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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 진보월간 <작은책>입니다. 1995년 노동절에 창간되었습니다. http://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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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11월호

살아가는이야기

교실 이야기

 

나중은 끝이 없는 거였어


구자숙/ 인천부개초등학교 교사


 

초등학교 6학년 국어 시간. 우리는 요즘 교과서 대신 시간 가게를 읽고 있다. 시간 가게에는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먼저 떠나간 남편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는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는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5학년 딸을 국제중에 보내기 위해 무리해서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며 말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는 웃게 돼.”

나는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이야기하는 나중은 언제일까?” 잠시 침묵. 한 아이가 말을 한다.

대학 가는 20대요. 아니다! 아니다! 제대로 취직하는 30대요. 그것도 아닌데. 결혼하고 애들 좀 크고 난 40대 중반? 그게 나중인 것 같은데요.”

. 그럼 인생의 반을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거야?”

아이들 눈동자가 공포로 휘둥그레졌다.

아이들 말을 듣고 나니 어떤 선배가 취중에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대학 가면 다 해결된다고 해서 죽어라 공부했거든. 그래서 대학 갔더니 제때 취업해야 한다고 하더라. 취업하고 나서 이제 된 건가 했더니 결혼해야 한다 하더라. 아마 내가 결혼하고 나면 그다음은 언제 애 낳을 거냐고 묻겠지. 아들도 낳아야 한다고 할 거고. 그다음 집은 언제 살 거냐고 할 거야. 젠장. 처음부터 끝이 없는 거였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지금 행복해야 나중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지금 힘이 들어야 나중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이건 굉장히 다른 인생관이거든. 고민해 보렴.”

사실 나도 여전히 혼란스럽다. 중고등학교 시절이 정말 너무 재미없었고 철학 같은 건 가르쳐 주지도 않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사는 건 원래 이렇게 재미없는 일인지 누군가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주었으면 했다. 공부는 정말 재미없었지만 내가 학교에서 배운 유일한 기술은 재미없어도 참고 꾸역꾸역 의자에 앉아 있는 일이었기에 어쨌든 한눈 팔지 않고 죽어라 문제집 풀이를 했고 교대를 가서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철밥통을 꿰찬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 공무원으로 살면서 누리는 경제적, 정서적 안정감이 감사한 순간마다 생각했다. 중고등학교 때 지겹게 공부했던 게 다행이다. 그 지겨움을 견뎌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구나. 그러다가도 버스 정류장에서 생기 없는 눈빛으로 좀비처럼 버스에 올라타는 중고등학생들을 볼 때면 그 반짝이고 아름답던 시절을 문제집에 코 박고 평균과 등수 계산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 외에는 무얼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그 시절이 후회스럽고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하나 마나 한 생각을 해 본다.

얼마 전 20대 후반이 된 제자들을 만났다. 공무원 시험 준비로 거의 2년 만에 나온 제자가 쓸쓸한 얼굴로 말했다. 공무원 시험 이제 그만 보려고요. 2년을 해 봤는데요저 그냥 한 거 아니고 정말 제 삶을 갈아 넣었거든요. 그런데 답이 안 나와요. 이 정도 했는데 답 없으면 그만해야죠.” 그 아이는 공무원 시험은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실력을 보는데 완벽하게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탁탁 답안 체크만 하는 수준까지 외우고 공부해야지, 이게 답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하면 게임 끝이라고 했다. 영어는 수준과 난이도가 너무 높아 시간을 들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건 내가 고등학교 내내 하던 짓 아닌가. 문제 풀이를 잘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듣고 학원을 다니면서 쓴 돈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서른 살이 가까워 오는 그 아이는 말했다. 정말 공부 좀 그만하고 싶어요. 뭔가를 시작하려면 다시 돈 들여 공부해야 하는 게 지겨워요 대학은 왜 다닌 건지.” 적어도 20대는 살고 싶은 대로 살았던, 지금은 그냥 주는 월급 받으며 별생각 없이 사는 속 편한 나는 급 부끄러워졌다. ‘요즘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시절만 갈아 넣는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구나정말 잔인하다.’



그리고 아들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는 또 심각하게 고민한다. 문제 풀이를 얼마나 잘하느냐로 가치를 매기는 곳에 아이를 보내야 할지 다른 방식으로도 살 수 있다고 안내해야 할지. 그래서 지난 주말 금산 간디학교 설명회에 갔다. 그곳에서 자기 삶을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상냥하고 따뜻한 눈빛을 가진 활기로 가득찬 중학생들을 보고 말았다. 그 아이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에너지에 매료되어, 우리 아들이 나중에 먹고사는 건 모르겠고 삶의 가장 찬란하고 활기찬 청소년 시기를 이곳에서 꼬오옥 살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설명회를 진행하던 선생님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아빠 머리로, 부모님 매니지먼트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고민하고 만들어 가고 성장하고 싶은 학생을 기다립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 학교가 부모가 사회가 어떻게 아이들을 달달 볶아 대는지, 그 과정에서 아이들 삶은 얼마나 소외되는지, 그래서 이 지겨운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얼마나 슬프고 잔인한 일인지를 생각하니 씁쓸하고 서글펐고, 진짜 피해자인 아이들은 쏙 빼고 어른들끼리 내쳐 싸우는 모습은 슬픈 코미디처럼 보여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 내가 아이였을 때 가장 듣고 싶었던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너는 요즘 사는 게 어떠니? 재미있니? 행복하고 재미있고 나답게 산다는 건 뭘까? 당당하게 어른으로서 독립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니? 그러려면 어른들이 그리고 이 사회가 무얼 도와줘야 할까?” 그리고 이런 질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아는 어른으로 커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금이 행복해야 나중도 행복한 거라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는 교사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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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9월호

교실 이야기

 

똥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곽노근/ 고양 상탄초등학교 교사

 

 

아침을 거른 적은 없다. 어느 순간부터 내 장은 튼튼하고 건강해져 일을 열심히 잘한다. 아침을 거른다면, 속이 더부룩하고 너무 불편해 오전 중에 꼭 일을 치르게 된다. 쉬는 시간에, 틈을 봐서 허겁지겁 5분 정도 만에 끝내야 한다. 나는 진득하게 오래 누는 버릇이라 그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하기는 너무 버겁다. 하지만 허겁지겁, 되는 만큼 후다닥, 마무리하고 나온다. 아무리 내 똥이 급해도, 수업은 해야 하지 않은가. 급한 불은 껐으니.

첫 문단과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그래, 똥 얘기다. 나는 똥 얘기 하는 걸 좋아한다. 사실 똥 얘기, 더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어릴 때는 똥을 지금처럼 잘 누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안 눴던 이야기, 술 먹고 난 다음 날은 하루에 다섯 번 넘게 누기도 했던 이야기 등등. 그러나 이 자리가 내 똥 눈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는 아니니까, 여기서 그치련다. 여하튼 나는 똥 얘기 하는 걸 좋아한다. 똥 얘기는 사람들의 가면을 벗겨 주니까. 더러워하면서도, 사람들을 천진하게 웃게 해 주니까. 금기의 아슬아슬한 영역을 똥이 건드려, 시원하게 해 주니까.

그렇다고 무슨 내가 똥 얘기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다. 똥 얘기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자리라고 여겨진다면, 당연히 애초에 꺼내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 혹은 똥 얘기 꺼내면 감정의 벽이 확 무너질 것 같다고 판단되면 꺼낸다. 그마저도 수줍은 나의 성격 탓에 상황을 보고 또 본 후, 내 몸이 시킬 때 꺼낸다. 벌써 똥 얘기만 세 문단째다. 불편한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그냥 넘기시길 권한다. 앞으로도 계속 똥 얘기만 할 것이므로.


학교에서도 물론 나는 아이들에게 똥 얘기를 한다. 어른들에게 똥 얘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아이들에겐 상대적으로 덜하다. 아이들은 백이면 백 좋아한다. “단어만 나와도 아주 자지러지고 죽을려 그런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들을 두고 내 어찌 똥 얘길 안 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과 똥 얘기는 일상이다.

선생님, 어디 가세요?”

, 똥 싸러.”

(까르르 웃으며) 또 똥 싸러 가세요?”

, 당연하지!”

(또 배시시 웃으며) 선생님, 즐똥하세요!”

그래, 고마워. 즐똥할게!”

급식실에서 급식을 마치고 나오면, 언제나 나를 맞아 주는 네 명 정도의 4학년 우리 반 여자 아이들이 있다. 나를 졸졸졸 따라온다. 그러면 나도 뒤돌아 그 아이들 뒤를 졸졸졸 따라가면서 서로 장난을 주고받는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교사용 화장실. 위 대화는 그 내가 화장실을 가기 전 이 아이들과 항상, 매일 주고받는 대화다. 물론 실제 점심시간에 교사용 화장실에서 똥을 누진 않는다. (물론 아주 가끔은.) 그저 소변보고, 손을 닦고 할 뿐이다. 그러나 저렇게 똥 얘기를 농담 삼아 섞으니 분위기가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즐겁고 유쾌한가.

그 유쾌함을 위해 다소 도발적으로 나가기도 한다. 이전 학교에서는 교실에서 급식을 했는데, 밥 먹는 동안 플래시 노래를 많이 틀어 줬다. 이번엔 어떤 노래를 틀까 목록을 컴퓨터로 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꽂힌 제목이 있었다. 바로 내 똥꼬’. 선생님, 저거 틀어요!라는 말을 나는 놓치지 않고 잡아챘다.

 

내 똥꼬 _ 박진하 시/ 백창우 곡

 

똥 누러 뒷간에 가면

똥은 뿌지직 잘도 나온다

끙 끙 끄 응

조금만 힘줘도 잘도 나온다

자랑스런 내 똥꼬

 

플래시 영상엔 똥 누는 장면, 똥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또 틀자 해서 또 틀었다. 그래, 원하는 만큼 틀어 주마. 처음엔 재밌어 하던 아이들도 밥 먹으며 똥 노래를 계속 보고 들으니 거북했는지, 몇몇 아이들은 고만 보자 한다. 그렇지만 장난기 많은 친구들 몇몇은 또 보자 한다. 그래서 꿋꿋이 또 틀었다. 힘든 아이들이 늘어 갔다. 너무했나. 그러나 나는 간사하게 속으로 낄낄대며 웃었다.

그래서 벌을 받았나. 어떤 아이가 똥을 지렸다. 누군지는 모른다. 대변기가 있는 두 번째 칸. 똥은 대변기 뚜껑, 대변기 모서리, 양옆 벽, 벽 뒤 등등 산발적으로 묻어 있었다. 그 아이는 똥으로 그림을 그린 게 틀림없었다. 같은 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고민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는데, 냄새는 심했고, 이 상태로 주말을 맞을 학교를 떠나기엔, 똥의 자태와 냄새가 너무 추악했다. 행정실에 전화해 보니 청소하시는 여사님(학교에서 이 직종에 일하시는 분의 호칭을 고작 여사님으로밖에 표현 못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땅히 더 나은 호칭을 찾지 못해 부끄럽게도 부득이 이 단어를 쓴다.)은 이미 퇴근하신 후였다. 어찌해야 하나, 어찌해야 하나, 머리를 맞대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군대 가기 전 발령받은, 그리고 군대를 전역하고 얼마 전 다시 발령받은, 그 당시 신규였던 승현(가명)샘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제가 치울게요.”

마지못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었다. 그게 뭐 그리 큰일이냐는 듯,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듯. 승현샘은 바로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으며 걸레를 찾아 나섰다. 나도 뒤따라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렸으며 걸레를 찾아 나섰다. 이내 화장실에서 호스를 꽂고 두 번째 칸에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호스의 물과 걸레로 똥의 그악스러운 자태는 생각보다 금세 사라졌다. 승현샘이 주도적으로 했고, 나는 뒤처리만 살짝 했다. 승현샘 이전엔, 누구도 똥을 직접 닦고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교사들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다. 아이들이 통으로 엎은 반찬 찌끄러기들을 치워야 하고, 속이 안 좋아 게워 낸 아이들의 토를 치워야 하고, 교실에 들어온 벌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렇지만 똥은 아니었다. 똥을 치우지 않을 만큼은, 고상했다. 그리고 그 정도 고상함을 가진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교사들이 똥을 직접 닦고 치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욕먹을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부끄러웠다. 똥을 좋아한다던 내가, 결국 현실의 똥 앞에서 주저하다니. 똥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글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앞으로 똥 얘기를 부끄럼 없이 할 수 있을까. 똥 앞에서 한 점 부끄럼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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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 20195월호

교실 이야기

 

할 말은 글로 써 주세요

주한경/ 남양주 장내초등학교 교사

 

 

2017년부터 해마다 할 말 있어요를 하고 있다. ‘할 말 있어요는 작은 쪽지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교사인 내게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할 말 있어요는 칭찬할 일, 억울한 일, 부당하다 생각되어 신고할 일 따위를 적어 내는 종이다. 이것을 나는 모두 읽어 보고 해결을 본다.

10년도 더 전이다. ‘사소한 말이라도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 말을 물리치지 말고 잘 들어 주는 교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교실에서 아이들 말은 다 들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다 들어 주는 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서른 명 가까운 교실에서 듣는 사람은 나 혼자인 데다 수업 준비와 잡다한 일로 말 걸어오는 아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좀 더 부지런하면 되겠지 하며 모든 것을 허용하고 다 들어 주겠다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말하라고 하면 모두가 허물없이 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목소리 큰 아이들이 나와의 소통을 독점하면 수줍음이 많아 나서기 힘든 아이들은 앓다가 뒤늦게 일이 터지기도 했다. ‘왜 말 안 했니?’라고 물어도 입을 닫고 있다. 이미 늦었다. 아이 탓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참 어렵다. 그냥 모두 다 듣겠다는 분위기로만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종이에 써서 내는 것이다. 처음 누구나 써낼 수 있도록 좀 넘치는 말을 했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이 말을 듣고 아이들은 웃었지만 처음에는 머뭇거렸다. 그 뒤로 나는 써내는 글은 모두 받아 읽고 당사자를 불러 중재를 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듣고는 중재를 했다. 이러니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나온다. 정말 뭐든 써냈다. ‘지나가다 쳤어요’, ‘화를 냈어요. 아주 사소한 불만, 불합리함 그리고 조금의 칭찬과 장난 글까지 많이도 써냈다. 지난해에 600개가 넘는 할 말 있어요를 받았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 쓰게 한 덕이 컸다. 그냥 써내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확 줄었다. 보통 아이들은 앞뒤 잘라 내고 말을 하는 터라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서 몇 번을 물어 가며 들어야 좀 알아듣는데, 글로 내용을 미리 보며 이야기하니 그 시간이 확 줄었다. 또 기록의 힘도 있다. 이렇게 써낸 기록을 모두 모아 놓으니 뒤에 가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재하는 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사소한 일에 자칫 편을 들다가는 원망을 사기도 한다. 처음에는 잘못 판단해서 학부모님의 연락을 몇 번 받기도 했다. 그래도 하면 할수록 요령은 늘었다. 천 번이 넘도록 중재를 하며 자리 잡은 방법은 대충 이렇다. 먼저 들어온 할 말 있어요를 읽는다. 그리고 당사자를 부른다. 서로 같이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할 기회를 준다. 부족할 때는 본 아이들도 부른다. 그렇게 따져 보고 고의로 했는지를 밝힌다. 따져 보면 대부분 오해 때문이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진지하게 사과하도록 한다. 그러면 끝난다. 이제는 과정이 3분 이내로 끝난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나름 속 시원한 것이 있나 보다. 지난해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두면 바로 사라졌다. 아무리 많이 복사해 둬도 그렇다. 이는 몇몇 단골손님(?)들이 이 종이를 뭉텅이로 가지고 가기 때문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단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니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꽤 많이 들었다. 또 헤어지며 할 말 있어요종이를 일부러 가지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 서먹한 아이가 없다. 예전에는 헤어지고 다시 보면 한두 아이는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다 웃으며 본다. 나는 이것이 정말 좋다. 헤어진 누구와도 서로 웃으며 인사한다.

이렇게 아이들 말을 많이 듣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아주 사소한 일에 서로 소통이 안 되어 오해를 산다는 것이다. 작은 불만을 표현할 줄 몰라 마음에 담아 뒀다가 다른 충돌이 있을 때는 더 큰 감정 다툼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혼자 자라고 잘 놀지 못하는 환경이 이런 수줍음을 낳았다고 여겼다. 나는 이런 수줍음이 서로 놀지 않아 그렇다는 데에 생각이 닿아 교실에서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했다. 쉬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도구를 두고 놀도록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다툼은 더 늘었다. ‘할 말 있어요는 더 들어왔다. 놀이의 시비를 가리는 일까지 내게 들고 왔다. 왜 이리 많냐며 불평했지만 그래도 다 받았다. 그런데 이게 딱 한 달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자기들끼리 규칙을 만들어서 잘 논다. 자기들끼리 규칙이라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서로 심판을 보며 큰 다툼 없이 논다.

올해도 나는 할 말 있어요종이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 고자질은 좋은 겁니다. 억울한 일, 좋은 일 있다면 뭐든 좋으니 써내세요.”

지난해 선배들이 한 두툼한 할 말 있어요뭉텅이도 보여 준다. 이를 보더니 몇몇 아이는 지난해 선배들보다 더 해 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올해는 할 말 있어요받는 부서를 두고 아이들 도움으로 같이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무들끼리 서로 나누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목표다. 내가 편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쉬는 시간 내 책상 위에는 할 말 있어요종이가 쌓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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