐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일용직일 때는 일한 시간대로만 임금을 지급해서 경조사가 생겨 휴가를 가면 무급이었고 병가도 마찬가지였다. 황 씨가 말했다.

파업 전에 허리 수술을 했어요. 두 달은 쉬어야 하는데 한 달밖에 못 쉬었어요. 무급인 데다 팀장은 빨리 복귀하라니 잘릴까 봐서 다시 출근했죠.”

▲ 2012년 파업 집회에서 노동가를 부르는 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진 제공_남동구도시관리공단지부


정규직이 된 후에는 병가는 물론 경조사 휴가도 유급으로 바뀌고 성과급, 자녀 학자금, 급식비, 교통비 등 복리후생도 정규직과 똑같이 적용됐다. 노상공영주차장 부스도 인별로 생기고 선풍기와 난방기도 공급됐다. 가장 좋아진 점으로는 인격적 대우를 꼽았다.

행정직들이 저희한테 아줌마하며 반말했던 건 싹 들어가고 이제는 주임님하며 예의를 갖춰요. 손님들도 대우가 달라졌어요. ‘정규직 됐다면서요? 거기는 어떻게 하면 들어가요?’ 하고 부러워하기도 해요(웃음).”

공영주차장에서 일하던 이들은 201411월 구청이 안전상의 이유로 소래포구 일부 주차장을 폐쇄하면서 지금의 업무로 변경됐다. 비정규직이었다면 해고됐을 테지만 정규직이고 노조가 있어서 해고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것이 좋아졌지만 아직 이들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일은 있다. 바로 이들의 투쟁으로 공단 전체 노동자들의 처우가 좋아졌는데도 여전히 공단이 잘해 줘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가끔씩 속이 끓어오르지만, 이정희 씨와 황운숙 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눈치 보지 않고 기죽지 않고 회사에 우리 권리 말할 수 있는 거. 그전에는 회사 눈 밖에 날까 봐 부당한 일 있어도 참고만 지냈죠.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노조 가입한 거예요.”

▲ 이정희, 황운숙, 강명자 씨는 몸짓패 우아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여름 동광기연 집회 공연 모습. 사진 제공_이정희


관람 시간이 끝나는 오후 5시가 되자 역사관은 한산해졌다. 이들은 사무실 직원과 잠시 담소를 나눴다. 영화 ‘1987’에 관해, 그때는 데모하는 학생들을 빨갱이라고만 생각했다면서. 1987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이어진 투쟁이 없었다면 이런 일상이 가능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posted by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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